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중국을 국빈방문 중이던 지난 12월 14일, 숙소인 베이징 조어대 인근의 한 현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중국을 국빈방문 중이던 지난 12월 14일, 숙소인 베이징 조어대 인근의 한 현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월 13~16일 중국 국빈방문에서 ‘홀대’를 받았다는 여론에 대해 청와대는 상당히 억울한 표정이다. 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 다음 날인 12월 15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날 있었던 한·중 정상회담 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고 답했다. 같은 날 야당에서 ‘조공 외교’ ‘구걸 외교’란 말까지 나온 점을 고려하면, 내부 평가는 참 ‘후(厚)하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12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직접 “국민이 이번 방문의 성과를 하루 빨리 체감할 수 있게 후속조치를 신속히 추진하고 각 부문의 성과를 적극 홍보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청와대는 ‘홀대론’에 대한 각종 반박 논리도 내놓았다. 방중 2박3일간 10번의 식사 중 2번만 중국 측과 함께했다는 점이 논란이 되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께선 ‘혼밥(홀로 식사)’을 하신 것이 아니라 ‘13억의 중국 국민들과 함께 조찬’을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 당일인 12월 14일 아침 베이징의 서민식당에서 여우탸오(油條·기름에 튀긴 꽈배기)와 더우장(豆漿·중국식 두유)을 먹은 것이 중국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의도된 ‘13억명과의 조찬’이었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해도 7번의 식사 기회가 더 있었는데, 그때는 왜 중국 측과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남는다. 정말 문 대통령은 ‘홀대’받지 않은 것일까.

안타깝게도 외교가에서는 이번 방중이 ‘국빈방문’답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상의 외국 방문은 ‘국빈방문’ ‘공식방문’ ‘실무방문’ ‘사적방문’ 등으로 나뉜다. 최상급에 해당하는 국빈 방문은 우선 형식 면에서 양국 간 조율이 깔끔하게 이뤄져 잡음이 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식사 문제부터 수행기자 폭행까지 이번 방중에는 참 많은 잡음이 있었다.

이런 잡음은 문 대통령이 12월 13일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중국 측 영접자로 나온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장조리가 ‘차관보’급으로,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첫 국빈 방중 때 영접을 나온 장예쑤이(張業遂) 외교부 상무부부장보다 두 단계 급이 낮았기 때문이다. 부부장은 보통 우리 ‘차관’급이지만, 외교부 당 서기를 겸하는 장 부부장은 특별한 경우다. 정부(국무원)보다 당(공산당)이 우위에 있는 중국에서 당 서기를 겸직하는 부부장은 ‘정부급(正部級)’으로 분류되며 이는 우리의 장관급에 해당한다. 중국 외교부에 ‘정부급’ 인사는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장 부부장 둘밖에 없다.

부장조리의 영접 논란

노영민 주중대사는 12월 19일 방송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국빈방문 때도 영접을 부장조리가 했다”라고 반박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08년 5월 이 전 대통령의 첫 국빈 방중 때는 우다웨이(武大偉) 당시 부부장(차관급)이 영접했다. 리우전민(劉振民) 부장조리가 영접을 나온 것은 2012년 1월 이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중국 국빈방문 때였고, 취임 후 첫 방중이 아닌 만큼 홀대 논란은 일지 않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 대통령의 임기 5년 안에 두 번 국빈 초청한 것 자체가 예우였다. 역대 대통령 중 두 번 국빈 방중을 한 사람은 이 전 대통령뿐이다. 노 대사는 또 “2013년 박 전 대통령 영접은 부부장이 했지만 이번에는 마침 부부장이 공석(空席)”이라며 “그래서 부장조리지만 부부장 직무를 대행하는 쿵쉬안유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중국 외교부의 아시아 담당 부부장이 공석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을 영접했던 장 부부장은 여전히 중국 외교부의 선임 부부장이고 다른 부부장도 3명 더 있다. 중국 측이 영접자의 급을 높여주려 했다면, 내보낼 인물은 많았던 셈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예우’보다 ‘결례’의 주인공이었다. 12월 14일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문 대통령이 왕 부장과 악수를 나누며 팔을 두드리자 왕 부장도 문 대통령의 팔을 ‘툭툭’ 쳤다.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지만 청와대는 “친근감의 표시로 보여진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어느 전직 고위 외교관에게 ‘이것이 외교 결례인가, 친근감의 표시인가’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중요 거래처와 회의를 하기 전 거래처 대표와 악수를 했다고 칩시다. 그분이 내 팔을 툭툭 두드렸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해도 괜찮습니까?”

이 같은 형식 면의 ‘홀대’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실질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도 ‘국빈 방중’에 통상 기대되는 실적은 보이지 않았다. 국빈방문에서는 보통 양국 간 논의 내용을 ‘공동성명’이나 ‘공동언론발표문’으로 정리하고 공동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발표한다. 양국 관계에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중대 합의가 이뤄지면 공동성명보다 급이 높고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공동선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방중에서는 그 무엇도 없었다. 우리 청와대는 양 정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4대 원칙’에 합의했다고 홍보했지만, 중국 측 발표문에는 ‘4대 원칙에 합의했다’는 표현 자체가 없었다. 또 4대 원칙 중 3가지는 중국의 기존 입장이었다.

사드 합의와 연계된 방중

사실 이런 ‘홀대’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지난 10월 26일 조선일보에는 ‘韓·中, 사드 갈등 출구전략 물밑 협상’이란 기사가 실렸다. 청와대 안보실 당국자와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를 대표로 하는 중국 실무진 간에 사드 합의문 발표가 추진되고 있으며 이것이 중국 측이 요구한 한·중 정상회담 성사의 전제조건이란 내용이었다.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있는 우리 정부가 ‘연내 방중’이란 시한에 쫓긴 나머지, 중국 측의 계산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기사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이 보도를 전면 부인했었다.

그러나 이후 양국 관계는 기사대로 전개됐다. 10월 31일 한·중 양국은 남관표 안보실 2차장과 쿵 부장조리를 실무 대표로 적시한 ‘사드 합의’를 발표했고, 문 대통령은 ‘연내 방중’했다. 사드 합의가 문 대통령의 방중과 연관돼 있었다는 사실은 중국 측의 말로 재확인됐다. 12월 15일 문 대통령과 만난 중국의 권력 서열 3위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중·한 양국은 사드의 ‘단계적 처리’에 의견을 같이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가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연내 방중’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10·31 사드 합의에 더 신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깊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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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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