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끝!(Korean War to end!)… 미국과 그 위대한 국민들은 지금 코리아(Korea)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하게 될 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 동부 시각으로 4월 27일 오후 7시55분에 트위터에 남긴 말 때문에 중국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중국 없는’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할 경우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잃게 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과 체면 때문이다. 트럼프는 오후 7시41분에는 이런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짜증나는 몇 년간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끝에 남북한 사이에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언급도 중국의 속앓이가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번째로 ‘깜짝’ 정상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그 다음날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은과의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설명하면서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분명한 어조로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언급하자 중국 외교부는 5월 31일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우리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조속한 시일 내 전쟁상태 종결을 지지하고 있으며, 지구적(持久的)인 평화체제가 임시적인 정전체제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우리는 반도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이자 정전협정의 체결 당사자로서 그동안도 그래왔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응당한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자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Global Times)가 중국 지도층의 속내를 밝히고 나섰다.

“우리가 보기에 조·미·한(朝美韓) 3국이 종전선언이라는 것에 서명한다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선언을 통해 3국이 앞으로 어떠한 적대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종전선언이 반도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며, 법적으로도 모자라는 점이 있어 불확실성을 내포한 선언이 될 수 있다. 우리 중국은 그런 선언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지지할 것이지만, 그 선언에 대해 장기적인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그러면서 합법적인 한반도 정전상태를 종결시킬 종전협정에는 중국이 서명해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남·북·미 3국 간 정전선언을 추진하는 한국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반도의 지정학적 정치 형세는 대단히 미묘해서 늘 오락가락해 왔다. 영구적인 평화 협의를 하려면 보다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중국이 그 협정에 서명을 해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며, 이 점을 각 당사자들은 참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 여론은 조·한·미 3국이 종전선언을 한다면 그것은 ‘차이나 패싱(환구시보는 中國被邊緣化로 표현)’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말들이 과도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반도의 일에 대해 강력한 현실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중국의 태도는 지정학적 각도에서나 유엔의 틀이라는 각도에서나 반도 문제의 구조에 언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은 지금은 말을 안 하고 있지만, 늘 오락가락하는 한국보다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만은 말해 두고 싶다.”

지난 6월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노동당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6월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노동당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해 초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계속해서 나빠져왔다. 워싱턴에서는 ‘아메리카 더 퍼스트’가 큰소리로 울려나오고, 베이징에서는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주장하는 시진핑(習近平)의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노래가 나왔다. ‘중국이 주관하는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이 매일같이 중국 관영 미디어를 채우는 동안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대화 채널인 ‘전략과 경제 대화’는 슬그머니 실종됐다. 지난 3월 25일부터 나흘간 이뤄진 김정은의 베이징(北京) 방문과 5월 7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김정은의 다롄(大連) 방문도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2012년 당 총서기 취임 이후 6년간 김정은과 썰렁한 관계를 유지하던 시진핑이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을 받아들이면서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이 김일성에게 하던 대접을 거의 되살려 극진하게 대접하는 ‘오버’를 연출한 점에서도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를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한 관계 개선을 선언한 이후 시진핑이 느끼던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가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그런 시진핑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는 듯 김정은은 시진핑과의 베이징 회담을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조선반도 형세가 급속히 진전되고 중요한 변화가 적지 않게 발생한 데 대해 정의(情義)상으로나 도의(道義)상으로나 제때에 시진핑 동지에게 통보해주는 것이 마땅했는데…”라고 자신의 베이징 방문 이유를 밝혔다. 이 역시 중국의 한반도 관련 정보가 제한적으로 변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한 대목이었다.

더구나 4월 27일 이뤄진 문재인·김정은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보다리 독대가 이뤄지자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부랴부랴 평양으로 달려가서 김정은·시진핑의 다롄회담을 만들어내면서 밝힌 “중국의 조선에 대한 5개항의 전력(全力) 지지”의 내용도 중국 외교당국이 느끼는 ‘차이나 패싱’에 대한 두려움을 잘 보여주었다.

