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1월 16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1월 12일 경남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지난해 5·9 대선에서 홍준표·문재인 후보가 각각 37%·36%의 지지율을 얻은 경남은 6·1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지역. 이날 행사에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비롯해 지방선거 출마예상자들과 지지자, 당원 약 1500명이 참석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당의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듯 이날 김한표 경남도당위원장은 6월 치러질 지방선거를 임진왜란에 비유했다. “이 전투(6·13지방선거)에서 모두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싸우는 사람은 반드시 살 수 있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다 앞장서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한국당 경남도당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예년 지방선거와 비교해 적지 않은 숫자의 당원들이 참석했다”면서도 “지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6·13지방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118석을 보유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리얼미터가 집계한 1월 2주차(1월 8~12일) 정당지지율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16.9%다. 같은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51.8%,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70%를 넘었다. 한국당 지지율은 지난해 10월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20%를 넘긴 적이 드물다.

바닥을 기는 당 지지율에 대한 홍준표 대표의 반응은 ‘여론조사 자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지난 1월 16일 강원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선거를 해보면 언론의 예상이나 여론조작기관의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민심이 드러난다”며 “민심은 여론조사하고는 따로 간다”고 말했다.

24%의 리더십

하지만 홍 대표의 말과는 달리 표심(票心)이 한국당과는 한참 멀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여럿이다. 우선 첫째로 꼽히는 것이 인물난이다. 지난해부터 현역 의원들이 지방선거 출마를 줄줄이 포기하면서 한국당은 주요 격전지에 출마시킬 후보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한국당의 텃밭으로 꼽혀온 부산과 경남이다. 2010년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두관 경남지사를 제외하면 한국당은 민선 지방선거에서 두 지역을 한 번도 뺏긴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다르다. 5선의 이주영 의원은 일찍부터 경남도지사 출마를 고사했고, 창원시장을 두 번 역임한 박완수 의원도 1월 14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한국당은 경남에 내보낼 마땅한 카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도 현 서병수 시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잠재 후보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당이 이처럼 텃밭에서조차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당이 부딪힌 문제를 보려면 우선 지도부의 리더십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준표 대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지난 대선에서 24%의 지지율을 얻었다. 긍정적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 보수층을 결집해 이 정도의 지지층을 지켜냈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이 이상의 외연 확장이 어렵다는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부정적 견해도 많았다. 홍 대표는 ‘막말’과 ‘독불장군’ 이미지로 비치는 측면이 있다. 홍 대표의 리더십은 중도 성향의 다수 유권자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홍 대표의 한계에 대해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연구 전문위원(정치학 박사)은 2016년 촛불집회의 여파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헌정 문란을 이유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어요. 모든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선거에 나갈 인물이 없는 문제, 여당의 ‘적폐청산’ 프레임에 걸려드는 문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심각한 건, 보수는 대한민국을 건설한 헌정세력이라는 도덕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그게 무너진 겁니다.”

홍 대표의 ‘꼼수 리더십’은 당내에서도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홍 대표는 지난 1월 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당 신년인사회에서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으로 나오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구에 내려온다는 게 대구를 근거지로 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지 대구에 출마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라며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으로) 내려오더라도 다음 총선 전에 지역구는 훌륭한 인재를 모셔놓고 출마토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같은 당 김태흠 최고위원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당 대표라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험지를 택해 희생과 헌신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텃밭 대구에 셀프 입성하겠다니 기가 막힌다. 대구 안주는 당의 지지기반 확장 포기와 다름없다.” 부산시장 출마를 준비하는 박민식 전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홍 대표의 대구행은 보수주의 대신 ‘보신주의’를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도부의 리더십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당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보신주의와 패배주의가 감지된다. 한국당 소속 의원실 관계자들은 지지율과 관련한 현재 당내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바른정당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지지율 문제는) 민감한 문제다 보니 보좌진들끼리 만나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지방선거를 위해 뛰어야 할 지역구 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이 ‘지방선거야 어찌되든 나에게 해가 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홍 대표는 지난해 10월 초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으로 복당한 8명의 의원들을 환영하면서 “(의원들이) 복당하면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호언했다. 올해 1월 들어서는 남경필 경기지사, 김세연 의원, 박인숙 의원도 잇따라 한국당으로 복당했다. 하지만 이들이 합류한 뒤에도 한국당 지지율은 좀처럼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남에 지역구를 둔 한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탈당한 의원들의 복당 후에도 당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워낙 지지율이 낮다 보니 당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빗나간 지지율 상승 호언

전문가들은 한국당이 전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책임지지 않은 것이 당 지지율의 정체를 불러올 뿐 아니라 여권의 ‘적폐청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대방의 지지율을 빼앗아와야지 지지율이 오를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한국당에 대해 실망한 유권자들이 적폐청산을 지지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정한울 전문위원)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 당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통합’과 ‘적폐청산’ 중 어느 쪽을 지지하냐는 질문에 8 대 5정도로 국민통합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적폐청산을 지지한다’는 답이 ‘그렇지 않다’에 비해 확연히 높게 나온다.

