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들어 미국과 중국 간 보복 관세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중국 내에서 가장 바빠진 정부 부처는 무역을 담당하는 상무부가 아니라,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다. 상하이 증시가 출렁이고,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금융·증권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는 탓이다.

양국 보복관세 발효를 이틀 앞둔 지난 7월 4일 1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6.6595위안으로, 지난 6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위안화 환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국가외환관리국장을 맡고 있는 판궁성(潘功勝) 인민은행 부행장은 이날 “중국은 풍부한 정책 수단과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으며 경제 성장도 기본적으로 양호한 편”이라면서 “위안화 환율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중국 투자자들이 위안화 급락 장세에 편승하지 않도록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이다. 이강(易綱) 인민은행 행장도 “최근 외환시장 파동은 강달러와 외부 불안정성이 주요인으로, 순리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튿날인 7월 5일에는 인민은행 1인자인 궈수청(郭樹淸) 당 서기가 직접 등장했다. 그는 인민은행 기관지 금융시보 인터뷰에서 “최근 국제투기세력이 폭리를 거두기 위해 위안화 하락에 베팅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형세를 크게 잘못 보고 있다”며 “신흥 국제준비통화로 발돋움하고 있는 위안화는 앞으로 총체적으로 강세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인민은행 서열 1~3위 고위인사가 줄줄이 미디어에 등장해 투자자들에게 위안화 환율 안정을 공언하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위안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중국 내에서 미·중 화폐전쟁에 대한 공황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금융·증권 시장에서는 미·중 관세전쟁은 무역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며, 양 대국 간 화폐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관세전쟁이 재래식 전쟁이라면, 화폐전쟁은 핵전쟁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언론은 인민은행 수뇌부의 잇단 위안화 환율 발언을 이런 시장에 ‘진정제’를 투여한 것으로 묘사했다.

위안화, 3개월 새 6% 가까이 급락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지난 4월 중순 이후 급락세가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00억달러에 달하는 대중(對中)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라고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한 직후이다. 지난 4월 20일 1달러당 6.2897위안이었던 위안화 환율은 한 달여 뒤인 5월 29일 6.4021위안으로 6.4위안대로 올랐다. 6월 26일에는 6.5180위안으로 6.5위안대를 돌파했고, 6월 29일에는 6.6166위안으로 6.6위안대로 올라섰다. 7월 4일에는 6.6595위안으로 6개월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지난 4월 20일 이후 두 달 반 동안 5.6%가 떨어졌다.

인민은행 설명대로 위안화 가치 급락은 강달러가 주요인이다. 유로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dollar index)는 지난 4월 중순부터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4월 17일 89.13에서 6월 29일 95.10까지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최고 수치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발표하는 달러지수는 숫자가 클수록 달러 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달러 강세의 가장 큰 요인은 2015년 12월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FRB는 6월 13일 기준금리를 1.75~2.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 인상으로 미국 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2%대에 다시 진입했다. FRB는 올 하반기에도 두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지표 호조와 유럽 경제 불안,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협상 파기에 따른 중동 리스크 고조 등도 달러 강세 요인이다. 달러 강세 속에 브라질·아르헨티나·터키·폴란드 등 신흥국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달러 자금이 해외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외환위기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보면 위안화 가치 급락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이강 인민은행 행장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위안화 가치 하락을 ‘순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중국 시장 내에서는 강달러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이 아니라 미국 정책 당국의 의도적인 수순일 것이라는 의구심이 만연해 있다. 지방정부와 기업의 높은 부채비율, 부동산시장 거품 등 중국 경제의 구조적인 약점을 겨냥해 미국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 미·일 무역 전쟁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를 극단적으로 상승(엔·달러 환율은 하락)시키는 플라자합의로 이어졌다.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을 낮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달러 약세를 유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 상품의 달러 표시 국제 가격이 치솟으면서 일본 수출은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 부채·부동산 거품 터지나

미·중 간 화폐전쟁은 반대로 강달러 양상이 될 것으로 중국 내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감세 정책과 계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달러를 본토로 빨아들이면 이 과정에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의 환율이 급락하면서 주식·부동산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국 부동산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중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강달러가 신흥 개도국 경제를 뿌리째 뒤흔든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1980년대 초 남미 부채 위기가 대표적이다. 1979년 취임한 볼 풀커 FRB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년 사이 금리를 10%포인트나 끌어올렸고, 그 여파로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 미국으로부터 저금리 달러 외채를 대거 빌렸던 멕시코·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페루 등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강달러 바람 속에 통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졌고, 통화가치 폭락으로 외채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

1996년 시작된 닷컴 버블기에도 대량의 달러 자금이 미국으로 회귀하면서 강달러가 시작됐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아시아 금융위기를 불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홍콩, 러시아 등이 통화가치 폭락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동안 부채가 많거나 경상수지 적자가 큰 나라, 부동산 거품이 극심한 나라 등이 강달러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 점에서 중국도 자유롭지 않다.

중국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부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4조위안의 경기 부양책을 쓰면서 늘어난 빚이 아직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공식적으로 2016년 말 기준 257%이다. 중국 정부는 이후 부채비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하지만, 서방 언론은 숨은 부채 등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부채비율이 GDP의 260% 선인 것으로 보고 있다. 부문별로는 기업의 총부채율이 166.3%로 매우 높다. 이는 선진국 기업 평균 부채비율(80%)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부동산시장 거품에 대한 우려도 높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현재 중국 부동산시장 시가총액은 430조위안으로 작년 GDP(82조위안)의 5배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각국 평균의 2배에 이르는 수치라고 시나닷컴 등은 전했다.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선전 등 4대 도시 부동산 가격을 합치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미국 금리 인상과 위안화 가치 급락으로 중국 내 달러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터진다면 중국 경제가 일본형 ‘잃어버린 20년’을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1달러당 7위안 넘어간다

중국은 3조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어서 외환위기의 안전지대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안전한 방패막이가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은 2014년 6월 외환보유액이 4조달러에 달했지만 이후 계속된 달러 강세 속에 시중의 달러 수요가 늘면서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이 2년 만에 3조달러로 줄었다. 여기에 대외 부채도 1조300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중국의 올해 5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조1106억달러로 전달보다 142억달러가 줄었다. 지난 4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세다.

인민은행 고위 인사들의 잇단 구두 개입으로 최근 1주일 동안 위안화가 소폭 반등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 4~5월 두 달 연속으로 감소세를 보였던 중국 외환보유액도 6월 말에는 전달보다 15억달러 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이 나온 7월 11일에는 장중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6.6913 위안까지 올라가는 등 다시 한 번 요동을 쳤다. 석 달 전인 지난 4월 1달러당 6.2위안대였던 위안화가 3개월 만에 6.7위안대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내에서는 위안화 환율이 지금보다 더 떨어져 1달러당 7위안대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 지난 6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기업 자금난 해소를 위해 지급준비율을 인하하면서 시중에 위안화가 더 풀리는 등 위안화 환율에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 유명 글로벌 경제 전문가인 덩하이칭(鄧海淸) 인민대 객좌교수는 “위안화가 달러당 7위안대로 떨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화폐전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벤저민 J 코헨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난 4월 언론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위안화에 대한 직접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의 수출과 투자가 위협이라고 판단되면 위안화를 겨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언제든 화폐전쟁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유식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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