왕이는 5월 2일 북한 외무상 겸 노동당 정치국원 이용호를 만나 “첫째 조선이 정세에 부합하는 발전의 길을 걷는 것을 전력 지지, 둘째 조선반도 정세에 최근 출현한 긍정적 변화를 전력 지지, 셋째 조선의 비핵화 노력 전력 지지, 넷째 조선의 합리적인 안전보장에 대한 관심을 전력 지지, 다섯째 조선반도 북남 간의 관계개선 전력 지지”를 내용으로 하는 ‘5개항의 전력 지지’를 전달했다.

항모 과시도 안 통하고

왕이의 평양 전격방문으로 이뤄진 5월 7~8일의 김정은·시진핑 다롄회담은 우선 왜 회담 장소가 다롄이냐는 점을 둘러싸고 다롄에서 있었던 중국 제2의 국산항모 진수식에 김정은을 초청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중국의 첫 번째 항모인 랴오닝함이나 랴오닝함을 좀 더 크게 만든 두 번째 항모에 대해 미국이 별로 위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정은을 다롄으로 초청한 이유가 항모라고 보기에는 미달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보다는 한반도에 인접한 중국의 해안도시에 다롄에서 시진핑·김정은이 회담을 함으로써 전 세계에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지분과 소유권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한 장소 선정이라는 평가가 더 타당해 보였다. 이는 중국 지식인사회에서 우세한 설로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미·북 회담 장소를 싱가포르로 결정한 것도 최근의 미·중 관계 악화가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 문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계속되는 불협화음을 내고 있고, 지난 6월 3일 윌버 로스 상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으로 진행된 3차 무역협상도 소득 없이 끝나 갈등이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의 ‘시 오브 트러블드 워터(Sea of troubled water)’인 남중국해 갈등의 파도는 최근 들어 최고로 높아지고 있다. 5월 31일 미 합동참모본부 케네스 매켄지 중장은 남중국해에 있는 중국의 인공섬 중 하나를 폭파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 군대는 서태평양에서 작은 섬들을 없애버린 경험이 매우 많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해 중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매켄지 중장은 미군이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동맹국들 이익을 보호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거기에다가 미국이 B-52 폭격기를 동원한 훈련을 남중국해에서 실시한 사실도 알려졌다. 트럼프가 군 통수권자로 버티고 있는 미군은 최근 하와이 주둔 미 태평양 사령부의 이름을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확대 개명함으로써 중국의 숙적 인도와 협력해 중국을 견제할 생각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트럼프는 베이징이 싫어하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민진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선 것을 발판으로 대만과의 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환경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시각 6월 3일 발표한 성명도 중국 지도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폼페이오는 “우리는 1989년 천안문광장에서 무고한 생명들이 비극적으로 희생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며 “사망자와 구속자, 실종자를 공개하고 시위 참석자와 가족을 향한 괴롭힘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금기를 깬 폼페이오의 말에 중국도 발끈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는 1980년대 말 발생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으며, 미국이 중국 정부를 이유 없이 비난하며 내정에 간섭하는 데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공개적 불평도 못 하고

트럼프가 중국이 주장하는 대국주의를 거부하고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중국과 협의하지 않고 밀고 나가자 중국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을 패싱해 한국을 통해 북한과 직접 접촉하면서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드라이브해왔다. 환구시보가 잘 대변한 것처럼, 그동안 왕이 외교부장을 통해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주장해온 중국으로서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남중국해 근처의 싱가포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여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왜 우리와 의논 없이 하느냐”고 공개적으로 불평도 못하고 “지금은 말을 안 하고 있지만, 늘 오락가락하는 한국보다는 영향력이 분명히 크다는 점만은 말해두고 싶다(即使中国一言不发,真实影响力也比跑来跑去的韩国要大)”면서 한국에만 사팔뜨기 눈치를 보내고 있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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