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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3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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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11월 중간선거에 목맨 트럼프 북한 인권 문제 눈감았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도중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photo 백악관
1986년 10월 11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군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에게 가장 먼저 정치범 목록을 제시하면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레이건이 소련의 인권 개선이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길게 설명하자, 고르바초프는 “세계 정세와 미·소 관계에 집중해주었으면 한다”면서 화를 냈다. 이처럼 처음부터 팽팽했던 두 지도자 간의 정상회담은 이틀간 논쟁 끝에 결국 핵무기 감축에 합의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는데도 레이캬비크 회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상회담 중 하나로 꼽힌다. 같은 해 12월 고르바초프가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 등 소련의 반체제인사들을 대거 석방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로선 레이건의 강경정책을 누그러뜨리고 핵 군축을 하려면 인권 문제를 중시한다는 제스처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부르면서 소련의 인권탄압을 문제 삼아 압박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된 6월 12일은 레이건이 옛 서독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 연설에서 고르바초프를 향해 “이 장벽을 허무시오(Tear down this wall)”라고 외친 지 31년 되는 날이었다. 레이건의 베를린장벽 연설에는 자유, 인간의 존엄성, 인권의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레이건을 가장 존경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독재자 중 한 명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압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사여구를 동원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을 첫 대면하자마자 “만나게 돼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 공동성명에 서명할 때 기자들이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가장 놀란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훌륭한 인격에 매우 똑똑하다”면서 “매우 재능 있고 자신의 조국을 무척 사랑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존경할 만하고 똑똑한 협상가”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통역을 통해 이 말을 듣고 있던 김 위원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쑥스럽게 웃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도 NBC 기자가 “자신의 가족과 국민, 오토 웜비어 등 미국 국민을 죽인 김정은이 재능 있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는데, 재능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묻자 “김 위원장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26세에 권력을 승계해 국가를 터프하게 운영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면서 “그 나이에 그 정도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수만 명 중 하나”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ABC 방송과 따로 가진 인터뷰에선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 크게 열광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김정은은 주민들을 사랑한다”고 칭찬했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합의문에 명기된 것은 한국전쟁 미군 포로 및 전사자 유해 송환 부분뿐이었다.
   
   
   “역사를 만들기 위해 독재자에게 아부”
   
   미국 언론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김 위원장 찬양과 북한 인권 무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역사를 만들기 위해 독재자에게 아부(flatter)했다”고 비꼬았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가 지구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인 김정은과 만나고 궁합이 잘 맞는다고 얘기한 것이 더욱 놀랍다”고 지적했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미국 공직자는 북한의 인권 상황과 대량살상무기를 감안해 그 정권을 칭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깼다”고 꼬집었다. 시사전문지 더애틀랜틱도 “트럼프가 인권 문제에 노골적으로 무관심한 것이 우리의 양심을 놀라게 했다”고 혹평했다. CNBC는 “김정은에 열광하지 않으면 벌 받는 곳이 북한”이라고 강조했다. CNN은 “가족을 죽이고, 정치범수용소에 수만 명을 가두고 있는 사상 최악의 독재자에게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히틀러도, 스탈린도 자국 국민을 사랑했다”면서 “모든 독재자는 자신이 국민을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그린 전 보좌관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너무 사랑해서 수십만 명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하느냐”고 반문하면서 “트럼프는 김정은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인권을 강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도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가치를 대표하는지를 북한과의 대화에서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가 잊혀졌고, 공동성명에도 인권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가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만큼, 후속 회담에서도 미국이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란 믿을 만한 증거나 신뢰가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 인권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북 관계가 개선되면 앞으로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트럼프를 성토했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김정은이 자행해온 북한 주민들의 집단수용소 수용과 공개처형, 대규모 기아 등이 전 세계적으로 정당화됐다”고 비판했다. 호아킨 카스트로 민주당 하원의원은 “독재자이며 폭군인 지도자를 지나치게 치켜세웠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칭찬하는 건 미국인들이 듣기에 굉장히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도 “김정은은 김정일과 김일성으로부터 가업을 승계받았으며 완전한 괴짜일 뿐 아니라 어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선출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브랜던 보일 민주당 하원의원은 지난 6월 13일 랄프 노먼 공화당 하원의원과 함께 대북제재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을 보면 대북제재 해제 조건으로 △인권유린을 일삼는 정치범수용소 운영 중단 △북한 주민을 상대로 북한 정권이 저지른 범죄행위 공개 △불법으로 억류됐다가 고문으로 사망한 오토 웜비어 가족에 대한 북한 정권의 공식 사과 등이다. 보일 의원은 “트럼프가 아무리 비핵화 협상을 타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더라도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먼 의원도 “의회가 북한 정권이 비핵화를 이행하고 주민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11월 중간선거에 트럼프의 명운 걸려
   
