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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4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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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인터뷰] 블랙리스트 파문에 입 연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

“비대화된 법원행정처가 적폐 사람보다는 구조 바꿔야”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월 30일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대륙아주 사무실에서 이시윤(83) 전 헌법재판관을 만났다. 이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있는 이시윤 전 재판관은 1962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해 춘천지방법원장, 수원지방법원장을 거쳐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4년간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법조계의 대표적 원로로 평가받는 그는 이날 기자와 만나 최근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된 대법원과 비대해진 법원행정처가 근본적인 문제이므로 사람보다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 최근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을 어떻게 보나. 1차 진상조사위, 2차 추가조사위의 조사가 끝났는데도 다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너무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삼심(三審) 재판도 아닌데. 무엇보다 블랙리스트 조사 절차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 어떤 문제인가. “법관은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는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게끔 헌법에 규정돼 있다. 블랙리스트 조사를 한다면서 뒤진 법관들의 컴퓨터가 비록 법원이라는 공기관 소속이기는 하지만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있다. 컴퓨터에 담긴 내용이 사적인 영역의 것들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공(公)과 사(私)가 혼동될 수 있는 것이다. 좀더 신중한 조사가 아쉬웠다.”
   
   작년 2월 ‘판사 뒷조사 파일 얘기를 들었다’는 내부 폭로에 의해 시작된 블랙리스트 파문은 사안이 불거진 지 거의 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실체가 없다’는 1차 조사 결과에 대해 일부 판사들이 반발하면서 작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의 뒤를 이은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이 추가조사를 지시했지만 2차 추가조사에서도 블랙리스트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추가조사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부 판사들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해 문서로 남겼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판결을 놓고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가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는 2012년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판결이 1심 무죄, 2심 유죄로 나온 상황에서 당시 박근혜 청와대 측이 상고심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기기를 희망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원칙적으로 대법원에 넘어온 사건들은 대법관 4인으로 이뤄진 소부가 판결하지만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등 특별한 경우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들로 구성되는 전원합의체로 넘겨진다. 당시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상고심은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이 이뤄졌는데 항소심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추가조사위가 발견한 이 같은 문건들이 파문을 일으키자 지난 1월 24일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권한 없이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따라 분류하거나 재판이 재판 외의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대한 추가조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원세훈 전 원장 상고심에 참가했던 13명의 대법관들은 당시 청와대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반박 성명을 냈다.
   
   - 원세훈 전 원장 상고심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소위 군사정권 시절 판사를 했는데 그때도 행정권이 재판에 깊이 관여했는지 잘 모르겠다. 더욱이 지금은 투명한 사회다. 대법원장까지 합하면 대법관이 13명인데 압력을 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판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판사들이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거 사례를 들어 강조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해(公害) 관련 사건이 대법원까지 넘어온 적이 있었다. 당시 2심 재판부가 공해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판사들의 의식구조가 너무 한가하다’며 우려했었다. ‘보릿고개를 이제 간신히 넘고 있는데 연기 좀 마신다고 문제 삼으면 조국 근대화 과제는 어디로 가느냐’는 비판이었다. 대통령의 이런 입장이 대법원까지 전달됐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대법원은 공해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공해 사건에 대해서는 엄격한 증명 없이 개연성만 입증해도 공해 관련 손해 발생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내가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내고 있었는데 판결의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이번 원세훈 전 원장 사건이 구(舊)정권에 대한 억압용인지 적폐청산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사건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그런 과거 사례를 보면 우리 판사들은 정권이 누른다고 하더라도 소신대로 판결하는 전통이 있다. 원세훈 전 원장 재판에 권력의 압력이 있었을 것 같지 않지만 설령 압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판사들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을 것이다.”
   
   그는 “판사들은 최악의 경우 자리를 내놓더라도 변호사 개업을 하면 사정이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유약하지 않다”고도 했다.
   
   - 법원행정처가 판사들 동향 파악을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사법부의 민주화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 대법원장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진다. 우리 대법원장은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자리다. 대법원장이 모든 것을 다 살핀다. 이런 대법원장은 세계에 없다.”
   
