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해변에서 바라본 원전 주변. ⓒphoto 뉴시스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해변에서 바라본 원전 주변. ⓒphoto 뉴시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 6월 15일 기습적으로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서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와 신규원전 4기의 건설 중단을 의결했다. 그동안 월성1호기의 계속운전에 투자했던 7000억원의 비용과 앞으로의 전력 생산에서 얻을 수입을 몽땅 포기하고, 수천억원이 넘을 신규원전의 매몰비용까지 결손처리해버리겠다는 결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수원이 떠안게 될 손실이 2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고, 주민들과의 갈등도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정부 출범 후 공론조사를 거쳐 단행한 신고리5·6호기 공사 중단으로 발생한 손실도 이미 1000억원을 훌쩍 넘었다. 한수원의 이런 손실은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전기요금이나 세금으로 국민에 떠넘겨질 것이다.

원전의 폐로와 건설은 한수원이 함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국민적 합의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할 일이다. 1958년에 제정되어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원자력진흥법’ 제3조에 따르면, 원자력의 이용에 관한 사항의 종합·조정은 반드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명시되어 있다. 특히 원전의 건설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녹색성장기본법’과 ‘에너지법’에 따라 수립된 ‘에너지기본계획’과 ‘원자력안전법’ 및 ‘전기사업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되고 집행되어야만 한다.

2022년까지 월성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조치와 신규원전인 천지1·2호기와 대진1·2호기의 건설도 당연히 그런 절차를 거쳐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최종적으로 심의·의결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떠한 절차적 하자도 용납되지 않았다.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절차적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원전과 관련한 정책은 절차적 하자 없이 정해진 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정부가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나 신규원전의 건설 포기를 결정한 사실이 없다. 따라서 한수원 이사회의 결정은 감독기관인 원안위의 합법적 결정을 정면으로 무시한 탈법적이고 월권적인 것이다. 산업부가 한수원에 은밀하게 협조를 요청했다는 일부 보도가 사실이라면 상황은 정말 심각하다. 정부 부처가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공기업이 비록 과거 정부에서 결정한 사안이지만 합법적 절차를 밟은 정부 정책을 짓밟아버리는 해괴한 일은 국정농단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적폐다. 법치를 갈망하는 이른바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현 정부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수원에 반드시 무거운 사법적 책임을 묻고, 긴급 이사회의 불법적인 결정은 취소되어야 한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안위의 책임도 무겁다.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 등 의원들과 지역 인사들이 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 등 의원들과 지역 인사들이 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앞당겨질 화려한 원전 시대의 종말

기존 원전의 조기폐쇄와 신규원전 공사 중단의 파장은 단순한 재정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지난 60년 동안 애써 이룩해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을 당장 포기해버리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제 규모에서 한수원이 포기해버린 원전산업이 민간 영역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더 이상의 원전기술 개발도 불가능하다. 이미 4세대 원전인 고속가스로도 중국에 추월당했고, 빌 게이츠가 지원하는 토륨 원자로 개발도 중국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최초로 개념 설계에 성공한 스마트(SMART) 원자로의 개발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엄격한 인증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형 원자로(APR-1400)도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될 것이고, 애써 키워놓은 부품 산업도 설 땅을 잃어버리고 해체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게 될 전문가들은 나라를 떠나버릴 것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거국적 노력으로 일궈놓은 원전 강국의 꿈이 검증되지 않은 어설픈 친환경·국민안전의 환상에 떠밀려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화려했던 원전 시대의 종말은 생각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우리가 건설하는 마지막 원전이 될 것으로 보이는 신고리5·6호기의 수명이 다하는 2082년까지 원전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무망한 것이다. 부품 산업과 함께 전문인력이 사라지면 남아 있는 원전의 안전 운전도 보장할 수가 없게 된다. 과연 UAE가 바라카원전의 운전을 기술력을 상실해버릴 한수원에 계속 맡겨줄 것인지도 불확실해질 것이다. 괜한 우려가 아니다.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을 건설했던 영국과 원전 종주국이었던 미국이 뼈아프게 경험했던 역사적 진실이다.

