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 송영무 국방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왼쪽 두 번째부터) 등이 연평도를 찾아 주민들과 NLL 관련 간담회를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5일 송영무 국방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왼쪽 두 번째부터) 등이 연평도를 찾아 주민들과 NLL 관련 간담회를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남북) 공동어로든 평화수역이든 NLL(북방한계선)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NLL은 완전히 남북관계가 달라지고 평화협정 체결하면 모르겠지만 그전에는 NLL을 손대지 않습니다.”

지난 5월 5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과 함께 연평도를 찾아 주민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 장관은 또 “북이 판문점 선언을 하면서 북방한계선(NLL)을 그대로 썼고 북이 (NLL을) 인정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태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NLL을 인정하지 않아왔고 이에 따라 NLL이라는 표현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관영매체가 지난 4월 28일 판문점선언을 보도하면서 극히 이례적으로 우리 측 발표 문구대로 ‘서해 북방한계선’을 그대로 표기해 관심을 끌었다. 국방부는 “앞으로의 장성급 회담 등을 통해 확인해봐야 NLL 인정 여부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4개 부처 장관의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북도서 합동 방문은 정부 수립 이래 초유의 일이어서 정부가 NLL 평화수역 추진에 빠른 속도를 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군 안팎에선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NLL 평화수역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지만 남북한의 입장 차이로 불발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남북은 2007년 2차 정상회담 때도 서해 NLL에서의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평화수역 조성에 합의했으나 북측은 기준선으로 NLL 대신 남쪽에 일방적으로 선포해둔 ‘서해 경비계선’(우리 측으로 최대 20여㎞까지 남하)을 고집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우리의 ‘NLL 중심으로 남북 등면적 공동어로수역안’에 동의한다 해도 안보 위해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김성만 전 해군 작전사령관은 언론 기고를 통해 “북한에선 해군이 해양경찰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북한 주장대로 해군력을 빼고 경찰력만으로 경비를 서게 된다면 결국 북한 해군만 우리 수역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라며 “평화수역은 서해 5도를 고립시키고 수도권 서쪽(인천항·평택항, 인천공항) 바다가 북한군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평해전 등을 겪으면서 NLL을 지키기 위해 장병들이 희생됐던 해군은 특히 NLL 평화수역 및 공동어로수역 추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정부와 송 장관이 NLL 고수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향후 장성급 회담 등 후속 논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선언 이후 국방부와 각 군은 NLL 문제 외에도 앞으로 몰려올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미·북 정상회담까지 무난히 끝나면 군사적 신뢰구축 단계를 거쳐 군비통제(군축)까지 이어지는 쪽으로 진도가 나갈 수 있다고 본다”며 “군 입장에선 쓰나미와 같은 안보 상황의 일대 변환을 맞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특히 육군은 병력 및 장성 감축, 복무기간 단축 등 ‘국방개혁 2.0’에 이어 삼각파도를 얻어맞게 됐다는 분위기다. 우선 판문점선언에서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함에 따라 DMZ에서의 GP(최전방 초소) 철수 등 긴장완화 조치가 육군의 현안이 될 전망이다. 현재 DMZ 내에서 북한군은 160여개, 한국군은 60여개의 GP를 각각 운용 중이다. 양측이 똑같이 GP를 철수시킨다 해도 현재의 철책선 배치 구조로는 우리 측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북한군은 철책을 아예 비무장지대 안으로 1∼1.5㎞나 전진시켜 ‘추진철책’을 설치해놨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상 남북 양측은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씩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그 끝부분(남·북방 한계선)에 철책을 설치토록 돼 있는데 이를 위반한 것이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5대 게임체인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5대 게임체인저는 전천후·초정밀·고위력의 미사일 전력, 적의 중심부(평양 등)를 단기간 내 석권할 수 있는 고도의 정보·기동성과 치명적 화력을 보유한 전략기동군단, 적 지휘부에 대한 제거(참수)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임무여단 개편을 비롯한 특수전 전력 강화, 드론과 로봇을 결합한 드론봇 전투단, 전투원의 전투수행 능력을 대폭 강화해주는 ‘워리어 플랫폼’ 등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이 중 이른바 ‘참수작전 부대’로 불리는 특수임무여단 개편, 전략기동군단, 고위력 미사일 등은 수정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병력감축 등에 대비한 워리어 플랫폼과 드론봇은 안보 상황 변화와 무관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국방개혁 2.0’도 전면 수정?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송영무 국방장관이 올해를 ‘국방개혁 원년’으로 삼고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 2.0’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냐다. 송영무표 국방개혁은 크게 군구조, 국방운영, 병영문화, 방위산업 등 4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북한의 전면전 도발 시 육군 전략기동군단과 해병대 등을 동원해 평양을 조기 점령하고 전쟁을 일찍 종결하겠다는 신작전 개념도 송영무표 국방개혁의 ‘대표 상품’이다. △국방부 직할부대 축소(27→10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2022년까지 병력 감축(61만8000→50만명, 육군병력만 11만8000명 감축) △장군 정원(현재 436명) 70~80여명 감축 △군 복무기간 단축(육군·해병대 기준 21→18개월) 등도 대표적인 국방개혁 사안이다.

이 중 병영문화, 방위산업 등은 남북관계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겠지만 군구조, 작전계획 등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3축 체계(킬 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체계)도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폐기하는 단계로 간다면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5월 11일 국방개혁안 청와대 보고가 군내에선 초미의 관심사였다. 군내에선 판문점선언에 따라 ‘국방개혁 2.0’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청와대 보고 시기를 미·북 정상회담 이후로 늦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군 수뇌부 협의 끝에 “아직 북한의 비핵화 등에 대한 가시적 변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군 입장에선 기존 국방개혁의 골격을 유지하는 게 맞다”며 예정대로 보고키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선 미·북 정상회담이 별 탈 없이 끝날 경우 청와대와 정치권 일각의 ‘국방개혁 2.0’ 전면 수정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송 장관이 이런 요구와 군의 입장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갈지 주목된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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