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부터 나흘간 이뤄진 김정은의 베이징(北京) 방문과 5월 7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김정은의 다롄(大連) 방문은 국제사회에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다. 중국 외교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과 조선 관계는 정상국가 관계”라고 밝히지만 정상국가 사이의 외교 관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행태를 이번에도 보여주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2012년 11월 8일부터 1주일간 개최된 제18차 당대회에서 총서기로 선출되고, 이듬해 3월 5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임됐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7일 김정일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틀 뒤인 12월 9일 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일 사망 발표문에서 “존경하는 김정은 지도자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자”라고 표현함으로써 공식적인 후계자로 발표됐다. 별다른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등장해서 북한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뒤 6년5개월 동안, 그리고 시진핑이 당권을 장악한 뒤 5년6개월 동안 서로 한 번도 베이징과 평양을 오가지 않았다.

양국이 소원했던 이유는 북한이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2년 11월에 당 총서기에 취임하고, 2013년 3월에 국가원수인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이 “중국의 국가 권력 교체기에 핵실험을 하다니…”라면서 불같이 화를 낸 뒤 중국공산당 당 총서기에 선출되면 으레 평양을 방문하던 관례를 깨고 김정은을 만나러 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과 북한의 관계와 달리 시진핑은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받아들이고, 2014년 7월에는 서울을 방문함으로써 김정은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와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함을 과시했다.

6년간 김정은과 썰렁한 관계를 유지하던 시진핑이 이번에 김정은의 방중을 받아들이면서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이 김일성에게 하던 대접을 거의 되살려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를 선언한 이후 시진핑이 느끼던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가 얼마나 컸던가를 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진핑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는 듯 김정은은 시진핑과의 베이징 회담을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조선반도 형세가 급속히 진전되고, 중요한 변화가 적지 않게 발생한 데 대해 정의(情義)상으로나 도의(道義)상으로나 제때에(중국어로는 ‘及時’라고 번역됨) 시진핑 동지에게 통보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자신의 베이징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김정은은 회담이 끝난 후 만찬 연설을 하면서도 “내가 중국을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했더니 방문을 받아주어 감사하다”라는 말을 했다.

김정은과 시진핑의 베이징 회담 한 달 뒤인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의 판문점 회담이 이뤄지고, 도보다리 위에서의 독대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불과 열흘 뒤인 5월 7일부터 이틀간 시진핑과 김정은은 베이징과 평양의 가운데쯤에 있는 랴오둥(遼東)반도의 다롄에서 2차 정상회담을 했다. 1차 정상회담 이후 불과 1개월 남짓만의 일이었다. 부랴부랴 마련된 것으로 보이는 다롄 회담이 김정은과 시진핑 어느 쪽의 요청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북한과 중국 외교당국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롄 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의 도보다리 독대 회담을 흉내 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 다롄 해안가 산책이 연출된 점을 보면 김정은이 “정의상 도의상 남조선 대통령과의 독대에 대해 통보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해서 이루어졌을 수 있다. 또 문재인·김정은 도보다리 독대를 보고 ‘차이나 패싱’에 대해 더욱 강하게 우려한 시진핑 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물론 두 가지 이유가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롄 회담에 시진핑을 수행한 중국 측 인사들이 시진핑의 국제문제 책사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과 외교 담당 국무위원 출신의 양제츠(楊潔篪) 정치국원, 왕이(王毅) 외교부장, 그리고 시진핑의 집사 격인 딩쉐샹(丁薛祥) 정치국원 등이었고, 북한 측 수행원들이 이수용 노동당 국제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 부장, 이용호 외무상,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었던 점이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주로 문재인·김정은 사이의 판문점 회담, 특히 도보다리 회담을 분석하고, 6월에 이뤄질 예정인 김정은·트럼프의 진터회이(金特會)에 대비하기 위한 회동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즉 김정은·시진핑의 다롄 바닷가 산책은 문·김의 도보다리 회담의 효과를 지우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외교 당국은 문재인·김정은의 도보다리 독대에 집착하지 말고, 시진핑과의 다롄 바닷가 산책을 통해 변화된 김정은의 의사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에 따라 김·트럼프 회담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지난 5월 7일 중국 다롄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오른쪽)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7일 중국 다롄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오른쪽)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이번 베이징·다롄 회담과 같은 긴급 회동이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1989년 6월의 천안문사태로 국내적 혼란과 국제적 고립에 위기를 느낀 당시 중국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가 개최되기 하루 전인 1989년 11월 5일 열차 편으로 베이징역에 도착한 김일성에게 자신이 5개월 전에 후계자로 발탁한 장쩌민(江澤民)의 손을 잡고 열차로 올라가 소개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이때 덩샤오핑은 김일성에게 “앞으로는 이 장쩌민 동지와 중요 문제를 상의하라”는 말을 했다고 장쩌민은 2006년 7월 출판된 자신의 전기를 통해 밝혔다.

1991년 10월에는 다음해에 이뤄질 한·중 수교의 기미를 간파한 김일성이 덩샤오핑에게 항의하기 위해 선양(瀋陽)을 긴급 방문했고, 2010년 8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당 총서기와 김정일은 장춘의 지린(吉林)성 국빈관에서 비공개 회동을 했다. 김정일은 이때 불과 26세의 김정은을 비밀리에 데리고 와서 후진타오에게 인사를 시켰다. 김정일이 사망 1년여 전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해두고 있었던 셈이 된다. 따져보면 김정은과 시진핑 사이의 이번 베이징·다롄 긴급 회동은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긴밀히 협의한다”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외교 당국은 중국과 북한 사이에 그런 비정상적 국가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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