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의 이지스함들이 지난해 6월 사상 처음으로 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photo 미해군
한·미·일의 이지스함들이 지난해 6월 사상 처음으로 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photo 미해군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육군 대장)이 지난 11월 15일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에 있는 미군 해병대 기지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해병대용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B 16대가 배치됐다. F-35B는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되는 미군의 항공 전략자산이다. 미국은 올해 여러 차례에 걸쳐 F-35B를 한국에 출격시켜 군사분계선(MDL) 인근 등에서 무력시위를 벌여왔다. F-35B는 최대 항속거리가 2220㎞에 달해 일본 이와쿠니에서 출격하면 한반도 전역에서 작전이 가능하다.

브룩스 사령관은 또 오키나와 후텐마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제3 원정군 사령관인 로런스 니콜슨 중장을 만나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제3 원정군 소속 해병대 2000명은 현재 한국에 전개하고 있다. 주일 미군 5만4000명 중 2만8000명이 제3 원정군 소속 해병대원들이다. 브룩스 사령관은 또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상과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 등과 회담을 갖고 북한 정세와 한반도 유사시 대응책 등에 의견을 교환했다.

브룩스 사령관이 일본에 출장간 것은 유엔군 사령관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유엔사령부 후방기지로 지정된 미군기지 7곳이 있다. 요코스카(해군)를 비롯해 요코타(공군)·사세보(해군)·캠프 자마(육군) 등 혼슈와 규슈에 4곳, 가데나(공군)·후텐마(해병대)· 화이트비치(해군) 등 오키나와에 3곳이 있다. 주일 미군기지도 겸하고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의 지휘는 브룩스 사령관이 맡는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을 한반도에 가장 먼저 전개하는 곳이다.

미국과 유엔군 사령부 참전국들은 한반도 전쟁 상황에 대비해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를 유지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배치하고 있다. 7곳에 있는 병력과 군수물자들을 한국으로 이동하려면 미군 단독으론 안 된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은 또 항모전단의 호송 전력이 부족해 일본 이지스함 등의 지원을 받아야만 한다. 북한 잠수함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으로 수송되는 병력과 물자들을 막기 위해 일본 근해로 출동할 것이 분명하다.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이 북한 잠수함으로부터 수송선들을 보호해야만 한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막강한 대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냉전 시절 소야·쓰가루·쓰시마 등 일본 열도 3대 해협으로 소련 잠수함이 통과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특화·발전시켰다. 북한은 또 화성-12호와 노동미사일 등으로 유엔사 후방기지들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는 이에 대비해 패트리엇-3(PAC-3)와 SM-3 요격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또 정찰위성을 통해 북한군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일본은 이처럼 한반도 유사시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가장 중요한 ‘후방기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 후방기지 7곳

실제로 일본은 6·25전쟁 때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일본이 6·25전쟁 특수로 제2차 세계대전 패배를 딛고 경제 발전의 계기로 삼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미국에 이은 제2의 전쟁 참가국으로서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6·25 전쟁 막바지인 1953년 1월 당시 일본 내 미군기지는 무려 733개에 달했다. 이들 기지는 출병을 위한 전진기지, 병력과 무기 등 물자 수송의 중계기지, 훈련과 병사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 역할을 했다. 6·25전쟁 기간 동안 주일 미군기지에서 한반도 출격은 100만여회, 투하된 폭탄은 70만t에 달했다. 또 원산 상륙을 위한 기뢰 제거와 미군 수송에 일본인 8000명이 동원됐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한국군 병사 8000여명은 일본에서 훈련을 받았다. 로버트 머피 초대 주일 미국대사는 “일본이 없었다면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은 전략적으로 한국의 안보에 매우 중요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시험 발사 이후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간의 군사동맹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주한 미군은 주일 미군의 지원이 없으면 북한의 공격을 제대로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에 반드시 제공해야 할 항공과 해상 전력과 전략 자산을 주일 미군이 보유하고 있다.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은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와 각각 군사동맹으로서 밀접한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도 어떤 식으로든 협력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미국과 군사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했다. 미군의 데이터링크 체계인 링크-16(Link-16)도 공유하고 있다. 한·미·일 3국 이지스함은 지난해 4차례를 비롯해 올해에도 최근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비한 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해왔다. 북한이 핵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잠수함을 실전에 투입할 경우 미국만으로는 막기 어렵다. 일본의 해상 전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본의 대잠 정보수집 능력은 매우 뛰어나고, 정찰위성 등을 통한 정보수집 능력도 탁월하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침공이 있을 경우 한국과 일본 본토, 오키나와, 괌 등 서태평양에 주둔하고 있는 자국의 군사기지들을 모두 동원하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미국 태평양 사령부가 그동안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 한국군과 일본의 자위대가 군사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국제질서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중국을 견제할 지렛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중국이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 당한 치욕은 만주사변과 청일전쟁 및 난징대학살을 들 수 있다. 만주사변은 1931년 9월 18일 남만주철도 폭파사건(류탸오후 사건)으로 비롯된 일본 관동군의 만주(지금의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침략전쟁을 말한다. 당시 일본은 선양 인근의 류탸오후에서 자국이 관할하던 만주철도를 스스로 파괴하고 이를 중국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우고 철도 보호를 구실로 만주 전역을 점령한 뒤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웠다.

