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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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63)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정치권에서 ‘총리급’ 인사로 통한다. 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 후보로 낙점됐으나 친노(親盧)진영의 반발로 후보지명이 무산된 바 있다. 2006년 7월에는 교육부총리로 임명됐지만 논문표절 의혹 등이 불거져 취임 13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당시 그는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공격을 받았다. 김 교수는 ‘2기 노무현 정부’로 불리는 문재인 정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오히려 친노 패권주의와 진보진영의 대안 부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최순실 사태의 와중인 2016년 11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박 대통령 또한 여야의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6일 만에 김 교수의 총리 지명을 사실상 철회했다.

최근 김 교수는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하며 다시 한 번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서울시장 후보로 김 교수만 한 카드가 없다”고도 했다.

국회의원이나 광역단체장 이력이 전무한 김 교수가 정치권에서 고평가받는 이유는 검증된 정책역량과 소신행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가 이번에는 총리급 자리인 서울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현역인 박원순 시장을 필두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장 후보들의 경쟁력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김 교수의 도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김 교수가 과거와 달리 강력한 권력의지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에 속단은 이르다. 지난 1월 10일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김 교수를 만나 정치 행보에 관한 속내를 들어봤다.

- 정치를 하려는 이유는 뭔가. “정말 제대로 된 위치에서, 세상을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이 한 몸 던져 역할을 하고 싶다.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건 아니다’고 말하고자 한다. 그 어떤 정치인도 언급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 울림은 클수록 좋기 때문에 마이크 또한 가급적 컸으면 한다.”

- 우리는 지금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 산업구조가 가진 문제, 잘못된 금융구조, 자본시장이 가진 문제 등이 겹겹이 쌓여 있다. 여기에 인력양성 및 연구개발(R&D) 체계도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글로벌 분업체계가 바뀌면서 한계에 봉착한 산업이 생겼고 이를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 경쟁력을 잃게 된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번 따져봐야 한다.”

-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긴가. “지난 8개월 동안 정부는 한 게 없다. 권력을 잡는 데 급급하다 보니 그 권력으로 무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 없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다가 혁신성장을 꺼냈고 공정성장까지 나왔다. 그걸 다 합쳐 놓으면 서로 모순이 생기고 부딪친다. 소득주도성장은 반드시 산업정책을 기반으로 해야 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산업전략이 보이질 않는다. 무엇을 구조조정하고 어떤 산업을 육성할지, 또 그걸 위해 금융은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구상이 없다. 자영업자가 전체의 30%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면 고용주인 자영업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이걸 한시적으로 국가예산으로 지원한다는데,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가 설명해야 한다.”

- 산업구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노조(노동조합)를 건드려야 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그들과 연합했겠지만 언제까지 눈치만 보고 근본적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노조와 자본의 눈치를 보며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 본인의 이념 성향은 보수인가. “나는 보수와 진보의 기준 적용을 거부한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모두 국가주도주의, 패권주의, 대중영합주의라는 모순을 갖고 있다. 나는 공동체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의 자율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시장과 공동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보충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그게 바로 복지와 안보다. 국내에서 복지모델로 스웨덴이나 핀란드를 자주 거론한다. 그러나 스웨덴의 경우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등 시장 자율이 확고한 국가다. 그 토대 위에서 복지가 공고해졌다. 시장은 성장과 변화와 혁신의 축이 되고, 국가는 분배와 균형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회가 내가 바라는 국가모델이다.”

김 교수는 부자증세를 통해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대중영합주의라고 비판했다. “스웨덴은 근로자 평균소득의 1.6배가 넘으면 57%의 소득세를 낸다. 덴마크는 평균소득의 1.2배가 넘으면 기업 오너와 마찬가지로 59%의 세금을 낸다. 그런데 우리는 세금 더 안 거두고 부자증세로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식이다. 그런 나라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그건 포퓰리즘이다.”

-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자주 거론한다. 촛불정신은 뭐라고 생각하나. “촛불이라는 것이 우리 역사의 전환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이었다. 박근혜 정부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겠으나 박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구조 내지 공장이 잘못됐다는 문제제기였다. 촛불은 잘못된 공장을 고치라는 거였는데, 거기서 생산된 박근혜라는 제품 하나 들어내는 걸로 이해한 것은 아닐까. 의사결정 체계를 바로잡고 합리적 결정이 집행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촛불의 명령이었다. 중요 정책의 의사결정이 좌충우돌하는 건 촛불정신에 어긋나는 거다.”

- 만약 개헌이 불발된다면 어떤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나. “시대 상황을 고려해 개헌하는 게 좋다. 그러나 개헌은 매우 어려운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 만일 개헌이 어렵다면 강제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헌법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분권형 개헌보다 책임총리제 강화가 쉽다. 국회 합의 또는 여당에서 총리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안 받을 수 없다. 어느 정부 실세 총리도 장관 임명제청을 못했는데, 이렇게 총리가 임명되면 책임총리 역할이 가능하다. 민주당이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한번 덤벼봐라. 그 정도 의지도 없으면서 무슨 정치를 하나. 지방분권 또한 행정조치로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 대통령의 판단을 돕는 청와대 참모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주인의식 있는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바싹 엎드린다. 눈치만 보고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참모는 직언이나 고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을 올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 자유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변화 가능성이 다른 정당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당내 위기의식도 강하고 친박 등 기존 계파도 무너졌다. 현 지도부는 지지세력으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지방선거를 거치며 추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나락으로 밀리면 개혁과 혁신의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정치의 복원력이라는 게 생각보다 강하다.”

- 보수는 무너졌다고 하는데, 진보의 미래는 어떤가. “보수는 무너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 망한 거다. 진보도 문제를 갖고 있지만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다. 진보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옳은 것’을 지속하기 위한 대안이 없다. 시민단체 또는 운동권 인사들이 집권세력이 되어 정의만을 외친다면 조만간 그 모순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올바른 얘기는 쉽지만 그걸 실행하고 지속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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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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