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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호]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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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김정은이 마지막까지 두려워하는 것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김정은이 마지막까지 두려워하는 것
▲ 지난 5월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는 김정은 위원장. photo 뉴시스
‘광장테스트(Town Square Test)’는 옛 소련의 유대계 반체제 인사 나탄 샤란스키(1948~)가 2004년 집필한 저서 ‘민주주의를 말한다(The Case for Democracy)’에서 제시한, 어떤 사회가 자유사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을 말한다. 누구든지 광장 한가운데로 나가 체포, 구금, 물리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자유사회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못 하는 사회라면 공포사회란 것이다. 샤란스키는 소련의 저명한 반체제 물리학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영어통역으로 일하다가 1977년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의해 반역과 간첩죄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그는 13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굴라크(gulag·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만 했다. 그는 1986년 2월 서베를린의 글리니케 다리에서 소련 스파이들과 교환되면서 자유를 찾았다. 그는 이스라엘로 이주한 후 부총리, 건설장관, 내무장관, 예루살렘 및 해외 유대인 담당 장관 등을 지냈다.
   
   샤란스키는 “북한 정권은 옛 소련보다 더욱 지독한 독재체제”라면서 광장테스트에 따라 북한을 공포사회로 분류했다. 그는 “북한에는 소수의 독재체제 확신범, 독재체제에 반대하면서도 이를 드러낼 수 없는 대다수의 이중사고자(Double Thinker), 존재가 미미한 체제 저항자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체제 확신범이 이중사고자와 체제 저항자를 억압하는 구도”라며 “북한의 이중사고자는 독재 체제를 회의적으로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밝힐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지적대로 만약 북한의 어떤 주민이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수령 독재체제를 타도하자고 외쳤다면 공개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갈 것이 분명하다. 물론 독재 타도를 주장한 주민의 말에 마음속으로는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동조하는 주민들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야말로 광장테스트를 적용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샤란스키가 책을 쓴 지 14년이 지난 현재 북한에는 이중사고자와 체제 저항자들의 숫자가 늘어났을까 아니면 줄어들었을까. 1990년대 중·후반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면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절부터 지금까지 탈북자들의 추세를 볼 때 이중사고자와 체제 저항자들의 숫자는 크게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고위 당 간부와 군 장교까지 탈북하는 것을 보면 체제 확신범들도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부 김일성과 부친 김정일에 이어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은 자신과 체제 생존을 위해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굶주린 주민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장마당(시장)을 활성화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조치가 이제는 김정은의 목을 비수처럼 겨누고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으로 자칫하면 정권 붕괴 등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빠질 것이 분명하고, 장마당이 늘어날수록 체제에 반감을 갖는 주민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으로선 ‘정의의 보검’이라는 핵무기를 포기할지 여부와 북한을 베트남 모델이든 중국 모델이든 어떤 식으로 개혁·개방할지 여부를 결단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 평안남도 안주의 장마당. photo Cap Anamur

   주민봉기와 군부쿠데타 가능성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을 선뜻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그 이유는 핵을 포기할 경우 체제 안전을 보장받더라도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핵 포기의 반대급부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을 받아들일 경우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은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주민봉기와 군부쿠데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김정은에 대한 정치적 위협은 외부에서만 가해지는 게 아니라 북한 내부에도 존재한다”면서 “만약 정권에 반발하는 주민봉기가 일어나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미국은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전혀 담보할 수 없으며 북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경제 개발과 개혁이 이뤄지면서 번영을 누리게 될 북한 주민들은 정치적 개혁 역시 갈망하게 될 것이며, 이는 바로 김정은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전 세계에서 주민들을 가장 철저하게 통제해왔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지난 6년간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자신에 반대하거나 체제를 부정하는 권력 엘리트 계층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 무자비하게 처형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이 크게 늘어나면서 김씨 3대 세습과 독재 체제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혁명은 대체로 절대적 빈곤이나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보다는 경제적 조건이 향상된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권의 폭정이나 부패가 극에 달해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졌을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토크빌은 오히려 상황이 개선될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물질적 조건이 호전될 때 혁명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진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토크빌의 역설(Tocqueville’s Paradox)’이라고 말한다. 북한에선 최근 들어 장마당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점차 개선되고 있고 통제가 느슨해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까지는 장마당에서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생활해왔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가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경제 지원을 할 경우 생활수준이 개선되면 3대 세습과 독재체제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정권이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한국산 제품 및 외국 영화 등을 담은 DVD와 USB 등을 강력하게 차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이른바 ‘장마당 세대’인 청년층을 중심으로 체제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500만명의 휴대폰 사용자
   
▲ 휴대폰 통화를 하고 있는 평양 여성. photo 위키커먼스
게다가 주목할 점은 휴대폰 사용자의 증가로 정보 유통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북한의 휴대폰 사용자는 무려 500만명에 달하고 있다. 북·중 접경지대에서 들어온 정보들이 북한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각 지역마다 휴대폰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인터넷 사용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대부분 인트라넷만 접속이 가능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프록시’(우회접속)를 통해 외부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은 국경지역에 전파방해 시설을 강화하고 도청과 감청 등을 통해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헤이즐 스미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학원(SOAS) 한국학센터 연구교수는 저서 ‘장마당과 선군정치’에서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를 이뤄낸 북한 주민들이 ‘변화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리비아 모델’ 하면 국민들에게 죽임을 당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몰락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주민봉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카다피는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제재 해제와 체제 안전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카다피는 국민들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철권통치를 고수했다. 2011년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 독재국가들에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면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졌고 리비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카다피는 군대를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에 맞서 반정부 시위대는 반군을 조직해 무장봉기했다. 결국 카다피는 반군에 사살되고 말았다. 이런 카다피의 최후를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경우 주민들의 봉기 등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비핵화에 합의하면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할 가능성이 높지만 앞으로 북한 내부에서 체제 위기가 발생할 경우 김정은을 보호해주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핵 포기에 따른 체제 보장과 인권은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총정치국장 교체 배경
   
   김정은은 최근 북한 인민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을 김정각에서 김수길 평양시 당위원장으로 교체했다. 총정치국장 인사는 지난 5월 17일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1차 확대회의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군사 정책과 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당 중앙군사위는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 이후 2년 만에 열렸다.
   
