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장을 전달받는 박선원 신임 상하이총영사(왼쪽). ⓒphoto 뉴시스
지난 1월 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장을 전달받는 박선원 신임 상하이총영사(왼쪽). ⓒphoto 뉴시스

신임 상하이총영사에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임명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월 8일, 외교부 청사에서 박선원 신임 총영사에게 임명장을 전달했다. 박선원 신임 총영사는 지난 1월 10일 상하이로 날아가 임기를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신임 총영사는 연세대 재학 시절 삼민투위(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386운동권 출신이다. 1985년 미 문화원 점거사건 때는 배후로 지목돼 옥살이를 한 전력이 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으로 발탁돼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때 수행원으로 방북하기도 했다.

박선원 총영사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회 안보상황단을 이끌던 서훈 현 국가정보원장 아래서 부단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 때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논란 때는 청와대 서별관회의 메모 원문을 공개해 불똥이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튀는 것을 막았다. 이에 대선 공신이자 외교안보 실세로 거론됐고, 대선 직후인 지난해 5월에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전 주미대사)을 위시한 대미특사단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방미 직후 샌프란시스코총영사에 내정됐다는 설이 나왔는데, 지난 1월 2일 단행된 재외공관장 인사를 통해 상하이로 방향을 튼 것이다. 앞서 박선원 총영사는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이 한창이던 지난해 1월에는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장 송영길 의원)들과 함께 중국을 찾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면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상하이 현지 교민사회에서는 386운동권 출신 총영사의 부임에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중국 현지에 개설된 총영사관은 상하이, 칭다오(靑島), 선양(瀋陽), 광저우(廣州), 청두(成都), 시안(西安), 우한(武漢)을 비롯해 특별행정구인 홍콩 등 모두 8곳이다. 사실 총영사의 역할은 현지에 나가 있는 자국 교민들을 보호하고, 현지 진출 자국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외교안보나 정무관계를 다루는 일은 아무래도 베이징에 있는 주중 대사관이 우선이다. 현지 교민보호와 비자발급 등을 담당하는 중국 현지 총영사관의 총영사를 실무형 외교관들로 임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2일, 재외공관장 인사에서 함께 인사가 난 임병진 신임 선양총영사는 주중국 공사, 장제학 신임 청두총영사는 주인도 공사참사관, 박진웅 신임 칭다오총영사는 전라북도 국제관계대사, 김원진 신임 홍콩총영사는 주캄보디아 대사를 지낸 외무고시·행정고시 출신의 전업 외교관들이다. 이 밖에 유임된 황순택 광저우총영사, 이강국 시안총영사, 정재남 우한총영사도 모두 전업 외교관 출신이다. 하지만 유독 상하이총영사관에서는 캠프 출신 공신들이 ‘총영사’로 낙하산 투하된 전례가 반복되고 있다. 한 총영사급 외교관은 “상하이는 외교부 출신들이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고 했다.

상하이총영사관은 한·중수교(1992) 직후인 1993년 중국 내 첫 지방영사관으로 개설됐다. 중국 증권시장이 있고 외국계 기업 본부가 대거 몰려 있는 중국의 경제수도 위상을 감안해 초대 윤해중 총영사를 비롯해 전업 외교관들이 영사관을 꾸려왔다. 윤해중 초대 상하이총영사는 “미국 하면 워싱턴-뉴욕 하듯이, 중국 하면 베이징-상하이 아니냐”며 “제2도시라서 최초로 영사관을 개설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악 외교참사 ‘상하이스캔들’

상하이총영사관의 정치색이 짙어진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전업 외교관 대신 상징성을 고려한 인사나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던 인사들을 총영사에 낙점하면서다. 민간 기업인이었던 김양씨가 상하이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라는 이유로 상하이총영사에 발탁됐다. 김양 총영사의 후임에는 MB캠프에 적을 두었던 ‘거로영어’로 알려진 영어강사 김정기씨가 영사관을 이끌었다.

1993년 상하이총영사관 개설 이래 최악의 외교참사로 기록된 ‘상하이스캔들’이 터진 것도 이때다. 비전업 외교관인 김정기 당시 총영사 아래 경제영사, 법무영사 간에 정체불명의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를 둘러싼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시작된 영사관 내부의 스캔들은 결국 총영사가 경질되는 사태로 비화됐다. 또 김정기 총영사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국정원 출신 부총영사까지 사건에 직·간접 개입된 정황까지 추가로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상하이총영사관이 쑥대밭이 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상하이스캔들’은 전업 외교관인 안총기 전 총영사(전 외교부 2차관)가 급파돼 뒷수습을 맡으면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도 상하이총영사에 정치권 출신 인사가 내정되는 일은 그대로 반복됐다. 박근혜 캠프에 있었던 구상찬 전 의원이 상하이총영사로 임명된 것. 한·중관계 원로인 이세기 전 의원(한중친선협회장)의 비서 출신인 구상찬 전 총영사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박근혜 당시 대표가 대중특사로 가서 후진타오 당시 총서기를 만났을 때 수행원으로 동행했던 측근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상태였다. 결국 구상찬 전 총영사는 임기 2년을 못 채우고 “20대 총선을 준비한다”며 상하이를 뒤로하고 서울로 귀국했다.

