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84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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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JSA 귀순병사로 본 北 기생충 감염 실태

▲ 지난 11월 22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북한 귀순병사의 회복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객원기자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은 지난 11월 22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말이 말을 낳고, 낳은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말의 잔치가 되고 있는 복잡한 상황”이라며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11월 13일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하다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중태에 빠진 북한군 병사를 치료 중인 이국종 교수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까닭은 환자 동의 없이 기생충 감염 사실을 공개했다는 김종대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일각의 비난 때문이다. 이후 논란은 “다 죽은 사람을 겨우 살린 의사를 비난한다”는 전 국민적 역풍에 당황한 김종대 의원이 11월 23일, “마음에 상처를 준 부분이 있다면 해명도 하고 사과도 하겠다”며 꼬리를 내리면서 가라앉았다. 하지만 길이 27㎝의 회충(蛔蟲)으로 촉발된 북한의 충격적인 기생충 감염 실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용태순 연세대 의대 교수는 국내 기생충학의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용태순 교수는 “북한 병사의 몸에서 27㎝ 길이의 회충이 발견됨에 따라 국민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은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라고 했다. 용 교수에 따르면, 회충의 성충은 암컷의 경우 30~40㎝까지도 자라나고 수컷도 20㎝까지 자란다. 회충알이 체내에 들어오면 장에서 유충으로 부화한 뒤 혈관을 타고 간을 거쳐 폐로 이동해 1~2㎝까지 자란다. 이후 기도를 타고 올라와 식도로 넘어오는데 이때 일과성(一過性) 폐렴이 발생할 수 있다. 회충의 유충은 소장 등에 살면서 성충으로 자라나게 된다. 용태순 교수는 “회충 한 마리가 하루에 약 20만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한 사람의 감염자라도 있는 경우 주변인들에게 전파되기 쉽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홍성태 교수 연구팀과 중국 옌볜대학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북한 함경북도 일부 주민의 기생충 감염 실태 조사’ 논문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기생충 감염률은 57.6%(236명 중 136명)에 달했다. 또 탈북자들의 기생충 감염률은 41.3%(46명 중 19명)에 이르렀다. 당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조사는 옌볜대 연구진이 북측의 협조를 받아 어렵게 이루어졌다. 표본이 작고 조사 지역이 함경북도 지역으로 국한된 단점은 있으나, 북한 주민들의 기생충 감염률에 대한 국내 연구진의 최초 보고였다. 최초 연구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큰 변화는 없다. 2015년 단국대 의대 김석배 교수 연구팀이 대한내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밝힌 탈북자들의 기생충 감염률은 41.18%(17명 중 7명)였다. 앞선 조사와 비슷한 수치다.
   
   
▲ 지난 11월 13일 지프에서 내려 남쪽으로 달리는 귀순병사. photo 뉴시스

   북한의 기생충 감염률 57.6%
   
   북한 당국 역시 기생충 감염의 심각성을 오래전부터 인지해왔다. 북한 당국은 2007년 11월에는 이례적으로 한국 의료진의 북한 내 기생충 감염 조사를 허용했다. 서울대 의대 연구팀과 한국건강관리협회, 국제보건의료재단은 공동으로 북한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주민 894명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회충, 편충, 구충, 장흡충 등 환경 관련 기생충의 감염이 만연함을 확인했다. 당시 북한 당국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감염률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용태순 교수는 “북한의 기생충 감염률은 우리나라 1960~1970년대 기생충 감염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1969년 우리나라 국민의 기생충 감염률은 90.5%였다. 이후 한국건강관리협회의 전신인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1971년(1차)과 1976년(2차) 5년 간격으로 조사한 감염률은 각각 84.3%, 63.2%에 달했다.
   
   북한 출신 의사들도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 조수아 연세사랑산후조리원 원장은 북한 청진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북한에서 외과 전문의 및 군의관으로 활동했다. 조 원장은 “JSA에서 근무하는 군인이면 출신성분이 검증되고 선별된 사람인데 뱃속에서 그렇게 많은 회충이 나왔다면 평양에 있는 군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에서 지역 주민들을 진료할 때 대부분이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였다”고 했다.
   
   북한의 기생충 감염률이 높은 원인은 인분 비료로 농사를 짓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분을 사용해 키운 채소에 붙어 있는 회충알이 채소를 날로 섭취할 때 체내로 들어와 감염이 일어난다. 이 외에도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고 물이 부족해 손을 자주 씻지 못하는 등 낙후된 사회경제적 환경이 높은 감염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1960~1970년대 국내에서 기생충 감염이 만연했던 원인과 거의 같다.
   