   이처럼 미국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인권 무시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북 정상회담의 초점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였다”고 변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합의를 안 했다면 핵전쟁이 일어난다”면서 “북한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큰 나라가 된다면 위대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발언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경우 김정은이 반발해 미·북 정상회담이 깨질 것을 우려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 인권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따로 분리해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북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외면했다. 지난 1월 30일 국정연설에서 탈북자 지성호씨를 초청하고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했던 트럼프가 정작 김정은을 만나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이유는 뭘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오는 11월 6일 실시되는 중간선거 승리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성과를 내야 중간선거에서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가장 반발하는 인권 문제를 앞세워 북한을 몰아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검. photo 뉴시스
11월 중간선거에는 트럼프의 정치적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트럼프는 탄핵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는 2020년 대선에서도 재선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고 있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갈수록 트럼프의 목을 조이고 있다. 뮬러 특검이 트럼프의 범죄 혐의를 담은 수사보고서를 의회에 전달한다면 탄핵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공화당이 탄핵 발의를 저지해야 하는데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할 경우 탄핵 가능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재선 가능성도 낮아진다.
   
   중간선거는 4년 임기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뒤 집권 2년 차에 실시되는데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상원의원 중 3분의 1인 33명을 새로 뽑는다. 트럼프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성격을 감안하면, 이번 중간선거는 집권여당인 공화당보다 야당인 민주당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간선거는 집권여당의 패배로 귀결돼왔다. 지난 153년 동안 치러진 39번의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은 36번이나 패배했다. 현재 상원에서 49석, 하원 193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상원에서 2석, 하원에서 23석을 더 확보하면 다수당이 될 수 있다.
   
   중간선거의 결과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론조사 기관들의 정당별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공화당에 비해 높다.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538)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은 6월 16일 현재 민주당은 47.3%, 공화당은 39.8%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 들어 공화당에 추월당한 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을 보면 6월 15일 현재 ‘못함’이 51.8%, ‘잘함’이 42.1%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월 이후 지금까지 이런 추세를 보이고 있다. 파이브서티에이트는 미국의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가 2008년 개설한 정치 예측 블로그다. 실버는 2008년 대선에서 미국 50개 주 중 49개 주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고, 총선에서도 상원 당선자 35명 전원을 맞히기도 했다.
   
   현재의 이런 추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하원에서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나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트럼프로선 앞으로 공화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G6 정상들과 관세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미·북 정상회담을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상원의 경우 선거구 특성상 민주당에 불리하다. 상원 33석 중 현역의원이 출마하는 주는 민주당이 24곳, 공화당이 9곳으로 민주당이 수성(守城)에 나서야 한다. 게다가 민주당 현역의원 출마 주 중 10곳이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었던 ‘레드 스테이트’다. 이 중 5개주(몬태나·웨스트버지니아·미주리·인디애나·노스다코타)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40%도 득표하지 못했다. 반면 공화당 현역의원이 재선을 노리는 9개 주 중 민주당이 경쟁할 만한 주는 네바다·테네시·애리조나주 등밖에 없다. 이런 추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민주당은 상원에서 오히려 1~2석을 잃을 수도 있다.
   
▲ 지난 2월 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탈북자들과 면담하고 있는 모습. photo 백악관

   
   北 인권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라
   
   이번 중간선거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물론 경제 상황이다. 미국 국민들은 경제가 잘나갈 경우 대통령이 속한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 3.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실업률은 49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마켓워치는 트럼프의 대규모 감세 조치와 수십 년 만에 가장 뜨거운 고용시장 호조에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활짝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선거 승패에는 외교·안보 문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트럼프로선 국내외의 이목이 쏠린 미·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자극할 인권 문제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트럼프가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은 없다”고 장담하는 등 미·북 정상회담 성과 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치적 홍보가 북한과의 후속 협상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위험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온 미국 국민들에게 김정은을 미화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자칫하면 중간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ABC 방송과 워싱턴포스트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6월 17일) 응답자의 53%가 미·북 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55%가 회담이 미국에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건 전 대통령처럼 인권 문제를 후속 협상 테이블에 놓고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김 위원장, 당신이 진정으로 평화와 번영을 원한다면 정치범수용소의 장벽부터 허무시오”라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앞세우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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