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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04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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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워싱턴 싱크탱크를 대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지난해 10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워싱턴 한미연구소(USKI)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미연구소는 오는 5월 폐쇄될 예정이다. photo 뉴시스
“한국에도 워싱턴 수준의 싱크탱크를 만들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워싱턴DC에서 두세 달만 생활하다 보면 다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국가 백년대계를 마련하는 제대로 된 정책대안의 산실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욕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워싱턴 곳곳에서 거의 매일 열리는 것이 싱크탱크 포럼이다. 미국 내의 문제는 물론 전 세계 현안들이 논의되는 장(場)이다. 싱크탱크는 워싱턴이란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상징적 요소 중 하나다. ‘아이디어 산업(Idea Industry)’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세계에 구체화시킬 수 있는 파워의 현장이 워싱턴 싱크탱크다.
   
   
   싱크탱크의 두 가지 요소
   
   정치적·종교적 중립성과 정부로부터의 독립. 워싱턴에서 제대로 된 싱크탱크가 되기 위한 두 가지 요소다. 그 같은 기준으로 봤을 때 대략 200여개의 싱크탱크가 워싱턴 권역에 존재한다. 이들 조직은 미국 정부로부터 세법 501(C)조의 대상이 된다. 정책제안과 관련된 돈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의미다. 워싱턴 싱크탱크에 기부를 할 경우, 기부자는 100% 세금감면을 누린다. 싱크탱크도 받은 기부금에 대해서는 세금을 안 낸다. 공공의 이익을 창출해내는 곳에 대한 일종의 특혜다. 만약 싱크탱크가 중립성·독립성에서 어긋날 경우 501(C)조 혜택도 사라진다. 특정 이익집단의 사용화, 관(官)을 위한 어용화가 될 경우 혜택도 사라진다는 의미다. 워싱턴 싱크탱크 중에는 다른 싱크탱크의 운영자금과 활동내역만 감시하는 전문 싱크탱크도 있다. 어떤 싱크탱크가 가장 영향력이 강한지에 대한 조사도 동업자인 다른 싱크탱크에 의해 공표된다.
   
   싱크탱크라 불리는 조직은 한국에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워싱턴의 기준에 못 미치는 곳이 많다. 중립성과 독립성이란 점에서 엄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거철 표를 얻기 위한 조직이나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관변조직이 싱크탱크라는 포장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4월 초부터 워싱턴 싱크탱크들을 떠들썩하게 만든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 사태는 싱크탱크를 대하는 한국식 정서를 보여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갑(甲), 싱크탱크는 을(乙)이라는 낡은 관념이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한미연구소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순간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한미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가 청와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던진 장면에서 우선 놀랐다. 갈루치 이사장은 지난 4월 9일 “한국 정부의 ‘전적으로 부적절한 간섭’을 거부하고 5월에 연구소 문을 닫을 것”이라 밝혔고 실제 한미연구소는 오는 5월로 폐쇄할 것임을 선언했다. 갈루치 이사장은 지난 4월 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너무 기뻤고 영광스러웠다. 뭐가 진짜 (지원을 중단한) 이유인지 정말 묻고 싶다”며 청와대를 겨냥했다. 한국에서 북핵 특사로 잘 알려진 갈루치는 워싱턴의 대표적인 대화파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외교관 출신답지 않게 작심을 하고 청와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린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놀란 것은 한국 정부가 한미연구소에 대한 20억원 지원 중단을 결정한 시기다. 신년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불과 2~3개월 전에 지원 중단 통보를 했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워싱턴의 관행으로 보면 싱크탱크에 대한 기부금 중단은 보통 2년, 최소한 1년 전에 통보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게 약속이고 관행이다. 서로 마음의 정리도 하고, 싱크탱크 관계자들에게 다음 취직 자리를 알아보는 시간을 배려해준다는 의미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국제적인 기준에서 움직이는 조직들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기부금으로 움직이는 곳들도 많다. 보유자산이 10억달러 이상, 1년 예산이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곳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한미연구소에 지원해온 연간 20억원, 즉 180만달러는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워싱턴 싱크탱크에 기부를 하는 나라는 그것을 통해 뭔가를 얻기 원한다. 워싱턴 싱크탱크들도 돈을 받는 대신 기부자들에게 워싱턴만이 가진 네트워크와 파워를 제공해준다. 싱크탱크들은 기부금을 받지만 조직 운영에 관한 주도권은 자신들이 쥔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사나 정책 방향에 대한 기부자의 간섭과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싱크탱크의 생명력인 중립성·독립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연구소 사태는 일본이 워싱턴 싱크탱크들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대비된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워싱턴 싱크탱크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하지만 워싱턴 기준에 100% 맞춘다. 기부금만을 내고 나머지 일에는 불개입이 원칙이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워싱턴에서 가장 활발한 외교정책 전문 싱크탱크 중 하나다. 마이클 그린 일본 데스크 소장은 아시아 외교안보 정책에 관한 최고전문가 중 한 명이다. 이 연구소에는 일본의 기업들이 앞다퉈 기부를 한다. 일본 각 조직에서 파견된 연구원도 많다.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르내리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의원도 CSIS 연구원 출신이다. 그러나 CSIS 일본 데스크는 항상 일본 문제만 다루지는 않는다. 한국과 중국 심지어 인도, 호주 문제도 다룬다. 일본에서 나오는 기부금으로 중국인 연구원도 초대한다. 일본 기부자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인사나 연구 주제 선정에 개입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 2015년 워싱턴 사사가와재단이 주최한 연례 포럼에 참석한 아베 총리. photo 사사가와재단

