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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호]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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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수를 누가 보수하나

땜질식 보수 한계 “주인 바꾸고 집도 다시 짓자”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6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예고된 참사였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꺼낸 ‘문재인 정권 심판론’은 지난해 5·9 대선에 이은 ‘보수정권 9년 심판론’에 맥을 추지 못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읍소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보수정당이 국회의원총선거(2016년)→대통령선거(2017년)→지방선거(2018년)에서 내리 3연패 한 건 처음이다.
   
   한국당은 제1야당이란 명칭조차 낯간지러울 정도로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광역자치단체장은 17개 중 2개만 건졌고, 서울의 구청장은 25개 중 서초구만 간신히 지켰다. 12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경북 김천에서만, 그것도 무소속 후보에게 고전 끝에 신승했다. 기초·광역의원 정당투표 결과는 지금의 민심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번에 대승을 거둔 민주당도 지방선거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본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4년 차에 치러진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 집권당인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곳(전북)만 건졌다. 서울의 구청장은 25곳 모두를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에 통째로 내줬다. 비례대표 광역의원 정당투표에서 한나라당은 1008만6000여표, 열린우리당은 405만6000여표를 얻었다. 표차가 무려 603만여표였다. 이듬해 대선에서도 진보정당은 무기력하게 정권을 내줬지만 최근 2년 동안 총선→대선→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처럼 수치로 나타난 성적표는 아무리 암울해도 정치 환경이 변하면 만회할 수 있다. 반면, 정치지형의 틀을 바꿔버린 몇 곳의 선거결과는 보수 정치세력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먹구름이다. 서울에서 깨진 ‘강남 불패’ 신화, 영남에서 확인된 ‘진보세력 동진(東進)’이 대표적이다.
   
   이런 결과는 ‘문풍’(文風·문재인 바람)의 위력 때문이긴 하지만 한국당 스스로 자멸한 측면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조기대선→지방선거를 거치며 보수가 폭삭 망해 가는데도 정치적 자생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른미래당과의 후보단일화 문제를 놓고 지도부와 현장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중도보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이 확인됐다.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명의 2위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지난해 5·9 대선 때 서울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에 이어 2위를 했던 안철수 후보마저 이번엔 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3위를 했다. 국회의원 재·보선에선 서울 노원병의 이준석 후보가 바른미래당 후보 중 유일하게 2위에 올랐지만 당선자(민주당 김성환)와 격차가 컸다.
   
   결국 6·13 지방선거는 지금까지 해왔던 땜질식 처방으론 보수가 회생할 수 없다는 교훈과 확신을 줬다. 전신마취를 하더라도 수술대에 올라야 할 지경이 됐음을 일깨웠다. 탄핵과 적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시작은 선거 참패 책임자의 2선 퇴진 기류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바른미래당 창업주인 안철수 전 의원,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의 시대는 사실상 저물었다. 선거 다음날 공동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의 말처럼 보수혁신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되며, 폐허 위에서 새 집을 지어야 한다.
   
   지금부터 보수 정치권은 두 갈래 방향으로 회생의 몸부림을 보일 걸로 예상된다.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될 인적쇄신과 야권 재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이어진 정치적 격랑기에 보수중도 진영을 이끈 리더는 홍준표·안철수·유승민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히 한계를 맞았다. 지난해 대선에서 2, 3, 4위로 나란히 패배한 데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한 까닭이다.
   
   특히 홍 대표는 ‘보수의 소방수’ 역할이 실패로 끝났다. 과격한 언행으로 선거 기간 당 소속 후보들에게 ‘패싱’당하는 개인적 수모를 겪은 데다, 선거 전략도 거칠었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후보를 구하지 못해 무리수를 남발했고, 여러 곳에서 전략공천을 고집하는 바람에 인물교체를 하지 못했다. 마지막 승부수였던 야권후보 단일화도 막았다.
   
▲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왼쪽)가 6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6·13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관련 입장을 밝히기 위해 들어서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포스트 홍준표 체제로
   
   홍 대표는 선거 전 광역자치단체장 최소 6석 이상을 목표로 잡았는데, 막연한 기대감에 근거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최저임금제 시행으로 700만 자영업자와 그 가족들이 선거 때 정권을 심판할 것이란 말을 주변에 자주했다. 민심의 밑바닥을 제대로 보지 못해 ‘홍준표 키즈’를 선거에 내보내는 데 열중했고, 결국 부메랑이 됐다.
   
