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폭스뉴스 채널의 아침방송 ‘폭스 앤 프렌즈(Fox & Friends)’이다. 트럼프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한다고 한다.

‘폭스 앤 프렌즈’는 미국 동부 시각으로 오전 6시에 시작해서 장장 3시간을 계속한다. 활처럼 휘어진 소파에 3명의 앵커가 앉아서 진행하는데, 아침방송이 늘 그렇듯 온갖 세상사를 얘기해준다. 정치 관련 뉴스는 폭스의 보수적인 입장을 그대로 쏟아낸다.

트럼프가 이 프로그램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트럼프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으면 ‘폭스 앤 프렌즈’에 출연해서 말하면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이걸 뒤집으면 “‘폭스 앤 프렌즈’가 트럼프를 조종해 세상을 지배한다”는 우스개로 변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농담만은 아니다. 요즘 폭스뉴스 채널은 단순히 ‘친트럼프’ 방송을 넘어서 아예 트럼프 행정부에 관리를 공급하는 인재풀 역할까지 하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폭스뉴스의 해설가였다. 국무부의 헤더 노어트 대변인도 폭스뉴스 출신이다. 가장 최근엔 빌 샤인 전 폭스뉴스 공동대표가 홍보를 관장하는 백악관 부비서실장 물망에 오르고 있다. 트럼프와 폭스뉴스의 경계가 이렇게 모호해진 데다 친트럼프 발언 일색인 폭스뉴스는 이제 ‘국영방송’이냐는 얘기까지 듣는다.

어느 날 아침엔가 ‘폭스 앤 프렌즈’는 트럼프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3명의 진행자가 대통령의 목소리만을 상대로 거의 1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다. 전화 인터뷰 내내 트럼프와 진행자들이 어찌나 친근하게 말을 주고 받는지, 방송 인터뷰라기보다는 친한 사람 서너 명이 모여 앉아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는 것 같았다. 트럼프가 폭스뉴스를 얼마나 편하게 생각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그런 인터뷰였다.

어느 나라나 사정은 비슷하지만 미국 정치도 양극화되어 있어 어떤 뉴스 채널을 택하느냐에 따라 한쪽의 시각에 맞춰 세상을 보게 된다. 폭스뉴스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트럼프처럼 대단한 대통령은 없는 것 같다. 트럼프 덕에 경기는 좋아지고 미국은 더 이상 북핵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맞게 되었으니 뭘 더 바라느냐는 분위기까지 간다. 반대로 CNN을 보고 있으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미국의 앞날을 걱정하게 된다.

2016년 대선 당시 선거유세 취재를 다닐 때의 일이다. 트럼프는 유세하다가 종종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비난하기 시작하고 기자들을 가리키며 ‘가짜 뉴스(Fake news)’ 쓰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유세장에 모여든 청중들은 야유하고, 기자들은 “또 시작이구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트럼프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늘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었다.

트럼프는 타고난 무대 체질이다. 전용기에 오르려다가도 기자들이 3명만 모여 있으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몇 마디 해서 뉴스를 만들어준다. 기자회견장에 기자들이 수십, 수백 명 모여 있으면 그의 무대 체질은 걷잡을 수없이 불타오른다. 청중을 휘저어놓고 그 반응을 즐길 때 트럼프가 가장 트럼프다워 보인다. 반응이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않는다. 수습은 참모들 책임이니까.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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