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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5호]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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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비핵화와 인권은 분리될 수 없다”

국제사회 거세지는 北 인권 압박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지난 6월 13일 미 하원에서 열린 ‘2018 민주주의상’ 시상식에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북한의 인권유린을 비판하고 있다. photo NED
잘츠기터(Salzgitter)는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주에 있는 인구 10만여명의 작은 도시다. 서독 정부는 1961년 11월 24일 동독 국경과 가까운 이 도시에 중앙법무기록보존소를 설치했다. 동독 공산정권이 같은 해 8월 13일 베를린장벽을 세우고 서독으로 탈출하는 주민들을 사살하거나 체포해 인권유린을 자행한 것에 대한 대응조치였다. 서독 정부는 이곳에 동독 공산정권이 자행해온 각종 인권유린 실태와 반민주적 행위에 대한 기록을 보관했다. 당시 서독 정부의 의도는 동독 공산정권이 인권유린 행위 등을 못 하도록 압박하고 추후 책임을 추궁하려는 것이었다. 니더작센주의 알비드 폰 노트베크 주법무장관은 “우리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고, 소멸시효가 종료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언젠가 가능한 그날을 위하여 동독 내 인권 범죄자들을 기소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동독 공산정권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곳을 폐쇄할 것을 요구했지만 역대 서독 정부들은 이를 거부했다. 1년 예산이 25만마르크(당시 1억2000만원 규모)의 초미니 기구였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독일 통일 후인 2007년까지 운영됐던 이곳에는 무려 4만1390건의 각종 자료가 모였다. 이후 이 기록들은 인권탄압 등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동독 경찰, 판·검사, 비밀경찰(Stasi) 요원 및 협조자 등 8만여명에 대한 형사소추와 재임용, 피해자 보상 등의 근거로 활용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잘츠기터 기록보존소 설립을 강력하게 주장한 정치지도자는 동독과의 교류와 협력이라는 동방정책을 추진한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다. 브란트는 동독 공산정권이 베를린장벽을 세운 것에 분노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시청 앞 쇤네베르크 광장에 몰려들자 시청 발코니 연설을 통해 “천인공노할 만행에 대해 항의만으로 끝낼 수 없다”면서 “동독 공산정권이 자행한 모든 국가범죄를 수집하고 보관할 기록보존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공개 제안했다. 브란트는 나치 정권의 범죄를 추적하기 위한 ‘나치범죄정보센터’와 마찬가지로 공산 독재 체제의 만행에 대해서도 대응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브란트는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망명생활을 했으며 1953년 동베를린 민주봉기가 소련군 탱크에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때문에 브란트는 인권이야말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강조해왔다. 1969년 총리가 된 브란트는 1970년 3월과 5월의 1·2차 동·서독 정상회담에서 인권 존중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1972년 12월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에 ‘인권 조항’을 분명하게 삽입시켰다.
   
▲ 옛 동독 정권의 인권유린 등의 기록을 보존해온 잘츠기터의 중앙법무기록 보관소. photo 위키피디아

   서독 정치지도자들의 일관된 인권 철학
   
   서독 정부의 동독 주민 인권 보호와 관련한 가장 극적인 조치는 ‘프라이카우프(Freikauf)’였다. 프라이카우프는 동독 공산정권에서 정치적 이유로 구금된 반체제인사 등 정치범들을 서독으로 이주시키기 위하여 서독 정부가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시킨 것을 말한다. 프라이카우프는 1963년 시작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26년간 진행됐다. 서독은 3만3755명의 정치범과 25만명에 달하는 그들의 가족에 대한 송환 대가로 동독에 34억6400만마르크를 지불했다. 당시 환율로 4조원이 넘는 돈이다. 프라이카우프는 당시 서독 내독관계부가 주관했다. 서독 정부의 이런 정책으로 동독 주민들의 인권이 향상되고 고통을 덜어준 계기가 됐다.
   
   역대 서독 정부는 동독 공산정권과의 협상에서 △동·서독 주민 간의 이주, 왕래 및 가족 재상봉의 확대 △국경 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중지 및 탈출기도자에 대한 도주죄 형량(5~8년 징역)의 경감 △정치범 구금, 반체제 인물에 대한 박해 및 서독 이주 강요, 서독 이주자에 대한 동독방문 제한 등의 해제 △동·서독 주민 간의 통신 및 정보교환의 자유 확대 등을 달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는 동독과의 협상에서 철저하게 ‘상호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콜 전 총리는 동독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을 해주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동독의 인도적 조치를 받아냈다. 실제로 서독 정부는 1983년과 1984년 동독 공산정권이 서방 은행에서 10억마르크와 9억5000만마르크를 빌리는 데 보증을 서주는 대신 동독 공산정권으로부터 상당한 대가를 얻어냈다. 그 내용을 보면 동·서독 주민의 자유 왕래, 동독 탈출 주민에 대한 자동사격장치 5만4000개 제거, 서독 주민의 동독 방문기간 확대, 서독 서적과 레코드의 동독 유입 확대 등이다. 콜 전 총리는 1987년 9월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인간의 보편적 자유와 인권 존중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동독 주민의 서독 여행 확대, 동·서독 간 관광 확대와 청소년 상호방문 확대 등의 약속도 받아냈다. 이에 따라 1986년 200만명에 불과하던 동독 주민의 서독 방문이 1988년에는 675만명으로 늘어났다.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은 좌·우파와 관계없이 동독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냈다. 동독 공산정권은 교류 단절을 위협하면서 내정간섭을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인권 보장은 평화, 통일과 더불어 헌법인 서독 기본법의 3대 명제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은 동독 주민의 인권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해왔다. 동독 공산정권도 인권 문제에 대한 서독 정치지도자들의 일관된 입장에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동·서독 관계사에서 볼 수 있듯이 남·북 관계에서도 인권 문제는 가장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이나 각종 협상과 회담 등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의제가 된 적은 없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다. 인권 문제와 관련된 것은 판문점선언의 1조 5항에 적시된 이산가족 상봉밖에 없었다. 남북은 지난 6월 22일 적십자회담을 통해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각각 100명씩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과거와 다른 점은 전혀 없었다.
   
