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한미연구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photo 연합
지난 11월 15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한미연구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photo 연합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최근 외교·안보 사안 관련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국내 정치뿐 아니라 북핵, 한·미 FTA 문제 등에 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발언 관련해서는 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추 대표가 내년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방문 ‘한·미 FTA 폐기 검토’ 언급

추 대표는 지난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을 방문했다.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한·미 FTA 폐기’ 검토 발언이었다. 추 대표는 11월 15일 미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미 FTA 재협상 관련해 “우리한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면 폐기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추 대표는 “우리의 자동차 2차산업을 다 무너뜨리며 재협상에 임할 수는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추 대표는 “미국은 (한·미 FTA 재협상이) 약간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 보면 된다”며 “한·미 FTA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한·미 FTA를 때려서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일자리가 사라진 백인이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거니까 재선을 목표로 하면서 자기 지지층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디트로이트 이런 지역의 주력이 자동차산업이고, 그래서 한·미 FTA와 관련해 자동차산업에 대한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이며 자동차 부품을 미국 내에서 조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는 그러면 자동차산업에 치명타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추 대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협상팀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당에서 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즉각 비판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한·미 현안과 관련해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국익 차원에서 적절치 않다”며 “외교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한·미 FTA를 폐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극단적 선택인데 집권 여당 대표가 ‘검토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고 해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든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 FTA는 상호 경제 발전을 위해 굳건히 지키면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지 않냐”고 했다. 추 대표는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방미 일정을 마치고 입국하면서 한·미 FTA 폐기 검토 발언에 대해 “미국에서는 전혀 논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며 “FTA에 대해서는 아직 협상 시작을 안 한 단계에서 많은 오해와 관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런 오해와 관점을 좁히지 못할 경우, 또 우리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할 경우 우리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자신의 기존 주장을 큰 틀에서 굽히지 않은 것이다.

추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당시 오갔던 비공개 대화들을 상세하게 언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11월 14일 워싱턴 DC의 한 식당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에서 추 대표는 “한·미 정상회담 때 두 분이 비공개 회담을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며 “일단 그렇게 질문을 솔직하게 했으니 문 대통령이 솔직하게 ‘통일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더라.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이해했다”고 했다. 두 대통령은 당시 25분간 배석자 없이 단독 회담을 했다. 추 대표는 청와대의 기존 설명과 다른 발언을 하기도 했다. 11월 16일 뉴욕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서 문 대통령에게 일정을 바꿔 사전에 없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싶다고 먼저 전격 제안했다”며 “문 대통령이 ‘그럼 나도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다음 날 문 대통령이 먼저 DMZ에 가 있는데 하필이면 안개가 짙게 껴서 트럼프 대통령이 타고 이륙한 헬기가 안타깝게도 되돌아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에게 DMZ 방문을 제안했다”는 청와대의 기존 설명과는 다른 이야기다. 추 대표는 이날 자신의 대표직 수행을 과거 문재인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과 비교하기도 했다. “당 대표의 수명이 단명해서 문재인 대표조차도 미국 스케줄을 짜고 물러났다”면서 “문 대표도 못 해본 일을 제가 하고 있다”고 했다. 차기 대선 출마와 관련한 질문엔 활짝 웃으면서 “저를 펌프질해주느라고 ‘차기 여성 대통령의 꿈을 꼭 이뤄달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추 대표는 지난 11월 22일에는 당 대표실에서 허이팅 중국 중앙당교 상무부교장을 만나 “중국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했는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그래도 이 작은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며, 북핵 문제를 푸는 데도 동북아가 신냉전에 빠져들지 않게 양국이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해서도 “한국은 과거 일본이 전범국가로서 저지른 여러 나쁜 행동에 대해 사과를 온전히 받아내지 못하고 있고, 최대 현안이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며 “이런 과거사 문제를 올바로 풀어, 다시는 인류의 그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양국이 힘을 합치길 바란다”고 했다.

추 대표는 종종 야당을 향해 높은 수위의 발언을 해왔다. 이는 일부 지지층의 결집 효과를 가져왔지만, 정국을 경색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추 대표는 지난 7월 국민의당의 대선 제보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단독범행이라고 ‘꼬리 자르기’를 했지만 그 당의 선대위원장이었던 박지원 전 대표, 후보였던 안철수 전 의원께서 몰랐다 하는 것은 ‘머리 자르기’”라고 하면서 국민의당 측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민주당과 추미애 대표의 사과 등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 당은 오늘 이후 국회 일정에 협조 못 한다”고 했고, 결국 청와대가 추 대표를 대신해 국민의당 지도부를 찾아가 유감의 뜻을 밝혔다. 추 대표는 지난 10월에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야당을 상대로 “땡깡을 부리고 있다”고 말해 다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사과를 했다.

지방선거 승리 후 차기 주자로?

추 대표가 최근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강한 주관을 내세우면서 주목을 받자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선 추 대표는 여권의 서울시장 후보군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3선 도전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는 가운데 박영선·민병두·우상호·이인영·전현희 의원 등이 당내 경선을 두고 도전 의사를 밝히거나 고심 중인 상황에서 추 대표 또한 강력한 후보군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의 상당수가 추 대표에게도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추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설 경우 승산이 상당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추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여부를 두고 고민을 했던 것은 맞지만 지금은 경선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대선 승리를 이끌고 지방선거 승리도 만들어낸 당 대표로 남는 것이 더 큰 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추 대표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받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최근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지난 대선 경선에 나선 후보들 외에 추 대표 또한 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군”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추 대표가 각종 논란을 감수하면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하는 배경에는 이런 요소가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추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압승한다면 추 대표는 내년 하반기부터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본격 거명될 가능성이 높다”며 “추 대표가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안보 현안에 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신의 시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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