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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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터뜨린 이른바 ‘관세폭탄’의 제조자다. 나바로 국장은 그동안 미국 무역적자의 핵심 원인이 중국이라고 주장해왔다. 나바로 국장은 ‘다가오는 중국과의 전쟁들(The Coming China Wars)’ ‘웅크린 호랑이(Crouching Tiger)’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 등의 저서들에서 중국의 경제패권 야심을 질타하면서 무역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나바로 국장은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2016년 8월 당시 트럼프 후보 선거캠프의 경제정책자문위원으로 합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이후 나바로 국장은 지금까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바로 국장의 저서를 몇 년 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밝힐 정도로 신임해왔다. 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과 나바로 국장의 중국에 대한 주장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 “중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둑” 등의 발언을 통해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비판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策士) 역할을 하고 있는 나바로 국장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일본 반도체에 100% 관세를 매긴 바 있다”면서 “사람들은 사기행위에 보호관세를 부과하는 자유무역주의자(레이건·트럼프)와 중국이 자행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레이건 벤치마킹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6일 나바로 국장의 말처럼 레이건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34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818개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번에 관세 부과 제품들을 보면 전기자동차, 반도체, 고성능 의료기기, 로봇, 항공우주 기자재, 바이오 신약, 해양 엔지니어링 설비, 발광다이오드 등이다. 중국 정부가 2025년까지 추진하는 산업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 계획에 해당하는 제품들이다. ‘중국제조 2025’ 계획은 중국 정부가 자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10개 핵심 산업을 오는 2025년까지 세계 1〜3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말한다. 10개 핵심 산업은 5G 통신 등 차세대 정보기술(IT), 로봇 및 첨단 공작기계, 항공우주, 해양엔지니어 및 하이테크 선박, 선진 궤도교통,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 장비, 농기계 장비, 신소재, 바이오 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기 등이다. 중국 정부의 목표는 이 계획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세계 제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첨단기술산업을 적극 육성함으로써 미국의 경제 패권을 뛰어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바로 국장은 중국의 야심찬 도전이 1980년대 일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당시 상황을 보면 세계 반도체 시장은 1984년까지만 해도 미국이 주도했었다. 인텔이나 모토로라, 마이크론 등 쟁쟁한 미국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었다. 그러던 중 일본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를 기반으로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미국의 시장점유율을 공략했다. 시장점유율이 44%로 같아진 때도 있었다. 미국 언론들은 일본의 반도체 공세를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고 불렀다. 일본이 반도체를 장악하면 세계 경제 패권을 거머쥘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일본은 1965년 미국을 상대로 첫 무역흑자를 기록한 이래 흑자 규모를 불려 1987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주요 기업들을 글로벌 대기업으로 육성시키고 미국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면서 고도성장을 통해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보였다. 이를 간파한 레이건 대통령은 1985년 무역대표부에 일본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반덤핑혐의를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1987년 통상법 제301조에 따라 반도체 등 모든 일본 전자제품에 100%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강력한 조치에 일본 정부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손을 들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생산원가를 공개하고, 생산설비와 R&D 투자를 자제하고, 미국산 반도체의 자국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미국 지적재산권의 위협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나바로 국장은 중국의 의도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각국을 상대로 무역적자 해소를 천명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대규모 흑자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명분을 앞세워 고율 관세 부과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지난해 3752억달러로, 전체 무역적자 5660억달러의 66.3%에 달했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도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 중국이 첨단기술산업을 주도할 경우 더 많은 흑자를 낼 것이 분명하고, 자칫하면 세계 1위 경제대국에서 밀려날 것을 우려하게 됐다. 미국은 ‘중국제조 2025’ 계획에 명시된 10대 첨단기술 제품 분야에서 지난해 중국에 1354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나친 보호무역주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첨단기술력이 급성장하면서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하자 이를 제어하지 않으면 중국에 밀릴 수도 있다는 미국의 강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나바로 국장이 지적했듯이 미국은 중국의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급속한 성장이 자체 혁신 노력보다는 국가 차원의 지원과 기술 탈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바로 국장은 그동안 중국이 국가적 산업 육성과 해외 기업 규제, 지식재산권 침해, 산업스파이 활동, 사이버 해킹 등으로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경쟁을 했다고 지적해왔다. 백악관은 지난 6월 19일 발표한 ‘중국의 경제적 침략은 어떻게 미국과 세계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위협하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워 미국의 첨단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거나, 지분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기업의 기밀을 빼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또 중국은 사이버 해킹을 통해서도 미국의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훔쳐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이런 절취 행위 규모가 무려 매년 1800억~5400억달러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나바로 국장은 “미국 정부는 첨단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몰래 훔쳐간 중국에 대해 강경한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제조 2025’ 계획은 미국과 많은 다른 나라들의 첨단기술산업을 지배하려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잃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지식재산권과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중국 기업들의 투자를 철저하게 감시·감독할 방침이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조치를 미국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의회는 CFIUS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정할 예정이다. CFIUS는 외국인의 미국 기업 투자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금지할 수 있는 정부기구로 재무·국무·국방부 등 정부의 16개 부처가 참여한다. 