   사실 홍 대표에겐 ‘포스트 지방선거 플랜’이 있었다. 광역자치단체장 6석 목표에 조금 미치지 못하더라도 선거가 끝나면 ‘재신임’을 묻겠다며 당대표직을 사퇴하고 조기 전당대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면 지금처럼 당이 인물난을 겪는 상황에서 당권을 다시 잡아 2년 임기가 보장되면서 2020년 4월 총선 때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보수의 심장이라는 TK(대구·경북)만 덩그러니 고립되는 결과가 나오면서 꿈이 깨졌다.
   
   당장 한국당은 ‘포스트 홍준표 체제’를 꾸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당헌·당규대로 하면 당대표 궐위 시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을 맡는다. 하지만 그동안 비주류에 머물렀던 중진들은 ‘지도부 공동책임론’을 제기하면서 비상대책위를 꾸려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런 통상적인 체제 정비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다. ‘보수의 가치 재정립’이다. 이 말은 한국당 안에서 탄핵정국 이후 숱하게 나왔다. 지금은 말뿐이 아닌 ‘행동’을 할 때란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4선 중진인 주호영 의원은 “국정난맥, 국정농단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당내에서 전혀 없었다.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국민들이 벌을 내린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의원은 행동의 구체적 방식으로 ‘박근혜 정부 실패에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과 ‘젊은 보수의 수혈’을 들었다. 책임을 질 사람들이 당장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 대규모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이 생기므로 ‘유예 조건 정계은퇴’를 명시하라는 말이다.
   
   주 의원은 “책임질 사람들이 버티고 있으면 한국당은 여전히 탐욕에 가득 찬 수구냉전 세력으로 비친다”며 “진작에 했어야 할 인적청산과 쇄신 작업이 지방선거 참패를 계기로 불길이 타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지금은 정치적 선언이 필요한 때”라며 “보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처절함이 묻어나는 반성과 자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선거 다음날 오전 필자와의 통화에서 지도부 차원의 참패 수습 방안을 묻는 질문에 “참담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당 체제를 어떻게 정비할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에선 집권 시절 국정파탄에 책임 있는 중진들의 2선 퇴진과 맞물릴 비대위 참여자와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 출마자들의 면면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직간접적으로 연루됐거나 수습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인물이 많아 적임자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들어 부상하는 인물은 ‘성완종 리스트’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다. 그는 6·13 지방선거 전부터 “한국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옛 모습을 복원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역할도 피하지 않겠다”며 정치활동 재개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실제로 선거 후엔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들과의 회동과 언론 접촉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총리도 박근혜 정부에서 내각을 이끈 점이 지금은 걸림돌이다.
   
   
   김무성 전 대표 재등장?
   
   김무성 전 대표의 무대 재등장도 거론된다. ‘원조 친박’ 출신이지만 박 전 대통령과 사사건건 날을 세운 데다, 한때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달린 대중성도 갖추고 있다. 다만 그는 당대표로서 2016년 20대 총선을 이끌 때 공천파동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참패함으로써 보수 괴멸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김무성의 효용가치’는 크다. 그는 한국당과 갈라진 바른정당으로 갔다가 복당했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야권재편의 필수코스인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통합을 주도할 적임자다.
   
▲ 6·13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도지사에 재선된 원희룡 제주지사가 6월 14일 오전 업무에 복귀하면서 제주도청 현관에 줄서 있는 공무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방선거가 끝나자 떠오르는 인물은 무소속 신분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다. 일찌감치 차세대 리더로 자리 잡은 그는 TK를 제외한 지역의 민주당 싹쓸이 분위기 속에서 제주지사 재선에 성공하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정치적 변방이랄 수 있는 제주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점이 단점이지만 차세대 보수의 상징적 인물이 될 수 있다. 원 지사 역시 박근혜 정권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바른미래당 출신이다.
   
   실제로 한국당을 당내 중진이 이끌든 영입되는 외부인사가 관리하든 간에 인적청산과 수혈의 다음 단계 활로는 야권발 정계개편이다. 현실적으론 바른미래당, 그중에서도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들과 보수대연합을 추진하는 방안이 당장 타진되고 있다. 유 의원은 선거 전에 “한국당이 변화하면 언제든 합칠 수 있다”는 말을 일관되게 해왔다.
   
   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은 국정파탄 책임자의 유예 조건 정계은퇴 선언처럼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아가 보수 대연합의 필요성도 한층 절감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바른미래당과의 합당 가능성을 묻자 “초유의 사태를 맞았는데도 우리 스스로 폐쇄성에 갇혀선 안 된다.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른정당 복당파인 주호영 의원은 “몸집이 커진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바른미래당 중에서 국민의당 출신은 빼고 바른정당 출신, 보수끼리 함께 가는 건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데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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