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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9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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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아베 vs 아사히 13년 전쟁

이홍천  도쿄도시대학 부교수 

▲ 사학재단 특혜 의혹 관련 문서 조작 파문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아베 총리가 지난 3월 12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오후 5시. ‘국유지를 헐값에 모리토모학원에 매각했다는 내용을 담은 결재 서류가 위조됐다’는 의혹을 조사한 결과가 국회에 제출된 지 5시간 후, 일본 총리관저 1층 홀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 아베 신조 총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행정부 전체의 신뢰를 뒤흔들 수 있는 사태로 행정부의 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국민들에게 깊이 사죄한다.…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전모를 해명하기 위해서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발언을 마친 아베 총리는 입술을 악물며 카메라를 향해서 머리를 숙였다.
   
   아베 총리의 머리를 숙이게 만든 것은 1년 전 터져나온 아사히신문 특종보도다. 아사히신문은 2017년 2월 9일자에 ‘(매각) 금액 비공개, 지역 땅값의 10% 선, 오사카 국유지 학교법인에 매각’ 제하의 보도를 통해서 시가 14억2300만엔짜리 토지가 10분의 1 수준도 되지 않는 1억3400만엔의 헐값에 모리토모학원에 팔렸고 여기에 아베 총리가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나중에 ‘아키에(아베 부인 이름) 스캔들’로 불리는 ‘모리토모 스캔들’의 시작이었다.
   
   아사히신문의 보도를 계기로 각 언론사들도 앞다퉈 아키에 스캔들을 취재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후지산케이그룹 소속 후지TV의 특종이다. 후지TV는 2017년 8월 1일 재무성 담당자와 가고이케 학원 이사장 사이에서 오고간 토지 구입 가격 교섭 음성 테이프를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했다. 그때까지 사가와 재무성 이재국장은 모리토모학원 측과 가격 교섭은 없었다고 국회에서 일관되게 부인해왔었다. 보도에 따르면 가격교섭이 있은 직후 긴키현 재무국은 당초 매각대금에서 8억2000만엔을 뺀 1억3400만엔을 제시했고 3주 후에는 매각 계약을 맺었다.
   
   눈덩이처럼 커진 모리토모 스캔들 전개 과정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아베 총리와 아사히신문과의 갈등이다. 아사히신문이 2017년 스캔들 의혹을 최초 보도한 이후 타사의 특종 보도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유독 아사히신문에만 각을 세웠다. 국회 답변을 통해서 아사히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사히의 보도를 비난하는 국회의원의 페이스북을 공유하기도 했다. ‘아사히 vs 아베’의 악연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 문서 조작 의혹을 특종 보도한 3월 2일자 아사히신문.

