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연임’ 권오준 포스코 회장. ‘3연임’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연임’ 백복인 KT&G 사장. ‘연임’ 윤종규 KB금융 회장. ‘연임’ 황창규 KT 회장.
(왼쪽부터) ‘연임’ 권오준 포스코 회장. ‘3연임’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연임’ 백복인 KT&G 사장. ‘연임’ 윤종규 KB금융 회장. ‘연임’ 황창규 KT 회장.

올 초 IBK기업은행의 고위 임원은 KT&G 백복인 사장 측에 “사장 연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설립한 국책은행이자, KT&G의 2대 주주(6.93%)다. 기업은행은 백 사장과 가까운 인사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연임 반대 논리를 폈다. 또 인도네시아 담배업체 트리삭티 인수 과정에서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져 경영리스크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사장 선임 또는 연임 여부를 결정할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업은행이 KT&G에 압박을 가하자 KT&G 내부에선 “정부가 민간기업 사장 교체를 시도하려는 것”이란 의심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은행은 국민연금에 이어 KT&G의 2대 주주로 있으면서 과거 단 한 차례도 경영에 간섭한 적이 없었다. 지분율이 전체의 7%도 되지 않는 기업은행이 백 사장 연임에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기업은행의 간섭과 동시에 KT&G 주변에서는 친(親)정부 성향의 인사들이 차기 KT&G 사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KT&G 소식에 밝은 한 인사의 말이다. “처음에는 노무현재단 출신의 정치권 인사 A씨가 차기 KT&G 사장으로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A씨는 이에 앞서 청와대 고위 인사들과도 접촉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모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자, A씨는 해당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KT&G 전직 인사가 정권과 친분을 내세워 사장 선임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전직 인사는 청와대 인사의 이름까지 팔고 다녔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난 3월 16일 주총에서 전체 70%가 넘는 주주들은 백복인 현 사장의 연임을 지지했다. 기업은행은 KT&G의 사외이사를 현행 8명에서 10명으로 늘리자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했으나 주주들은 이마저도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공석인 사외이사 자리에는 기업은행에서 추천한 2명의 후보가 아니라 KT&G에서 추천한 후보가 선임되면서 기업은행이 체면을 구겼다. 정부 간섭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주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자율적 선택권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마저 기업은행 편에 서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국민이 낸 돈을 투자해 수익을 내야 하는 국민연금은 그동안 높은 수익률을 보여준 백 사장을 교체하기보다 연임시킬 경우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스튜어드십’을 추진 중이지만 KT&G 사례에서 보듯 시장은 이익에 따른 자율성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등 해외 투자자들은 기대수익을 달성하면 경영진을 계속 지지한다. KT&G처럼 외국계 자본의 비율이 높은 기업은 자본의결권 자문사의 판단이 중요한데, 세계 최대 자문사인 ISS 또한 KT&G 백복인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백 사장은 지난해 매출 3조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고 순이익도 지난 3년간 1조원대를 꾸준하게 유지해왔다.

KT&G를 둘러싼 사장 연임 논란의 후유증은 아직 진행 중이다. 금융감독원이 KT&G의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정밀 회계감리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회계감리 결과 분식회계 등이 드러날 경우 금감원은 최고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대표이사 해임권고, 검찰 고발 등의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야당 일각에서 “KT&G 사장 교체를 위해 전직 임직원들이 내부고발자로 나서고 이를 바탕으로 금감원이 민간기업을 조사하는 식의 압박을 가하는 것은 정권이 바뀐 뒤 자기 사람을 사장에 앉히려는 과거 정부의 행태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KT&G 측은 주총 전후에 불거진 금융당국의 압박은 물론이고 백 사장 연임 건 자체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민영화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KT&G는 관치(官治)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했다. KT&G 홍보 담당자는 “금감원 회계감리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우리도 모른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KT&G는 전임 사장들도 고초를 치른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했던 민영진 사장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져 조기 사퇴했으나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 뒤를 이은 백복인 사장도 금품수수 의혹으로 지난 3년간 검찰수사에 시달렸으나 1·2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백 사장에 대한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KT&G 수사가 무리수였음을 보여줬다.

