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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9호]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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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인터뷰]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의 2018 전망

“안보·경제 생태계의 위기 촛불 부채감 벗어나 시장으로 돌아가야”

정장열  부장대우 jrchug@chosun.com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2018년이 위기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북핵(北核) 위기부터 우리 앞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올해 우리는 핵과 미사일을 거머쥔 북한에 맞서 전쟁이냐 평화냐는 마지막 선택지를 받아들 가능성이 크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안보 리스크에 더해 3고(고금리·고유가·원화강세)를 힘겹게 넘어야 한다. 여야가 사활을 걸 지방선거는 우리 경제의 고질병을 덮어버릴 ‘정치 과잉’을 다시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덕구(70) 니어재단 이사장을 만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이 같은 위기의 폭과 깊이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그는 우리가 맞닥뜨렸던 현실적인 위기를 앞장서 헤쳐나간 경험이 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를 맡아 구조조정의 물꼬를 텄다. 2007년 국회의원을 그만둔 후 동북아 연구 싱크탱크인 니어재단을 설립한 그는 최근 출간한 ‘한국의 경제생태계’라는 두툼한 저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구조조정’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우리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점부터 강조했다.
   
   - 연말연시마다 되풀이되어온 것이 ‘위기의 한 해’지만 2018년의 위기 지수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동안 위기라고 하면 대부분 경제위기였다. 국제경제가 용틀임하는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압박을 받는 시장의 위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7년 금융위기가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2018년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안보 위기다.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북핵 해법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데서 오는 지정학적 위기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우리가 위기 요인을 제거할 아무런 지렛대 없이 국제사회에 다시 통사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는 “옛날 같은 다자체제에서는 중소국가가 자기에게 닥치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자체제에 호소하고 거기서 답을 구하려고 했지만 세계 정치·경제의 역학구도가 양자체제로 바뀌면서 자기 문제를 속시원히 얘기할 그라운드마저 사라졌다”며 “지금은 강대국의 각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허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 안보 위기가 전부인가. “2018년에는 안보위기 외에도 아주 심각한 위험 요소가 내부에 깔려 있다. 일단 세계적인 고금리 추세가 문제다. 우리가 내외 금리차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적인 조치를 취할수록 수출·투자 부진, 가계부채 등 우리가 안고 있는 암세포들을 더 악성으로 키울 수 있다. 산업경쟁력도 점점 더 떨어질 수 있다. 거기다가 개헌과 지방선거 등 정치적 이슈도 많다. 정치인들은 임산부가 애를 낳을 때 예민해지듯이 선거만 다가오면 정신을 잃는다. 국가공동체의 가치보다는 나의 당선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대한민국 전체가 다시 정치에 휩쓸리면 위기라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된다.”
   
   - 일반인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데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전쟁이 날 요인과 나지 않을 요인이 병존하고 있는데 아직은 억지력이 더 크다고 본다. 전쟁 억지력 측면에 중국이 있다. 중국은 미국에 신세 지는 것이 아직 많기 때문에 미국이 압박하면 먹힌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100%를 걸고 있다면 중국은 70%는 북한에 대한 압박에, 나머지 30%는 북한이 무너질 때 오는 충격을 대비하는 데 쓰고 있다고 본다. 지금 전쟁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판단할 기초 여건들이 죽 열거돼 있는데 심각한 단계는 아니지만 그런 여건들이 전쟁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북한을 더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럴 여지가 있다. 중국은 과거에는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봤지만 지금은 악성 종양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 떼어내다가 자기 목숨마저 간당간당할 정도로 종양이 커져버린 것이다. 국제사회가 김정은의 간을 너무 키워놔서 중국으로서도 다루기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정도로 압박을 더 강화할 것이다. 결국 상징적 규모만 남겨놓고 원유를 차단하는 것인데 거기까지 가면 북한이 주저앉을 것이다.”
   
