지난해 11월 중국 구이저우성 빅데이터센터 설립 협약을 지켜보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천민얼 당시 구이저우성 서기(현 충칭시 서기·네 번째). ⓒphoto 현대차
지난해 11월 중국 구이저우성 빅데이터센터 설립 협약을 지켜보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천민얼 당시 구이저우성 서기(현 충칭시 서기·네 번째). ⓒphoto 현대차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 구이양(貴陽)에 빅데이터센터를 세웠다. 현대차의 해외 첫 빅데이터센터로, 중국 현지에서 운행 중인 차량 운행정보를 분석해 미래형 커넥티드카(connected car)를 개발하는 연구거점이다. 현대차는 “구이양의 구이안신구(貴安新區)는 ‘빅데이터 산업특화 국가급 구역’으로 애플, 알리바바, IBM 등의 데이터센터가 있다”며 “자동차 업체 중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최초로 입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차가 중국 내 생산거점인 베이징이나 충칭(重慶), 옌청(鹽城)도 아닌 구이저우에 해외 첫 빅데이터센터를 세운다 했을 때 의아해한 사람이 적지 않다. 구이저우는 중국에서도 서남부 오지로 IT 인재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지역총생산도 중국의 31개 성·직할시·자치구 가운데 25번째에 그치는 곳이다. 구이저우 관할 청두총영사관에 따르면 한국 교민도 전 성(省)을 통틀어 46명에 불과해 인천~구이양과의 직항편도 대한항공이 주 2회 취항하는 데 그친다.

이 같은 의문은 지난 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됐다. 현대차가 빅데이터센터를 구이저우에 낙점할 당시 구이저우성 서기로 있던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의 정치국 상무위 ‘깜짝 발탁설’이 나돌면서다. 천민얼의 당시 당내 지위는 중앙위원으로 정치국원도 아니었다. 지난 7월 경질된 쑨정차이의 후임으로 4대 직할시인 충칭시 서기로 영전한 데 이어, 불과 석 달 만에 정치국을 건너뛰어 정치국 상무위 입성설이 나돌자 ‘파격’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과의 특수관계를 빼놓으면 설명 불가능한 인선안(案)이었다. 천민얼은 시진핑의 저장성 서기 시절 직속 부하를 일컫는 ‘즈장신군(之江新軍)’의 대표주자다. 저장성 선전부장 시절에는 시진핑의 ‘즈장신어(之江新語)’란 책을 대필 출간했다.

자연히 현대차로서는 구이저우 빅데이터센터, 충칭공장으로 연거푸 인연을 맺은 천민얼 서기가 상무위에 입성하길 학수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천민얼 서기는 지난해 11월 직접 구이저우성을 찾아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만나 빅데이터센터 설립 협약을 체결한 당사자다. 천민얼 서기는 지난 7월 현대차 충칭 제5공장 준공식 때도 정의선 부회장을 따로 만났다.

현대차로서는 2002년 중국 진출 직후 공장이 있는 베이징 순이구(順義區) 구장(구청장)으로 인연을 맺어온 쑨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가 지난 7월 상무위 입성 문턱에서 낙마한 직후 새로운 귀인(貴人)을 잡는 것이 절실했다. 낙마한 쑨정차이는 현대차의 중국 사업을 지휘한 화교 설영흥 고문과 산둥성 룽청 동향이었다. 쑨정차이와의 관시는 그의 직속 상관인 자칭린(賈慶林) 당시 베이징시 서기로까지 이어졌다. 현대차가 2002년 중국 진출 후 ‘현대속도’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고속성장을 구가한 시기는 자칭린의 정치국 상무위 재임 기간(2002~2012)과 거의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현대차의 기대와 달리 천민얼은 상무위 입성에 끝내 실패했다. 하지만 천민얼은 충칭시 서기 자격으로 중앙정치국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25인의 신임 정치국원 가운데 1960년생으로 후춘화(胡春華) 전 광둥성 서기(1963년생), 딩쉐샹(丁薛祥) 신임 중앙판공청 주임(1962년생)과 함께 3명의 ‘60허우(後)’다. 향후 5년간 중도 낙마만 없으면 20차 당대회에 정치국 상무위 입성은 떼어놓은 당상으로, ‘당 총서기’란 더 큰 꿈을 키워 볼 수도 있게 됐다. 현대차로서는 5년 후 더 큰 대어(大魚)를 낚는 기대를 해봄 직하다.