해외 원전 포기는 국가적 자해 행위

국내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포기해버린 원전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겠다는 주장은 국민을 우롱하는 어처구니없는 기만이다. 우리에게 위험한 원전을 다른 나라에 팔겠다는 발상은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더욱이 지속적인 전문성과 원활한 부품 공급을 기대할 수 없는 한수원에 자신들의 원전 건설을 맡길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한전이 사업 참여를 고려 중인 영국 무어사이드원전 건설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우디아라비아·체코·폴란드에 대한 꿈도 일찌감치 접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 와서 해외 원전 사업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국가적 자해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형 원자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원전의 설계와 무사고 운전에서만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원전보다 훨씬 정교한 핵융합로(K-STAR)의 제작 경험까지 갖춘 두산중공업의 기술력은 세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다. 비록 2011년 발생했던 9·15 순환 정전 사태 이후 ‘원자력 마피아’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긴 했지만 원전 부품 산업의 수준도 세계적이다.

원전의 생애주기 전체에 걸쳐 독자적 기술과 무사고의 경험을 보유한 국가는 우리를 포함해서 프랑스·일본·러시아·미국뿐이다. 원전 수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프랑스마저도 핀란드 원전 건설에서의 실수로 신뢰를 상실해버렸다. 중국이 무섭게 따라오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신의 축복(바라카)’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 기술을 핑계로 검증된 현재 기술을 포기하겠다는 탈원전의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은 말로만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60년의 노력과 투자를 포기해버린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기대할 수 없다.

LNG에 파묻혀버릴 신재생

탈원전의 대안 역시 도무지 마땅치 않다. 산업부가 내놓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의 비율이 20%까지 확대되는 2030년에 우리가 갖춰야 할 실제 발전설비는 2017년보다 48.5%나 늘어난 173.7GW에 이른다. 그렇다고 실제 발전량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고작 13.9%인 15.0GW가 늘어날 뿐이다. 발전설비가 발전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효율이 낮은 신재생에너지 때문이다. 2030년까지 발전량을 13.9% 늘리기 위해서는 2017년의 설비용량(117.0GW)과 비교해서 신재생 설비용량이 무려 517%나 늘어나야 한다. LNG도 56.4%가 늘어난다.

태양광 전문가가 장관을 맡고 있는 산업부가 위촉한 탈원전 전문가들이 만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소개된 신재생의 진실은 충격적이다. 2030년에 58.5GW의 신재생발전 시설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은 고작 8.8GW에 지나지 않는다. 신재생의 발전효율이 평균 15.0%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모자라는 일조량과 기상 조건까지 고려하면 효율이 12%를 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신재생발전 시설은 하루 평균 겨우 3.6시간 발전을 하고 나머지 20.4시간은 아무 쓸모가 없는 혐오시설로 남아 있게 된다.

탈원전의 결과는 황당하다. 사실 신재생은 허울이고, LNG가 주역이 된다. 2030년에는 늘어나는 신재생의 간헐성과 비효율성을 보완하기 위해 47.5GW에 이르는 LNG발전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재생으로 생산하는 전력(8.8GW)의 5.4배에 이르는 47.5GW를 LNG로 생산하게 된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큰 셈이다. 정부가 ‘친환경·국민안전’을 핑계로 밀어붙이는 ‘탈원전’은 실질적으로 온실가스와 응축성 미세먼지를 내뿜는 LNG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결국 거창하게 강조하던 신재생은 LNG에 파묻혀 버리게 될 것이다.

정밀 전자기기가 대세를 이루게 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력의 품질도 중요하다. 그런데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한 민간업자들이 운영하는 신재생과 분산형 LNG로는 전력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전력망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질 것이고, 전압과 주파수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폭탄은 필연

멀쩡한 원전을 세워놓는 것만으로도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엄청난 규모의 신재생과 LNG 발전소를 건설하고, 원전을 조기폐쇄하기까지 본격적인 요금 인상을 억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원전의 비중이 줄어들면 전기요금은 수직으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비효율적이고 간헐적인 신재생에 의한 과도한 설비예비율과 안정적인 연료 가격을 기대할 수 없는 LNG의 비중이 늘어나면 전기요금 인상을 피할 도리가 없다.

