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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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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김정은의 ‘판문점’ 정상회담 노림수는

김일성 일가엔 승리의 장소 ‘통일 유훈’ 과시하려는 것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2012년 3월 판문점을 방문한 김정은이 김일성 친필비 앞에서 당정군 간부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photo KCNA
판문점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의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의 명칭이다.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48㎞, 개성에서 동쪽으로 10㎞ 지점에 있는 판문점에선 6·25전쟁 때인 1951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유엔군과 북한·중공(중국)군 간에 휴전회담이 열렸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공동경비구역이라고 불리게 된 판문점의 본래 이름은 초가집 4채와 주막을 겸한 자그마한 상점이 있던 널문리였다. 당시 휴전회담에선 한국어·영어·중국어가 사용됐는데 ‘널문리 상점’을 중국어로 판문점(板門店)이라고 표기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됐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피신하던 선조가 강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자 마을 백성들이 집집마다 대문(널문)을 뜯어다가 임시로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널문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동서 800m, 남북 600m 너비인 판문점에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이 있다. 군사분계선은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의 장방형 회의용 탁자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마이크선 및 유엔기와 북한의 깃발로 상징된다. 남쪽에는 ‘자유의집’과 ‘평화의집’, 북쪽에는 ‘판문각’과 ‘통일각’이 있다. 자유의집과 판문각에는 남북 적십자사가 상설 연락사무소와 직통전화 2회선을 설치해놓고 있다. 또 서쪽의 사천(砂川)에는 민족 분단의 상징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널문다리)가 있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는 대성동 자유의마을, 북측 지역에는 기정동마을이 있다.
   
   판문점이 오는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장소로 예정되면서 또다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판문점은 과거 휴전회담 때뿐만 아니라 최근 벌어진 북한군 병사 오청성 탈북 사건까지 각종 사고와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회자돼온 곳이다. 특히 판문점은 그동안 총격전까지 벌어지는 등 남북 간 살벌한 대치의 현장이기도 하다. 첫 총격전은 1967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 귀순 때였다. 이수근은 제242차 군사정전위원회 취재차 판문점을 찾았는데 갑자기 귀순 의사를 밝히며 남쪽으로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총격전을 벌였다. 이수근은 2년 뒤인 1969년 이중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 한국 쪽에서 본 판문점 북한 지역. photo 위키피디아

   마투조크 망명 때 최대 총격전
   
   1976년 8월 18일에는 북한군 병사들의 이른바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미군이 시야를 가리던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 가지를 절단하자 북한군 병사들이 몰려와 중단을 요구하다 시비가 붙어 아서 조지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토머스 배럿 중위 등 미군 장교 2명을 도끼와 몽둥이로 살해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설상의 나무꾼 이름을 딴 ‘폴 버니언(Paul Bunyan)’ 작전을 시행했다. 미국은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비해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와 B-52와 F-111 폭격기 등을 한반도 인근과 한국에 배치한 가운데 공병대원들을 투입해 미루나무를 잘라버렸다. 당시 현장을 엄호하고 있던 한국군 특전사 제1공수여단 대원들이 북한군 초소 4개를 때려 부수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김일성 명의로 사과했고 유엔사령부는 공동경비구역 내에 군사분계선을 그어 남북이 서로 넘지 못하게 했다. 이때 유엔사는 정전협정 때 포로를 교환했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폐쇄했다. 북한은 이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자 72시간 만에 다리를 새롭게 세웠다. 이 때문에 이 다리를 ‘72시간다리’(북한명 사천강다리)라고 부른다.
   
   1984년 11월 김일성종합대학의 소련 유학생 바실리 마투조크가 판문점을 통해 망명하면서 또 총격전이 벌어졌다. 마투조크는 판문점을 견학 왔다가 돌연 남측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북한군 병사들은 권총을 쏘며 마투조크를 쫓아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유의집 앞까지 쳐들어왔다. 그러자 양측이 30여분간 총격전을 벌였다. 다행히 마투조크는 살아남았지만 교전 과정에서 한국군 병사 1명이 사망했고 미군 병사 1명도 부상했다. 북한군 병사 3명이 죽고, 5명이 다쳤다. 당시 사건은 판문점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총격전이었다. 마투조크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넘겨졌다가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판문점은 남북 간 소통의 창구 역할도 했다. 1971년 9월 남북 적십자회담 1차 예비회담이 열린 이후 남북 간 각종 대화가 이곳에서 진행됐다. 남북 적십자회담이 개최될 때 남북 대표단이 각각 평화의집과 판문각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회담을 하기도 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8년 6월 이곳을 통해 소떼 1001마리를 몰고 방북했다. 판문점은 매년 16만명이 찾는 안보 관광지이기도 하다. 1983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이곳을 찾았다.
   
   김일성은 과거 판문점을 방문한 적은 없다. 판문점에서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을 체결할 당시 참석한 사람은 유엔군 수석대표인 윌리엄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수석대표인 남일 북한군 대장이었다. 김일성은 이승만 대통령이 위해를 가할 수도 있으니 판문점에 가지 말라는 소련대사의 지시에 따라 정전협정 조인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7월 27일 밤 10시에 평양에서, 중공인민지원군 펑더화이(彭德懷) 사령관은 7월 28일 오전 9시30분에 개성에서 정전협정에 각각 서명했다.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7월 27일 오후 1시 문산 유엔군 기지에서 정전협정에 사인했다. 이로써 3년1개월 2일(1129일)간 지속된 6·25전쟁은 정전상태에 돌입했다.
   
