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9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6월 지방선거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남북 관계가 호전되면서 여권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곧 당선’이라는 섣부른 호언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물밑에서는 오는 8월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되기 위한 중진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동료 의원 챙기는 당대표 후보들

민주당에서 현재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김두관 의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진표·설훈·송영길·이인영·이해찬 의원, 최재성 전 의원(가나다 순) 등이다. 일부 의원들은 최근 동료 의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의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다. 한 의원은 동료 의원들 생일을 일일이 챙겨가며 자신의 얼굴과 해당 의원의 얼굴이 같이 그려진 케이크를 잇따라 보내 당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 전당대회가 석 달여 남은 상황에서 공식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없지만 물밑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거론되는 후보들 중 상당수는 주변의 적극적 권유에도 아직 결심을 못한 경우도 있고, “당이 원한다면 출마를 생각해보겠다”는 입장을 주변에 전한 경우도 있다. 자천, 타천으로 당대표 도전 가능성이 제기된 인물 중에 “출마 의사가 없다”고 못 박은 사람이 없어, 당내에서는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어 당대표에 관심을 갖는 여권 인사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한때 당내에선 현 추미애 대표의 연임 가능성까지 제기됐을 정도. 그러나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추 대표의 실제 심경이 어땠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내 분위기가 좋은 상황에서 그런 말들이 오갔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추 대표가 실제로 연임에 도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당대표 후보군 중에 유일하게 현역 의원이 아닌 최재성 전 의원도 지난 3월 말 서울 송파을 재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당대표에 도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는 질문을 받고는 “정권교체보다 정권 재창출이 훨씬 더 힘든 길이다. 어떤 일이 요청되거나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었다.

안정론과 선명론, 당심은 어느 쪽으로?

당내에서는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지도부의 색깔이 향후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 많다. 관건은 안정성과 선명성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다. 낮은 지지율에 고전하지만 국회에서는 과반 이상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야당과 맞서 싸우기보다 이들과 적극적으로 타협해가면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를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입법 성과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여권 전반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활용해 야당을 더 강하게 압박해 2020년 총선에 대비해 확실한 우위를 다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른바 안정론과 선명론이다. 안정론은 민주당이 집권 여당 2년 차를 맞게 되는 만큼 기존의 태도에서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안정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야당과의 연대는 물론 청와대와 논의해 연정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반면 선명론은 민주당이 야당 시절부터 키워왔던 투쟁력을 강화하자는 쪽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 적폐청산 기조와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보수 야당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중도 성향으로 상대적으로 친문 색채가 덜한 인사가 당대표가 되면 안정론에 힘이 실리고, 운동권 출신이거나 친문 성향이 강한 인사가 당대표가 되면 선명론에 무게가 쏠릴 수밖에 없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현재 당내에선 여러 가지 의견이 혼재돼 있는데 친문 진영에서 오히려 안정론을 주장하며 그에 걸맞은 후보를 거론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물론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을 겨냥해 강성 인사가 당대표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상당하다”고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집권 1년 차에는 적폐청산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기조였고 지금은 북한 핵 문제가 순탄하게 풀려가는 형국이라 별다른 우려가 없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실질적인 국정 운영의 성과를 국민들이 체감해야 할 시점”이라며 “보수 야당을 포함한 야권 전체를 아우르면서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삼을 만한 포용력을 지닌 인사가 당대표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 재선 의원은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보수 야당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협조할 가능성은 별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어차피 이번 당대표는 2020년 총선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니 보수 진영과 선명하게 각을 세우며 대중적으로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차기 당대표는 중도 사퇴하지 않을 경우, 2020년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당내 관심도는 더욱 높다. 당내 일각에서는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다음 총선 공천 과정에서 대거 약진하면서 기존 의원들이나 지역위원장들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일부 지역구에서는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이 그런 계산을 하면서 공천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공정한 총선 공천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차기 당대표에게 있는 것이다.

차기 당대표, 청와대에 할 말 할까?

그래서 당내에서 주목하고 있는 또 한 가지 부분이 차기 당대표가 만들어갈 당청 관계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집권 여당이 청와대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집권 초 적폐청산과 외교·안보 사안에 국정 운영의 중심축이 쏠리면서 민생 입법과 직결된 당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아졌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국민들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국정 운영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국회 입법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정부가 국회에 요청한 추가경정예산안도 야당의 비협조로 한 달째 표류 중인 상황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청년 일자리 문제와 구조조정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대책이 담긴 추경이 하루속히 확정돼 집행되도록 행정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여러 사업이 금년에 집행을 기다리고 있고 추경안이 통과 안 되면 필요한 예산 집행을 더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국회에서 추경 관련된 논의를 시작해 달라는 부탁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린다”고 했다.

차기 당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때로 청와대에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정치권의 이슈 전반을 청와대가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당이 개입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을 좀 더 마련해줘야 야당의 협조를 끌어낼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당청 관계가 가장 큰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은 2020년 총선을 앞둔 공천 국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신(新)친문 인사들의 국회 입성을 놓고 차기 당대표와 청와대 측이 갈등을 빚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누가 당을 이끌게 되든 청와대와 신속하고 유연하게 소통하면서 당과 균형점을 잘 찾는 것이 핵심 역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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