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자유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이 지난 7월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비대위원장 후보 5인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안상수 자유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이 지난 7월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비대위원장 후보 5인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위기의 당을 수습하기 위해 김성태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이 구성하려고 하는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는 아직 출범을 못 하고 있고, 복당파와 잔류파 혹은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계파 갈등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여의도에서 영등포로

자유한국당은 지난 7월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를 떠나 영등포 당사로 이전했다. 김성태 권한대행, 안상수 혁신 비상대책위 준비위원장 등 당 지도부는 이날 여의도 한양빌딩을 떠나 영등포 당사에서 현판식을 가졌다. 김 권한대행은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이룬 보수 정당의 여의도 당사 시대를 이제 마무리한다”며 “처절한 진정성으로 더 낮은 곳에서 국민이 부를 때까지 쇄신과 변화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국당이 새로 입주한 당사는 국회에서 1㎞가량 떨어진 영등포 우성빌딩이다. 한국당은 여의도 한양빌딩 6개 층을 사용하며 월 임대료만 1억여원을 썼다. 반면 영등포 당사는 여의도 당사 면적의 15%로 2개 층만 쓴다. 월세는 2000만원 수준이다. 김 권한대행은 “기득권과 관성, 잘못된 사고를 전부 여의도에 버려두고 국민 삶만 생각하는 진정한 서민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당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검소한 당사로 이전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도 “문제는 현재 당의 위기를 수습할 만한 대책이나 구심점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지금 상황을 보면 우리 당사가 언제 다시 여의도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 보인다”며 “우리의 노선이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논쟁이 시급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들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했다.

혁신 비대위는 어디로?

한국당 혁신 비대위는 아직도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인선에서부터 난관을 겪고 있다.

안상수 준비위원장은 7월 12일 “내부 논의를 거쳐 비대위원장 최종 후보로 5명을 선정했다”며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박찬종 전 의원, 이용구 당무감사위원장, 초선 김성원, 전희경 의원을 제시했다. 준비위 측은 “5명 후보는 본인들이 비대위원장 역할을 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힌 상태”라고 했다. 당 관계자는 “일각에서 김병준 전 부총리가 보수 원로들의 지지를 받고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들이 나오지만 변수는 아직도 여전하다”고 했다.

그간 준비위가 혁신 비대위 구성을 위해 외부 인사를 찾는 과정에서 여러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준비위는 초반 보수 진영의 원로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황교안 전 국무총리, 박관용·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도 비대위원장 후보로 검토했다. 그러나 대부분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회창 전 총재 측은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자 여권 정치인이나 비정치권 유명 인사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유시민 작가,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이 거명됐다. 당내와 보수 진영 내부에선 “한국당이 궤멸적 선거 패배로 인해 보수 정당으로서 정체성마저 상실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시민들 사이에선 “한국당이 당을 위기에서 건져낼 비대위원장을 찾는 작업 자체를 코미디로 만들고 있다”는 조소가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에게 비대위원장직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논란은 거듭됐다. 지난 7월 6일 김성태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이 이 교수를 만나 비대위원장 얘기를 꺼냈으나 이 교수가 “김 권한대행 같은 분들이 그냥 맡아서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안상수 위원장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김 권한대행이 이 교수를 평소 알고 지내는데 준비위원회 출범 전에 본인도 답답했던지 서로 한번 만나보자고 해서 만난 것 같다. 아마 이 교수가 재미로 생각했는지 언론에 흘렸다는데 나는 알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 교수가 반발했다. 이 교수는 다른 방송 인터뷰에서 “안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후보군 이야기할 때 하루 종일 수술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상황이었다”며 “내가 김 권한대행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을 언론에 흘린 듯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나는데 이런 식으로 하니까 한국당이 저 지경이 된 것”이라고 했다.

상임위 확보는 성공적 평가

한국당이 지난 7월 3일부터 진행해 8일 마감한 비대위원장 국민 공모엔 100명이 넘는 인사가 추천됐다. 안상수 위원장은 “7월 17일 전까지 최종 후보 1인을 선정하겠다”며 “후보군은 따로 밝히지 않고 한 사람만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7월 17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비대위 체제 인준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당내 친박계 일부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며 김성태 권한대행도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비대위를 통해 다음 전당대회에서 복당파들이 당권을 장악하려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친박계 의원은 “김성태 권한대행이 지휘하는 대로 비대위가 구성되는 상황은 용납하기 어렵다”며 “11월쯤이라도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지 않으면 향후 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당 비대위 체제와는 별도로, 여야 협상을 통해 지난 7월 10일 마무리된 국회 상임위 배분에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내부에서 나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김관영 바른미래당, 장병완 ‘평화와 정의의 모임’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만나 7월 임시국회 일정에 합의했다.

여야는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관례대로 의석수에 따라 민주당 8곳, 한국당 7곳, 바른미래당 2곳, 평화와정의 1곳으로 배분했다. 여야가 서로 갖겠다고 주장했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는 전반기 국회와 마찬가지로 야당인 한국당 몫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대신 청와대 등을 소관부처로 하는 운영위원장 자리를 한국당으로부터 넘겨받았다. 한국당은 여기에 ‘알짜’ 상임위로 통하는 국토교통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그리고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인 노동개혁 담당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등을 챙겼다. 당내에선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적인 협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현재 국민들 지지도는 낮지만 일단 법사위원장직을 유지하게 되면서 국회에서 현재 여권이 무리하게 통과시키려는 법안들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며 “환노위를 통해 노동 문제 관련해 여권이 시민단체나 노동계의 요구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최대한 막는 데도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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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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