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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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개헌(改憲)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6월 1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려 하나 야당의 반대로 국회 합의는 어려워 보인다. 여야 모두 개헌 자체에는 동의했으나 시기와 내용에 있어서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2일에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산하 자문위원회의 개헌 권고안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자문위 권고안에는 기존 헌법 전문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고, 헌법 제4조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라는 글자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회주의 개헌안’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개헌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이는 가운데 허영(83)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만났다. 독일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허영 교수는 박정희 정부 때 유신(維新)헌법의 기초가 된 독일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결단주의 이론을 비판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낸 허영 교수는 “여야 모두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논의하기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을 선거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허 교수와의 일문일답.

- 개헌특위 자문위 권고안이 논란을 빚었다. “정부 여당의 의견이 아니고 법적구속력도 없는 하나의 안(案)일 뿐이다. 헌법에는 헌법적 가치, 즉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특정 세력이 바라는 내용을 담는 것이 아니다. 기본권에 안전할 권리를 넣는다거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다거나 하는 내용에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본다. 국민투표에 부치기에 앞서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될 것이다.”

- 사회주의 개헌안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민주주의가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며 빼도 괜찮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몰인식이다. 1776년 미국에서 버지니아권리장전이 나오고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세 가지 본질을 갖고 태어났다. 자유, 평등, 정의다. 이 세 가지를 뺀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북한도 민주주의란 단어는 쓴다. 스스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지 않나. ‘자유’를 헌법에서 빼겠다는 사람들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다른 쟁점들은 여야 합의가 잘 안 되니깐 지방분권 개헌을 앞세운다. 문제는 지방분권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가장 확실한 지방분권은 연방제다. 그걸 하자는 것인가. 지방분권에 앞서 선결과제는 세제 개편을 통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이다. 재정자립이 되면 지자체 고유 사무를 개발해서 할 수 있고 지방분권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재정자립이 안 된 상태인데 권한만 받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 지방분권 개헌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거전략적 측면에서 선거법 개정과 연계해서 추진하는 것 같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한 지역에서 여러 명을 뽑고, 비례대표 선출 시 전국 단위의 정당명부를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바꾸면 정부 여당에 유리하다. 여당 텃밭 지역의 경우 더 압도적으로 여당이 당선될 것이다.”

- 개헌의 최대 쟁점은 정부 형태다. 어떤 제도가 적합하다고 보나. “우리나라는 남북 대치상황이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의회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아서 대통령제가 맞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개헌을 통해 직선제 선거와 5년 단임제가 정착됐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다는 것은 대통령의 권력에 민주적 정당성을 주는 것이다. 대통령이 위임받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했는지 국민이 한 번은 심판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우리 실정에 적합하다고 본다. 다만 4년 중임제로 개헌할 경우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확 줄여야 한다.”

- 대통령의 권한을 줄일 수 있는 개헌 방안은.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인사권에 제한이 없어서다. 국회 임명동의 절차가 있다고 하나 여당이 다수당일 때는 대통령 뜻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우선 사법부 인사를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사법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추천받고,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와 같은 가중다수결을 통해 임명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장, 대법원장, 검찰총장 세 자리만 대통령 인사권에서 제외해도 ‘제왕적’이란 말이 안 나온다.”

허영 교수는 “국무총리제 대신 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형태에 있어 대통령제와 국무총리제는 어울리지 않고 체계정당성의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법 86조2항에는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을 뿐 실제 역할은 모호하다. 허 교수는 “한국도 미국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함께 뽑아 대통령 유고(有故) 시 부통령이 대통령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하고 권한을 분배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 올바른 개헌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절대다수 국민이 개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야 한다. 둘째로 하는 일 없이 정치싸움만 하는 국회의 특권을 줄여야 한다. 헌법기관 중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이 국회이다. 마지막은 검찰과 법원,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예속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법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 국회의 특권을 줄일 개헌 방안은.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고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국회 예산자율권을 제한해야 한다. 국회의원 마음대로 세비를 올리고 보좌관 수를 늘리지 않나. 국회 의사자율권도 헌법의 큰 틀 안에서 자율이 있는 것이지 벗어나는 경우에는 제한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때 조사도 없이 소추가 이뤄졌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국회 의사자율권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했지만 지구상 어느 나라도 조사 없이 소추하는 경우는 없다.”

- 6월 지방선거 시 개헌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보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하기 위해선 늦어도 3월까지 개헌안에 합의해야 한다. 벌써 1월 중순인데 아직까지 개헌안 합의가 안 됐다. 앞으로도 어려워 보인다. 개헌특위를 6월 말까지 연장한 것 자체가 사실상 지방선거에서 개헌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 헌법학자로서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권한 행사하는 것을 봐라. 말 한마디에 원전 건설이 한동안 중단되지 않았나. 헌법적 가치를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헌법에는 분명히 국무회의가 국정운영의 중심에 서게 돼 있다. 지금 국무회의는 유명무실하다. 청와대 비서실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된다. 대선에서 공약했던 것처럼 국무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나눠줘야 한다. 현행 헌법하에서도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줄일 생각만 있으면 얼마든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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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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