   
▲ 김정은이 2012년 판문점을 시찰하면서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 photo KCNA

   ‘김일성 친필비’를 지나
   
   김일성은 7월 31일 평양에서 ‘정전 협정 축하행사’를 주재하고 펑더화이를 비롯한 중공인민지원군 지휘관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거나한 술파티를 밤새도록 벌였다. 양측은 모두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만취했다고 한다. 특히 김일성은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면서 ‘승전의 기쁨’을 만끽했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으로선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목숨도 잃을 뻔했는데 중국의 도움으로 정전협정을 체결한 것을 ‘승리’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정전협정 체결일을 ‘전승절’(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로 제정해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김일성이 독창적인 전법과 탁월한 영도로 미국을 꺾었다면서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승리한 전쟁’이라고 선전해왔다.
   
   특히 북한은 1995년 8월 11일 판문점의 판문각 왼쪽에 ‘김일성 친필비’까지 세웠다. 이 기념비 전면에는 ‘김일성, 1994. 7. 7’, 그 밑에는 ‘…조국통일 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통일 문제를 담은 중요 문건에 마지막 친필 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의…’라는 해설문이 각각 새겨져 있다. 북한은 이 기념비를 세우면서 김일성이 1994년 7월 7일 사망할 때 ‘조국통일’이라는 유훈(遺訓)을 남겼고 이를 김정일이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김정일은 1996년 11월 24일 판문점을 방문해 ‘김일성 친필비’ 앞에서 ‘통일 유훈’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김정일은 모두 4차례 판문점을 방문했다. 김정은도 2012년 3월 4일 판문점을 찾아가 ‘김일성 친필비’를 바라보며 통일 유훈을 길이 빛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은 “앞으로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원수들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 조인이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정일과 김정은이 판문점을 방문한 것은 김일성의 통일의지를 이어받으려는 것이라고 선전해왔다. 북한이 김정일과 김정은의 판문점 방문을 강조하는 것은 이곳이 김일성 일가가 집권의 정당성을 찾는 6·25전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판문점을 정전협정을 맺은 장소라기보다 ‘승리의 장소’라고 주장해왔다. 김정은이 판문점을 남북 정상회담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속셈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김일성의 ‘통일 유훈’을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일성의 ‘통일 유훈’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 북한은 ‘조국통일 3대원칙’(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1980년 10월 제6차 노동당대회),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 등을 하나로 묶어 ‘조국통일 3대 헌장’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해왔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은 김정일이 ‘김일성 친필비’를 방문할 때 제시한 것이다. 그 내용은 큰 틀에서 볼 때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다. 김정은은 2016년 5월 6~7일 36년 만에 열린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 1976년 8월 미군 공병부대가 판문점에서 미루나무를 잘라내는 폴 버니언 작전을 하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북한의 조국통일 3대 헌장
   
   조국통일 3대 헌장은 한마디로 말해 대남 적화통일을 위한 수단을 의미한다. ‘자주’는 표면적으론 남북한이 외세가 아닌 자주적 의사에 따른 통일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의 진정한 의도는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미제의 지배를 끝장내는 것’을 말한다. 김정은이 그동안 핵 무력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온 것도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 한·미 군사동맹을 폐기시키려는 것이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무력 사용과 전쟁이 없는 평화를 강조함으로써 한·미 군사동맹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민족대단결’이란 한국에 있는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벌이는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이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에 통일에 방해가 되는 국가보안법 등 법과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한국에 용공정권을 수립한 후에 이 용공정권과 합작해 한국을 적화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북남관계 개선방침은 주체적인 조국통일 노선의 빛나는 구현이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의 새 역사를 써나가시려는 숭고한 애국의지의 발현”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노림수는 ‘통일 유훈’을 앞세워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무력화하고, 종전 선언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을 도모하고, 미국의 군사 옵션을 막고 한·미 간의 군사동맹을 최대한 이간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그동안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의도적으로 따라해왔다.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김일성의 판박이다. 뒷짐을 진 자세나 걸음걸이도 김일성을 빼다박았다. 트레이드마크인 패기머리도 김일성의 헤어스타일이다. 때문에 김정은은 김일성의 ‘통일 유훈’에 따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자신과 정권의 생존을 위한 무대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속셈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큰 틀에서의 비핵화 선언을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협정 체결을 이끌어내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듯하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한반도 비핵화, 획기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를 포함한 항구적인 평화정착, 남북 관계의 새롭고 담대한 진전 등 3가지를 꼽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의원들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협상에서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을 논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한국 정부에 대북제재를 조기에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싶다”면서 “국제사회는 이미 여러 번 실수를 했고 그 대가 역시 톡톡히 치렀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다뤄야 한다”면서도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 주도하는 것인 만큼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제재 해제 등 보상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슈아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서두르기 위해 한·미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거나 북한에 착각이나 환상을 줘서는 안 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주 신중하게 단계별로 대응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맥스웰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의 전략은 정권의 생존이고 자신들의 체제 아래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은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 때까지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의 틀을 벗어난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댄 설리번 상원의원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의 균열을 일으킬 어떤 요소도 포함돼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북한의 공허한 약속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평화의집을 가려면 72시간다리를 건너 ‘김일성 친필비’ 앞을 지나야 한다. 김정은이 김일성의 글씨를 보며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염원할지 아니면 자신과 정권의 생존만을 염두에 둘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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