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예술단 파견 남북 실무접촉. ⓒphoto 뉴시스(통일부)
지난 1월 15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예술단 파견 남북 실무접촉. ⓒphoto 뉴시스(통일부)

평창 동계올림픽이 자칫하면 ‘평양 동계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단이 10여명인데도 대규모 응원단과 예술단까지 보내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를 말해주는 증거이다. 남북한이 가장 먼저 합의한 것이 140명의 북한 예술단이 서울·강릉에서 공연하는 방안이다. 올림픽이 국제스포츠 행사란 점을 볼 때 본말전도(本末顚倒)다. 북한에서 예술단은 김씨 왕조의 우상화와 체제 찬양의 전위대 역할을 해왔다. 또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한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도 북한의 정교한 노림수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을 통해 평화공세를 폄으로써 국제사회의 제재 포위망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또 한·미동맹을 이간질하고 핵 무력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 등을 통해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시키고 나아가 평화를 지향한다는 이미지를 한국 국민들과 각국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속셈도 갖고 있다.

북한은 이미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를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에 대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바란다”면서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강조한 것이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다 차려놓은 남의 잔칫상에 주인 행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개최국인 한국이 개회식에서 태극기도 들지 못하고 북한과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면 평창올림픽을 남북한이 공동개최하는 것으로 국제사회가 오해할 수 있다. 역대 올림픽에서 개최국이 자국 국기를 들지 않고 입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대화를 명분으로 북한의 의도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아리엘 코헨 연구원은 “김정은의 의도는 평창올림픽을 통해 서울 장악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북한은 국제적인 대북 비핵화 압박 공세의 가장 약한 고리를 한국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남북한 공동개최를 주장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일부 종목의 분산개최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자 북한은 23개 종목 중 8개 종목 경기를 평양에서 열겠다면서 ‘서울·평양 올림픽’이라는 공동개최 명칭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남북한이 네 차례에 걸쳐 회담을 통해 분산개최 여부를 논의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자 북한은 불참을 선언했다. 게다가 북한은 방해공작까지 벌였다. 1987년 11월 29일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이라크발 서울행 대한항공(KAL) 858기를 폭파시켜 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사망한 것이 대표 사례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해제한 기밀문서를 보면 북한은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이 기밀문서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1988년 봄부터 한국의 대학생 시위를 활용해 서울올림픽을 훼손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공산권 국가들에 서울올림픽에 불참하도록 적극적인 설득 노력을 펼쳤다는 것이다.

북한은 단일팀 구성과 공동입장 등도 정치적 목적이나 위장평화 공세로 활용해왔다. 북한의 애초 단일팀 구성 이유는 IOC에 가입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한국은 194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만들어 IOC에 가입했다. 북한은 1950년대 IOC 가입을 시도했지만 ‘1국가 1올림픽위원회(NOC)’라는 원칙에 따라 실패했다. 그러다 IOC는 1957년 총회에서 북한올림픽위원회(NOC)를 잠정 인정하면서 올림픽 참가는 KOC의 동의를 얻어 남북 단일팀으로만 가능하다고 결정했다.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한은 단일팀 구성을 위해 세 차례 회담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IOC는 결국 북한의 별도 참가를 허용했지만, 북한은 ‘North Korea’라는 호칭을 문제 삼아 도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했다가 철수시켰다. 이후에도 북한은 호칭 문제를 물고 늘어져 1968년 IOC 총회에서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는 호칭을 1972년 뮌헨 하계올림픽부터 사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얻어냈다. 하지만 북한은 1968년 멕시코시티 하계올림픽부터 사용해야 한다면서 쿠바에 대기하고 있던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남북한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같은해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각종 대회에서 남북한이 한 팀으로 참가했지만 올림픽에서 단일팀을 구성한 적은 없다.

동독도 서독과의 단일팀 출전을 조건으로 IOC에 임시 가입이 승인되었기 때문에 IOC 가입을 위해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다. 반면 서독은 동독과의 교류와 협력 및 통일을 염두에 두고 단일팀 구성 협상에 응했다. 동서독은 ‘독일연합(United Team of Germany)’이라는 이름으로 1956년 동계올림픽부터 1964년 하계올림픽까지 총 4회에 걸쳐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동서독이 단일팀 구성에서 남북한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수백 차례의 회의와 선발전을 거치는 등 철저하게 사전조율을 했다는 것이다. 동독은 1966년 IOC 가입 등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자 서독과의 단일팀 구성 합의를 깨뜨렸다. 이후 올림픽에 별개의 팀으로 참가한 동독은 서독보다 사회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동독은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 이후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까지 서독의 3배에 달하는 19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동서독은 1950년대에는 스포츠 교류를 활발하게 했지만, 동독이 1961년 베를린장벽을 설치하면서 단일팀을 위한 올림픽 선발전을 제외한 나머지 스포츠 교류는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올림픽 단일팀이 동서독 간의 통일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의 스포츠단지가 내전 희생자들의 묘지로 변한 모습. ⓒphoto 위키피디아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의 스포츠단지가 내전 희생자들의 묘지로 변한 모습. ⓒphoto 위키피디아

