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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8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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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모광’ 드루킹의 USB에 숨은 것들

하주희  기자 

▲ 지난 4월 드루킹이 구속된 직후 경기 파주 느릅나무출판사 앞에 피켓이 붙은 모습.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바둑이를 잡으랬더니 누렁이를 잡나?” 정의당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7월 23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원내대표)이 투신한 후 만난 자리였다. ‘바둑이’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드루킹 등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들이 비밀대화방에서 쓴 별명이다. 한마디로 김 지사 수사가 주 목표인데 왜 곁가지 노 의원에게 칼날을 겨누었느냐는 항의다. 특검 관계자들은 노 의원 투신 후 애도 발언 외에 다른 공식 언급은 자제 중이다. 고인을 배려해서다.
   
   허익범 특검이 어디 있는지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서울 강남역 부근으로 가, 정장 차림을 한 젊고 지친 표정의 남녀가 앞을 서성이는 건물을 찾으면 된다. 기자들이다. 언론사 차량이 그 앞을 주기적으로 왔다갔다 해 더욱 알아보기 쉽다. 건물 입구가 좁은 데다 1층엔 항상 두세 명의 기자가 상주한다. 특검 사무실 방문자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덩달아 같은 건물 미용실이나 성형외과를 찾는 손님도 요주의 대상이 된다. ‘괜히 번화가에 사무실을 낸 것 아닌가.’ 요즘 특검 내부에서 나오는 얘기다.
   
   
   “바둑이 대신 왜 누렁이를 잡나”
   
   사실 특검 관계자들은 노 의원이 투신하기 전에도 여론의 향방에 우려를 했다. ‘노 의원이 수사 초점이 아닌데 자꾸 그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외부에 비친다. 노 의원 자체에 큰 혐의점을 둔 게 아닌데 말이다.’ 특검 입장에서 보면, 노 의원 수사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했다. 도모 변호사를 조사하며, 노 의원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도 변호사는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로 김경수 지사에게 인사를 부탁한 인물이다. 경공모 내 아이디는 ‘아보카’. 김 지사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도 변호사는 드루킹이 구속된 후인 3월 28일,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만나기도 했다. 도 변호사는 노회찬 의원과는 경기고 동창이다.
   
   특검은 도 변호사를 7월 10일 긴급체포했다. 수사 도중 긴급체포를 하는 게 맞는지 특검 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긴급체포 사유는 피의자의 신변이상 우려와 증거조작 우려. ‘피의자가 조사 중 쉽게 흥분하는 등 심적으로 불안감이 느껴졌다. 혐의사실이 증거위조라 부득이 긴급체포한 상태에서 추가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7월 19일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의자가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건 피의자의 문제인 데다 방어권을 빼앗을 만한 긴급한 사유가 아니라 판단했다. 같은 날 도 변호사는 풀려났다.
   
   노 의원은 왜 투신했을까. 노 의원은 7월 18~22일까지 미국을 방문했다. 5당 원내대표 합동 방문이었다. 미국 시각으로 7월 19일까지도 그는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불법 정치자금 받은 적 없다. 특검 조사 당당히 받겠다.” 현지 특파원과의 자리에서였다. 몇 시간 후, 한국에선 도 변호사가 구속 상태에서 풀려나왔다. 그 시점부터 23일 아침 사이 언젠가 노 의원이 마음을 정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특파원들에게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곤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 의원이 미국에서 귀국 후 도 변호사와 접촉이 있었으리라 추측하는 이유다. 이는 애초 특검이 도 변호사를 긴급체포한 이유이기도 했다. 여기에다 노 의원은 정치자금 회계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이 있었다고 한다. 선거운동을 도왔던 정의당 관계자들의 얘기도 같다. “불법적인 방법을 쓰는 걸 싫어했다. 그러니 조직 관리나 세 동원이 아무래도 힘들었다. 인지도와 지지도는 일등인데 당내 선거 결과를 막상 열어보면 예상과 다른 경우도 있었다.” 결단코 부인했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것이란 점이 목을 조여왔을 거란 얘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24일 “드루킹 특검을 이제 마무리해야 한다”며 수사 종결을 요구했다. ‘박영수 특검은 거의 다 죽은 권력을 조사했지만, 허익범 특검은 다르다. 한창 살아있는 권력을 어떻게 조사하겠나.’ 이는 허익범 특검이 출범할 때 향했던 우려다. 사실 특검은 의외의 성과를 몇 가지 올렸다. 현장에서 증거물을 새롭게 찾아낸 게 그중 하나다. 이미 검찰, 경찰이 훑고 지나가 아무것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경기 파주 느릅나무출판사 현장 얘기다. 7월 10·16일 양일간 압수수색에서 휴대폰과 유심칩 각각 수십 개를 새로 발견했다. 10일에 발견한 휴대폰 21대와 유심칩 53개는 쓰레기더미 안에 있었다고 한다. 16일엔 느릅나무출판사의 짐을 옮겨놓은 창고를 뒤졌다.
   
