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열린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훈련. ⓒphoto 뉴시스
지난해 8월 열린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훈련. ⓒphoto 뉴시스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되었다. 그 첫 대상이 UFG(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이다. 언제 재개될 것이라는 기약도 없다. 불만의 여론도 많지만 일단 두고 보자는 시선이다. 1993년에 그랬듯이 북한이 합의를 어기면 훈련은 늘 재개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서 우리의 단독훈련도 중지하겠다고 나섰다. 바로 을지연습이다. 을지연습이란 대한민국 정부의 전쟁연습이다. 전쟁은 군만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서 해야만 하며, 특히 전시에 정부가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군의 대응도 늦고 국민의 피해도 커진다. 남북 군사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사이 정부가 전쟁을 대비하고 연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을지연습은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청와대기습사건 이후 시작된 정부 차원의 대응이기도 했다. 반대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북한이라는 말도 된다.

새로운 을지태극연습의 함의

이런 을지연습이 유엔사령부가 수행하던 지휘소 연습인 포커스렌즈연습과 1976년 합쳐지면서 을지포커스렌즈훈련이 탄생했다. 이후 을지포커스렌즈연습은 상반기의 RSOI/FE(연합전시증원/독수리)연습과 함께 하반기에 수행되는 대표적인 연합연습으로 자리 잡았고,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연습이 되었다. 을지포커스렌즈는 참여정부의 전작권 전환 시도와 함께 2006년 현행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연습의 방식은 첫 주 차 1부에서 정부의 을지연습이 군사연습과 함께 수행되고, 2부에서는 군사연습만이 수행된다.

을지연습의 중단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브리핑 형식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안보정세 변화와 한·미 연합훈련 유예방침에 따라 을지연습도 안 하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내년에는 을지연습을 한국군 단독 군사연습인 태극연습과 결합해서 을지태극연습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숨어 있다.

우선 발표의 형식이다. 만약 올해 을지연습이 단순히 준비 부족 상태였다면 연습의 규모를 대규모로 줄이거나 혹은 조용히 연습을 발표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정부는 굳이 을지연습의 중요한 두 축인 행안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내세워 발표했다. 발표 내용도 안보정세 변화를 반영했음을 명시했다. 즉 북한에 우리 정부가 이만큼 성의를 보이고 있다고 추가적인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또 하나는 내년에 수행할 연습의 형식이다. 한·미 연합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이 아니라 ‘새로운 을지태극연습’이라는 표현을 썼다. 즉 내년에도 UFG 훈련을 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미 연합연습의 잠정적 유예가 아니라, 이제 아예 한·미 연합연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성의 표시’이다. 그런데 문제는 비핵화의 과정에서 북한의 협상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핵보유국이니 당연히 핵보유국과 협상을 하지 비핵국가와 협상을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이다. 애초에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서 대화 의사를 내비치고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만난 것도 핵보유국끼리의 군축 차원이지, 한국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정부가 을지연습을 올해 한 번 중단한다고 해서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낼 엄청난 추가조치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7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8월 예정된 을지연습 중단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7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8월 예정된 을지연습 중단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천궁 블록2’ 미사일 양산 재검토 지시

주한미군은 지난 6월 29일자로 평택시대를 공식 개막했다. 다연장로켓발사포(MLRS)의 대화력전으로 북한의 장사정포 전력을 제압하는 제210화력여단을 제외하곤 모든 전력이 평택으로 내려갔다. 유엔사와 주한미군사도 내려갔다. 그런데 연합사는 어정쩡하게 서울에 남았다. 결국 평택시대의 주한미군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절차를 훑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실 올해 UFG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UFG가 중단되었다. 한·미 안보동맹은 굳건하다고 하지만, 그 동맹을 가동시킬 한·미 연합군의 대비태세가 크게 바뀌었음에도 점검의 기회를 잃은 것이다.

한편 을지연습 중단 선언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6일 평양을 방문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같은 전향적인 조치를 선의(善意)로 진행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에 폼페이오는 세 번째 방북을 통해서 북한의 비핵화 의사를 타진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1박2일의 일정을 마친 폼페이오는 김정은을 만나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폼페이오는 건설적인 회담이었고 진전이 있었다고 했지만, 북 외무성이 “깡패 같은 태도를 보였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이후 폼페이오는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고노 다로 외상과의 회담 사진을 올리면서 최대압박의 중요성까지 언급했다. 한마디로 미·북의 ‘합의’가 삐걱대고 있다는 말이다.

