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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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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先 이행 後 보상 3단계 진행 북핵 CVID 리비아 모델 따를까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지난해 9월 3일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에서 ‘화성-14형’의 ‘핵탄두(수소탄)’를 시찰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photo 노동신문
평안북도 영변(寧邊)은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봄이 되면 영변의 약산(藥山)에서 피는 진달래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쁘다는 말을 들어왔다. 영변은 또 북한 핵시설의 메카이기도 하다. 평양에서 북쪽으로 92㎞ 떨어진 영변의 약산을 등지고 그 아래 펼쳐진 들판에 핵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이곳에는 핵 재처리시설과 핵 연료봉 제조공장을 비롯해 5㎿급 원자로, 20∼30㎿급 실험용 경수로 원자로(ELWR), 50㎿급 원자로 등이 있다.
   
   북한은 1963년 옛 소련의 도움을 받아 2㎿ 규모의 소형 원자로 IRT-2000을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영변에 10여개의 핵시설을 건설했다. 특히 1986년 처음 가동된 5㎿급 원자로는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해온 핵심시설이다. 북한은 2003년 이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000개를 추출한 뒤 모두 재처리해 핵무기를 제조했다. 폐연료봉 8000개로는 3∼5개의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 24∼32㎏을 추출할 수 있다. 핵 연료봉 제조공장은 원자로에 쓰이는 연료봉을 성형·가공하는 곳을 말한다. 북한은 1987년부터 핵 연료봉 제조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생산능력은 연간 200t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방사화학실험실로 알려진 핵 재처리시설은 5㎿ 원자로의 폐연료봉 8000개를 연간 4∼5회 재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길이 180m, 폭 20m, 6층 높이의 핵 재처리시설의 능력은 폐연료 200∼300t에서 연간 200㎏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설은 1985년 착공돼 1995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에 따라 70% 공정이 완료된 상태에서 건설이 중단됐다. 하지만 이후 완공돼 그동안 플루토늄을 추출해왔다. 또 북한이 2010년 미국의 유명한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공개한 우라늄 농축시설도 있다. 북한은 이 시설에서 연간 최대 40㎏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할 수 있는 2000대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해왔다.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5월 개최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북한이 핵무기와 핵시설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 여부가 최대의 관심 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벌인다면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비핵화 사찰과 검증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6차례 핵실험을 통해 수소폭탄 제조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무기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핵물질을 제조할 시설과 장비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그나마 합리적인 수준에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플루토늄 보유량 정도다.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선 5㎿급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은 그동안 정보 위성을 통해 이들 시설을 감시해왔다. 이들 시설은 최대한 가동할 때 1년에 플루토늄 6㎏을 추출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32~60㎏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5㎿급 원자로는 1986~1994년, 2003~2007년, 2013년~현재까지 가동되고 있고, 폐연료봉은 적어도 5차례 이상 재처리됐다.
   
   
▲ 2010년 11월 방북한 미국의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일행이 북한 영변 5㎿ 원자로 조종실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헤커 박사

   추정조차 어려운 농축우라늄시설
   
   하지만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추정하기조차 어렵다. 북한은 2013년 기존의 농축우라늄시설을 2배로 확장했다는 것이 위성을 통해 확인됐다. 또 우라늄 농축시설은 1000개의 원심분리기를 설치할 수 있는 600㎡(180여평) 크기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북한이 더 많은 비밀 시설들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라늄은 플루토늄과 달리 연기, 냄새, 특수물질의 배출이 없어 감지하기 힘들고 공정도 간단하다. 전기도 외부와의 연결 없이 소형 발전기 몇 개만 가동해도 되기 때문에 추적을 쉽게 피할 수 있다. 핵무기 1개 제조를 위해서는 15~20㎏의 HEU가 필요하다. 이 정도 분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750~1000개의 원심분리기를 1년간 가동하면 얻을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평양 인근과 평안북도 인근 등 2~3곳에서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미국의 정책연구기관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2016년 7월 보고서에서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로 의심되는 장소가 발견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설은 영변에서 서쪽으로 45㎞ 떨어진 방현 공군기지 인근 장군대산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보고서에 첨부된 위성사진을 보면 장군대산 아래 최소 2개의 터널이 뚫려 있고 그중 하나는 수송기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다. ISIS는 비행기 제작 시설 내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탈북자들도 북한 내에 최소 3곳 이상의 장소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가동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2002년 북한이 우라늄 농축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것도 탈북자의 증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었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제조시설에서 근무하던 북한 남성이 탈북해 관련시설의 장소 및 자신의 담당분야 기술 등을 상세히 증언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영변 이외의 장소에는 우라늄 농축시설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얼마나 HEU를 보유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북한의 HEU 보유량은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셈이다.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3중수소 능력에 대해선 더욱 깜깜하다. 5㎿급 원자로나 IRT-2000 연구용 원자로에 우라늄 대신 리튬-6를 장착하고 중성자를 조사(照射)하면 수소 동위원소인 3중수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확인된 적은 없다. 헤커 박사는 “북한이 수소탄의 원료 가운데 하나인 3중수소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3중수소의 핵심 원료를 판매하려고 시도했다는 증거가 나온 적이 있다”고 밝혔다. 헤커 박사는 “영변의 새로운 원자로 시설 가운데 하나가 원료에서 3중수소를 추출하는 용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영변 이외에도 지하 군사기지 등에 비밀 핵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파악된 영변 이외 핵시설을 보면 평북 구성시 용덕동에 있는 고폭실험장을 비롯해 평북 박천과 평산 등에 있는 우라늄 정련공장 등을 들 수 있다. 우라늄 광산은 황해북도 평산과 평안남도 순천 등에 있다. 평양 과학기술대학, 강계의 고려국방대학원 등 핵연구시설도 10여개에 달한다.
   