내부고발→시민단체→검찰수사 ‘패턴’

기업 경영에 국가가 개입하는 이른바 국가주의와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시장주의 사이에서 홍역을 치르는 기업은 비단 KT&G뿐만 아니다. 포스코, KT,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은 모두 민간기업임에도 국가와 시장 사이에 놓인 ‘주인 없는 기업’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의 경쟁은 구소련의 몰락이 보여주었다시피 시장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국가주의, 즉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내 운동권 세력의 영향으로 반(反)시장적 경향이 강해진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말이다. “민간기업이 된 주식회사를 바라보는 정권의 시각은 ‘주인 없는 기업’ ‘통제 가능한 기업’인 듯하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의 잣대로 기업과 경영진을 판단한다. 현 정부가 시장주의를 존중해야 일자리도 늘고 국가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현 정부에서 KT&G처럼 정부에 시달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KT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했던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황창규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당시 국민연금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나서 최순실 국정농단에 부역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던 황창규 회장 연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연임안은 주총을 통과했다. KT는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이 주도한 K스포츠·미르재단에 18억원을 출연했고 최순실의 추천을 받은 인사들을 임원으로 채용해 광고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 KT는 다른 기업에 비해 출연금이 적었다. 인사 및 광고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지 않고 넘어갔다. 황 회장 연임 이후 KT가 다시 뉴스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 1월 상품권깡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쪼개기 후원금을 보냈다는 사실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제기되면서다.

경찰에 따르면 KT 대관 담당 임원들이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 이를 현금화해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상품권깡을 통해 조성한 현금은 2억~3억원 안팎인데, 이 돈을 후원금조로 받은 국회의원은 20여명에 이른다.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은 “KT 임원 명의의 후원금이 입금된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KT 또한 관례상 후원금을 지급해온 것일 뿐 별도의 목적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당시 이 사안을 지휘한 KT 맹모 전 사장은 최근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의 진술 여하에 따라 책임소재가 황 회장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KT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어떻게 결론날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이번 사안으로 인해 황 회장의 거취 문제가 재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KT 사정에 밝은 통신업계 인사 B씨에 따르면 현재 황 회장이 퇴임할 경우 노무현 정부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모 인사가 기용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B씨는 “KT 사장을 교체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직접 나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일부 여권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차기 회장으로 노무현 정부 때 인사까지 나오는 걸로 볼 때 KT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친정부 인사들을 KT 계열사 사장과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를 두고 민간기업이 정권과 코드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은 과거 공기업 시절과 다르지 않다는 뒷말도 나왔다. KT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교 동창 C씨를 자회사인 스카이라이프 사장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불발됐다. 현 정부와 가까운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와 연세대 김기정 교수 등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KT 안팎에서 “친정부 인사들이 KT에 적을 두는 걸 원치 않거나 현 정권에서 불편해 한다는 이유로 사외인사 영입이 불발됐다. 그래서인지 황 회장의 거취 문제가 다시 나오고 있다”고 얘기된다.

KT는 지난해 4분기에 2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정부가 협조를 구한 평창 동계올림픽 후원과 투자, 정부의 통신료 인하 정책, 연말 노사 임단협 타결 등이 겹치면서 적자폭이 커졌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해명이다. KT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회장의 거취에는 변동사항이 없다. 다만 통신업이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정권과 거리감이 있는 것으로 비쳐지면 사업하기 힘들다. 경영과 무관하게 정권의 친소관계가 회사의 앞날을 좌우한다는 건 구조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KT 임원진이 통신 분야를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실세’에게 인사를 가기로 했다가 “황 회장이 임명한 사람은 올 필요 없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KT가 정부 눈치를 보는 사이 경영이 부실해진 측면도 있다. 한때 20조원에 이르던 KT 시가총액은 8조원대로 추락했다. KT가 만든 국내 최초의 인터넷은행인 ‘K뱅크’는 카카오뱅크 등 후발주자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침체의 늪에 빠진 KT는 1조5000억원이면 인수가 가능한 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가격은 인터넷기업 카카오가 실시간 음악전송 사이트 멜론을 인수한 1조8000억원보다 적은 금액이다. 익명의 한 내부 관계자는 “KT가 보유한 전국 부동산만 개발해도 금세 시총 100조원을 넘을 수 있는 규모인데 각종 규제와 정부 눈치 보기로 인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KT&G와 KT가 이 정부에서 시달리는 모습은 모두 ‘내부고발자→시민단체→사정당국 수사’의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포스코도 권오준 회장의 교체설이 1년째 이어지고 있다. 권 회장은 지난해 3월 10일 정기 주총에서 연임이 확정됐으나 언론에서는 포스코 관련 의혹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임을 앞둔 시점에는 시민사회단체가 앞장서 권 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부역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연임 저지에 나선 바 있다. 포스코는 K스포츠와 미르재단에 49억원의 출연금을 냈고 최순실 측의 요구로 펜싱팀 창단을 추진하기도 했다. 포스코 광고계열사인 포레카를 매각해 최순실 측에 이권을 넘겨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권 회장은 이와 관련 최순실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정권의 압력으로 인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재단 출연금을 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정권 눈치 보기 급급

권 회장은 박근혜 정권 때인 지난 2014년 3월 포스코 회장에 임명됐다. 엔지니어 출신의 권 회장이 경쟁 후보를 제치고 회장에 선임된 것을 두고 정권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포스코 측은 권 회장 선임 과정에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불거진 데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올해 들어 포스코는 해외 자원개발 관련 의혹과 기업 인수 문제 등이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최근 포스코가 에콰도르의 엔지니어링 회사 ‘산토스 CMI’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도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권 회장은 지난 3월 9일 주총에서 “남미 투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증자했고 정상적인 회계절차와 감사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포스코 측은 자원외교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전임 회장 당시 투자했던 사안으로 권오준 회장 체제에서 수습했다”는 입장이다.