   -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이 판사들 뒷조사의 배경이라는 말인가. “내가 감사원장을 해봐서 아는데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은 당연히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이 세다 보니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비서실의 뜻을 받들어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나도 감사원장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 많이 시달렸는데 속이 터지는 노릇이었다. 마찬가지로 대법원장의 권한이 막강하니까 대법원장 산하의 법원행정처도 막강해진다. 법원행정처가 전국의 모든 법원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내가 춘천지방법원장, 수원지방법원장을 할 때도 행정처 처장, 차장과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통화했다. 그만큼 전국 법원을 철저히 컨트롤하려고 한다. 그게 문제의 씨앗이다. 양질의 재판을 하는 것이 판사의 본질적 사명인데 행정기구가 커지다 보니 쓸데없이 판사들 동향이나 파악하고 보수니 진보니 나누는 것이다.”
   
   - 외국은 법원 행정조직이 우리처럼 크지 않나. “내가 1980년대에 아시아재단의 원조를 받아 미국 연방대법원에 견학을 갔었는데 그때 우리처럼 법원행정처가 있는 줄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에는 법원행정처 같은 조직이 아예 없었다. 우리처럼 대법원이 하급법원을 장악하지 않기 때문에 대법원은 대법원에 필요한 사무조직만 갖고 있었다. 직원 몇 명이 전부인 규모다. 당시 연방순회항소법원장을 예방했었는데 그 양반이 미국에서는 고등법원이고 지방법원이고 각자 자율적인 행정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무척 강조했다. 법원들이 중앙의 행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수평적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판사들의 승진이라는 개념도 없다. 한 법원에서 다른 법원으로 옮겨가려면 사표를 내고 새로 임명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 판사들의 관료화 우려도 없고 판사들의 동향 파악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 법원 행정권이 분산돼 있는 게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 아닌가.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연방대법원의 행정권은 연방법무성에,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행정권은 주법무성이 갖고 있다. 법원에 인사권, 행정권이 일절 없다. 법원은 재판만 잘하라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예외적으로 자체 행정조직을 갖고 있지만 헌법재판소 판사가 16명에 불과하고 자체 행정권만 있지 다른 법원을 컨트롤하는 조직도 아니다. 우리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이 혼자서 인사권을 행사하는데 이 부분은 일본과도 다르다. 우리는 대법원장 개인의 이름으로 인사 제청을 하지만 일본은 최고재판소 이름으로 인사 제청을 한다. 인사권, 행정권을 최고재판소 재판관들이 합의제로 행사하고 있다. 우리가 대법원장 독재 시스템이라면 일본은 집단지도 체제인 셈이다. 우리는 대법원이 호적이나 가족관계, 등기관계, 공탁관계 같은 업무들도 다 껴안고 있지만 일본은 이런 업무들은 행정부 소관이다. 우리처럼 업무와 권한이 비대한 대법원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 우리의 법원행정처가 비대해진 이유가 뭔가. “사법정책의 입법화에 법원이 관여하면서 커졌다고 본다. 법원행정처에 정책심의실이 생기는 등 정책을 다루는 기구들이 많아졌다. 요즘 보면 대법원이 법무부를 거치지 않고도 의원 입법 형태로 사법 관계 법령을 만든다. 국회의원들이야 정치적 쟁점 법안이나 관심이 있지 골치 아픈 사법 관계 법령은 대법원이 하자는 대로 다 들어준다. 하지만 입법권은 어디까지나 입법부에 있어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법안에 대해 정작 법무부는 반대했는데 이것도 대통령 법률 제안권을 활용해 시스템대로 추진했으면 법무부가 반대했겠는가. 법원의 사정은 법원이 제일 잘 알기는 하지만 간접적으로 제안하는 정도에 그쳐야지 법원 스스로 입법 주체가 돼선 안 된다고 본다. 일본도 법무성이 입법센터 역할을 한다. 우리 대법원도 정책 입법 업무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7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한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을 6개월 만에 해임하고 자기 사람으로 알려진 안철상 판사를 임명해 이른바 ‘코드인사’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과거 내가 이영섭 대법원장 밑에서 재판연구관을 지냈는데 그분이 군사정권에 의해 대법원장직에서 밀려나면서 ‘오욕과 회한의 나날을 보내며’라는 고별사를 한 적이 있다. 가장 큰 후회가 법원행정처장을 자기 사람으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장이 자기랑 손발이 맞는 사람을 행정처장으로 쓰는 것은 사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는 지금 더 큰 과제가 있다고 본다.”
   