   -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미·북 대화를 받아들이면서 평화 국면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압박이 더 필요하다. 이왕 시작한 김에 부러질 만큼 강하게 나가다 보면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날이 올 것이다. 협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완전 소진의 원칙(principle of exhaustion)’이다. 당사자들이 도저히 못 버틸 만큼 그로기 상태까지 지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주민들이 동요하고 ‘보트피플’이 나오는 그런 상황이다. 미국도 군인과 민간인이 너무 많이 희생될 수 있다며 반전론이 확산되는 상황을 맞으면 국내 정치가 트럼프를 협상 쪽으로 밀 것이다.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모두 이런 소진의 원칙이 적용되면서 협상의 문이 열렸다. 또 하나는 ‘진실 순간의 원칙’이다. 당사자 모두 마음속에 숨기는 것이 없을 만큼 진정으로 바닥(bottom line)에 이르러야 협상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과 북한 모두 지쳐가고 있다고 본다. 진실의 순간에 다가서고 있는 셈인데, 기초 여건들이 전쟁으로도 평화로도 향할 수 있는 아주 미묘한 시점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사론’을 강조한 바 있는데 우리가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뭔가 주도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운전사론’이든 ‘균형외교’든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본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 중에 반미주의자, 친중주의자들이 있다 보니 이들을 향해 그냥 레토릭을 날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과거 ‘한반도 균형자론’을 꺼냈다가 나중에 바보같이 되어버렸지만 진짜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균형자를 외쳐봤자 미국과 중국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 아무리 레토릭이지만 그런 말을 함으로써 한·미·일 동맹을 흐트러뜨리고 오히려 위기를 가중시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보수층에서 미·중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다가 한·미 동맹이 깨져버리는 게 아니냐는 강한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중국에 기우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우리와 가치와 이익을 모두 나누는, 말 그대로 동맹국이다. 반면 중국은 서로 나눌 가치가 없는 나라다. 개도국적인 사고를 하는 일당독재의 나라다. 당연히 양쪽을 저울추 위에 올려놓으면 가치와 이익이 함께 얹혀 있는 미국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들어 나눌 이익도 줄고 있다. 자기들이 세계를 상대하게 될 만큼 성장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가고 있다.”
   
   - 문 대통령이 최근 중국을 방문해 우리 스스로를 ‘작은 나라’라고 칭했는데 이런 자세가 중국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나. “그런 말을 써준 참모가 오류를 범한 것이다. ‘니네 같은 큰 나라가 수퍼파워로서 추앙받으려면 인접국가, 특히 한국처럼 성공한 나라와 잘 지내야지 괴롭히면 되겠느냐’, 뭐 이런 취지에서 큰 나라, 작은 나라라고 표현했으면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중국이 우리에게 무례하게 굴고 수모를 안기는 배경에는 우리의 약화된 산업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수교 초만 해도 우리에게 배우겠다는 자세였는데 이제 자기들이 빠르게 성장하니까 자기 과신에 빠진 것이다. 우리가 중국과 이익을 다시 나누려면 한 가지 길은 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의 선발주자로 승자가 된다면 중국이 다시 겸손해질 것이다.”
   
   그는 “우리는 중국과 거리를 뒀어야 하는데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깊숙이 들어가버렸다”며 이런 지적을 했다. “정치적 리스크가 큰 나라에 돌아나오기 힘들 만큼 들어갔다가 지금 포로로 잡힌 격이다. 일본은 중국과는 거리를 두면서 절대로 중후장대형의 대규모 투자는 안 했는데 우리는 자동차 등 대규모 장치산업을 들고 들어가버렸다. 우리가 중국으로 깊숙이 들어가 밀착해버리면 그쪽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을 중시하는 우리가 일당독재 국가의 가치를 수용할 수 있겠나. 현재 우리의 무역고 중 중국의 비중이 25% 정도인데 무역 다변화를 통해 이 수치가 15% 미만으로 줄어야 우리 멱살을 잡은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과거 인터뷰에서 ‘한·중·일 관계가 중요하고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지금 일본은 미국의 에이전트 역할을, 중국은 스스로 G2라며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한·중·일 3자 관계를 잘 엮어야 우리에게 완충지대가 생긴다. 중국한테 바로 얻어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일본은 우리와 가치적으로 우호감정을 가진 나라다. 때문에 한·중·일 무역협정이든, FTA든, 정상회담이든 공동의제를 계속 개발해야 한다. 과거 ‘한·중·일 정상회담 사무국’을 서울에 두기도 했는데 중국이 커지면서 동북아 협력구도를 만드는 데 관심이 시들해졌다. 하지만 세 나라를 엮는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된다.”
   
   - 경제 위기와 관련해 ‘제2의 IMF가 올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나오는데 그 배경이 뭐라고 보나. “‘제2의 IMF’라는 용어는 잘못이다. 우리가 다시 그 체제에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산업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부품과 소재를 수입해 조립을 하는 산업구조여서 성장률을 높이면 경상수지가 적자가 되곤 했다. 그 경상수지 적자를 자본수지로 메우기 위해 국제 금융체제에 순응했다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부품, 소재, 중간재를 다 만든다. 외환보유고도 많지만 구조적으로 경상수지가 늘 흑자다. 또 자율변동 환율 등 국제경제 운영 메커니즘도 정비가 됐고 정부도 많은 학습을 거쳤다. 제2의 IMF위기라는 말 자체가 틀린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위기는 가능하다고 본다.”
   
   - 또 다른 형태라니? “생태계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팔이 부러지는 걸 점(點)의 위기로 비유해 보자. 이걸 방치하면 구조화된 선(線)의 위기가 온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바로 선의 위기였고, 구조화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선의 위기를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면(面)의 위기가 온다. 우리가 그 단계로 가고 있다.”
   