   돈만 내고 관여 안 하는 일본
   
   일본은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워싱턴 싱크탱크들을 지원하고 있다. 싱크탱크 내 정책 전문가들과의 인적교류가 핵심이다. 워싱턴 일본 대사관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는 파티가 주 무대다.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부정적 글이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곧바로 워싱턴 주재 대사나 담당 공사가 싱크탱크 관계자와 만난다. 왜 그런 글이 나왔는지 묻고 대화를 하면서 접점을 찾아간다. 일본 특유의 네마와시(根回し), 즉 주변을 돌면서 천천히 안으로 진입하는 식이다. 대사관만이 아니라 싱크탱크에 기부금을 내는 기업, 신문·방송사, 대학, 정부 외곽 단체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한다.
   
   한국에서 ‘우익’으로 통하는 사사가와(笹川)재단은 워싱턴 싱크탱크의 큰손이다. 워싱턴에 자체 사무실도 갖고 있다. 키신저재단과 카터재단 등 사사가와의 도움을 받는 싱크탱크들도 많다. 19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김일성과의 회담은 사사가와의 돈과 네트워크로 이뤄졌다. 그러나 사사가와재단이 자신이 지원하는 싱크탱크의 인사나 정책에 개입하는 일은 없다.
   
   싱크탱크에 관한 일본 최고 전문가이자, 헤리티지재단 연구원 출신인 요코에 구미(橫江公美) 도쿄 도요대학(東洋大学) 교수는 이번 한미연구소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싱크탱크에 대한 정부의 지원 중단은 있을 수 있다. 기부자의 의도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가거나, 업무능력에 대해 의문이 들 경우 기부 중단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 회계연도에 들어가기 직전의 기부 중단은 극히 드물다. 관계를 끊을 경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준다. 워싱턴 싱크탱크는 정책만이 아닌, 서로간의 신뢰관계에 기초한 지식인 살롱과 같은 곳이다. 수직관계에 기초한 고용 혹은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다. 인사나 정책 방향에 대한 관여는 절대금물이다. (한미연구소 사태는) 싱크탱크가 뭘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데 따른 인식 부족에서 온 듯하다.”
   
   특히 요코에 교수는 싱크탱크 프로젝트 개설과 관련한 ‘워싱턴 상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해하기 쉬운데, 기부자의 돈에 의해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싱크탱크 이사회가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기부자가 지원하는 식이다. 돈이 아니라 머리가 우선이다. 따라서 기부자의 돈이 끊어진다 해도 이사회가 원한다면 다른 기부금을 통해 프로젝트 자체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 노스’가 한국 정부의 지원 중단에도 계속 활동하기로 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요코에 교수는 강조한다.
   
   워싱턴 싱크탱크에 대한 일본의 지원은 한번 시작하면 거의 끝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미연구소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이 12년간 이어졌다고 하지만 일본의 경우 30년 넘게 지원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특히 일본은 각종 세심한 프로그램을 통해 질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지원을 한다. 보수계 싱크탱크에서 뽑은 공화당 청년 리더들을 초청해 아시아 필드 스터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필자가 아는 한 공화당 청년 리더들은 10여년 이상 일본 각 도시를 돌면서 ‘친일’ 필드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현지의 민박에 머물며 일본을 피부로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한다.
   
   워싱턴은 좁다. 워싱턴에 한국 문제 전문가라 불릴 만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10여명에 불과하다. 한미연구소 사태에서 드러난 한국 정부의 태도는 워싱턴 싱크탱크 동업자 모두에 대한 도전이다. 이번 사태로 한국이 워싱턴 싱크탱크에 진입하기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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