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총서기(오른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photo 로이터
시진핑 총서기(오른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photo 로이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18일 중국공산당 제19차 당대회 개막날 당 총서기로서 업무보고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5년간 중국 외교는 인류 운명 공동체의 건설을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내년 3월 임기 5년의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될 예정인 그는 앞으로 5년간 자신이 끌고 갈 중국 외교의 기조에 대해 “세계 문명의 다양성을 존중, 문명 간의 교류가 문명 간의 차이를 넘어서게 할 것이며, 문명 간의 충돌이 아닌 문명 간의 상호 존중과 공존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류 운명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중국이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외교정책을 고수해서 “각국이 자주적으로 발전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이며, 국제적인 정의가 실현되어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한다든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와 발전의 길이 결코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어울리되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의 세계를 촉진할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시진핑의 업무보고 다음 날인 10월 19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대국외교’의 특징과 목표와 관련해 “앞으로 중국이 추구할 신형 국제관계의 내용은 ‘상호존중과 공평정의, 윈윈협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 개의 목표는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밀림의 법칙이 아니라 ‘지속적인 평와와 보편적인 안전, 공동번영, 개방 포용, 그리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 국가주석과 외교부장의 이런 미사여구(美辭麗口)만으로 중국 외교가 진짜 달라질까. 19차 당대회가 끝나면서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을 끝내려는 태도를 보여준 것도 중국 외교의 기본 정신과 목표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당대회 이후 시진핑 주석의 첫 해외 방문 예정지는 APEC이 열리는 베트남이다. 시 주석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11월 3일 하노이로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와 총리를 찾아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중국공산당 제19차 당대회 직후 시진핑 총서기가 방문하는 첫 나라가 베트남”이라며 “이번에 시진핑 총서기가 와서 중국과 베트남이 어떻게 정치적인 신뢰를 증강시키고, 어떻게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확립해서 양국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게 할 것인지 두고 보라”고 장담했다.

현재 베트남은 일본의 권유에 따라 미국과 인도, 베트남, 일본 4개국 간 공동 해상훈련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번 APEC 기간 중 전통적 기피국인 베트남과 얼마나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는지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이 시진핑 자신이 선언한 “인류 운명 공동체를 건설하는 신시대 중국 특색의 대국외교”가 허상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전통적인 ‘숙적’ 관계인 인도에 대해서도 밝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인도 주재 러시아 대사가 최근 인도와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도를 높여 일정한 공통인식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이에 대한 대변인의 견해는 무엇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에 폐막한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일대일로 사업은 당 규약에 명시됐으며, 당 규약에 명시된 이상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추진은 고도로 중시될 것이며, 확고하게 추진될 것이다.”

중국 국내외 미디어들이 평소에 좀처럼 접근할 수 없는 당 대외연락부 궈예저우(郭業洲) 부부장은 지난 10월 21일 당 대회장 미디어센터에 나와 기자회견을 했다. 현재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의 당대당 관계만 살아 있는 상황이어서 이날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궈예저우 부부장의 기자회견은 베이징(北京) 주재 외국 대사관과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중·조(中朝) 관계는 근린관계로, 두 나라는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중·조 간 우호협력 관계를 잘 지키고, 발전시키고, 우호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쌍방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 안정에도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양당지간의 교류는 양국 관계 발전에 중요한 추진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당과 조선노동당 양당 관계는 전통적인 우호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쌍방은 언제, 어디서나 여러 등급의 인적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쌍방의 필요와 편리에 따라 달라진다.”

궈예저우 부부장의 말은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으로 인한 유엔의 제재 결의안을 중국이 실행에 옮겨야 할 상황에서 최근 양국 관계가 냉랭해져가고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한편으로는 현재 중국·북한 관계의 기본은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의 당대당 관계이며, 정부 대 정부의 교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면서도 중·북 관계가 쉽게 파탄에 이르지 않는 이유를 잘 설명해줬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같은 중국과 북한 관계는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시절 열린 당 외사영도소조 회의에서 나온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 북한과의 선린 우호관계를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결정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중국과 북한의 우호선린 관계를 훼손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희한한 결정이었다. 우리와 미국을 비롯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국제사회의 기대를 중국이 늘상 저버리는 배경에는 이 같은 비논리적인 이상한 결론이 도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대국외교’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인류의 공동 운명체 건설에 무엇보다 방해가 되는 북핵 문제의 해결에 중국이 논리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모습부터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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