더욱이 태양광·풍력을 비롯한 신재생 시설은 수명이 최대 20년을 넘지 못한다. 신재생 시설이 수명이 다하면 발전설비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 엄청난 자원과 비용의 낭비가 불가피하다. 그뿐이 아니다. 신재생의 발전 설비를 교체할 때마다 정부가 막대한 투자를 해야만 한다. 공기업과 달리 민간 신재생 사업자들이 전력 생산에서 얻은 수익금을 신재생 시설의 교체에 재투자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력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전혀 없는 NGO들이 운영하는 시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신재생에 뛰어들겠다는 한수원의 조직 개편도 명백한 불법이다. 한수원은 원전과 수력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해 설립한 공기업이다. 원전이 사라지면 한수원도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철도공사가 의류 생산 사업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엄청난 건설비를 투입해놓은 원전을 조기폐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손실과 낭비도 심각한 부담이다. 자원 고갈의 시대에 멀쩡한 발전 시설을 제대로 활용도 하지 않고 폐기해버리는 정책을 진정한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환경파괴를 부추기는 신재생

신재생이 친환경이라는 인식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실제로 신재생 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파괴가 발생한다. 0.6㎢의 부지가 필요한 표준 원전 1기에 해당하는 1GW의 태양광 시설을 갖추려면 여의도 면적의 4.6개에 해당하는 13.2㎢의 부지가 필요하다. 2030년까지 30.8GW의 태양광 시설을 갖추려면 무려 407㎢의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605㎢)의 67%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산림 파괴에 의한 피해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고층 건물이 밀집된 대도시가 수용할 수 있는 신재생 시설의 규모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농지와 저수지를 활용하겠다는 발상도 황당하다. 거대한 태양광과 풍력발전 시설에 짓눌린 농촌의 풍경은 결코 아름다울 수가 없다. 태양광 시설의 그늘에서 썩어가는 농지와 저수지를 지켜봐야 하는 농민들의 형편도 황당할 수밖에 없다. 농사일은 제쳐두고 불로소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극소수 농민들과 NGO들의 도덕적 해이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충남의 한 야산에 나무를 베어낸 맨땅이 훤히 드러나 있다. 이곳은 태양광발전소 공사 허가 취소로 1년 넘게 방치돼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충남의 한 야산에 나무를 베어낸 맨땅이 훤히 드러나 있다. 이곳은 태양광발전소 공사 허가 취소로 1년 넘게 방치돼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정책화에 실패해버린 ‘탈원전 공약’

탈원전은 밀실에서 어설프게 만들어진 ‘대선 공약’이었을 뿐이다. 민주화 이후에 우리가 어설픈 대선 공약 때문에 겪었던 혼란은 형언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4대강 사업이 그랬고, 창조경제가 그랬다. 국론은 분열되었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낭비했다. 어설픈 대선 공약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탈원전의 경우에도 사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40년 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왔던 고리1호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론도 엉망이었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선택한 시민참여단의 비율은 4개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낮은 13.3%뿐이었다. 국무총리 훈령의 범위를 벗어난 원전 건설의 축소·유지·확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입장도 애매한 것이었다. 시민참여단이 탈원전을 선택했다는 공론화위원장의 최종 발표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일방적인 억지였다.

UAE 원전 준공식에 참석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원전이 ‘바라카(신의 축복)’라고 밝혔던 대통령의 발언은 무거운 변화였다. 촛불정신이 요구하는 리더십은 불통과 고집이 아니라 소통과 유연함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제라도 탈원전 공약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다듬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품질 좋은 전력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일이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급격하게 다가오고 있는 남북협력 시대에 필요한 전력을 넉넉하게 마련할 준비도 해야 한다.

어설픈 ‘친환경’과 ‘국민안전’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뒤로는 개인적 이익을 노릴지 모르는 ‘신재생 마피아’들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미래 기술인 신재생의 개발이 반드시 탈원전을 전제로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덕환 ‘에교협’ 공동대표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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