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열린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 1중전회에서 시진핑 총서기(가운데) 등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손을 들어 투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5일 열린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 1중전회에서 시진핑 총서기(가운데) 등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손을 들어 투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중국공산당이 10월 18~24일의 제19차 전당대회와 10월 25일의 제1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중전회)를 개최하면서 남긴 가장 큰 변화는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을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는 퇴임하는 당 총서기가 권력을 넘겨주는 당 총서기의 다음 후계자를 미리 지명하는 ‘격대지정(隔代指定)’ 또는 ‘격세간택(隔世揀擇)’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최고지도자 내정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는 최고지도자 후보들이 앞날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다음 당대회 때 당 총서기로 선출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1978년 12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 전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병사(病死)하면서 공백으로 남겨놓은 권력을 장악한 뒤 지금까지 모두 3명의 당 총서기가 선출됐다. 장쩌민(江澤民·1989~2002), 후진타오(胡錦濤·2002~2012), 시진핑(習近平·2012~) 등이다. 장쩌민은 1989년 6월의 천안문사태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실각한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가 남긴 3년 임기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5년 임기 두 차례를 합해 모두 13년간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의 권좌에 앉아 있었다.

장쩌민의 후임 후진타오가 총서기의 자리에 오른 것은 장쩌민의 전임자 덩샤오핑이 권력을 장쩌민에게 넘겨주면서 “당신의 후계자로는 이 사람 후진타오를 선택하시오”라는 정치적 다짐을 받아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쩌민은 13년 동안 당 총서기직을 잘 수행하다가 덩샤오핑과의 약속대로 후진타오에게 최고권력을 넘겨주었다. 후진타오를 1992년에 정치국 상무위원, 1998년에 국가부주석으로 선출하는 등 조기 출세시킴으로써, 자신이 덩샤오핑과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는 사실을 내외에 과시했다.

장쩌민은 2002년 당 총서기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물려주면서 “당신의 후계자는 시진핑”이라는 다짐을 받아두었다. 후진타오는 장쩌민이 자신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장쩌민이 후계자로 미리 지정한 시진핑을 2007년에 정치국 상무위원, 2010년에 국가부주석으로 조기 출세시켰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배려에 따라 2012년 당 총서기 자리에 올랐다. 후진타오 역시 2012년 당 총서기직을 시진핑에게 물려주면서 ‘격대지정’이라는 인사 원칙에 따라 “당신의 후임 당 총서기는 후춘화(胡春華)”라는 지시를 내려두었다.

후진타오와의 약속에 따른다면 시진핑은 이번 당대회와 1중전회를 통해 후춘화(54·광둥성 당위원회 서기)를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의 한 사람으로 발탁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25일 1중전회 결과 발표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에 후춘화는 없었다. 후춘화는 정치국원 25인 중의 한 사람으로 남았다. 이를 놓고 중국 안팎의 관찰자들은 “시진핑이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시진핑이 5년 뒤의 20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 3연임을 획책하고 있다” “시진핑은 이제 마오쩌둥과 같은 황제의 반열에 올랐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당대회 이후 한 달 남짓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륙과 대만의 중국정치 전문가들은 “시진핑이 3연임을 획책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을 바꾼 것이며, 지금까지의 격대지정 대신 경쟁을 통한 지도자 선출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셴둥(韓憲棟) 베이징 정법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격대지정의 원칙에 따라 차기 지도자로 미리 내정된 경험을 갖고 있는 시진핑 당 총서기 본인이 당내에 ‘차기 지도자를 미리 내정해두는 것은 너무 일찍 주목을 받게 돼 부담스럽기도 하고, 위험한 측면도 많다’는 견해를 전달해서 이번부터는 격대지정의 방식 대신 경쟁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시진핑 당 총서기 본인이 중국공산당의 차기 지도자 선출 방식으로 격대지정은 문제가 많다는 견해를 강력하게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대만 정치대학의 중국공산당 인사 전문가 커우젠원(寇建文) 교수는 “이번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유임을 희망한 왕치산(王岐山) 당 기율심사위원회 서기가 은퇴한 것은 과거 당 지도자들의 연경화(年輕化)를 설계한 덩샤오핑과 장쩌민이 세워놓은 ‘칠상팔하(七上八下)’의 원칙이 지켜졌다는 의미이며, 그런 의미에서 5년 뒤 69세가 되는 시진핑 본인부터가 20차 당대회를 계기로 칠상팔하의 원칙에 따라 퇴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커우젠원 교수는 “칠상팔하라는 ‘획선리퇴(劃線離退·특정한 연령의 선을 그어놓고 그 연령에 도달하면 일제히 물러나는 제도)’는 어떻게든 지키려는 것이 중국공산당 내의 합의”라고 전했다.

문제는 19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들 간의 관계다. 18기 때만 해도 시진핑 당 총서기와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들 간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였으나, 이번에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을 발표하고 보니 이전과는 달라졌다. 예를 들어 시진핑과 리잔수, 왕후닝, 자오러지, 왕양 등은 시진핑이 발탁한 인물이어서, 이들은 시진핑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점이 특이한 점으로 남았다. 이런 관계는 과거 덩샤오핑과 후야오방, 자오쯔양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이 25인의 정치국원 대부분과 이른바 상하관계라고 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점도 앞으로 관찰해 보아야 할 대상”이라고 커우젠원 교수는 지적했다.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이 경쟁을 통한 방식으로 바뀜에 따라 이번에 선출된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은 시진핑 당 총서기를 포함해서 전원이 칠상팔하에 따라 은퇴해야 하는 연령구조로 되어 있다. 25인의 정치국원 가운데에는 후춘화(54) 광둥성 당위원회 서기와 천민얼(57) 충칭시 당위원회 서기, 딩쉐샹(55) 서기처 서기 겸 당 중앙판공청 주임 3명만이 시진핑의 다음 총서기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연령대다. 이들은 5년 뒤 20차 당대회 때 각각 59, 62, 60세가 되며, 다시 5년 뒤인 21차 당대회 때는 각각 64, 67, 65세로 당 총서기의 연령 컷오프를 통과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5년간 중국 정치는 이들 3명이 벌이는 경쟁이 최대의 드라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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