이번 폼페이오 방북에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싱가포르 회담만큼 명백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 간에 의미 있는 비핵화 합의가 과연 실제로 존재했는가조차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북한은 비핵화의 방향성을 논의했을 뿐이지만 트럼프가 이를 비핵화 합의로 성급하게 포장하고 눈앞의 성과를 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당장 미국 내에서는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피력되기 시작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6·25 전사 미군 유해송환으로 미국의 압박을 피해나가려고 하겠지만, 언제 일촉즉발의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다. 이런 미·북 간의 미묘한 흐름 속에서 우리 정부는 을지연습 중단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연합군사연습·훈련 중지 이외에도 우려스러운 움직임들이 있다. 애초에 우리 정부는 미·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국방개혁의 세부안을 발표하기로 했었다. 원래 발표는 4월 초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기다린 후 발표하기로 바꿨다. 이후 안보환경이 안정되었다는 판단 때문인지 국방개혁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북 어젠다가 군사적 대결에서 대화로 바뀌었으니 슬슬 군비축소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깔리기 시작했다.

당장 6월 중순부터 군 주변에서는 ‘국방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나돌았다. 거의 2조원에 가까운 국방 예산이 내년부터 삭감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북한이 비핵화로 나오는 마당에 소위 한국형 3축 체계의 긴급배치는 필요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남북관계가 바뀌었다며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장비인 ‘천궁 블록2’ 탄도탄요격미사일의 양산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킬체인의 핵심장비로 육군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사거리 150㎞의 KTSSM(한국형 전술탄도미사일)도 배치가 연기된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그리고 3축의 마지막 전략인 KMPR(대량응징보복)에서 특임여단을 적진으로 침투시킬 특수전 헬기의 도입은 계획 자체가 증발해버렸다.

KF-16 성능개량사업 둘러싼 우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군의 정상적인 무기체계 업그레이드도 영향의 대상이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약 2조1000억원이 투입될 KF-16 업그레이드 사업이다. KF-16은 1994년부터 국내에서 면허생산된 한국형 전투기사업 기종으로 모두 140대를 만들어 현재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됐다. 국산 전투기인 KF-X 보라매는 예정대로 진행되어도 2025년이 되어야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 초기목표인 120대가 모두 배치되는 것도 빨라야 2032년, 앞으로 14년 뒤이다. 그때까지 KF-16 성능개량 사업을 통해 1990년대 기술에 바탕한 KF-16을 21세기의 기체답게 레이더와 데이터링크 등을 최신형 장비로 장착해야 정상적인 작전이 가능하다. 현재 데이터링크를 갖춘 기체는 F-15K 59대, FA-50 60대, F-16PBU 30여대뿐이다. KF-16 성능개량사업이 중지된다면 북한에 대하여 우리 군의 유일한 압도적 비대칭전력인 공군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이러한 소문들의 상당수는 다행히 아직 소문에 그치고 있는 상태다. 방위사업청은 공군과 함께 천궁을 전력화하겠다며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요청했다. KTSSM의 배치 연기나 KF-16 성능개량사업의 중도 취소도 결정된 바 없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의 경우를 대비하여 어떠한 사업을 줄여야 할지 기획 차원에서 취소대상이 될 만한 사업을 검토했을 수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 예산을 GDP의 2.4% 수준에서 2.9%로 높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국방 예산을 돌려 대북지원에 사용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 정부의 화해 움직임은 북한의 실제 조치보다 늘 빠르다. 북한은 아직도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핵실험장을 폐기했을진 몰라도 아직 핵탄두나 투발수단은 그대로다. 심지어는 전방에 배치한 무기들의 변화도 없다. 그런데 현재 대대급 UAV(무인항공기)는 전부 후방의 해안경계부대로 돌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DMZ 병력 철수까지 검토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그 많은 병력을 돌려놓을 땅도 없다. 하지만 북한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권의 강박증은 우리 군을 형해화할 수 있다.

평화는 선의로만 이뤄질 수 없다. 군축도 마찬가지다. 한쪽이 선의로 내려놓는다고 상대도 선의로 내려놓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군축은 등가성과 비례성에 바탕한다. 상대방이 내려놓는 만큼 등가적이고도 비례적으로 내려놓는 것이다. 또한 군축 자체도 정치적 신뢰뿐만 아니라 군사적 신뢰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지만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조건과 군축의 원리를 무시한 채 스스로 무장을 내려놓는 것은 군축이 아니라 스스로 국방태세를 무너뜨리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방적인 군축을 바라보는 국민들과 군 내부의 우려스러운 시선은 타당하다. 우려를 해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존의 국방개혁 흐름과 안보태세를 비핵화 전까지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국방을 강하게 만들 국방개혁안이야말로 국민이 기다리는 해답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보다는 우리 국민부터 안심시킬 일이다.

키워드

#안보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 대응센터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