   2005년 ‘여성 국제전범법정’ 기사가 시작
   
   이들의 악연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아사히신문은 2001년에 NHK가 방송한 ‘일본군 성노예제를 심판하는 여성 국제전범법정’을 다룬 프로그램이 당시 내각 관방부 장관이었던 아베 총리와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중의원 의원의 압력으로 내용이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방송 직전 프로그램 내용을 바꾸도록 NHK에 정치적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당시 아베 총리는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이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한편 아사히신문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 건을 계기로 자민당은 아사히신문에 대한 광고 게재를 중지했다. 결국 아사히신문은 같은해 9월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인했지만, 일본 언론계는 대체적으로 아베 총리가 압력을 가한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을 방증하는 자료도 있었다. 당시 한 시민단체와 NHK와의 소송에서 재판장은 NHK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판결문에 정치적 압력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재판장은 “제작 방침을 벗어나서 국회의원의 발언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그 의도를 살펴서 별볼일 없는 프로그램으로 바꿔버렸다”고 지적하면서 판결문 요지에 “아베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지론을 전개한 후, NHK가 추구하는 공정중립한 입장에서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고 적었다. 당시 아사히신문이 취재한 NHK방송총국장의 증언이 흥미롭다. “아베 선생은 머리가 꽤 좋다. 추상적인 말투로 사람을 몰아세우는 (중략) ‘추측해봐! 이놈아’와 같은 말투를 사용한 부분이 있다.” ‘추측해봐’라는 말투는 ‘공갈형’ 손타쿠(村度·사전에는 없지만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다’란 뜻의 신조어)라고 볼 수 있다.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아베 총리와 아사히신문과의 대립은 모리토모 스캔들 보도에서 계속 이어졌다. 특히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 명칭을 둘러싸고 격하게 대립했다. 아사히신문은 2017년 5월 9일자에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라는 교명이 들어 있는 학교 설립 취지서를 2013년 재무성에 제출했다는 내용을 가고이케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의 증언을 인용해서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1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사히신문의 보도를 ‘오보’라고 지적하면서 “완전히 틀렸는데도 정정하지 않고 있다. (설립취지서) 원본을 찾아서 사실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절차도 밟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실제 2017년 10월 2일 고베대학 교수 등이 오사카 지법에 설립취지문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재무성은 11월 24일 설립취지문을 공개했는데 공개된 설립취지문에 따르면 신청된 교명은 ‘가이세소학교’였다. 아베 총리는 올해 1월 29일 예산위원회에서 “공개된 설립취지서의 문장이 검게 칠해졌다고 해도 글자의 길이가 다르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아사히가 보도를 멈추지 않은 것은 의혹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베 총리가 공개적으로 아사히신문을 비판한 것은 한두 차례가 아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3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아사히신문이 아베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서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 명칭을 사실인 양 보도했다며 정정보도를 요구했고 2월 13일 열린 같은 위원회에서는 아사히신문의 오보들을 열거하면서 아사히신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신조 총리 아사히신문 오보 열거하면서 비판’이라는 제목의 산케이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아사히신문의 카메라 기자가 오키나와의 산호초를 훼손해 놓고 이를 자연환경 파괴 사례로 보도한 사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요시다 조서를 둘러싼 보도, 위안부 강제연행을 증언한 요시다 세이지의 위증을 보도한 것 등을 아사히의 오보로 들었다. 특히 위안부 보도에 대해서는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고 비난했다. 물론 이 중 요시다 세이지의 강제연행 증언은 아사히만 오보를 낸 것이 아니다. 산케이·요미우리·마이니치도 요시다의 증언을 소개했다. 아사히가 오보를 했다고 비난하는 산케이도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피해 증언이 없었다고 해서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산케이도 기사에서 요시다가 증언자로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까지 쓴 바 있다.
   
   아베 총리의 아사히 비난은 국회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와다 마사무네(和田政宗) 참의원 의원이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 명칭 보도 경위를 게재한 아사히신문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비판하자 ‘불쌍하네요, 아사히신문다운 군색한 변명. 예상했던 대로입니다’라는 코멘트를 실명으로 게재했다. 와다 의원은 ‘사죄하지 않는 아사히신문. 가고이케의 증언에만 매달려서 보도. 기사는 보도 경위를 정리하고 있지만 가고이케가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한 설립취지서의 복사본을 기자가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음. (중략) 해야 하는 취재는 하지 않고 가고이케의 증언에만 매달려 기사화하고, 결국 오보를 냈지만 사죄는 전혀 없음’이라고 적었다.
   
   
▲ 지난 3월 12일 후지TV에서 문서 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뉴스를 보도 중이다.

   아베 “내가 아사히를 이겼다”
   
   아사히신문에 대한 아베 총리의 적대감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16년 11월 뉴욕의 트럼프타워에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당시 아베 총리는 트럼프와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제를 돌렸다. “실은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공통점이 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에 철저하게 뭇매를 맞았다. 나도 뉴욕타임스와 제휴하고 있는 아사히신문에 몰매를 맞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겼다.”
   
   아베 총리의 말을 듣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겼다.”
   
   아사히신문을 이겼다고 자만하던 아베 총리가 올해 5월에 열릴 북·미회담을 총리로서 지켜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는 지난 3월 2일자로 보도된 아사히신문의 특종보도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사히는 재무성이 국회에 제출한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 관련 서류가 원본이 아니고 위조된 것이며, 이들 문서는 헐값 매각 의혹이 제기된 이후 위조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의 퇴진은 물론이고 일본 정치권을 뒤흔들 정도의 허리케인급 특종이다. 아사히의 특종이 너무 충격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는지 다음날 타사의 추가 보도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마이니치신문만 1면 3단으로 아사히 보도를 인용해서 기사를 게재했을 뿐이다.
   
