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에 지급되는 기능성 전투화.
한국군에 지급되는 기능성 전투화.

전투화는 1990년대 말 이전 현역 복무를 한 중장년층에겐 대체로 좋지 않은 추억을 남겨준 전투장구류다. 1999년 이전엔 바위처럼 단단한 저질 가죽이 주 재질이고 통기가 되지 않는 전투화여서 행군 때 발에 상처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무좀으로 고생한 장병들도 적지 않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전투화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1999년엔 부드러운 가죽을 쓰는 전투화가, 2005년엔 위장 효과를 높이기 위해 광택이 없는 무광 전투화가 각각 등장했다.

하지만 2010년 육군훈련소에서 전투화 바닥창이 벌어져 물이 새는 사건이 발생하자 2012년부터 기능성 전투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기능성 전투화는 격렬한 훈련이나 악화된 전투 환경에서도 잘 기능할 수 있도록 방수도와 땀 배출능력인 투습도를 향상시킨 것이다.

이 신형 전투화의 요구 성능이 매우 높아 이를 충족하는 국내 소재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고어사 제품(내피 원단)을 수입, 국내 업체들이 이 내피 원단으로 전투화를 만들어 군에 납품해왔다.

고어사는 ‘고어텍스’라는 섬유 소재로 유명한 대형 회사다. 고어텍스는 방수·방풍·투습 기능을 가진 기능성 원단의 고어사 상품명이다. 장병들에게 2족씩 지급돼온 기능성 전투화는 발과 발바닥 형태를 신발에 구현한 ‘네스핏(NESTFIT)’ 기술을 적용해 착화감을 최적화했고, 발에서 발생되는 압력도 분산시켜 피로도를 낮춘 게 장점이다.

네스핏은 새 둥지를 뜻하는 네스트(Nest)와 착용감을 뜻하는 핏(Fit)을 합쳐 만든 합성어다.

알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품는 새 둥지와 같이 발을 편안하게 감싸는 신발을 만든다는 얘기다. 이 기술은 유명 신발제조업체인 트렉스타가 처음으로 개발했다. 이 기술 개발을 위해 약 2만명의 발 모양을 3D로 스캔해 분석한 방대한 자료가 활용됐다.

네스핏 기술 적용에 따라 전투화를 신었을 때 발가락이 모이지 않고 원래 형태로 유지돼 압박감을 낮추고 위생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외국 제품 원가 기준 입찰가’ 논란

그런데 이 기능성 전투화 시장에 한 국내 중소업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능성 섬유 전문업체인 B사가 2016년 5월 국내 소재 개발에 성공, 지난해부터 군인공제회 산하 업체 등을 통해 납품하게 된 것이다. B사는 2011년 이후 산업계의 기술 분야 최고 권위상인 장영실상을 4차례나 수상해 기술력을 인정받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이 장영실상을 4차례나 수상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86개의 특허를 보유 중인 B사는 1초 만에 마르는 소재, 태양광 발열소재, 오리털 대체 발열 충전재 등 신기술도 갖고 있다.

골리앗과 같은 세계적 대기업이 독점하던 기능성 전투화 시장에 다윗 같은 국내 중소기업이 도전한 셈이다. 국내 기능성 전투화 시장을 둘러싼 다윗과골리앗의 싸움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국회 국방위 소속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은 국감 질의자료를 통해 “방사청이 기능성 전투화 입찰 과정에서 성능이 우수한 국내업체의 원가보다 높은 외국제품 원가를 기준으로 입찰가를 책정해 전투화 제조업체의 외국 제품 사용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방사청이 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방사청은 올해 기능성 전투화 조달 규모로 당초 76만2119족, 551억3000만원을 책정했다. 이는 고어사의 원단 가격 기준으로 책정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B사 원가가 고어사에 비해 20% 이상 싸기 때문에 국내 제품을 사용할 경우 2017년도 예산 551억원을 기준으로 27억원가량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김 의원 측 주장이다.

방사청은 품질 문제로 외국 제품을 기준으로 원가를 산출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기술품질원의 샘플링 및 시험 의뢰 결과표를 보면 국내업체의 원단이 고어사 제품보다 대부분의 기준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직물조사검사시험연구원(FITI)에 의뢰해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고어사와 B사 모두 군의 요구조건을 충족하지만 B사는 인장강도, 투습도 면에서, 고어사는 마모강도 면에서 각각 우월한 것으로 나와 있다.<표 참조>

김 의원 측은 방사청의 높은 원가 산정에는 고어사의 갑질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투화 원단을 판매하는 고어사가 국내 전투화 생산업체들에 전량 자사 제품을 쓰지 않을 경우 공급 중단 및 완제품 테스트 기기 회수를 언급하며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업체의 신고로 금년도 기능성 전투화 입찰은 두 차례나 유찰된 뒤 재입찰에서 수의계약이 이뤄져 어렵게 전투화 납품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고어사의 갑질 의혹

고어사는 원단 가격 인하를 막기 위해 대형마트 유통을 제지했다는 이유로 지난 8월 공정거래위로부터 36억원의 과징금을 추징받은 적도 있다.

국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 10월 국감에서 다른 측면에서 기능성 전투화 사업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은 방위사업청이 일부 전투화 납품업체의 원가 허위신고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특별한 제재 없이 해당 업체들과 다시 계약을 진행했다고 밝히면서 일부 업체에 대한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고어사 원단보다 싼 B사 원단을 사용해 전투화를 만들어 납품하던 업체들이 올해 납품계약을 갱신하면서 기존의 고어사 기준으로 원가를 허위 제출했다는 것이다. 원가 총액이 27억원이나 부풀려졌음에도 계약을 담당하는 방위사업청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 이 의원 측 주장이다. 방사청은 이에 대해 “해당 업체들에 대해선 사전에 문제를 발견해 적절한 행정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싸움’에 대해 일각에선 전투화가 전투물자인 만큼 최종 생산시설과 소재는 언제든 조달이 가능한 국산 제품을 우선적으로 사용토록 돼 있는 군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1년 기능성 전투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방부는 당시엔 군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국산 제품이 개발되지 않아 국산화가 성공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수입산을 사용하고, 국내 개발이 완료되면 국산 소재로 변경한다는 게 당초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군인에게 필수품인 전투화를 공급하기 위해 국방부는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국내 산업과 기술을 보호하고 중소기업 육성을 지원해야 할 방사청이 품질이 우수한 국산 제품을 두고 외국기업 손들어주기식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고쳐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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