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 4일은 중국 최고학부 베이징대학의 개교기념일이다. 이 대학은 1898년 7월 3일 ‘경사(京師)대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1912년 교명을 ‘베이징대학’으로 바꾸었다. 1919년 일본의 산둥(山東)반도 점령에 항의하는 5·4운동이 벌어지자 시위의 핵심이었던 베이징대학은 개교기념일도 5월 4일로 바꾸었다.

지난 5월 4일 베이징대학은 서울대 성낙인, 영국 옥스퍼드대 루이스 리처드슨, 미국 예일대 피터 샐러비, 일본 도쿄대 마코토 고노카미 총장을 비롯한 전 세계 44개 대학 총장을 초청해서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린젠화(林建華) 총장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우선 대학을 대표해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와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틀 전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께서 학교 시찰을 와서 베이징대학이 민족 해방과 국가 건설에 탁월한 공헌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총서기는 연설을 하면서 특히 청년들이 홍곡의 뜻을 지니고 분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벌어졌다. 시진핑 총서기가 베이징 대학생들에게 가져야 한다고 당부한 ‘홍곡(鴻鵠·기러기와 고니)’의 뜻은 당연히 ‘훙후(hong hu)’라고 읽어야 한다. 그런데 린젠화 총장이 ‘훙하오(hung hao)’로 잘못 읽은 것이다. 중국 중학교 과정에 나오는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제비와 참새가 어찌 높이 나는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의 홍곡을 비록 화학박사이기는 하지만 중국 최고학부 베이징대학의 총장이 잘못 읽은 것이다. 좌중의 중국 대학 총장들과 베이징대 동문과 교수, 학생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림이 일었다.

린젠화 총장은 다음날 오후 베이징대 BBS를 통해 장문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개교기념 행사에서 홍곡을 잘못 읽은 것은 실제로 내가 이 글자의 발음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내가 이 글자를 잘못 읽은 데 대해 학생 여러분들은 실망했겠지만 나의 문자 실력이 이 정도로 낮다는 점이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린 총장은 자신의 그런 문자에 대한 무식함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진행된 문화대혁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됐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수년간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마오쩌둥(毛澤東) 어록을 외우라고만 했습니다. 나의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도 마오쩌둥 문선(文選)의 주석을 읽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뿐입니다. 지식욕이 제일 강한 열몇 살 때 다른 책은 읽지 못하고 마오쩌둥의 모순론과 실천론을 달달 외웠으니 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이런 사상들이었습니다.… 나는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7년에 다시 치르기 시작한 가오카오(高考·대학입시)에서 작문은 80점을 받았지만, 어휘와 문법은 겨우 20점을 받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베이다(北大·베이징대학)에 입학했지만 중국어 어휘와 문법을 공부할 시간은 없었고, 영어 공부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린 총장은 “앞으로 그런 착오를 하지 않도록 노력은 하겠지만 문자 공부란 것이 하루이틀에 되는 것도 아니고 나 같은 연령에 도달한 사람이 단기간에 문자 수준을 올린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를 비롯한 유력 신문들은 린 총장이 개교기념 축사에서 홍곡의 한자를 잘못 읽은 사건을 린 총장이 온라인으로 발표한 사과문 전문을 붙여서 보도했다. 1955년생인 린 총장은 내몽골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죽고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나서야 대학에 들어왔다. 당시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대학입시를 부활시킨 첫 해 베이징대학에 입학했다. 린젠화는 베이징대 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를 마치고 1988년 독일로 유학가서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를 거쳐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통해 무기체 고체화학과 무기체 재료공학 분야의 권위자가 됐다. 귀국 후 베이징대로 돌아와 여러 보직을 맡다가 지방 명문 충칭(重慶)대학과 저장(浙江)대학 총장을 거쳐 2015년 모교인 베이징대의 총장으로 임명됐다.

젊은 교수들 항의 사표 파문

요즘 베이징대는 안 그래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얼마 전 대학 소속 연구소 원장급 3명의 젊은 교수가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3월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을 한 데 항의해서 사표를 내고 성명을 발표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표를 낸 세 교수는 생명과학원 교수 겸 위안페이(元培)연구원 부원장 리천젠(李沈簡·47), 데이터연구원 원장 어웨이난(鄂維南·54), 동아시아 연구원 주임 장쉬둥(張旭東·52). 이들은 모두 베이징대 출신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들이다. 각각 미 퍼듀대학에서 신경생물학과 분자유전학으로, 미 캘리포니아 대학 LA분교에서 수학으로, 미 듀크대학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이들 3명의 인재급 교수 가운데 대표격인 리천젠은 지난 3월 22일 오후 온라인으로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개 같은 선비가 되기를 거부하자(挺直脊梁 拒做犬儒)’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성명의 주요 대목은 이랬다.