   재무성의 문서 위조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부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다무라 노리히키(田村憲久) 자민당 정조회장 대리는 “만약에 문서 위조가 사실이라면 내각의 위기”라고 사태를 심각하게 해석했다.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자민당 이시하라파 회장은 “지금 국회의 시계는 상당히 불량하다”며 “문서가 존재한다면 이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여야 관계없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은 “문서의 위조가 있었다면 이는 언어도단이다. 용서할 수 없는 문제다”라고 했다.
   
   지난 3월 12일 재무성이 제출한 조사 결과는 3월 2일자 아사히 보도의 충격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재무성은 총 14개 문서에서 위조가 발견되었다며 약 80쪽 분량의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약 300건 정도의 위조가 있었는데, 아베 총리와 아키에 부인을 비롯해서 정치가의 이름을 삭제하는 한편 모리토모학원 측과의 교섭 기록이 전부 삭제됐다는 것이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결재가 끝난 문서가 위조되었다는 점이다. 재무성이 제출한 문서를 보면 위조를 가한 문서는 보존기간이 30년으로 가장 중요한 문서로 규정돼 있다. 해당 문서에는 12명의 담당자와 간부들의 도장이나 사인이 들어 있다. 그만큼 중요한 문서인데도 불구하고 위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위조가 이뤄지지 않은 결재 문서 원본에는 모리토모 국유지 헐값 매각을 ‘특수한 경우’나 ‘본건의 특수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가격 교섭을 했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국회에 제출된 문서에서는 이들 내용이 삭제되었다.
   
   일본은 공문서 보관에 문서주의를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각 정부기관은 자신들이 작성한 문서를 법률에 근거해서 보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정부 정책의 결정 경위와 과정을 나중에라도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내각부에 의하면 연간 1800만건의 문서가 작성되고 있다.
   
   

   담당자 자살 부른 문서 위조
   
   아사히신문의 문서 위조 보도가 터져나온 후 재무성 이재국에 9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뉴스 캐스터는 “공무원이 결재 문서를 위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아소 다로 장관은 이재국이 독자적으로 위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데 나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정부의 국회 답변은 관련 당사자들 간 발언 내용에 모순이 생기지 않도록 총리부터 담당국장까지 사전에 발언을 확인하고 조정하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하에서 이재국의 독자적 위조는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소 재무성 대신은 위조 결과가 드러난 직후 기자회견에서 “결재 문서 수정(위조라고 발언하지 않음)은 사가와 이재국장의 국회 답변에 맞추기 위해서 벌어진 것”이라며 “수정은 이재국 일부 직원에 의해서 벌어진 것으로 최종 책임은 사가와 국장에게 있다”고 밝혔다. 아소는 자신의 퇴진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담당부서의 실무 직원은 지난 3월 7일 자살했다.
   
   이번 스캔들은 아베 총리와 아사히신문과의 악연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2월의 아사히신문 특종 보도에 대해서 아베 총리는 총리직과 국회의원직을 걸겠다면서 강하게 부정하는 답변을 했다. 결재 문서가 위조된 시기는 2월부터 4월까지로 아베 총리의 답변 시기와 겹친다. 문서는 담당국장의 국회 발언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베 총리의 답변에 맞추기 위해서 위조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원본에서 삭제된 내용은 아키에 부인 관련 부분과 모리토모학원 측과의 교섭 기록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원본 삭제 과정에 아키에 부인이 관여했거나 아베 총리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원본 문서에는 아키에 부인이 5회 등장하고 10여명의 정치가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아사히가 밝혀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베 총리는 아사히신문에 두 번의 특종을 제공하면서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어버렸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건 이외에도 정권을 뒤흔들 몇 건의 특종거리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사히신문과 아베의 악연은 아베 정권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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