   이산가족 5만6000여명 중 85% 이상이 70세 이상의 고령이고 2004년부터 매년 평균 3800명의 생존자가 사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합의는 의미가 반감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봉 정례화, 고향방문, 자유왕래 등을 북한 측에 관철시켜야 한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남북 간 여러 가지 행사를 원만하게 치르기 위해서”라며 과거와 같은 이산가족 상봉에 그친 데 대해 변명하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납북자 귀환 등 또 다른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해왔다. 그려면서도 평화 분위기 조성을 명분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물론 국군의 단독 훈련까지 중단했다. 또 철도와 도로 연결 등 남북 경제협력과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등을 서두르고 있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 업무 조직은 대폭 축소했다. 외교부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자리도 아직 공석이다. 탈북 인권운동가들이 ‘침묵’을 요구받았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북한인권법에 따른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위해 마련된 사무실을 통일부가 ‘재정적 손실’을 이유로 폐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탈북단체 시상식 자취 감춘 한국 외교관들
   
▲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있는 정치범수용소의 인권 탄압 그림. photo 휴먼라이츠워치
이 때문에 국제인권단체들은 물론 미국 조야(朝野)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무시·외면한다는 비판이 일제히 터져 나오고 있다.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지난 6월 27일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H.R.2061)이 하원을 최종 통과한 직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한의 악몽 같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 효력이 2022년까지 연장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의회의 대표적인 친한파로 꼽히는 로이스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권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로이스 위원장은 “북한 인권운동가를 침묵하게 하려는 최근 한국 정부의 노력은 역효과를 낼 수 있고 매우 충격적”이라며 “북한인권법 통과가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방향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한다 할지라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계속 운영되고 수치심을 모르는 살해 행위가 계속되는 한 의미 있는 대북 투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원 외교위 소속인 공화당의 데이나 로라바커 의원도 “북한과의 평화를 위해 사람들이 비판하는 걸 멈추도록 해선 안 된다. 사실은 그 반대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스미스, 비키 하츨러, 로버트 피틴저 등 하원의원들도 지난 6월 28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한 인권 개선을 미국과 동맹국들에 주문하며, 북한 정권의 반인륜적 범죄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했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인권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이 노골적으로 나온 것은 지난 6월 13일 하원 건물에서 열린 민간단체인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이 주최한 ‘2018 민주주의상’ 시상식이 계기가 됐다. 올해 수상자는 한국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운동을 적극 펼친 북한인권시민연합, 나우(NAUN),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국민통일방송(UMG) 등 4개 탈북자 단체들이었다. 이 자리에는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등 의회 지도자들과 미국 정부 관리들이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대거 참석했지만, 정작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 외교관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 의회 관계자들은 북한과 관계 개선을 중시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이런 행사를 하면 항상 한국대사관의 외교관들이 참석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경우 북한 인권 관련 행사라면 대사 등 한국 외교관들은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상원의원들도 남북 경제협력과 한국 정부의 대북 인권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화당 코리 가드너 의원은 “철도와 도로, 삼림 등 남북 경제협력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약속 조치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팀 케인 의원도 “남북 경협 논의는 환영할 만하지만,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한국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과거에 경제 지원을 받고자 비핵화 문제를 시간 끌기 전술로 사용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경제협력을 본격화하는 것은 매우 성급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원의원들은 그러면서 경제협력을 지렛대로 북한에 인권 문제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앞세웠던 한국 진보의 모순”
   
   국제인권 단체들과 미국의 인권활동가와 한반도 전문가들도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만 주력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 너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핵화”라면서 “절대 북한 인권 문제를 전제조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로버타 코헨 전 미국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의 정체성은 민주주의 체제와 인권 보호”라면서 “평화와 인권 증진이 불가분의 관계인 만큼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리비아 이노스 헤리티지재단 연구원도 “한국이 북한과 통일하려면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북한 인권에 관한 한국 정부의 최근 동향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과거 독재에 대응해 인권과 민주주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한국의 진보 진영이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우선순위로 둘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인권재단의 알렉스 글래드스타인 전략기획실장은 “북한 주민들은 정부에 반대하면 구타를 당하고 고문당하며 강제수용소에 끌려간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고 끌어안는 것은 마치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독가스로 살해한 히틀러를 초청해 그렇게 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존 시프턴 아시아국장은 “문재인 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비핵화와 인권 문제는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비핵화와 인권은 분리될 수 없으며, 어떤 협상에서든 함께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김정은 위원장을 달래기 위해서 북한의 인권 문제가 버려져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꺼리고 있으며, 북한은 이를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지난 6월 28일 “북한인권재단은 대결광신자들이 조작해낸 북한인권법과 함께 출현한 반공화국 모략기구”라고 비난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공산주의자들은 벽에 부딪힐 때에만 굴복한다”는 세계적 문호이자 옛 소련의 반체제 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말처럼 한국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북한 인권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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