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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02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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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몰타와 판문점, 그리고 고르바초프와 김정은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좌) 고르바초프. (우) 김정은. photo 뉴시스
몰타는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에 있는 자그마한 섬나라로 미국과 옛 소련 정상들이 냉전 종식을 선언한 역사적 장소다.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9년 12월 2일과 3일 중립지대인 이 섬에 정박한 소련 여객선 막심고리키호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공산주의 국가들이 동·서 양 진영으로 나뉜 채 대결해온 냉전 체제를 종식하자는 데 합의했다. 회담을 끝낸 두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세계는 냉전 체제에서 새로운 협력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1945년 2월 4~11일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 얄타에서 미국·영국·소련 3국 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냉전이 몰타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오는 4월 27일 중립지대인 판문점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 몰타처럼 한반도의 냉전 종식을 선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방안은 말 그대로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도 해결하지 않은 채 정전 체제 종식과 평화 체제를 먼저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한반도가 분단된 지 올해로 65년이 되지만 남북은 지금까지 총칼을 맞댄 채 대치해왔다. 북한은 그동안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수많은 도발행위를 자행해왔고, 핵 실험을 여섯 차례나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는 등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또 한반도를 공산화하겠다면서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는 등 평화 체제를 지향하는 어떤 조치도 실행한 적이 없다.
   
   
   결국 경제가 소련 붕괴시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북이 평화 체제를 구축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미국과 소련이 몰타 정상회담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일부 학자들과 전략가들은 냉전이 종식된 것은 부시 전 대통령의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강경한 반공정책과 함께 군사력을 확대하는 등 소련을 강력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에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해석은 어느 정도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소련을 ‘악(惡)의 제국’으로 불렀고, 공산주의는 역사의 잿더미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면서 강경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맞서 소련 공산당의 강경파는 레이건 전 대통령에 맞서 끝까지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핵무기를 사용해서라도 미국의 공세를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따라 미·소 양국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그러다 1985년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등장하면서 소련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은 소련이 미국과는 더 이상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미국과의 화해를 모색했다.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초강대국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경제 문제였다. 소련의 경제는 1970년 중반부터 계획경제의 모순과 중공업 및 군수산업 위주의 정책으로 정체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 경제성장률은 사실상 제로 상태로 떨어졌고 생산성도 격감했다. 우크라이나 등 캅카스산맥 이남 지방의 비옥한 곡창지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하는 국방비 지출은 경제를 수렁에 빠트렸다. 특히 공산당 간부들의 관료주의, 권력형 부정부패, 비능률, 노동생산성의 하락 등도 경제력을 약화시킨 원인이 됐다.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권력을 잡았을 때 소련 경제는 미국과 유럽의 산업 생산력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뒤처졌었다.
   
   
   김정은도 경제살리기로 방향 전환?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은 1985년 3월 개최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련이란 국가가 변화하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 정책을 추진할 것을 밝혔다. ‘개혁’이라는 뜻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정치·경제적 개조를 의미한다. 공산주의 경제의 체제적 한계점을 개선하고 점진적 시장자유화를 추구하는 정책을 말한다. ‘개방’이라는 뜻의 글라스노스트는 정보의 자유와 공개를 의미한다. 당시 소련에 만연해 있던 언론 검열, 표현과 사상의 자유 탄압 등을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부정부패, 비능률 등을 없애기 위해 개인 기업 설립과 운영을 허가하고 기계와 설비 등의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를 보장하는 등 시장경제 및 자본주의 요소를 적극 도입했다. 또 노동 생산성의 증대와 부패한 관료들의 척결 등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집단농장 제도도 개편했다. 반체제 인사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도 사면했다. 각종 검열도 폐지하고 학술·언론·예술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고, 당 간부의 복수후보제와 비밀투표 등 정치적 민주주의 정책도 실시했다.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은 또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에 더 이상 그들의 체제를 소련의 군사력으로 보호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미국과의 군축에 적극 나섰다. 군비를 축소하지 않고서는 경제개혁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7년 12월 8일 레이건 전 대통령과 함께 사거리 1000~5500㎞의 중거리, 사거리 500~1000㎞의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및 배치를 금지하는 내용의 중거리 핵전력 폐기 협정(INF)에도 서명했다. 그가 미국과의 냉전 종식을 선언한 의도도 소련 경제를 개혁해 국민을 잘살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과연 고르바초프처럼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 인민을 위해 냉전 종식을 선언할 수 있을까. 만약 김정은이 고르바초프와 같은 생각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에 임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쉽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방중한 김정은이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의 실리콘’이라고 불리는 중관촌(中關村)을 찾은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왕샤오커 지린대 동북아연구원 교수는 “김정은이 중관촌을 방문한 것은 핵 개발 대신에 경제건설로 방향을 돌린 것”이라면서 “김정은의 방중 수행단에 군 인사가 없었던 것은 김정은이 선군정치 노선 폐기를 선언하고 경제건설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창이 옌볜대 교수도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과 달리 비교적 강한 민생 의식이 있고 일정한 개혁 의지도 갖고 있다”면서 “핵 보유를 통해 북한의 경제난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핵 포기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장밋빛 전망이 맞는다면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란 어떤 신호나 증거도 지금까지는 없다. 김정은은 “경제를 1960~1970년대 수준으로 회복시켜 인민들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도록 생활수준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쌀밥에 고깃국’은 김일성이 1962년 10월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강조한 발언이다. 50여년이 흐른 현재 손자 김정은이 다시 이런 발언은 한다는 것은 북한 경제가 얼마나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김정은이 개혁·개방 정책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핵·경제 건설 병진노선도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핵 개발에 사용된 막대한 자금을 경제 발전에 투입했더라면 북한 주민들이 먹고살 만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안전과 세습왕조 체제 유지가 목표
   