지난 10월 24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는 중국의 불투명한 권력선발 과정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정치국 상무위원 개개인이 갖는 권력과 영향력도 워낙 막강해 기업들 사이에서는 줄을 대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유력 정치인을 왕으로 키워 권력과 부를 동시에 거머쥔 여불위(呂不韋)의 고사처럼 중국은 이런 문화에도 비교적 관대하다. 여불위는 볼모로 있던 진(秦)의 왕족 ‘자초(子楚)’의 후견인을 자처해 왕(장양왕)으로 키운 뒤 절대권력과 부를 거머쥔 거상(巨商)으로, 진시황의 생부(生父)란 설도 있다.

“王을 세우면 그 이익이 대대로 남는다”

왕을 세워 후원자로 만들려는 노력은 오늘날에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끈을 대려는 경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 대표기업 삼성의 경우 5년 전인 18차 당대회에 이어 19차 당대회에서도 막강한 대중 대관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19차 당대회를 통해 삼성전자의 시안(西安) 반도체공장 착공 때 첫 삽을 함께 뜬 자오러지(趙樂際) 전 산시성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하면서다. 왕치산의 후임으로 사정작업을 총괄하는 막강 권력을 거머쥔 자오러지 신임 기율검사위 서기는 산시성 서기 재임 시 삼성전자 유치를 위해 각종 행정편의를 제공했다. 반도체공장 진입고속도로 요금소를 ‘삼성요금소’, 진입도로를 ‘삼성로(路)’로 명명한 것도 자오러지다. 착공식 때는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주빈석에서 첫 삽을 떴다. 자오러지는 착공식이 있던 그해 당 중앙조직부장으로 영전했다가 5년 후 또다시 기율위 서기로 승승장구한 것이다.

5년 전인 2012년, 삼성이 무려 7조5000억원을 들여 모래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안에 반도체공장을 세운 까닭은 그해 18차 당대회를 통해 ‘총서기’ 발탁이 유력했던 시진핑 당시 부주석을 겨냥한 측면이 다분했다. 산시성은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고향이자, 시진핑의 원적이 있는 곳이다. 삼성전자는 시진핑이 저장성장과 성서기 재임 중인 2004년 저장성 성도 항저우에 반도체 연구소(시스템LSI)를 세우기도 했다. 시진핑이 저장성 서기 자격으로 2005년 방한했을 때는 당시 수뇌부인 윤종용·이기태·권오현이 총출동해 수원사업장과 기흥사업장을 보여주면서 환대했다. 덕분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012년 시진핑의 신분이 당 총서기로 격상된 다음에도 한·중 양국에서 시진핑을 수차례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됐을 때도 삼성전자의 시안 반도체공장은 피해가 전무했다.

중국 남부 광둥성에 주력 사업장을 두고 있는 LG의 경우 광둥성 서기 출신 왕양(汪洋) 부총리가 상무위에 입성하면서 계속 끈을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19차 당대회 때 상무위 입성과 함께 ‘포스트 시진핑’ 자리를 굳힐 것으로 예상됐던 후춘화 전 광둥성 서기가 상무위 입성에 실패하면서 반타작에 머물렀다는 평가다. LG는 1993년 광둥성 후이저우(惠州)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면서 중국에 진출했다. 왕양이 광둥성 서기(2007~2012)로 있던 2012년, 광둥성 성도 광저우(廣州)에 4조원을 투자해 8.5세대 LCD공장을 건립했다. 2014년 LCD공장 완공 때는 후춘화가 광둥성 당 서기였다. 이 같은 인연으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14년 광저우를 찾아 후춘화 당시 광둥성 서기, 2015년에는 왕양 당시 부총리와 별도 면담을 성사시켰다.

여불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왕을 세우면 그 이익이 대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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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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