구상찬 전 총영사의 후임 역시 비전업 외교관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용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외교안보 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한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총영사에 임명된 것. 한석희 전 총영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3년 김무성 의원을 단장으로 중국에 파견한 대중특사단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자칭 ‘중국통(通)’이라는 비전업 외교관이 줄줄이 꿰찬 상하이총영사관에 대한 한국 교민사회의 신뢰는 더 하락했다. 오히려 총영사들이 한국 국내 사정에 더 관심을 가지고, 교민보호와 같은 영사관 본연의 기본임무는 소홀히 한다며 상하이 교민사회의 불만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급기야 상하이 한인 교민사회의 영사관에 대한 불만은 2016년 7월 있었던 한국인 의류사업가 신모씨 모녀 협박사건을 계기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당시 중국인 채권추심업자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던 여사장 신씨가 상하이총영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자 담당영사가 “제가 경비원도 아니고”라고 발언해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시 상하이 한국상회(한인회)는 “한석희 총영사가 부임한 후 최근 1여년 사이에 상하이총영사관의 민원처리 수준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며 “지난 1년간 교민과 민원인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자라나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한석희 총영사는 교민사회에 공개사과를 하기에 이르렀고, 2017년 4월, 박근혜 정부 마지막 재외공관장 인사를 통해 전업 외교관 출신인 변영태 총영사로 교체됐다. 상하이스캔들과 모녀 협박사건 같은 일들이 차곡차곡 누적되면서 지금도 상하이 교민사회에서 총영사관을 불신하는 태도는 여전히 높다. 상하이총영사관이 관할하는 지역(상하이·장쑤성·저장성·안후이성)의 현지 교민은 모두 6만325명. 중국 국적 조선족까지 합한 재외동포는 14만4781명에 달한다.(2017년 기준) 교민사회를 대표하는 한국상회는 위기상황에 대처해 2010년부터 ‘SOS솔루션팀’이란 자체 조직을 꾸려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개 총영사는 대사와 달리 주재국 사전동의 절차(아그레망)가 필요 없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외교부 인사기획관실의 한 관계자는 “중국, 베트남, 독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총영사도 아그레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까다로운 ‘아그레망’ 절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인사들이 상하이총영사 자리를 기웃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총영사도 ‘아그레망’ 필요

상하이의 경우 한국과 비행기로 채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의 이점이 있다. 김포공항에서 왔다갔다 할 수 있어 국내 기반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략 2년의 임기를 보낼 수도 있다. 박선원 신임 총영사 역시 2012년 19대 총선 때와 2014년 재보궐선거 때는 고향인 전남 나주·화순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국회의원 출마를 타진하기도 했다. 상하이임시정부가 있어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 중 한 번씩은 반드시 찾는 곳이라 최고권력자와 ‘눈도장’을 찍기도 좋다.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역시 상하이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총영사관은 중국 측이 가장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탈북자 문제가 거의 없는 점도 이점으로 꼽힌다. 반대로 탈북자들이 수시로 담을 넘어 뛰어드는 선양총영사관은 조선족 동포들이 가장 많은 동북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 전체를 관할하는 까닭에 각종 비자발급 사건·사고가 많아 정치권 출신들이 기피하는 곳이다. 선양총영사관이 관할하는 동북3성의 재외국민은 지난해 기준 4만3400명에 불과하지만 비자발급 수요가 집중되는 조선족 동포들은 160만7510명에 달한다. 한 전직 상하이총영사는 “베이징에 비해 공기오염이 덜한 것도 상하이를 선호하는 까닭”이라고 귀띔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실세가 상하이총영사에 임명되면서 베이징과 상하이의 위상이 달라질 조짐도 엿보인다. 문재인 정부 첫 주중 대사에 임명된 노영민 주중 대사는 3선의원 출신이다. 노영민 주중 대사는 연세대 경영학과 76학번으로 박선원 신임 총영사(82학번)의 대학 학과 선배다. 하지만 노영민 주중 대사는 비록 지난 대선 때 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하지만 외교 경력은 일천하고 중국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도 외통위가 아닌 주로 건설교통위원회(현 국토교통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안보상황단 부단장을 맡았던 박선원 신임 총영사는 한때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 요직에 기용될 것이란 하마평이 무성했다. 실제 문재인 캠프 안보상황단 단장을 맡았던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원장에 기용됐다. 하지만 그 아래 안보상황단 부단장을 맡았던 박선원 비서관이 당초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직책에 비해 비교적 한직이라고 할 수 있는 총영사급에 기용된 것을 의외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이에 박선원 총영사가 상하이라는 부임지의 특수성을 활용해 남북접촉 등 특수임무를 부여받은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송영희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은 “신임 총영사가 사드로 위축돼 있는 교민사회가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교민안전에도 구석구석 신경 써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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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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