   북한 주민들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지 않고 있는 것은 그나마 일종의 시장경제 체제인 ‘장마당 경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장마당은 국가 배급제도가 붕괴되면서 국가가 못 먹여살리니까 주민들이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실제로 배급이 끊긴 당 간부까지 장마당에 나가 돈을 주고 사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주의 체제에 따른 배급이 진행됐던 북한의 경제 체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북한 정권은 세습왕조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북한 주민 2300만명은 오로지 김씨 가문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모든 국민이 한 일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모순된 체제는 고금을 통틀어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고모부 장성택을 총살했고 이복형 김정남을 화학무기인 VX 가스로 독살하고 수많은 주민들을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게 한 독재자다.
   
   김정은이 비핵화 운운하고 있는 것도 자신의 안전과 세습왕조 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지 북한 주민들의 민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김정은은 또 고르바초프의 선례를 좇아 개혁·개방에 나설 만한 경험이나 능력 및 인식을 가진 인물도 아니다. 러시아 북부 스타브로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지방 당 말단 간부부터 시작해 각종 주요 직책을 거쳐 정치국 농업 담당 서기에서 서기장에 오른 입지전적 지도자다. 할아버지는 스탈린 시대에 반혁명분자로 몰려서 감옥 생활을 했고, 작은 할아버지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아버지는 2차 대전 중에 징집돼 나치 독일과 싸우다가 부상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반면 김정은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금수저’ 출신이다. 북한 주민들의 삶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고단한 생활을 경험한 적도 없다. 북한 주민의 주식인 강냉이밥조차 먹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스위스에서 유학했다고 해도 시장경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당 일꾼으로 일한 적도 없다. 개혁·개방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추진한다고 해도 절대로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세습 체제와 일당독재 체제를 깨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가 개혁·개방에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노멘클라투라는 특권을 가진 지배계층을 의미한다. 북한의 노멘클라투라는 김씨 일가를 비롯해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 간부들과 가족 등 ‘공산 귀족들’을 말한다. 20만~25만명에 달하는 이들은 주민들이 굶어죽어도 자신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3대 세습 체제와 일당독재를 보위하기만 하면 된다. 고르바초프의 야심찬 개혁·개방 정책이 실패하고 소련이 붕괴된 것도 노멘클라투라의 저항과 반발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고르바초프의 길을 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 있다.
   
부인들의 정치
   
   고르바초프의 ‘조언자’ 라이사와 김정은의 ‘그림자’ 리설주
   
▲ 부인 리설주와 함께 공연을 관람 중인 김정은. photo KCNA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 부인 라이사. photo 위키피디아

   소련 역대 공산당 서기장들 중에서 부인을 공개한 지도자는 고르바초프가 유일하다.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취임한 뒤 공개 장소에 부인 라이사 막시모브나 고르바초프를 대동하고 나타나자 소련 언론들은 물론 서방 언론들도 깜짝 놀랐다. 라이사는 고르바초프가 외국을 순방할 때도 함께 다녔다. 라이사는 1951년 모스크바대 철학부 학생일 때 같은 학교 법학부에서 수학하던 고르바초프와 만나 1953년 결혼했다.
   
   철학부를 최우수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라이사는 크렘린궁의 역대 안방마님들과 확실하게 달랐다. 라이사는 자신의 의견을 숨김 없이 표출했고, 책을 집필하기도 했으며, 여권 신장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90년 미국을 방문한 라이사는 명문 웰슬리여대 졸업식에서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주제로 축사를 했다. 당시 CNN은 이 모습을 지구촌에 생중계했다. 서방 언론들은 라이사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을 상징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라이사는 남편의 정책에 조언을 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1999년 백혈병으로 숨진 라이사를 지금도 기억할 정도로 좋아했다.
   
   김정은 역시 중국을 방문하면서 부인 리설주를 대동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김정은이 리설주를 공개한 것은 무슨 의도일까. 고르바초프처럼 개혁·개방을 하겠다는 것인가. 리설주는 1989년생으로 북한 최고의 예술중학교인 평양 금성 제2중학교를 다녔다.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대회에 북한 응원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는 리설주는 중국에서 성악을 공부한 뒤 은하수관현악단의 가수로 활동했다. 당시 리설주의 공연 모습을 본 김정일이 며느리로 삼고 싶어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공군 조종사 출신이며,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관영 언론매체들은 최근 들어 리설주의 호칭을 ‘여사’로 부르고 있다. 김정은이 리설주를 공개석상에 동반하고 있는 것은 ‘정상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또 김정은이 자신의 대외활동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설주가 김정은과 동반하는 활동 이외에 어렵게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을 위로하거나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때문에 화려한 옷차림과 명품으로 치장한 리설주를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북한 주민들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호의호식하고 있는 리설주가 북한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개혁·개방의 얼굴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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