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과 스탈린(오른쪽).
마오쩌둥과 스탈린(오른쪽).

1949년 10월 1일 오후 마오쩌둥(毛澤東)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천안문 누각에는 꼭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마오의 동지들이 미리 모스크바 병원으로 보내놓은 ‘내연의 처’ 장칭(江靑)이었다. 또 다른 인물은 베이징(北京) 주재 소련대사 로시친(N.V. Roshchin) 중장이었다.

로시친은 이날도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에서 스탈린이 국민당에 보내는 지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시친 대사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당연히 스탈린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스탈린은 마오의 홍군을 마치 농민 유랑(流浪) 걸식대 정도로 우습게 알았고, 중국 공산주의자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스탈린은 마오를 중국 정부 수반 자격으로 모스크바에 초청했다. 하지만 초청해놓고도 3일간 일정을 잡아주지 않았다. 때문에 마오는 호텔에서 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1955년 흐루시초프가 집권하자 마오는 스탈린에게 뺨 맞고 흐루시초프에게 분풀이하는 식의 복수극을 펼쳐 나갔다. 1957년 7월 흐루시초프는 뭔가를 항의하기 위해 베이징 주재 소련대사 유딘을 마오에게 보냈다. 마오는 자리에 없었다. 그러자 흐루시초프는 유딘의 상급자인 미코얀을 모스크바에서 마오에게 보냈다. 마오는 미코얀에게 “항저우로 오라”는 전갈을 남겼다.

마오는 항저우로 날아온 미코얀을 작은 창문이 두 개밖에 없고 에어컨 시설도 없는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방 안은 찌는 듯이 무더웠으며 온통 눅눅했다. 미코얀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인민복 정장 차림으로 정좌를 하고 마오의 말을 들었다. 마오의 뺨에서도 구슬 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고 통역사의 공책은 흠뻑 젖었다. 마오는 마치 땀 흘리는 부처처럼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한참을 생각하더니 “당신이 말한 내용에 동의하오”라고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 안 가 흐루시초프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마오는 흐루시초프를 베이징 서쪽 향산(香山)의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 묵게 했다. 그곳은 냉방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흐루시초프는 너무 더워서 밤에 테라스에 나가 있다가 모기에 엄청나게 물렸다. 다음날 흐루시초프는 비참한 표정으로 “내가 중국에 오니 모기들조차 당신을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중·소 외교 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기울었다. 마오는 평생 한 번도 수영을 해본 일이 없는 흐루시초프에게 수영장 안에서 헤엄을 치며 회담을 하자고 제의했다. 어린 시절부터 장강(長江) 유역에서 수영을 익힌 마오는 마치 돌고래처럼 흐루시초프를 능숙하게 끌고 다녔다. 통역관들은 수영장 안으로 굴러떨어지지 않고 마오의 후난성 사투리를 흐루시초프에게 전달하느라 수영장 가장자리를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흐루시초프는 마오가 힘을 주어 앞으로 끌면 얼굴이 처박혀 물을 엄청나게 먹었다. 소련 K.G.B 요원들도 흐루시초프에게 구명대를 씌워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시 흐루시초프는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었지만 모스크바로 돌아갈 때 마오는 전 세계에 흐루시초프의 방중을 공개했다.

평소 신경질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문학적 지성과 기억력을 갖고 있는 마오는 스탈린이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결코 놓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모든 공업 기반과 기술자까지도 수입할 형편이었다. 마오로서는 스탈린이 자신에게 가하는 굴욕에 인내로 대응해야 했다. 마오는 그랬다가 나중에 흐루시초프에게 복수를 제대로 한 것이다. 뺨은 스탈린에게 맞고, 분풀이는 흐루시초프에게 했다.

우리가 ‘대국(大國)’ 외교를 추구하는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에 맞서려면 문재인 대통령도 선이 굵은 외교를 펼쳐야 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며 꼼수를 부리다가 “사드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이 걸린 사항”이라면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라” “양국 관계와 인민들에 대한 책임을 져라”고 시진핑이 도덕적인 훈계를 하는데도 중국어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우리의 방중 대표들은 “시진핑은 사드 문제에 대해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판이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외교로는 중국을 제대로 대할 수도, 나중에 중국에 가르침을 줄 수도 없다. 꼼수로는 대중 외교의 선을 굵게 할 수가 없다.

팩트는 팩트대로 챙겨서 국민들에게 정확히 보고하고, 시진핑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하는 무도(無道)하고 섭섭한 말은 그것대로 챙겨 두면 나중에 마오가 흐루시초프에게 한 것처럼 시원하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과 마주 앉았을 때 “시 주석, 그런데 한반도 방어무기 배치에 중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1992년 8월 24일 대등한 평등조약을 맺고 시작한 한·중 관계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며, 중국이 애지중지하는 ‘평화공존 5원칙’에도 위반이 아니냐”고 똑떨어지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문 대통령과 강경화 장관은 중국 측에 무슨 발목을 잡혔길래 시진핑이 사드에 대해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3불(不)을 말했느니 안 했느니 꾸물대는가.

중국이 비록 지난 10월의 제19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앞으로 우리 외교의 목표는 인류 사회 공동체의 건설”이라고 크게 치고 나왔다지만, 아직도 대국 외교의 기반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수준이다. 우리는 사드를 단서로 시진핑에게 이웃 국가의 존엄성을 재교육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1840년부터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두 차례나 철저히 패한 끝에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1648년 베스트팔렌(Westphalia System) 체제를 기반으로 형성된 현대 주권국가 사회에 가담한 처지다. 이를 전혀 인지 못 하는 시진핑 주석이 “사드는 우리의 핵심이익을 침해한다”고 뻗대고, 이에 대해 반대 한마디 못하는 중국 내의 황당한 국제관계 이론가들을 반드시 교육시킬 기회가 올 것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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