이와 관련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전화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 이유 중 ‘개혁·적폐청산’이라는 응답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갤럽의 1월 2주차 자료를 보면 문 대통령을 긍정평가하는 이유로 ‘개혁·적폐청산·개혁의지’라는 응답이 9%로 긍정평가 이유 중 네 번째로 높다. 반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부정평가의 이유로 ‘보복정치’(21%)를 가장 많이 꼽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적폐청산’으로, 그렇지 않은 쪽에서는 ‘보복정치’라고 보는 것이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상대방의 지지율을 빼앗아와야 한국당의 지지율이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부동산 폭등과 최저임금제 역풍 등 여당과 정부의 ‘정책 실패’가 잇따르는데도 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나와도 한국당으로 지지율이 넘어가지 않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가 ‘박근혜 기저 효과’입니다. 국민들은 보통 직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을 비교합니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전 대통령에 비해 그게 쇼든 연출이든 지금 대통령은 소탈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둘째는 보수 궤멸입니다. 정부가 못 한다면 야당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 보수가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지 않는 거죠. 가령 노무현 때는 이명박이라는 유력한 주자가 있었고, 이후에도 박근혜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 한국당엔 유력한 주자가 없습니다. 셋째는 현재 한국당이 정책 어젠다를 주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탈원전, 최저임금제 등 이슈와 어젠다를 이끄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현재 한국당 지지율이 낮은 데에는 ‘샤이보수’ 현상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층이 응답하지 않거나 지지층이 없다고 답하는 등 침묵을 지킨다는 설명이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당을 지지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밝히지 않는 유권자의 숫자가 상당하다고 봅니다. 50~60대 이상 지지층은 탄핵 때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정당이라고 지지 안 하고, 젊은 사람들은 당이 개혁해야 할 상황에서 1970~1980년대식 정치를 하는 홍준표 대표를 지지하는 것이 창피한 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보수에 충격을 준 건 탄핵 자체뿐 아니라 보수의 분열상을 낳았다는 점에서도 크다고 봐요. 탄핵 이전에는 적어도 보수층에서 30~40%의 지지율은 고정적으로 나왔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죠. 실망해서 떠난 분들이 다수라 보수 지지율이 안 나오는 겁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당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40대 이하 젊은 유권자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당 지지율은 세대별 차이가 뚜렷하다. 1월 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당은 60대 이상으로부터는 24%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50대에게는 13%, 30대와 40대에게는 각각 5%, 7%의 지지를 받았다. 지난 대선 때도 경남 전체에서는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이 문재인 후보를 앞섰지만 상대적으로 30~40대가 많은 김해·창원·거제 등에서는 문 후보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

지난 대선 이후 10% 초반대에 머물러 온 한국당 지지율이 잠깐 20%에 육박한 적이 있다. 지난 10월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8명의 의원이 복당하면서 한국당과 바른정당 간 통합이 가능하다는 설이 나올 때였다. 당시 리얼미터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18.9%를 찍었다. 당시 바른정당 의원들은 합당의 전제조건으로 친박 8인방, 특히 서청원·최경환 의원을 출당시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두 당의 합당이 무산되면서 한국당 지지율은 다시 10%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집권 초기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야당의 존재감이 약해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초기가 그렇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취임 후부터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전직 대통령들을 투옥하면서 지지율이 한때 90%를 넘었다. 당시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영국으로 떠나버렸다. 당시 민주당은 통일국민당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면서 김영삼 정권에서 사실상 유일한 야당으로 기능했지만 김대중 총재의 리더십 공백으로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다.

현재 아베의 자민당이 1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야당 실종’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일본은 야당이 7개 정당으로 갈라져 있다. 야당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면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지역구 공천이 절반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사학법인에 특혜를 줬다는 이른바 ‘가케학원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한때 지지율이 20%대까지 폭락하면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 야당은 지난해 10월 치러진 총선에서 자중지란이 벌어지면서 참패했다. 야권이 스스로 분열하고 경쟁하면서 반(反)아베 표가 흩어져 오히려 자민당을 도와준 셈이 된 것이다.

‘천막당사’의 교훈

견제세력이 없는 독주는 집권당에도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게 정치사의 교훈이다. 예컨대 위축된 야당으로 인해 이렇다 할 견제세력이 없었던 민주자유당(신한국당)은 김영삼 정권 말기 실책을 거듭하다 결국 외환위기를 겪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은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결국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은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정권을 내줘야 했다.

한국당의 지지율 위기는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 통합을 추진하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 시너지를 낼 경우 오히려 지지율이 더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할 경우 한국당의 지지율에 근접하거나 넘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5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두 당이 통합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지지율이 17%로 한국당 지지율(9%)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과거에도 보수정당이 위기에 처한 적은 종종 있었고, 비상한 각오로 위기 탈출에 성공한 적도 있었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분 2004년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를 내세우며 천막당사를 차렸다. 당시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은 유권자들을 향해 ‘반성’이라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보냈다. 반성에는 행동도 뒤따랐다. 당 연수원을 매각하고 그 대금을 국고로 환수조치했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지지율을 회복했고, 2006년 지방선거 승리에 이어 2007년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문제는 그때와 비교해 지금의 자유한국당에는 ‘반성’도 ‘행동’도 없다는 점이다. 당의 면모를 바꾸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보신주의에 젖어 있다가는 지방선거 이후 진짜 당이 소멸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정한울 전문위원의 말이다. “새로운 인물들로 지도부를 꾸리든 비대위를 구성하든 지금과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한국당의 위기 탈출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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