   의료여건이 낙후하다 보니 기상천외한 기생충 퇴치법도 북한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조수아 원장은 “북한에서 진료 시에 구충제가 없어 주민들의 목에 산소줄을 집어넣고 장내에 산소를 불어넣어주는 방법으로 기생충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기생충들이 항문으로 이동해 빠져나오는데 심한 경우 대야 가득히 기생충을 쏟아내는 환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구충제를 구하기 힘들어 민간요법으로 볏짚을 끓인 물을 구충제 대용으로 마셨다고 한다. 용태순 교수는 “기생충성 질환의 경우 대체로 크게 아프지 않고 당장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 만성질환이기에 북한 당국이 그냥 방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0 ~2008년 사이 한국 정부는 북한의 기생충 퇴치를 위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진행했다.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교실과 한국건강관리협회는 2000년부터 2008년 사이 15차례 방북해 기생충 관리 기술을 전수하고 1000만정 이상의 구충제와 검사장비를 지원했다. 당시 북측은 “평양에 기생충연구소를 지어달라”고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요청에 따라 당시 기생충연구소 부지도 선정하고 2009년 3월 기공을 목표로 건축 초안까지 완성돼 있었다. 하지만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한국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이 터지면서 금강산 관광 전면 중단과 함께 평양 기생충연구소 설립 등 일부 사업은 무산됐다. 그럼에도 기생충 관리 교류사업은 2011년까지 진행됐다. 통일부 인도협력기획과의 한 관계자는 “구충제 보급은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 귀순병사의 몸속에서 나온 길이 27㎝의 회충.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이 기간 동안 북한으로 보낸 약 1000만정 이상의 구충제가 기생충 퇴치를 위해 실제 주민들에게 배급됐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렵다. 용태순 교수는 “과거 북한에 구충제를 수백만 정 보냈으나 그냥 쌓아두는지, 외국에 되파는 건지 주민들에게 배급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탈북자 출신 조수아 원장 역시 “주민들에게 남한에서 보내준 의약품이 배급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며 비슷한 증언을 했다.
   
   “의약품이 들어오면 평양에서 먼저 차지하고 지방으로 보내지는데 대부분의 물자는 전쟁 비축물자로 땅굴에 보내진다. 땅굴 속 전쟁 비축물자는 3년마다 교체가 되는데 의약품의 경우 유통기한이 지나고 곰팡이가 슬어 사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의 경우 도로가 없고 차량 사정이 좋지 않아 약품이 제때 전달되지 못했다. 심한 경우 운반차량에 석탄이나 기름이 없어 한 지역에서 3~6개월 방치돼 있다가 유통기한이 지나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 원장에 따르면, 북한은 기생충 관리뿐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이 이미 붕괴된 상황이다. 과거 김일성이 생존해 있을 때만 해도 의사들은 ‘호(戶)담당제’로 편성돼 의사 1명당 약 200명씩의 주민들을 맡아서 관리했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의사들까지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면서 의료체계가 붕괴됐다”는 것이 조 원장의 말이다.
   
   이번 귀순병사 기생충 사건으로 향후 통일 이후를 대비해 구충제 보급과 함께 북한 주민들의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 정부의 기생충 퇴치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4년 한국건강관리협회의 전신인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세워졌고 ‘기생충질환예방법’을 제정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했다. 1971년부터는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연 2회의 대변검사가 실시됐고, 5년마다 전국 규모의 기생충 감염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1992년 조사에서 기생충 감염률은 3.8%까지 떨어졌고, 그 이후 국가 차원의 기생충 관리사업은 사실상 종료됐다. 지금은 기생충 퇴치의 모범사례로 인정받아 정부는 해외에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용태순 교수의 설명이다.
   
   “캄보디아, 탄자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기생충 관리 사업을 지원해왔다. 지속관리를 했더니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기생충 감염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기생충 문제는 북한 주민들에게 구충제만 잘 전달돼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북한도 문만 열린다면 기생충 관리가 크게 어렵지 않다. 지금 당장 정치적인 통일이 아니더라도 민간 교류를 통해서 기생충 감염률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생충성 질환 말라리아 실태
   
   ‘고난의 행군’ 시기 남한까지 영향 미쳐
   
▲ 말라리아 매개 얼룩날개모기 photo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북한에는 기생충성 질환인 말라리아 또한 유행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기생원충을 보유한 모기에 물렸을 때 감염되는 질병이다. 한반도 토착 말라리아 원충은 삼일열 원충으로 오한, 발열, 발한 등의 증세를 일으키나 열대지방의 것처럼 생명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2005년 국내 민간단체인 ‘북한보건의료네트워크’에서 발표한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과 주요 질병 대책’ 보고서에는 이 같은 상황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 말라리아는 1973년 전까지 서부지역에서 흔히 발생하다가 감소했으나 1998년 중반 이후 갑작스럽게 재출현한 이래 급격히 증가해 1999년 10월까지 개성 지역 1만9915명, 황해남도 1만8920명, 황해북도 2만명, 강원도 1만8400명 등 10만여명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탈북자 출신 조수아 연세사랑산후조리원 원장은 “평양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말라리아 환자들이 종종 발생해 약을 처방했었다”며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했다.
   
   북한의 높은 말라리아 감염률은 남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말라리아 환자가 1980년대에 사라졌다가 1993년에 1명의 감염자가 다시 발생했고, 2000년에는 원인 모를 이유로 4000여명까지 폭증했다.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1994~1999)와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국내 의료진들은 1980년대 이후 국내 자생 말라리아는 사라진 만큼, 그 이후 폭증한 말라리아 감염의 출처를 북한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태순 교수는 “그 증거로 남한에서의 말라리아 감염은 휴전선 이남 지역에서만 발생하고 있고 개성공단 운영 시 개성 지역 병원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많이 있었다”며 “북한은 공개를 안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 내에 30만~40만명 정도의 말라리아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질병감염률을 국가보안 문제로 인식해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환자 수는 파악할 수 없다.
   
   용태순 교수는 “우선 방역(防疫)이 잘 안 돼 있고 말라리아 매개모기인 얼룩날개모기(Anopheles)는 원래 동물의 피를 선호하지만 북한에는 가축이 적다 보니 보초 서는 군인 등 사람들을 주로 물면서 감염이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는 500~1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완전히 사라진 것에 비하면 여전히 많은 수준이다. 이 역시 북한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만큼 대책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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