미국 핵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2척과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photo 미해군사이트
미국 핵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2척과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photo 미해군사이트

취약한 고리 한국을 흔들어라

중국 정부는 만주사변이 일어난 날을 국치일로 지정했다. 청일전쟁은 1894년 7월부터 1895년 2월까지 벌어진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쟁을 말한다. 패배한 청나라는 1895년 4월 17일 일본과 시모노세키조약을 맺고 일본에 전쟁배상금으로 은화 2억냥을 내주었고 대만과 센카쿠열도, 뤼순반도, 펑후제도를 할양했다. 은화 2억냥은 청나라의 3년분 국가 예산이었다. 청나라는 또 조선에 대한 지배권도 넘겼다. 중국은 서양에 무릎을 꿇은 아편전쟁보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더욱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6주간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어린아이부터 부녀자, 노인에 이르기까지 중국인 30만여명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중국 정부가 난징대학살 희생자 추모일인 12월 13일을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대규모 추도식을 거행하는 것도 당시를 잊기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국이 집요하게 일본에 대한 역사 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고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아태지역에서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야심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의 이런 의도의 걸림돌은 미국이 아닌 일본이라고 간주하는 듯하다.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에 ‘3불(不)’을 강요하는 것도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군사동맹을 저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3불은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에 편입하지 않고, 사드 추가 배치를 추진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한국을 한·미·일 동맹관계 구축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보고 이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한·일 군사동맹 또는 군사협력은 중국의 전략적 약점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카드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고 남북한 통일을 보장한다면 한국으로선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굳이 맺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을 비호해왔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면서도 원유공급 전면 차단 등 실질적인 압박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미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중국은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 북한을 적절하게 이용해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중국은 한국도 핵심이익을 위한 관리 대상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경제 관계를 수단으로 삼아 자국의 편에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 중국이 진정으로 한국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북한과의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를 끊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한·일 군사동맹 또는 협력 관계는 중국에 대한 압박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과의 군사동맹이나 협력관계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를 사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군대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사실마저 부인해왔다. 또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역사와 영토 문제를 고려할 때 한·일 군사동맹이나 협력을 어불성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중국과 동맹을 맺을 수는 없다. 중국은 과거 6·25전쟁 때 대규모 인민해방군을 투입해 국군과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살해했지만 한 번도 사죄한 적은 없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한반도의 역대 왕조와 주종관계를 맺도록 강요했고 조공(朝貢)을 받아왔다. 또 청나라가 1636년 병자호란 때 조선에서 30만명이나 되는 부녀자를 강제로 끌고 가 성노예로 삼기도 했다. 이 중 일부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리며 무시와 천대를 받았던 역사적 사실도 있다.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오른쪽)이 지난 11월 15일 오키나와 해병기지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미해병대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오른쪽)이 지난 11월 15일 오키나와 해병기지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미해병대

미국 쇠퇴 시 한국의 선택지는?

지난 5월 타계한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2012년 발간한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미국이 쇠퇴해 한국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다고 가정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전략적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속국으로 사는 것이다. 둘째, 일본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함으로써 자존과 독립을 지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체 핵무장을 통해 홀로서기를 도모하는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어떤 대안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한국이 중국의 속국으로 살 경우 과거 명·청대의 조선처럼 자존과 독립은 훼손되겠지만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레진스키는 이어 다른 선택으로는 “역사적인 반감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이 있다”면서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또한 북한과 중국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브레진스키가 이런 방안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일본처럼 패권국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동북아 세력 균형 파괴자는 일본이 아닌 중국이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일본의 군비 확대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인 중국은 마치 자국의 체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인 양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있다. 중국은 또 자국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 지위를 요구하면서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다.

각국은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고 파기하기도 한다. 국가 간 동맹은 유사시 국가안보에 도움을 받기 위한 일종의 ‘보험’의 성격을 띤다. 차기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겸 조지타운대 교수는 저서 ‘적대적 제휴’에서 한·일 관계를 ‘유사(類似)동맹’이라면서 앞으로 양국이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사동맹은 두 나라가 동맹을 맺지는 않았지만 제3국을 공동의 동맹국으로 지니고 있는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차 내정자는 “한·일 양국은 지난 세기 소련과 중국, 북한이라는 공통의 적대국과 미국이라는 공동 우방을 두고 있으면서도 역사 문제로 끊임없이 갈등과 협력 사이를 오갔다”면서 “현실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될 수는 없지만 국제적 영향력이 상당한 중급 국가가 되려면 동맹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의 데니 로이 선임연구원도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극우 정치인들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마뜩잖지만 한국이 안보 위기 상황에서 역사 문제를 제쳐두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역사의 상처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역사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독일과 프랑스는 적대와 반목의 역사를 반복해왔지만 지금은 그 어떤 국가들보다 돈독한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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