   - 그래도 2017년 경제성장률이 3%를 넘기는 등 경제가 크게 어렵지 않은데. “우리가 그리스, 아르헨티나처럼 나라가 전복되지 않은 건 그나마 제조업 기반이 튼튼해서다. 지난 촛불 사태 때 모든 국민들이 다 광장으로 나왔으면 나라가 뒤집어졌을 텐데 많은 국민들이 선실에서 자기 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나라가 엎어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 경제도 제조업이라는 무게중심이 아래에 놓여 있어 아직은 복원력이 있다. 그런데 추동력은 약하다. 배가 뒤집어지지는 않는데 큰 파도를 밀고 나가지 못하고 표류하는 상황이다.”
   
   - 면의 위기로 나아가는 근본 이유가 뭔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았나. “그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그 당시 해야 할 것만 하고 손을 놔버렸다는 점이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조선산업, 해운산업 등에서 계속 문제가 발생했는데 방치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해운산업은 다 망했고 조선산업도 가라앉고 있다. 조선산업의 경우 연관 업체가 얼마나 많나. 이 선의 위기가 면의 위기로 확장돼 가는 중이다. 이건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 그러면 해결책이 뭔가. “내가 책에도 썼지만 경제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조선업을 예로 들자면 위기에 빠진 회사들은 공중분해해서 단순 조립은 큰 회사 몇 개로 넘기고 나머지 잘하는 것만 키워야 한다. 예컨대 선박 디자인, 선박 페인트, 선박 엔진 등을 다 떼어내고 분사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이건 생태계적 접근으로 구조조정과는 다르다.”
   
   - 면의 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뭔가. “관료그룹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지나치게 정치화됐다는 점이다. 정치는 항상 컴프로마이즈(compromise), 즉 타협을 한다. 그런데 암에 걸려 당장 죽을 환자를 보면서도 1년 후에 수술하자고 타협하면 되겠는가. 그 사이 환자는 죽어버린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경제가 정치에 앞선 건 그때 잠깐뿐이었다. IMF에 돈을 다 갚은 후에는 다시 정치가 경제를 지배했다. 표만 의식하는 정치의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특히 5년마다 대선을 치르면서 과잉정치, 과잉이념화가 경제에 엄청난 비용함수가 됐다. 그때그때 적절하게 수술을 못한 결과 암세포가 면으로 번진 것이다.”
   
   그는 “돌이켜보면 2007~2008년 이명박 정부 말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경제부처 후배들한테 지금도 화를 내지만 그때 산업구조조정을 했어야 했다. 한·중·일 삼국의 부가가치 사슬을 내밀히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특화할 것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다 잘라냈어야 했다. 그런데 그 시기 뭘 했나. 바로 4대강 사업만 하지 않았나. 돈도 돈이지만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관심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 과잉정치, 과잉이념의 근본 원인이 뭐라고 보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분단국가로서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그 상황에서 여론이 가운데로 몰리지 않고 자꾸 양극으로 밀려난다. 이게 5년 단임제와 맞물려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이다. 그 사이 희생되는 것이 국민이고 경제다. 경제에 있어 정치와 이념은 비용 함수다. 이게 커질수록 경제는 안 된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인들을 불러서 두들겨 패는데 그러다 보니 경제생태계가 정치에 침윤당해버렸다.”
   
   - 관료들이 힘이 빠졌다고 그러지만 아직 우리나라가 관료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바깥에서 보니까 그것도 옛말이다. 외환위기 이후 관료들이 약화되면서 정치인들이 올라타 버렸다. 우리가 중앙부처 국장할 때는 국회의원들과 토론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장들이 국회를 찾아가면 보좌관을 상대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세지면서 상대적으로 정치에 굴종하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
   
   - 대의민주주의 나라에서 국회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것도 수준의 문제다. 옛날에는 정치와 관료와 재벌의 삼각 연합구조가 나라를 이끌었는데 이게 깨지면서 외환위기가 왔다. 그 이후 생긴 것이 수평적 거버넌스인데, 이게 느슨하고 완만하기 짝이 없다. 즉 미성숙한 민주정치, 대리인 위치에 머무는 관료그룹, 그리고 위험회피만 하는 기업과 강성한 시민단체들이 엮어내는 느슨하고 완만한 거버넌스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 이런 거버넌스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개헌을 하면 돌파구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정당법, 선거법, 국회법을 바꿔 국회의 기능을 재정리해야 하는데 키를 쥔 게 국회의원들이다. 그래서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본다. 지금 같은 느슨한 거버넌스에서는 맨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디는 외과수술은 어렵다. 외과수술을 너무 안 하다 보니까 이제 의사도 없다. 후배 관료들 중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만한 사람을 찾아봐도 눈에 띄질 않는다. 구조조정하라고 하면 전부 손사래를 친다.”
   