   군 총정치국은 북한군 간부들에 대한 인사·검열 등 통제권을 갖고 있으며 장병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책임진 군 핵심기관이다. 김수길은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수장인 최룡해 당 부위원장의 측근이다. 김수길은 정통 군 출신이자 총정치국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김정은 체제 들어 2013년 10월 중장(우리나라의 소장)이 되면서 총정치국 조직국 부국장에 올랐다. 당시 총정치국장은 최룡해였다. 김수길은 2014년 4월 군복을 벗고 북한의 수도 평양시를 총괄하는 당 위원장으로 4년간 근무한 뒤 이번에 별 2개를 추가하며 대장으로 승진하면서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됐다.
   
   김정은이 김수길을 총정치국장에 기용한 것은 군부를 철저하게 장악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군은 총참모부(우리나라의 합참에 해당)의 명령보다 총정치국의 결정을 더 중시한다. 총정치국의 권한은 군 지휘부뿐만 아니라 군단·사단·연대로 내려가도 당 조직과 정치위원의 권한은 부대장의 권한을 능가한다. 때문에 총정치국장의 교체는 상당한 함의(含意)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빈번하게 군 수뇌부를 물갈이해왔다. 북한군 내 서열 1·2·3위인 총정치국장·총참모장·인민무력상을 수시로 바꾸는가 하면, 장성들에 대한 승진과 강등도 밥 먹듯이 해왔다. 특히 군 장성들은 2015년 4월 김정은의 지시로 현영철 인민무력상을 처형시키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김정은은 처형 집행 장소인 강건군사종합학교에 현영철의 부하들은 물론 손자 등 가족 모두를 참관토록 했다고 한다. 또 극도의 수치감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한다며 옷을 벗겨 내세우도록 했다. 이처럼 잔인하게 처형한 것은 군부의 반란 또는 쿠데타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군부는 김정일 시대에 ‘선군정치’ 덕분에 승승장구해왔다. 군부는 김정은 시대에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에 따라 힘을 과시해왔다. 그런데 김정은이 병진노선 대신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노선을 선택할 경우 군부가 이에 반발하지 않고 김정은에 충성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북한 군부의 원로 세력이 김정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부 원로들의 경우 북한 권력에 대해 어느 정도 정치적 지분이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김정각(77) 전 총정치국장도 김정일 시신을 운구한 군부 원로다. 때문에 군부 원로들은 김정은의 군부에 대한 견제와 힘 빼기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군부의 소장파 장성들도 예산 및 인원 감축과 대우 하락에 대해 우려할 것이다. 이들은 앞에서는 복종하지만 경제적 이권을 박탈당하거나 특권 등이 축소될 경우 김정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위협받을 경우 동조 세력을 규합해 쿠데타를 시도할 수도 있다. 이들은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하면서 3대 세습과 독재체제에 반기를 들 수 있다. 마크 피츠패트릭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미국 소장은 “북한군의 많은 고위 간부가 숙청되고 일부가 처형되는 상황에서 장교들은 자신의 역할과 생명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권력이 당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군대가 수뇌부에 불만을 가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만6000명 규모의 974부대
   
   물론 북한은 노동당이 최우선인 일당 독재체제 국가다. 군부도 철저하게 당의 지배를 받아왔다. 북한군 내에는 당 조직들이 단위마다 들어가 있고 이런 당 조직들이 군부의 동향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게다가 쿠데타를 막으려고 북한 정권은 군부를 이중·삼중으로 감시·통제하고 있다. 연대장 이상 군 간부들의 경우 도청과 감청을 당하고 있다. 또 주요 부대들은 철저하게 상호 감시할 수 있도록 배치돼 있다. 대규모 부대의 이동명령을 내리려면 해당 부대의 정치·군사·보위 지휘관 세 명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하다. 군부의 핵심인 평양방어사령부와 호위사령부 및 보위사령부의 지휘부는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지방에 있는 부대들은 평양이나 전방 부대에 비해 통제가 느슨한 편이다. 이런 부대들의 지휘관들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특히 언제 숙청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핵심 측근이 목숨 걸고 암살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은 김정은을 최측근에서 경호하고 있는 2만6000여명 규모의 974부대를 두고 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이 탄 차량을 둘러싼 경호원들이 974부대 소속이다.
   
   북한 정권이 이처럼 ‘최고 존엄’의 신변 안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독재자의 딜레마(dictator’s dilemma)’ 때문이다. 개방으로 외부의 정보가 유입되면 독재 정권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현상을 ‘독재자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이 생존을 위해선 개방의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지만 이 경우 독재자의 권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이 전형적인 ‘독재자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의 악몽(惡夢)은 아마 핵 포기 이후부터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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