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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8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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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물] 정의용 존재감이 다시 살아나기까지

김진명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 지난 3월 8일 미국으로 출국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photo 연합
지난 3월 5~6일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 대북특별사절단의 평양 방문은 수석특사인 정의용(72)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있어 대외적 존재감을 다지는 기회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정 실장과 두 손을 맞잡고 대화하는 사진과 영상이 전 세계에 전달됐다. 지난 3월 5일 저녁 북한 노동당 본관에서 열린 만찬장에서도 김정은의 왼편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6일 저녁 서울로 돌아온 뒤의 결과 발표도, 7일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오찬회동에서의 설명도 정 실장 몫이었다. 미국에 가서 미·북 대화를 설득하는 임무도 그에게 주어졌다.
   
   문 대통령 취임 후 10개월이 흐르는 동안, 정 실장이 이 정도로 큰 주목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문 대통령 주변 다른 인사들의 그늘에 가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외교·안보 부서 공무원들은 물론 주한 외교사절단들조차 정 실장보다는 임종석(52) 비서실장의 영향력과 문정인(67)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존재감에 더 신경을 썼다. 주한 외교관 A씨는 “그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 정책을 보면서 외교관 출신인 정 실장의 생각보다는 정치인 출신인 임 실장이나 ‘원로 멘토 그룹’인 문 특보 주변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본격화된 남북 대화 분위기 속에서도 ‘주역’은 정 실장이 아니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직접 상대한 서훈(64) 국가정보원장이었다.
   
   
   “안착까지 말 못 할 우여곡절 많았다”
   
   정 실장이 처음부터 별 주목을 못 받았던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캠프 외교자문단 ‘국민아그레망’의 단장이었던 그는 문 대통령 당선 후 한동안 ‘문재인의 핵심 외교 참모’ ‘외교 키맨(Keyman)’으로 집중적 관심을 받았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아베 일본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잇따라 통화할 때 곁에 배석한 사람이 그였다. 청와대 조직이 미처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이란 임시 직함으로 불리면서도 정 실장은 보좌에 충실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열하루 만에 그를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했다.
   
   청와대 주변과 외교가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 실장의 입지에 기복(起復)과 부침(浮沈)이 생긴 것은 오히려 안보실장이 된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 진용이 갖춰지고 외교·안보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한·미 동맹을 잘 관리해야 하는 정 실장과 남북 대화를 우선하는 다른 그룹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니어 외교관 B씨는 “문재인 정부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586 운동권 혹은 학계 출신 참모들에게는 ‘외교부는 친미(親美)’란 식의 깊은 불신이 있다”며 “외교·안보 정책에 이들이 개입하면서 정 실장이 안착하기까지 말 못 할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미·북 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사드 잔여 발사대 배치가 결정된 지난해 8~9월쯤엔 이런 갈등이 조금씩 청와대 담장 밖으로 새어나왔다. “청와대 외곽그룹에서 정 실장의 정책을 문제 삼고 있어 정 실장의 처신이 여의치 않다”는 식의 소문도 들렸다. 지난해 8월 외교·통일부 핵심정책 비공개 토의에서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미·중 2강에 의존하던 기존 외교 관성대로만 하지 말고 창의적인 외교가 되도록 발상을 전환하라”고 지시했었다. 이를 두고 청와대 주변에서는 ‘남북관계 복원이 늦어지고 사드 배치는 앞당겨지는 것에 불만을 품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출신의 인사들이 문제의 원인으로 외교부 출신들이 포진한 국가안보실과 정 실장을 지목했고, 지지층의 불만을 아는 문 대통령이 정 실장을 질타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었다. 당시 청와대 분위기를 잘 아는 C씨는 “일각에서 ‘한반도 정세가 험악하면 독자적으로 대북 특사도 보내고 해야 하는데 안보실이 미국에만 너무 치우쳐 있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안보실이 ‘제2의 외교부’ ‘외교부 문서수발실’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파워게임에서 다소 어려운 처지에 있던 정 실장이 자기 자리를 굳히고 이번에 ‘수석특사’로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래도 결국 미국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외교관 E씨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수시로 통화할 수 있다는 점이 정 실장의 힘”며 “이번에 수석특사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미국통’이라서 아니냐”고 말했다. 정 실장이 수석특사가 된 이유에 대해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해석들이 나온다. 서훈 원장을 대북특사단 대표로 정하기에는 “대공 방첩 업무를 해야 할 정보기관장이 왜 직접 북한과 협상에 나서냐”는 야당의 비판이 신경 쓰여서라는 설명도 있고, 서 원장이 서울고 선배인 정 실장을 예우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미·북 대화를 중재해야 하는 청와대가 정 실장을 선택한 배경에는 역시 미국에 대한 의식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맥매스터와 수시 통화하는 것이 힘”
   
   재미있는 점은 청와대에서 정 실장은 ‘미국통’이자 ‘외교관 그룹’으로 분류되지만 외교부에서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후배가 많다는 사실이다. 정 실장은 서울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외무고시 5회를 거쳐 1971년 외무부에 입부했다. 현재 외교부 고위간부인 임성남 1차관과 조현 2차관이 각각 외시 14회(1980년 입부)와 13회(1979년 입부) 출신인 점을 생각해 보면, 그보다 후배인 현직 외교관들과 정 실장 사이에는 엄청난 기수 차이가 있다. 또 정 실장은 2003년 말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직을 마치면서 외교부를 떠나,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를 받으며 17대 국회의원이 됐다. 정계로 간 지 이미 14년째이기 때문에 지금 외교부에는 그와 함께 일해본 직원이 그리 많지 않다. 실무급 외교관 F씨는 “정 실장이 맥매스터 보좌관과 수시로 통화한다고 해서 그 내용을 전부 외교부에 공유해주는 것 같지도 않다”며 “큰 유대감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외교관 시절 정 실장은 통상정책과장, 통상국장, 통상교섭조정관 등의 자리를 거치며 경제통상과 다자(多者)외교 전문가로 인식됐다. 외교부 주류인 정무(政務)·양자외교 파트에서 보면 북미국 출신의 ‘적자(嫡子) 미국통’은 아니다. 간부 외교관 G씨는 “정 실장이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과 경제공사를 지내긴 했지만 외교부 기준으로는 ‘미국통’보다 ‘통상통’에 속한다”며 “처음 안보실장이 되셨을 때는 ‘양자외교를 잘 모른다’고 험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실장의 현직 외교관 시절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만만치 않은 전략가”라고 평가한다. 정 실장의 젊은 시절을 아는 H씨는 “통상 쪽으로 빠지면서 본인은 비주류라고 느꼈을 수도 있지만 머리가 탁월하고 인맥도 좋은 외교관이었다”며 “지금도 맥매스터 보좌관 외에 미국 정보당국과도 직접 선이 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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