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지난 11월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photo 성형주 조선일보 기자

지난 11월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간에 고성이 오갔다. 전희경 의원이 임종석 실장을 향해 “주사파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 장악한 청와대, 과연 면면과 실력답다”며 “전대협의 강령은 반미(反美), 민중에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밝히고 있고, 청와대에 들어간 전대협 인사들이 이 같은 사고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발언했다. 임 실장은 전 의원의 질의에 대해 “그게 질의냐”며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국감장의 파행으로 임종석 비서실장의 과거 언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 의원과 임 실장의 논쟁 동영상은 유튜브상에 100개가 넘게 올라왔다. ‘임종석 역대급 대폭발’ ‘전희경 임종석 또 붙었다’의 제목을 가진 동영상은 각각 조회수 약 36만건, 28만건(11월 16일 오후 3시 기준)을 기록하며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임종석 당시 캠프 비서실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지명했을 당시에도 ‘주사파(主思派) 논란’이 일었다. 주사파는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 삼아 남한의 북한식 사회주의화를 추구한 세력을 뜻한다.

임종석 실장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던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았다. 전대협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존재했던 학생운동단체다. 이적(利敵)단체로 규정된 바는 없지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의 수사자료에 따르면 ‘전대협은 주사파 지하조직에 장악됐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전대협은 1989년 ‘임수경 밀입북 사건’과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을 겪으며 비난을 받았고 1993년 3월 대의원 총회를 통해 해체를 결정했다.

임 실장은 당시 임수경 밀입북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6개월을 복역했다. 임 실장은 석방 후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푸른정치2000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청년시민운동을 주도했다.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방침에 따라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우상호 의원과 함께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16대 총선에서 한양대가 있는 서울 성동구(성동을)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 34세 최연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정계 입문 후 임 실장의 의정활동은 국보법 폐지,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 교류사업 등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초선 의원 시절인 2000년 7월 임종석 실장은 국보법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보완책으로 간첩죄에 대해 형법상 처벌을 강화하면서 대북 접촉, 통신교류에 대해선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 규제하면 된다.” 또 2004년 7월에는 의원실 주최로 ‘국보법 폐지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고, 같은해 8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위원모임에서는 “국가보안법은 위헌적이며 반(反)민주악법의 상징이기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04년 12월에는 국보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임 실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수사에도 적극 반대했다. 대북송금 사건은 김대중 정권 때인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5억달러를 불법송금한 사건을 말한다. 2003년 3월, 임 실장 등 당시 민주당 소장파 의원이 주축이 된 모임인 ‘정치를 바꾸는 젊은 희망’은 대북송금 특검수사 반대성명을 냈다. 같은해 6월에는 민주당·개혁당(대표 유시민) 소속 의원 61명과 함께 대북송금 특검수사 마무리를 촉구하는 성명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임 실장은 의원 시절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이적단체 규정 철회에도 적극 나섰다. 2002년 9월 당시 임종석 의원은 한총련 이적 규정 철회를 위한 국회의원 탄원서를 작성해 사법부에 제출했다. 이듬해인 2003년 4월에는 한총련 소속 대학생의 수배해제 및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에 참여했다. “…한총련은 1997년 이적단체로 규정된 이래 매년 수백 명의 대학생이 정치수배자가 되는 고통을 겪어왔다. 그동안 대학생들을 옭아매던 이적 규정의 굴레를 벗고 미래지향적 학생운동의 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제 국가와 사회가 문을 열어야 한다.”(4월 18일) 이 발언은 임 실장의 블로그 자료실에 게재돼 있다.

‘美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 서명

의원 시절 대정부질의 등을 통해 줄곧 북한을 두둔하고 미국을 비판한 태도도 논란거리다. 임종석 당시 의원은 2004년 7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북한은) 통일을 해야 할 우리의 반쪽이고 한 민족인데 주적(主敵)이란 표현을 더 이상 쓰지 않는 게 좋겠다. 6·15 정상회담 이후 눈에 띄게 화해협력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고 최근 군사 부문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는 점을 감안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임 실장은 같은해 9월에는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에 서명하기도 했다.

2004년 10월 통일부 국정감사 때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의 북한인권법 통과는 탈북자의 급속한 증가와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같은해 10월 펴낸 의원실 자료집을 통해서는 “탈북자 문제는 남북관계의 하위 의제일 뿐”이라며 “탈북자 대량입국은 인권에 반(反)하고 경제국익에도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탈북자 기획입국은 브로커가 개입된 부도덕한 상업 행위이자 대북 적대 행위”라고 비판했다. 2005년 7월에는 ‘미·일의 북한 인권 문제제기 규탄 결의안’에도 이름을 올렸다. 또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에는 북한 핵실험의 원인이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때문이라며 대북유화정책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 활동도 논란거리다. 임 실장은 초선의원 시절인 2004년 1월, 사단법인 경문협 설립을 주도해 2005년 7월 이사장에 취임했다. 임 실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경문협은 ‘남북 저작권 교류 사업’이란 명목 아래 2005년 북한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및 저작권 사무국’과 협약을 맺고 KBS·MBC·SBS 등 방송사와 출판사, 온라인 교육업체 등 북한 저작물을 사용하는 국내 업체들로부터 북한 저작권료를 대신 받아 북한에 지급해왔다. 이 경문협 논란은 2009년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다.

통일부 사회문화교류과의 한 관계자는 “경문협을 통해 2006년 약 2억2000만원, 2007년 약 2억1600만원, 2008년 약 7600만원의 저작권료가 북한에 지급됐다”며 “2008년 10월부로 민간 부문의 대북송금 제재조치가 내려짐에 따라 2009년부터는 저작권료가 법원에 공탁돼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탁된 돈의 북한 지급 여부는 향후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에 지급된 저작권료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확인된 바 없어 과거에도 언론에서 수차례 문제를 삼기도 했다. 경문협은 김일성종합대학의 도서관현대화사업을 지원하며 통일부를 통해 2007년 말까지 7억여원을 지원한 바 있다.

김성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