   

   사찰과 검증이 항상 발목 잡아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과 핵시설에 대한 정보 부재는 향후 북한 핵 동결과 폐기 등 비핵화를 사찰하고 검증하는 단계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과거에도 검증 문제는 마지막에 북핵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았다. 북한은 19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조치협정에 서명한 뒤 플루토늄 90g의 보유 사실과 핵시설 7곳을 신고했다. 하지만 IAEA는 북한이 이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보유했을 것으로 의심해 특별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도 2008년 말 북·미가 검증의정서 채택을 놓고 대립하다 깨졌다. 현재 북한의 핵 능력은 1993년이나 2008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도화됐다. 1993년은 북한이 플루토늄 몇 ㎏을 추출할 정도였고, 2008년은 북한이 1차 핵실험만을 실시했을 때였다. 반면 현재 북한은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모두 가동하고 있으며 수소폭탄 실험까지 마친 상태다. 비핵화 사찰과 검증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증명하려면 북한이 보유한 핵 관련 사항들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994년과 2007년 영변 핵사찰을 주도했던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IAEA가 핵사찰을 하더라도 북한의 핵시설을 100% 찾아낸다는 보장은 없다”면서 “김정은이 비핵화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진심인지 보여주려면 모든 핵시설을 완전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북한이 우라늄과 플루토늄 같은 핵 물질을 얼마나 생산했고 보유했는지뿐만 아니라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면서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미사일 개발에 대한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첼 리스 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북한이 플루토늄이나 농축우라늄을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저장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서 “북한은 매우 폐쇄된 국가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서처럼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리스 전 정책기획실장은 “김정은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비핵화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도 “영변 핵시설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북한의 전체 핵 프로그램의 절반에 불과하다”면서 “북한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 검증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영변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제안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면서 “과거 사례를 볼 때 김정은이 핵 관련 시설들을 숨길 경우 북한의 비핵화는 달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또 하나의 중요한 약속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IAEA 사찰단이든 미국의 사찰단이든 북한 전역에 대한 접근과 사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도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가 모두 깨진 이유는 검증과 사찰 문제 때문이었다”면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검증과 사찰이 제한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은 은폐가 대단히 용이하기 때문에 북한 전역을 샅샅이 사찰하지 않는 한, 철저한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트럼프 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는 “핵무기는 매우 작은 상자에 보관할 수 있으며 핵무기를 만드는 핵 물질들은 커피 컵에도 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찰과 검증을 위해 북한 내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어떤 합의도 실패할 위험성이 있다”면서 “북한 핵과 미사일 시설은 물론 의심이 가는 장소에 대한 자유로운 사찰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수행했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차관도 “김정은이 운전석에 앉아 있고 (그는) 많은 핵무기를 어디에 보유하고 있는지 알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면서 “검증을 위해 북한 내 필요한 곳에 대한 제한 없는 사찰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북한이 비핵화의 전 단계인 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동의했을 때에도 사찰과 검증은 필수적이다.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북한은 핵물질을 포함해 핵무기를 20개에서 60개 정도 보유하고 있다”면서 “검증과 사찰이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고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도 “북한이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운용하고 만들고 있는지, 핵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면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해결이 아니라 하나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리비아식 3단계 폐기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정부는 북핵 문제를 리비아식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리비아가 2003년 12월 도출한 핵 폐기 합의는 ‘선(先) 이행 후(後) 보상’ 개념에 따라 3단계로 진행됐다. 특히 CVID가 철저하게 이행됐다. 제1단계는 리비아가 2004년 1월까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핵무기 설계정보와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주요 장비와 문서를 미국에 전달했다. 제2단계는 리비아가 같은해 9월까지 IAEA의 핵무기 개발과 화학무기에 대한 사찰을 받고 이를 폐기했다. 또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장비 1000t을 미국으로 반출했다. 제3단계는 리비아가 2005년 10월까지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경제제재를 공식 해제했다. 미국은 또 2006년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시켰다. 리비아는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러시아의 저농축우라늄을 제공받았다. 리비아의 비핵화는 2007년 북핵 6자회담에서 도출된 2·13 합의와 핵심내용이 비슷하다. 북한을 완전하게 비핵화하려면 리비아처럼 북한의 핵시설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과정을 거쳐 폐기해야 한다.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 같은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핵을 포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진정성을 미국에 보여주었기 때문에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다. 가다피가 2011년 반군에 사살된 것은 핵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국민들을 잔인하게 탄압해왔기 때문이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대사는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기를 치면 후세인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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