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권오준 포스코 회장. (우) 황창규 KT 회장 photo 뉴시스
(좌) 권오준 포스코 회장. (우) 황창규 KT 회장 photo 뉴시스

“청와대 핵심 인사 A씨가 민정수석실 관계자에게 일부 민간기업의 첩보와 비위 자료를 넘겨달라고 요청했다는 얘기를 최근 들었다. 민정 쪽 인사가 이런 요구를 정중히 거절했는데도 A씨는 관련 자료를 재차 요구해 결국 손에 넣었다고 한다. 해당 민간기업에는 포스코와 KT가 포함되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최근 포스코와 KT의 CEO 교체설이 다시 나오고 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모 인사의 말이다. 적폐(積弊)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과거 정권에서나 벌어질 법한 이런 일이 가능할까. 기자는 합리적 의심을 품고 포스코와 KT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실제 포스코와 KT에 다시 ‘외풍(外風)’이 불기 시작했다. 포스코와 KT 내부에서도 ‘회장 교체설’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청와대를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포스코와 KT의 ‘CEO 교체론’은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조각(組閣)을 마무리 지은 11월 초부터 시중에서 다시 나돌기 시작했다. 국영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한 지 15년 이상 됐고 현 회장 모두가 공식적으로 재임에 성공한 두 회사를 누가 흔드는 것일까.

과거 정권을 잡은 세력이 청와대와 내각을 정비하고 나면 포스코와 KT의 CEO는 항상 구설에 휘말렸다. 그러다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끝내 회장들이 하차하곤 했다. 두 기업 모두 이사회와 CEO추천위원회라는 독립된 시스템을 갖고 있음에도 정권 실세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두 회사의 CEO를 교체해야 한다고 군불을 지피는 곳은 이번에도 집권여당 쪽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포스코와 KT를 둘러싼 모종의 움직임은 과거 정부에서 나타난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 핵심 인사 A씨는 민정수석실 소속은 아니다. 그렇다면 민정수석실에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기업 관련 첩보 또는 비위 자료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월권에 해당한다. 더욱이 이 자료를 활용해 박근혜 청와대 시절 경제수석비서관이 했던 것처럼 기업에 압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직권남용이다.

금융계와 학계, 관련 업계 일각에서도 “A씨가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인사에 입김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A씨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재계 일부 인사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A씨가 자신의 업무보다 포스코나 KT의 CEO 자리에 관심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청와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A씨 측은 “민정수석실에 기업 자료를 요청했느냐”는 의혹제기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익명의 청와대 행정관은 취재기자에게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느냐” “사실이 아니라면 해당 부서가 뒤집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 다시 기자에게 전화를 건 행정관은 “(윗분과) 대화를 나눈 결과를 전한다”면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대신 전달한 것으로 마무리해달라”고 말했다. 기자는 A씨 측에 3차례에 걸쳐 입장을 물었으나 직접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인사추천과 인사검증 사이의 긴장감

그렇다면 포스코와 KT 주변에서 나도는 ‘CEO 교체설’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도 포스코와 KT 회장 교체설이 거론되거나 이 같은 기류를 읽을 수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우선, 야당 일부 인사들은 “내년 동계올림픽이 마무리되는 대로 포스코와 KT 회장이 교체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포스코와 KT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당에서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황창규 KT 회장에 대해 각을 세운 바 있다. 지난 10월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황창규 회장은 친박 핵심인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과의 골프회동 사실이 알려져 여당으로부터 난타를 당했다. 황 회장은 지난 9월 2일 경기도 여주의 골프장에서 최 의원과 골프를 쳤다. 이에 대해 “각자 계산했다”고 해명했다. KT는 올초 최순실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최대한 몸을 낮춰왔다.

