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신임 원내대표(왼쪽)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손을 잡고 비공개 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신임 원내대표(왼쪽)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손을 잡고 비공개 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노동운동가 출신 원내대표가 집권여당과 제1야당을 함께 이끌고 있다. 지난 5월 11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당선되면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함께 여야 협상을 이끌고 있다. 나란히 3선 의원인 이들은 각각 민주노총(홍영표 원내대표)과 한국노총(김성태 원내대표)에 몸담았던 노동계 출신 인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드루킹 특검’ 관철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이던 김 원내대표를 찾아갔다. 김 원내대표의 손을 잡은 홍 원내대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 단식을 풀고 해결해가자”며 “국가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니 국회 정상화 방향으로 노력하자”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집권당이 야권을 포옹하고 배려해달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홍 원내대표의 당선 소식을 듣고 주변에 “홍 의원은 내 친구”라면서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을 보면 큰 틀에서 합의해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원내대표가 다녀간 뒤 김 원내대표는 9일째 이어오던 단식을 중단했다.

그 이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야는 결국 ‘드루킹 특검’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합의했고, 5월 14일 ‘드루킹 특검’과 추경을 18일 본회의에서 동시 처리하기로 하면서 국회는 42일 만에 정상화됐다.

물론 두 원내대표는 대화와 타협도 하지만 날카로운 설전을 벌일 때도 많다. 지난 5월 23일 김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비서진을 부르겠다고 하자 홍 원내대표가 “정치 장사”라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총괄하는 임종석 비서실장을 국회로 불러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확하게 보고됐는지 묻고 밝힐 것”이라며 “운영위 소집을 통해서 당사자인 송 비서관과 또 그를 조사했다는 민정수석실의 백원우 비서관도 부를 것”이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김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김경수 전(前) 민주당 의원이 직접적으로 개입된 정황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대통령의 문고리 역할을 하는 부속실 송 비서관이 연루된 마당”이라며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청와대나 수사를 하고도 청와대 실세 개입을 몰랐다는 경찰이나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장사를 그만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이 특검을 할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국회를 파행시키면서 고집을 부렸으면 이제 좀 특검을 하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 선거를 앞두고 유력후보 흠집 내기를 그만해야 한다”며 “거기서 나오는 게 무슨 몇억도 아니고 몇천만원도 아니고 200만원을 대선 전에 자연인일 때 받았다는 것 가지고 완전히 정치 공세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강하면서도 유연하다”

홍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각각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출신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홍 원내대표는 2009년 재보선을 통해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김 원내대표는 2008년 총선에서 당선됐다. 나이도 비슷하다. 홍 원내대표가 1957년생이고, 김 원내대표가 1958년생이다. 홍 원내대표는 대학을 다니다 노동운동에 투신해 대우자동차 용접공으로 취업했고 민주노총 출범 준비위의 핵심 인사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냈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통신 공중전화노조위원장, 한국노총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19대 국회에서는 두 원내대표가 모두 환경노동위원회에 소속돼 김 원내대표가 여당 간사, 홍 원내대표가 야당 간사를 맡아 노동 관련 법안과 정책을 조율하기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20대 국회에서 원내대표에 당선되기 전까지 환노위원장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노총 출신이기는 해도, 노동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인연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여야의 대표적인 노동 전문가로 숱한 협상과 논의를 해오면서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래서 벼랑 끝 대치 상태가 이어지기 일쑤였던 여야 관계가 과거와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날 선 비판을 주고받으면서도 물 밑에서 타협점을 찾기 위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만한 기본적 신뢰 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홍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의정 스타일이 “강하면서도 유연하다”는 평가를 듣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도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홍 원내대표가 겉으로는 강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19대 국회에서 환노위와 자원외교 국정조사 특위 등을 통해 상대 당과 대화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내는 능력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며 “게다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상황실장을 맡았을 정도로 여권 주류인 친문 진영의 핵심 인사라 더욱 대표성과 책임감을 갖고 야당을 대할 수 있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여러 강성 발언으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타협을 위한 승부수를 던져 홍준표 대표와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줘왔다”며 “이번 협상에서도 추경은 결국 정부의 입장을 받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드루킹 특검’을 상당한 규모로 출범시킬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만하다”고 했다.

노동계와 맞서고 있는 원내대표들

이들은 노동계 출신이지만 최근에는 노동계와 맞서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란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국회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정기 상여금과 숙식비 등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을 것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5월 내 산입범위 개편 논의를 끝낸다”고 합의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논의는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자 재계는 기본급과 직무수당 외 정기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 등도 산입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산입범위를 확대하면 실질임금 인상 효과가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가 결론을 내지 못하자 결국 국회 환노위에서 논의가 이어졌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위 임기가 4월에 새로 시작되기 때문에 다시 노사 간 논의를 하겠다”고 했지만 국회에서는 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노동계에서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을 향해 더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홍 원내대표는 민주노총 간부와 심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5월 21일 밤 국회에서 마주친 노총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과 논쟁을 벌였다. 김 부위원장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가 다시 노사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하자 홍 원내대표는 “8개월간 끌어놓고 이제 국회에서 하려고 하니까 또 시간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냐”고 했다. 김 부위원장이 다시 “민주노총·한국노총·경총이 합의해 6월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끝낼 수 있는데 경제 주체들을 믿을 수 없다는 건 국회가 오만한 거 아니냐”고 하자 홍 원내대표는 “내가 보기엔 민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인데 양보할 줄 모른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두 원내대표가 노동운동가 출신이라 관련 현안에 대해 더 전문적일 수밖에 없다”며 “노동 현안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판단을 밀고 나가는 경향이 더 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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