   - 더 큰 과제라니? “편가르기를 하고 사람만 바꿀 게 아니라 법원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비대해진 법원행정처를 줄이고 대법원의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 법원 조직을 바꾸는 것은 입법 사안이다. 법원 조직법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런 개혁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법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 판사들 사이에서는 법원행정처 근무가 출세 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도 문제다. 실제 법원행정처가 막강하다 보니 가장 똑똑한 판사들을 갖다 쓴다. 가장 똑똑한 판사들이 재판을 해야 하는데 행정업무를 보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승진에 우선권을 갖는 것도 문제다. 자리가 한정된 고법 부장판사 자리에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대법원장과 행정처장의 지원하에 1순위로 간다. 고법 부장판사 자리는 과거 차관급과 1급, 두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두 차관급으로 승격됐다. 그러다 보니 일반 판사하고 고법 부장하고는 지위가 하늘과 땅 차이다.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 못 한 판사들은 화가 나고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금 우리는 가진 자, 엘리트에 대한 저항심, 반항심이 큰 시대를 살고 있다. 판사들이 인터넷에 육두문자를 올리는 데는 이런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영향도 있다고 본다. 또 판사들의 업무 과부하도 내부 갈등을 일으키고 판사들을 신경과민적으로 몰고 간다고 본다.”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 자리를 없애고 일반 판사와 대법관으로 조직을 이원화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잘 한 일이고 고무적인 착상”이라고 평가했다.
   
   - 판사들의 업무 과부하가 그렇게 심한가. “서울 중앙지법 판사들이 일인당 연간 처리하는 건수가 1000건 정도다. 그런데 독일은 사건 건수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가압류, 가처분 사건이 우리의 15분의 1 내지 2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법관 수는 독일이 2만1000명 정도인데 우리는 3000명에 불과하다. 외국에 비해 상대적인 업무과중은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법원장 빼고 12명의 대법관이 연간 4만3000건을 처리하는데 독일은 연방민형사대법원에서 128명의 판사가 연간 8000건을 처리한다. 양질의 재판이 나오기 힘들고 판사들이 예민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판사들의 업무 과부하를 줄여주는 것이 진짜 시급한 사법 과제다.”
   
   - 배보윤 전 헌재 공보관이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가 너무 부실하다고 지적했는데 동의하나. “내가 소송법을 전문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관심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 방청을 많이 했다. 배보윤 전 공보관의 지적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일종의 최고위 공무원에 대한 징계 절차다. 그런 중대한 사안에 대한 의결을 하는데 본인에게 당연히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했어야 했다. 국회에 직접 나오든지, 아니면 서면으로 하든지 그런 기회를 주는 게 적법 절차에 부합했다고 본다. 이 중요한 심판을 리드할 사람이 없이 소장 공백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한 것도 절차상 하자라고 본다.”
   
   -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 체제가 문제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180일 이내에 탄핵재판을 끝내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찌됐든 소장을 임명했어야 했다. 나중에 국회에서 헌재소장 인사청문, 동의 절차를 거치면서 난투극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긴급한 상황이었으니까 공석이었던 헌재 소장 후임자를 임명했어야 했다.”
   
   - 헌재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한민국의 변화’라는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촛불집회의 헌법적 완결체’라고 표현해 논란이 빚어졌는데. “판사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이지 여론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촛불집회의 헌법적 완결체’라고 표현하면 마치 재판관들이 여론재판을 했다는 듯이 들린다. 그건 본인들도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 우리법학회, 국제인권법학회 등 판사들의 연구모임이 판사들을 편가르기하고 이념화를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우리는 유달리 연(緣)을 좋아하고 끼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짙다. 그건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판사 시절 나도 민사판례연구회라는 판사들 연구모임에 속했었는데 그게 특정 학맥 중심이 돼버려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과거 일본에도 ‘청법회’라는 좌경 판사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나는 법관들의 사명이 중립과 독립이라고 본다. 법관들은 이념적으로 중립성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 지금처럼 사법부가 내홍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사법 불신도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걱정이지만 우리 판사들이 그렇게 막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전관예우 등 정실재판에 대한 책임은 국민들도 나눠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국민들도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일반인들도 재판을 받을 일이 생기면 모두 전관을 찾아가지 않나. 웬만한 회사들은 다 한두 권씩 갖고 있는 ‘한국법조인대관’이라는 두툼한 책자를 ‘브로커 명단’이라고까지 한다. 그 책을 뒤지면서 검사, 판사들 인맥과 족보를 파악해서 청탁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법관이 정실에 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국민들도 정실재판이 되지 않도록 협력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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