이날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회장 연봉은 2년간 평균 2배씩 오르는 동안 직원 8100명이 구조조정됐다.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황 회장의 연봉은 24억원이었다.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회장직을) 그만둘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며 진퇴(進退)까지 거론했다. 야당 측은 황 회장에 대한 민주당의 압박이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KT 내부 사정도 복잡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과 정권 주변부에서 회장 교체설이 돌고 있는 상황을 황 회장에게 전달해야 하지만 관련 보고를 하기가 난감하다고 토로한다. KT 측은 “연임에 성공한 회장님을 잘 보필해야 하는데, 회사 밖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아 난감하다”면서도 “경영실적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계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경제사절단에서 제외됐다. 포스코 측은 문 대통령의 미국·인도네시아 순방 당시 권 회장을 경제사절단에 넣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권 회장은 지난 7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마련한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미팅 자리에 참석하며 현 정부 공식행사에 처음 등장했다. 재계 순위 6위의 CEO인 권 회장이 정부 행사에 명함을 자주 내밀지 못하는 것을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권 회장이 최순실 사건과 연루되어 현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포스코는 최순실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K스포츠·미르 재단에 자금을 지원했고 최씨 측의 인사 민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져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해 연말 “권오준을 포스코 회장으로 세운 외부 비선실세는 누구인가”라고 반문한 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최순실이라는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제보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스코 측은 올초 연임에 성공한 권오준 회장이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보좌하기 위해 정치권 동향과 청와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취약하다고 평가받은 그룹 홍보와 대관(對官) 부서를 보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와 KT 모두 현 회장 체제에서 전임자 시절보다 실적이 크게 호전됐고 이로 인해 내부적으로 호평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포스코는 올해 분기별 평균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며 2011년 이후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KT도 지난해 매출 22조7400억원에 영업이익 1조4400억원을 달성하며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와 KT는 2000년과 2002년에 각각 민영화됐다. 포스코는 2000년 10월 산업은행 보유 지분 36%를 매각함에 따라 민간기업이 됐다. 국민연금공단이 11.31%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체 주식의 65.48%는 소액주주들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포스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다. 지난 3월 포스코 권오준 회장 연임 안건이 상정됐던 주총에서도 국민연금 측은 찬성 또는 반대가 아니라 ‘중립’을 지켰다. KT도 2002년 5월 정부 지분 매각으로 민영화됐다. 가정용 일반 전화를 전국에 공급했던 국영기업 KT는 민영화 이후 전체 주주의 99%가 소액주주로 바뀌었다. 최대주주는 역시 국민연금공단으로, 전체 지분 가운데 11.20%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KT 회장 3년 연봉 70억

포스코와 KT는 민간기업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 교체가 정권의 입김에 좌우되어왔다. 정권을 잡은 세력들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정권 입맛에 맞는 CEO를 임명하는 관행이 계속됐다. 4년 전 박근혜 정권 초기에도 포스코 정준양 회장과 KT 이석채 회장은 정권이 바뀐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두 회사는 겉으로는 민간기업이지만 정권이 바뀌고 나면 대선 승리의 전리품처럼 취급되곤 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이사회와 호시탐탐 입김을 행사하려는 정권 실세들의 부적절한 고리를 끊지 못해 생겨난 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기존 CEO를 밀어내기 위한 비위와 첩보들이 대부분 사실과 달랐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과 당시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차관의 비호설이 끊이질 않았던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나 항소심까지 무죄가 선고됐다. 그가 포스코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로 거론되던 여러 의혹들은 결국 정권의 입맛에 맞는 회장을 앉히려는 흠집내기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정 전 회장의 전임자인 이구택 전 회장과 유상부 전 회장도 새 정부가 출범한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바 있다.