익명의 포스코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외부에 회장을 흔드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안다. 차기 회장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정권을 병풍 삼아 흔들기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비판이나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 기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근거 없는 의혹이라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권 회장은 첫 임기 3년 동안 구조조정 등을 단행해 포스코 부채비율을 74%로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임기를 시작할 때 비해 포스코 주가를 최고 60%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런 결실을 토대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지난 2월 국세청 조사 4국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하며 다시 포스코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국세청은 그동안 제기됐던 △포스코건설의 해외 사업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의 합병 과정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과 처남 명의의 도곡동 땅을 매입한 배경 △부산 ‘엘시티’ 건설 관련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법률 검토 결과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들은 큰 문제가 없다는 게 포스코의 입장이라고 한다.

국민은행의 지주사인 KB금융지주도 처지가 비슷하다.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은 지난해 11월 연임이 확정됐다. 그러나 최근 윤 회장의 종손녀가 국민은행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인사팀장을 구속하는 등 국민은행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채용이 이뤄졌다. 우리는 면접 점수 조작 등이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금감원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채용비리 수사는 금감원의 고발로 촉발됐다.

윤 회장은 노조와도 대립해왔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KB국민은행지부는 노조 추천의 사외이사를 제안했으나 주총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B 노조의 사외이사 선임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이사제 공약과 맞물려 강력하게 추진됐었다.

국민은행은 외국계 주주의 지분율이 70%에 달한다. 이들의 이해를 반영해온 국제의결권자문사 ISS는 윤 회장 연임에는 찬성을, 노조 추천 사외이사에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이사회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인데, 여기에 직원의 권리를 대변하는 노조 측 인사가 들어갈 경우 주주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게 ISS 등 해외투자자들의 시각이다. 반면 정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은 노조 측 추천인사의 사외이사 안건에 대해 동의하며 외국계 투자자와 다른 선택을 했다.

국민은행은 LIG손해보험과 현대증권을 불법 매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에 고발된 적도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은행 관계자는 “국민은행 출신이 포함된 일부 시민단체가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하는데,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국회에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재임 기간 사상 최대 규모의 당기순이익(3조원)을 거둬 국민은행이 리딩뱅크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나금융그룹도 김정태 회장의 3연임 여부가 금융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회장도 지난 2005년 이후 최초로 하나금융의 순이익을 2조원대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외국인 지분율이 73%에 달하는 하나금융 역시 김정태 회장의 3연임 건에 대해 국제의결권자문사 ISS의 찬성을 얻어냈다. 금감원은 그러나 김 회장의 3연임을 앞두고 하나은행 채용비리를 조사한 뒤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오히려 채용비리 의혹에 휘말려 자진 사퇴했다.(주간조선 2498호 참조) 최 전 원장이 사퇴하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나서 하나금융에 대한 대대적 채용비리 조사를 촉구해 ‘보복 조사’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국가주의·인기주의 막아야 시장 살아

이에 앞서 하나은행 노조 등에서 제기한 아이카이스트 및 정유라 특혜대출 의혹 고발 사건은 검찰에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금감원은 여러 의혹이 불거지자 주주총회를 연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하나금융 주주들은 주총을 열고 김 회장의 연임안을 추인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 회장의 연임에 대해 “회장이 추천한 이사들이 사장 추천을 하고 이를 주총에서 추인하는 것은 셀프 연임이라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내세워 연임을 반대해왔다. 오너가 없는 은행의 경우 회장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수익 구조가 주주 중심으로 짜이기 때문에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 서비스가 약화되거나 예대마진으로 은행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반 기업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인 없는’ 은행의 회장 교체 시도는 계속 이어졌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채용비리 의혹을 다루면서 유독 KB금융과 하나금융에 조사를 집중한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최근 금융당국은 하나금융이 인천 청라에 건설한 데이터센터와 관련된 또 다른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5개 기업은 모두 주인이 없는 기업이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수반되는 기업 특성상 당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정부 정책과 마찰을 빚거나 당국에 밉보일 경우 기업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회장 연임 과정에서 정치권의 뒷배를 믿고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던 친정부 인사들에 대해 해당 기업은 쉬쉬하고 있다. 더욱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 현 정권 핵심 실세들이 이들 기업의 ‘셀프 연임’에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며 개선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정부나 금융당국이 민간 기업의 CEO 교체나 연임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한 시장주의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조직의 경우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마련이다. 집권세력이 노조와 가까운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 결과로 국가주의와 인기주의만 남고 시장주의가 위협받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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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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