“베이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나는 차이위안페이(蔡元培) 초대 총장을 기리고자 한다. 차이 총장은 우리 베이다 사람들에게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개 같은 선비가 되기를 거부하라’고 가르치셨다. 젊은 시절 청왕조의 관원들을 암살하기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 차이 총장은 베이다 총장이 된 후 여덟 차례에 걸쳐 불의에 항거하여 총장직 사표를 내는 의기를 보여주셨다.… Freedom is never free(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자유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골기(骨氣)를 가진 사람들이 무거운 대가와 바꾼 것이다. 베이다 선배들은 그런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후스(胡適)는 평생 장제스(蔣介石) 국민당의 전제를 용감하게 비판했다. 마인추(馬寅初)는 마오쩌둥 앞에서도 자신의 학술 관점을 바꾸지 않았다.”

리천젠의 격문은 시로 마무리됐다.

‘흑암에서 광명이 나온다/ 절망에서 희망이 솟아난다/ 의문이 있는 곳에 믿음이 생겨난다/ 미움이 있는 곳에서 사랑이 나온다/ 베이다 교수와 학생들이여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개 같은 선비가 되기를 거부하자’.

리천젠의 격문은 발표된 지 얼마 안 가 인터넷 검열 수단으로 삭제됐지만 이미 베이징대 교수와 학생들은 대부분 읽은 뒤였다.

이런 베이징대의 분위기 때문인지 시진핑 당 총서기는 지난 5월 2일 베이징대를 시찰한 후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했다.

“베이다의 개교 120주년을 축하합니다. 5·4운동의 진원지는 베이다입니다. 5·4운동의 정신은 애국·진보·민주·과학의 네 가지입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새로운 장정(長程)에 나선 지금, 베이다 사생(師生)들은 5·4정신을 발양해서 민족과 국가, 인민을 위해 커다란 공헌을 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꿈을 좇는 사람,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홍곡(鴻鵠)의 뜻을 지니고 분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린젠화 베이징대 총장 ⓒphoto 뉴시스
린젠화 베이징대 총장 ⓒphoto 뉴시스

칭화대와 비교되는 베이징대

베이다와 이웃한 칭화(淸華)대 출신인 시진핑은 이날 왕후닝(王滬寧)을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몇 명을 대동하고 베이징대학 시찰을 했고, 5월 4일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는 정치국원 겸 국무원 부총리 쑨춘란(孫春蘭)을 보냈다. 시진핑은 베이징대 개교기념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식’에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과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을 대동하고 참석해서 장문의 연설을 했다.

“동지들, 마르크스주의는 세계를 심각하게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중국도 심각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중국공산당 탄생 후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 기본 원리와 중국 혁명, 건설의 실제를 결합시켰습니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 기본원리를 현실과 결합시켰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이 중국의 대지 위에 생동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베이징대 개교 120주년 기념식이 열린 다음날 베이징대 국제회의장이라 할 수 있는 ‘영걸(英傑)센터’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인류 운명 공동체 건설’을 주제로 한 대규모 국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인류 운명 공동체 건설’은 지난해 10월 제19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임기 5년의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의 국제사회 역할을 압축한 용어. “앞으로 인류 운명 공동체 건설은 중국이 책임지고 해나갈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베이징대 구내에 세워진 대규모 세미나 안내 보드에 열거된 세미나 제목들 가운데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과 21세기 세계의 사회주의’라는 것도 있었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를 대표해서 베이징대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쑨춘란 정치국원 겸 부총리는 축사를 통해 시진핑 총서기가 지난해 10월 총서기로 선출될 때 제시한 ‘쌍일류 프로젝트’에 대해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쑨춘란이 강조한 ‘쌍일류’ 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중국 내 100여개 중요 대학들을 세계 일류 대학으로 키우고, 44개 학과를 세계 일류 학과로 배양해서 오는 21세기 중반에는 중국을 세계 일류의 교육 강국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항상 실무적인 칭화대의 전통과는 달리 비판적인 정신을 기르는 것을 중요시하는 베이징대는 앞으로 2050년까지 이른바 쌍일류 대학에서 빠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2018년 봄, 베이징대는 학교 전체가 뭔가 어수선했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ㆍ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ㆍ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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