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미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China Won.’ 11월 13일 발매되기 시작한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를 ‘중국이 이겼다’는 뜻의 영어와 중국어 ‘中國赢了’로 달았다. 미국인들의 심사를 생각해서 미 국내판은 제외하고 국제판의 커버 앞뒷면에 걸쳐 ‘China Won’이라고 달았다. 이 커버스토리는 ‘리스크 컨설턴트 유라시아 그룹’ 이안 브레머(Ian Bremmer) 회장이 썼다.

브레머는 ‘중국 경제는 어떻게 미래에 승리를 거둘 자세를 취하고 있나’ 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최근의 일본,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불안해 하는 동맹국들에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웠으나 중국의 영향력에 균형을 맞춰주지는 못 했다고 평가했다. 브레머는 트럼프가 시진핑을 만난 시점이 때마침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당 총서기에 재선출되면서 ‘신시대’를 선언한 때였고,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지도자들에게 무역불균형 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미국이 국제경제에서 가장 강력한 행위자(actor)라는 점을 제대로 과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브레머의 진단에 따르면, 분명한 점은 5년 전만 해도 중국의 ‘독재적 자본주의’ 시스템은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국제적 컨센서스가 이뤄져 있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불과 5년 만에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아메리칸 모델보다 더 잘 갖춰져 있고, 더 지속가능하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에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AI(인공지능)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성과를 거두느냐가 될 것인데, 놀랍게도 그동안 맨해튼 프로젝트와 달 착륙 사업, 그리고 실리콘밸리 건설 등에서 압도해왔던 미국이 AI 분야에서 중국보다 더 많은 투자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브레머는 지적했다.

특히 미국은 오는 2029년이면 GDP 규모에서도 중국에 추월당할 예정이다. 외환부문 영향력에서도 러시아와 터키 같은 나라에서는 중요한 무역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직거래하는 구조도 이미 성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더 나아가서 중국의 경우 CNOOC, Petro China, Sino Pec 등 거대 석유회사들이 국제사회에서 기업 사냥을 감행하고 있고 화웨이 같은 스마트폰 기업은 국제시장을 압도할 태세라고 브레머는 지적했다. 거기다가 최근 중국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과 개인의 신용정보 파악을 위한 재정 데이터 자료 연결망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개인 신용에 대한 확신도 점차 확대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신용거래 시대의 도래를 재촉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외교문제 전문지 디플로매트, 워싱턴포스트 등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기간 시진핑이 2534억달러라는 기적 같은 액수의 미·중 무역 거래를 제시해서 트럼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소개하면서 ‘중국이 이겼나(Did China Win?)’라는 제목을 달았다. 디플로매트는 특히 시진핑이 트럼프를 위한 만찬을 명(明)·청(淸)대에 궁궐로 쓰던 자금성(紫禁城)에서 주최함으로써 트럼프를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디플로매트는 트럼프가 자금성 만찬을 보고 놀란 감상문을 다음과 같이 전달했다.

“어젯밤 우리의 만남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소. 우리의 만찬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소. 원래 우리의 만찬은 20~25분 정도로 계획된 것이었소. 나는 여행 중이고, 당신도 짧은 저녁이 될 거라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제 우리의 만찬은 내 생각에 적어도 두 시간은 계속됐소.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아름다운 아내와 나의 멜라니아와 함께 그 만찬을 즐기지 않았겠소.”

디플로매트는 11월 9일의 자금성 만찬을 앞두고 시진핑이 미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된다”는 말을 인용했다고 전했다. 중국도 트럼프의 방문 기간에 인내를 발휘함으로써 이제 갖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이 거둔 놀라운 성공과 관련해 영국의 국제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왕후닝(王滬寧)을 기억해야 한다는 평가도 했다. 중국 공산주의는 마오쩌둥(毛澤東)이 만들어낸 인류사에 전례가 없는 정치적 재난과 문화혁명을 생산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보다 평화적이고 발전적인 개혁개방의 흐름을 만들어내자 이를 왕후닝이 다시 손질을 해서 ‘중국의 꿈’과 ‘중국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시장친화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당 총서기 시절에 만들어진 ‘3개 대표론’(부자도 중국공산당 입당이 가능하다는 이론)과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시절 만들어진 ‘과학 발전관’ 같은 평화적 발전 이론 역시 모두 왕후닝의 작품이며, 그런 점에서 왕후닝이 만들어낸 중국의 이데올로기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타임과 디플로매트,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미디어들이 트럼프의 중국 방문을 통해 시진핑의 중국이 미국을 압도했다고 평가한 것은 중국의 긍정적인 면만 확대해서 보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는 하다. 아직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치체제나, 극심한 부의 불평등과 도농(都農) 간의 발전 격차, 가공할 환경오염 등은 ‘중국이 미국을 이겼다’는 평가를 시기상조로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들 미국 언론들의 중국 치켜세우기는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정과 TPP에서 탈퇴하고, 유네스코 지원을 끊는 등 국제적 의무를 다하려 하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를 정치·경제적으로 리드한 이래 어느 나라도 미국을 추월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 세계가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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