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1월 29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이 발사 전 바퀴 축이 9개인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려 있다. ⓒphoto 연합
북한이 11월 29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이 발사 전 바퀴 축이 9개인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려 있다. ⓒphoto 연합

북한이 기습적으로 심야에 화성-15형 ICBM을 발사한 지난 11월 29일, 우리 정부와 군의 대응은 유례없이 빨랐다. 북한은 이날 새벽 3시17분쯤 평양에서 북쪽으로 30여㎞ 떨어진 평안남도 평성 일대에서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발사 1분 뒤인 새벽 3시18분쯤 공군의 E-737 ‘피스아이’ 조기경보통제기가 처음으로 미사일을 탐지했다. 이어 동해에서 작전 중이던 이지스함과 내륙 지역의 ‘그린 파인’ 조기경보레이더도 이를 포착했다고 합참은 밝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미사일 발사 2분 만인 새벽 3시19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 보고를 했다. 군은 미사일 발사 6분 후인 새벽 3시23분부터 21분간 북한의 도발 원점을 정밀 타격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땅 위에선 현무-2 미사일(사거리 300㎞)이, 해상의 이지스함에선 해성-2 함대지 순항미사일(사거리 1000㎞)이, 하늘에선 KF-16전투기에서 스파이스-2000 정밀유도폭탄(사거리 57㎞)이 각각 똑같은 도발 원점을 향해 시차를 두고 발사됐다. 해성-2 미사일은 두께 5m, 스파이스-2000 폭탄은 두께 2.4m의 콘크리트를 각각 관통할 수 있다. 현무-2 미사일의 살상 반경은 600m에 달한다. 이들은 거의 동시에 도발 원점에 정확히 떨어졌다.

이렇게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일 군 당국은 발사 2~3일 전부터 북한이 미사일을 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평양 인근 평성 지역에서 미사일을 쏜 것은 처음이고, 취약시간대인 새벽 3시에 쏜 것도 처음이었다. 북한은 우리의 허점을 찔러 기습 발사를 하려 했던 셈이다. 그런데 정부와 군 당국은 어떻게 알고 대비했을까?

70여일 동안 도발을 자제해오던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 중이라는 정황은 지난 11월 28일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 등은 이날 “일본 정부가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전파 신호를 포착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수일 내에 발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전파신호는 텔레메트리(telemetry·원격 전파 신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메트리는 미사일 발사 뒤 단 분리나 엔진 압력, 대기권 재진입 성공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미사일이 지상 통제소에 무선으로 계속 각종 정보를 보내는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전에 텔레메트리 테스트를 했고, 이를 한·미·일의 신호정보 수집 정찰기들이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U-2 및 RC-135 정찰기, 한국군의 백두 정찰기, 일본 자위대의 EP-3 정찰기 등이 각종 전파 신호를 탐지할 수 있다.

북한은 11월 29일 ‘정부 성명’에서 처음으로 ‘화성-15형’ 이름을 언급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북한은 “화성-15형은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고, 지난 7월 시험발사한 화성-14형보다 전술 기술적 제원과 기술적 특성이 훨씬 우월한 무기체계”라고 주장했다. 화성-14형과는 다른 새로운 ICBM이라는 것이다.

군 당국과 전문가들은 처음엔 북한의 발표에 대해 화성-15형이 새로운 미사일이 아니라 기존 화성-14형을 개량한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성-14형은 지난 7월 두 차례 발사됐으며, 7월 28일엔 최대고도 3700여㎞로 고각 발사돼 최대 사거리는 1만여㎞로 추정됐던 ICBM이다.

그러나 11월 30일 북한이 화성-15형 발사 준비 및 발사 장면 사진들을 공개하면서 이 같은 판단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화성-14형보다 큰 새로운 미사일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화성-15형은 동체 길이가 화성-14형(길이 19m)보다 2m가 긴 21m로 늘어났고, 직경은 화성-14형의 1.7m에서 2m로 커진 것으로 파악됐다. 1단 로켓 엔진도 화성-14형은 백두산 엔진 1개였지만 화성-15형은 2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엔진이 백두산 엔진 2개를 결합한 것인지, 러시아제 엔진을 활용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탄두 부분도 커져 무게 500㎏~1t급의 무거운 핵탄두 장착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동식 발사차량도 바퀴 18개 달린 9축형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종전 화성-14형은 중국제 16륜형(8축형) 발사차량을 사용했다. 북한은 화성-15형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중국제를 개량해 신형 발사차량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18륜형 발사차량은 중국·러시아 등에도 없는 대형 차량이다.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화성-15형은 11월 29일 최대 고각으로 발사돼 4475㎞나 올라갔다. 세계 미사일 개발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높은 고도다. 미사일이 정상 궤도로 비행할 경우 최대 사거리는 미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1만3000㎞에 달할 것으로 평가됐다. 초기비행 및 낙하 속도도 지금까지 발사된 북 중장거리 미사일 중 가장 빨랐던 것으로 알려져 탄두 재진입 능력도 향상된 것으로 분석된다. 서훈 국정원장은 11월 29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그동안 세 번에 걸쳐 발사된 ICBM급 중 가장 진전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11월 29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된 화성-15형 시험발사 모습. ⓒphoto 연합
11월 29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된 화성-15형 시험발사 모습. ⓒphoto 연합

한·미 연합 공중훈련

북 신형 ICBM 발사 성공에 따라 미국은 추가제재 방안을 발표하고 해상봉쇄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북한의 도발 자제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예방타격과 선제타격 등 초고강도 군사적 대응 방안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전망이다. 각종 전략자산을 동원한 미국의 대북 무력시위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주목받는 것이 12월 4~8일 실시될 대규모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 훈련이다. 매년 실시되는 훈련이지만 이번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준으로 이뤄진다.

각종 전투기 등 양국의 항공기 230여대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이며, 미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와 F-35A·B가 동시에 참가한다. 미 스텔스전투기 2종이 동시에 한반도 훈련에 참가하는 것도 처음이다. 미군은 이번 훈련에 공군 전투기뿐 아니라 해군과 해병대 등 약 1만2000명의 병력을 투입한다.

참가 전력들은 한·미 양국군의 8개 기지에서 출동한다. 국내 군산·오산기지뿐 아니라 미 알래스카 기지와 일본 가데나 공군기지, 괌 앤더슨 공군기지 등에서도 발진한다. 이번 훈련은 최근 미 3개 항모 전단의 무력시위에 이어 북한에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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