KT 황창규 회장의 전임자인 이석채 전 회장도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불거져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나 대법원에서 사실상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정권 차원의 하명수사가 CEO교체를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이석채 전 회장의 전임자인 남중수 KT 전 사장의 경우 2008년 이명박 정권으로 바뀐 뒤 배임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되며 사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포스코와 KT CEO의 잔혹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동시에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많아서다. KT 황창규 회장의 연봉은 24억원가량이고,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지난해 16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올해는 실적 개선에 힘입어 2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요즘은 고위 공직자를 지냈거나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인사들이 명예보다 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포스코와 KT는 권력은 없지만 3년간 재임하면 수십억원을 벌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B씨는 권력의 심장부에 들어가는 대신 산업은행장을 맡았다. 당시 B씨는 하나금융지주에 자리를 물색하던 중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장 연봉을 시중은행장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하자 산업은행장직을 수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포스코와 KT에 관심을 보이는 청와대 실세 A씨의 영향력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이름은 최근 진행된 금융당국자 인사 때마다 거론되기도 했다. 지난 9월 초 가장 주목을 받았던 금융감독원장 인사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그 자리에 가길 내심 원했으나 막판에 최흥식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전격 임명됐다. 최 대표는 A씨와 동문이고, 상당히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거쳐 2015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친분이 두터운 김상조 현 공정거래위원장의 추천으로 서울시향 대표가 됐다. 최흥식 원장은 이에 앞서 A씨에 의해 청와대 경제수석 후보로도 추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에서 진행된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최 원장을 잘 아는 한 금융계 인사는 “이번 인사검증에서 무엇이 문제가 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청와대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던 최 원장이 차관급 자리인 금감원장에, 그것도 문 대통령의 측근인 김조원 전 사무총장을 제치고 임명되자 금융계에서 다시 A씨의 이름이 거론됐다.

김조원 전 사무총장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하며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한솥밥을 먹었다. 이후 감사원으로 복귀해 감사원 ‘넘버2’ 자리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퇴직 이후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경남지역 선대위를 이끌었고 최근까지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장을 지냈다. 2008년부터 4년 동안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며 양산에 거주하는 문 대통령을 보필했다. 이런 인연으로 현 정부 초기 요직에 등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최흥식 원장에게 밀리자 여당에서조차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조원 전 총장은 금감원장에서 밀린 뒤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에 임명됐다.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낸 분을 영업하는 KAI에 임명한 건 금감원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힌 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 해외 순방 중 뒤집힌 인사

청와대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 “김조원씨가 금감원장에 임명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순방을 떠나고 자리를 비운 지난 9월 6일 최흥식씨가 금감원장에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씨를 대신해 최씨를 금감원장에 임명한다는 내부 조율이 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에서는 A씨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민정수석실 등에서 인사검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최근 금감원 수석부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이해선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이 인사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것을 두고 민정수석실이 A씨의 인사개입을 제어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민정수석실 측은 “최씨가 정권 초 경제수석 후보로 거론됐다가 검증에서 문제가 생겨 퇴짜를 맞은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금감원 오용석 공보국장은 이에 대해 “금감원장도 청와대 검증을 거치는 자리인데, 경제수석에 탈락하고 원장에 임명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지금 부원장보 인사마저 지연되는 이유도 청와대 인사검증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국장은 “(최흥식) 원장님이 경제수석 후보로 거론됐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공공기관이 아님에도 원장의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다.

A씨는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박경서 공적자금관리위원장, 최수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이동걸 산업은행장 등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금감원 측에서 하나금융에 대한 감사자료를 요구하며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막으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계의 한 인사의 말이다. “청와대 A씨가 사람을 많이 추천하는 것으로 안다. 실제로 그와 학연 등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금융수장에 여럿 임명됐고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다.”

A씨와 관련한 청와대 내부 동향이 외부로 새어나오는 것을 두고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정권 초 경제·외교 분야에서 입김을 행사하며 인사 추천권을 가졌던 외곽그룹이 최근 A씨의 영향력에 밀리는 양상이 나타나자 이를 견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으론 각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일부 인사가 인사추천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청와대 내부 친문 핵심그룹은 인사문제로 인한 이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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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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