원칙적으로는 신고제로 운영되지만 직권으로 감사를 벌이거나 이미 마무리된 투자를 취소할 수 있는 막강한 기관이다. 미국 정부는 이와 함께 연방수사국(FBI) 등을 동원해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과 연구원들이 산업스파이 활동을 해왔는지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또 중국 정보기관의 사이버 해킹을 막기 위해 보안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1980년대 일본의 쓰라린 교훈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관세부과 조치에 대해 똑같은 규모의 미국산 제품들에 똑같은 조치를 내리면서 맞서고 있다. 중국 정부로선 첨단기술산업 육성에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는 만큼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상무부가 “국가의 핵심 이익과 인민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반격에 나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해 결연한 의지를 천명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동일 규모와 동일 세율의 관세 보복조치로 미국에 대응할 순 없다. 미국의 대중 수출은 한 해 1300억달러 수준으로, 5000억달러 규모인 중국의 대미 수출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로 중국에 5000억달러 규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중국의 반격 카드가 마땅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미국 국채 매각, 애플 등 중국 진출 미국 기업 불매 운동, 관광객들의 미국 여행 제한, 대북 제재 완화 등의 비대칭적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스티브 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시 주석은 1980년대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아니다”라면서 “시 주석은 결사 항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으로선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중국몽’을 포기할 수는 없다. 때문에 자칫하면 미국과 중국이 당분간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만 치달으면서 치킨게임을 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앞으로 중국 정부를 더욱 압박하기 위해 어떤 카드를 꺼내들 것인가. 미국 정부의 향후 카드와 관련해 친중파인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상당히 의미심장한 언급을 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일본은 1985년 미국의 강요로 플라자합의에 서명한 뒤 엔화가 급속도로 평가절상됐으며, 이 때문에 일본의 시장과 산업, 경제 등 각 방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면서 “중국은 일본의 쓰라린 교훈을 받아들여 경계심을 높이고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레이건 정부는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에 엔화 평가절상을 강요하며 대일 적자 줄이기에 나섰다. 플라자합의 이후 1988년까지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86%나 올랐다. 일본 정부는 금리를 낮추고 내수를 진작하는 정책으로 엔고에 대응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산 거품 형성과 붕괴로 이어지면서 ‘잃어버린 20년’으로 빠져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번 대선 기간 중 유세를 통해 “중국이 수출에 도움이 되도록 위안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며 “집권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나바로 국장도 그동안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무역적자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환율조작국이란 자국 수출을 늘리고 자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다른 나라 통화와 자국통화 간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를 말한다. 이런 점을 의식했던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시장개입을 자제하면서 위안화를 꾸준히 평가절상해왔다.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라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위안화가 약세이면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를 문제 삼으면 무역전쟁이 통화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재무부는 교역촉진법에 따라 4월과 10월 두 차례 의회에 주요 교역상대국의 환율조작 여부를 조사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고, 지난해 10월에 이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미국 정부가 환율조작국이라는 카드를 꺼낼 경우 양국은 관세보복을 넘어 훨씬 큰 규모의 싸움인 ‘통화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리샤오 중국 지린대학 경제금융대학원 원장은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최종 목적은 중국 금융시장 개방에 있다”면서 “중·미 무역전쟁보다 더욱 무서운 통화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 원장의 지적처럼 중국은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달러화 체제’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원유를 포함한 글로벌 무역 거래는 대부분 달러화로 이루어지고,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지위는 굳건하기 때문에 중국은 외환보유고 유지를 위해 무역으로 벌어들인 달러화 중 일부를 미국 국채 매입에 사용하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발행을 늘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3조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역전쟁으로 달러화 값이 급등해 외환보유고가 줄어든다면 중국의 통화 시스템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중국은 미국과의 통화전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최후 수단으로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은 국채 금리를 올려 다른 투자자들을 유치해야만 한다. 이는 미국의 금리 급등을 의미한다. 미국 소비자와 기업의 대출이자 부담이 크게 늘고 소비와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미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미국만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역풍도 상당하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금리 인상) 그만큼 보유분의 평가손실이 생겨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또 미국 시장의 소비가 위축되면 중국의 수출기업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21세기를 지배할 결정권은 핵무기가 아닌 화폐(통화)다. 화폐를 통제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쑹훙빙 중국 글로벌재경연구원장이 언급했듯이 미·중 치킨게임의 승자는 경제 규모가 크고 강력한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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