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중요한 가치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해왔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살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고, 그래서 때로는 그 가치를 위해 기꺼이 금전적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는 다르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고, 손해 보는 것은 없는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 그는 뼛속 깊이 사업가이고 본질적으로는 장사꾼이다. 어떤 사안이 이익이냐 손해냐를 돈으로 환산하는 경향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여지없이 그런 면모를 보여줬다. 트럼프는 그때 한·미 군사훈련을 ‘워 게임(War Game)’이라고 표현했고, 훈련을 중단하면 “엄청난 비용을 절감시킬 것”이라고 했다. 훈련이 “도발적”이라고도 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맺어진 한·미 군사동맹의 핵심과도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한다. 단순한 군사동맹 이상이란 뜻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의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의 한 방송에서 미군이 한국에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데 드는 비용을 보도했다. 미군은 괌 기지에 주둔한 전략자산을 한·미 연합훈련 때 또는 필요시에 한반도에 전개해왔는데, 그중 3기의 주요 전략자산이 13시간 왕복비행을 할 경우 약 39억원이 든다고 했다. 군사훈련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이야 알았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적은 없다. 그런데 트럼프는 동맹도, 군사훈련도 그런 식으로 본다.

트럼프에겐 “엄청난 돈을 (한·미) 군사훈련에 쓰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한국도 부담은 하지만 일부분”이라는 점이 또 못마땅하다. 트럼프는 “(미군이) 괌에서 한국까지 와서 폭격 연습을 하고 가는 데에 큰 비용이 드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한국에 와서 군사훈련을 하는데 한국은 그 비용을 충분히 부담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의 어떤 장사꾼이 손해를 계속 보는데도 장사를 지속할까. 트럼프는 이 수지 안 맞는 일을 진작에 중단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기질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책 ‘거래의 기술’을 보면, 그가 사고 팔고 빌리고 투자하고 성공하고 실패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온다. 언론은 비판했지만 그 악명이 장사엔 도움이 되었다든지, ‘매력’ 또한 장사가 되더라고 말한다. 모든 얘기의 끝은 장사가 되느냐, 즉 이익이 나느냐 손해를 보느냐이다.

트럼프는 사업가와 협상가로 성공한 이력을 바탕으로 정치인이 ‘되었다’기보다는 그 이력을 그대로 정치와 외교로 옮겨와 적용하고 있다. 정치의 세계에 들어와 정치의 논리를 배워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으로서 했던 방식 그대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정치와 외교의 틀로 트럼프를 보면 결코 트럼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키는 데 중요한 구호였던 ‘아메리카 퍼스트’를 우리는 ‘미국 우선주의’로 해석한다. 하지만 여기서 ‘미국 우선’이란 추상적인 의미에서 미국을 우선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손해보지 않는다는 뜻에서 ‘아메리카 퍼스트’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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