   - 최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이 정부가 사회적 실패자, 약자, 노동자 이런 쪽을 주축으로 국정을 밀고 나가니까 실질적인 액터(actor)인 성공한 사람들, 경쟁력 있는 기업인들이 소외받고 뒤로 처지는 것이다. 경제는 노동생산성과 자본의 효율에 의해 움직이는데 지금 노동과 자본, 가계와 기업을 연결하는 피댓줄이 끊겨버렸다. 노동과 가계에 아무리 돈을 퍼붓고 펌프질을 해도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니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양발자전거로 가야 멀리 가지 노동의 외발자전거로는 얼마 가지 못한다. 특히 최근 정책을 보면 점끼리 충돌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점끼리 충돌한다니? “최저임금도 올리고, 자영업자도 위한다고 하는데 이 둘이 충돌하는 식이다. 청와대에 각자 자기 정책만 들여다보는 수석들이 너무 많고 이를 총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국정 1호 정책이라는 것들이 흔들흔들하고 점끼리 충돌한다. 시장의 반격, 생태계의 반란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당장 고용이 줄고 부동산값은 다시 올라가지 않나.”
   
   - 정부가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 등 대선공약을 지키는 데만 너무 몰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실에 맞게 공약을 수정할 수도 있을 텐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핵심 지지층이 무엇보다 필요했을 테고 지지층마저 떠나면 영(令)이 안 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도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 밀어붙이는 정책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라도 해서 대통령 지지율을 그동안 높이 유지했으면 이제 충분한 것 아닌가 싶다. 이제는 공약의 시대에서 벗어나 다음 대선을 치를 2022년의 나라 모습을 생각해 봐야 한다. 국정을 맡은 지 6개월이 지났으니까 촛불에 대한 과도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 시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 민주노총 지도부가 여당 당사를 점거해도 손을 놓고 있는데 촛불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 “나는 여당 점거 사태가 민노총의 마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같이 촛불광장에 모였던 국민들에게 자기들이 대주주라고 선언한 셈이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노총과 결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지 않으면 촛불의 힘으로 밀고 왔던 것들이 다 퇴색된다. 민노총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무덤을 판 것이다.”
   
   그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과 관련해 이런 주문을 했다. “민노총 소속 강성 노조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고 강자다. 이 사람들을 약자나 피압박층으로 보면 안 된다. 그 강자들, 사회적 승자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한테 양보하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 대신 자영업자,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조의 처우를 개선해줘야 한다. 노동계 내부의 정리가 필요하다.”
   
   - 독일 슈뢰더 총리가 추진했던 하르츠 개혁처럼 노동의 유연화, 노동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보나. “필요하지만 독일과 우리와는 차이가 좀 있다. 독일은 기업 쪽에 흠이 별로 없지만 우리는 재벌이 3, 4세 경영으로 넘어오면서 흠이 많아졌다. 노동세력이 이걸 물고늘어지니까 이를 무마하기 위해 재벌들이 돈을 쓴 것이다. 김정은을 서방세계가 잘못 길들였듯이 재벌 오너들이 노조를 잘못 길들였다. 일종의 자업자득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성노조만 쳐내자고 하면 쉽지 않다. 슈뢰더식 노동개혁을 하면서 재벌개혁도 같이 해야 한다.”
   
   - 재벌개혁의 요체가 뭔가. “순환출자 등 지분구조와 주주권에 관한 문제가 하나이고 또 하나는 의사결정의 메커니즘이다. 나는 경영권 보호장치 없이 순환출자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재벌들이 응할 리가 없다. 한국적인 강한 경영권 보호장치부터 만들고 5년이든 10년이든 순차적으로 순환출자를 없애야 한다. 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는 독립기업 회계원칙을 당장 바로 세워야 한다. 그룹 회장실, 비서실이 전횡하는 방식은 바꿔야 한다. 이사회에 많은 권능을 주고 이사 선임도 엄격히 하면서 이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CEO 마켓을 키워야 한다. 지금처럼 퇴직한 임원들을 고문이니 뭐니 직함을 주고 3년씩, 6년씩 잡아두면 안 된다. 재벌 오너들이 가족 회사로서의 극비사항을 지키기 위해 퇴직 임원들을 그렇게 붙잡아 두는데 그러면 CEO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 현 정부의 적폐청산을 어떻게 보나. “적폐는 청산해야 하지만 정적(政敵)들을 적폐라고 하면 안 된다. 이것도 비리의 온상을, 비리의 생태계를 하나씩 파고들어 가며 해결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적폐청산을 제일 잘한 인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본다. 김영란법을 실행하지 않았나. 김영삼 전 대통령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적폐를 청산했다. 맨날 정적만 잡아들이지 말고 이런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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