토리노올림픽 후 첫 核실험

북한이 주장해온 공동입장도 ‘남북한은 하나’라는 평화 공세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한은 2000년 호주 시드니 하계올림픽, 2004년 그리스 아테네 하계올림픽,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등에서 공동입장했다. 남북한의 첫 공동입장이 성사된 시드니올림픽의 경우 석 달 전 열린 남북정상회담(6월 15일 김대중·김정일)에 따른 북한의 이중 플레이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당시 북한은 비밀리에 핵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지만 이를 숨기고 남북 정상회담과 시드니올림픽 공동입장이라는 평화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4일 모스크바 국제 에너지포럼에서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17년 전에 알고 있었다”고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7월 일본 오키나와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로부터 핵폭탄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2001년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으로부터 고농축우라늄(HEU)을 개발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화해와 평화를 약속한 6·15공동선언이 무용지물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 가장 활발하게 스포츠 교류를 했다. 남북한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올림픽을 비롯해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아홉 차례나 공동입장을 했다. 그런데 동계올림픽으로선 첫 남북한 공동입장이 성사됐던 토리노올림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한 선수단 56명(남 44명·북 12명)은 함께 행진하면서 평화를 염원하는 국제사회의 기대에 화답하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은 토리노올림픽 이후 5개월 만인 2006년 7월 5일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를 시험 발사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분노했고,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 169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은 또 같은해 10월 9일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경악했고,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물자와 금융거래, 사치품 반입을 금지하는 대북 제재 1718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후 북한은 지금까지 모두 6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고 수소폭탄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림픽은 흔히들 ‘평화의 제전’이라고 불린다.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1896년 중단됐던 올림픽을 새롭게 시작한 의도도 각국의 청년들이 스포츠를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IOC가 제정한 올림픽 헌장 제1조도 올림픽의 목적은 인류 평화의 유지와 인류애에 공헌하는 데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원전 776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고대 올림픽에서도 ‘에케히리아(Ekecheiria)’라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스어로 ‘무기를 내려놓다’란 뜻인 에케히리아는 올림픽 휴전을 말한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선 아테네,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들 간 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져 참가하는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도시국가들은 올림픽 행사를 전후해 3개월간 싸움을 중지하기로 했다. 에케히리아의 전통은 1993년 유엔 회원국들이 총회에서 올림픽 기간 휴전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부활했다. 이 결의는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부터 적용됐다. 이후 올림픽 개최국은 하계와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해에 유엔에 휴전 결의안을 제출하고, 유엔 회원국들은 총회를 열어 결의안을 의결한다. 올림픽 휴전 결의는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이 북한 군장성들에게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시하고 있는 모습. ⓒphoto KCNA
김정은이 북한 군장성들에게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시하고 있는 모습. ⓒphoto KCNA

평창은 ‘꽃놀이패’

하지만 올림픽이 반드시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올림픽이 부활한 이후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올림픽이 평화를 가져다주지도 않았고, 올림픽 기간에 휴전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1916년 올림픽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다. 독일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개최했지만 당시 정권을 잡은 아돌프 히틀러는 올림픽을 나치의 국제무대 등장과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정치 선전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나치 독일은 베를린올림픽을 개최하고 3년 후인 1939년 폴란드를 침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1940년 일본 도쿄와 1944년 영국 런던으로 예정됐던 올림픽은 열리지 못했다. 1980년 옛 소련 모스크바올림픽은 반쪽 대회가 됐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에 항의해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 14개국은 4년 후인 1984년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불참했다. 올림픽 휴전이라는 유엔 총회 결의가 적용된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의 경우도 개막식이 열린 그해 2월 13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의 대규모 폭격으로 민간인 6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2008년 중국 베이징 하계올림픽의 경우 개막식이 열린 그해 8월 8일 옛 소련에서 독립한 그루지야(현 조지아)는 친러시아계 남오세티야를 공격했고, 이에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기간에 시리아에선 내전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올림픽은 전쟁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어도 막지는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올림픽 기간의 일시적인 휴전도 올림픽 이후의 평화를 담보할 수는 없었다. 특히 분단국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올림픽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면 이보다 바람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분단국들이 올림픽에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개회식에 같은 국기를 들고 공동입장할 경우 분단국 국민들은 평화와 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분단국 국민들은 저마다 이런 기대를 하게 된다. 분단국 언론매체들이 단일팀과 공동입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국민들의 바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팀 구성이나 공동입장 등이 평화와 통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남북한 선수단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수차례 공동입장했지만, 이후 북한이 변화의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내세워 핵과 남북관계를 분리한 정교한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남북 대화에서 비핵화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미 ‘평창 이후’를 내다보며 전략을 짜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북한은 3월 25일 올림픽 휴전이 끝나면 우주개발을 명분으로 인공위성용 로켓을 발사하는 등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또 남북 경제협력 등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화해 제스처를 보일 수도 있다.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이 김정은과 북한에는 ‘꽃놀이패’인 셈이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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