▲ 지난 7월 23일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에서 노회찬 의원 자살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허익범 특검.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스스로를 변호하는 드루킹
   
   이쯤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드루킹, 김동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는 단순히 ‘일 삼아 돈 받고 댓글 조작하는 네티즌’ 수준의 인물은 아니었던 듯하다. 경제적 공진화를 기치로 경기도 파주에 ‘두루미타운’을 만들겠단 ‘큰 그림’을 갖고 있었다. 평소 자미두수를 신봉하고 ‘교하천도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하는 바로 파주다. 참고로 평창올림픽 개최연도도 예언했다. 2014년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공진화란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을 압박해 총수 일가를 축출하고 재벌 기업을 국민의 소유로 돌린다는 논리다. 그러기 위해 국민연금에 주목했다. 600조원의 기금을 이용, 주주 자격으로 재벌을 압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얼핏 공상과학소설처럼 들리는 발상이다. 경공모 회원들은 이를 믿은 듯하다. 하긴 최근에도 여당의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삼성이 20조원만 풀면 200만명에게 1000만원씩을 더 줄 수 있다’고 말한 점을 보면 진심으로 믿은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드루킹은 노 의원이 문재인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고 한다. 그가 노 의원에게 접근한 이유라고 여겨지는 배경이다.
   
   수사 관계자들의 얘길 들어보면, 드루킹은 상당히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한다. 그리고 메모광이다. 보고 들은 모든 걸 메모로 남겨놓는다. 특검이 그가 정치인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나 문자를 모두 저장해놨으리라 추측하는 이유다. 수사관들은 그가 수사를 받고 난 후에도 모든 걸 메모했으리라 추측한다. 그 상황의 어느 누가 안 그렇겠냐마는, 무엇보다 수감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한다. 두 딸에 대한 애정이 지극해 만나고 싶어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출판사에서 애초 천연비누를 만든 것도 딸에게 아토피가 있어서라고 한다.
   
   특검에 따르면 수감 중인 그에게 변호사는 일종의 연락책일 뿐이다. 스스로 변호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했고 왜 무죄인지 직접 얘기한다. 7월 4일 결심 공판에서 그가 한 최후진술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참고로 검찰이 그를 기소한 이유는 ‘평창 올림픽 기사 여론조작’이다. 구체적으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결성을 다룬 기사다.
   
   “사회적·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와 별도로 네이버 측 고소와 검사 기소는 법리적으로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양형에 반영해주길 간곡히 청한다.” 그는 이렇게 진술을 시작했다. 진술은 이어진다.
   
   “검사의 기소 내용은 저와 피고인들이 부정한 명령을 입력해, 통계집계시스템에 장애를 발생시키고 네이버 순위선정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주장처럼 보이나 많은 법리적 문제점이 있다. 허위 정보를 입력했단 건 저와 피고인들이 자동화 프로그램, 소위 매크로를 사용했다는 건데,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공감클릭 행위는 부정한 명령이 아니다. 부정명령이란 정보통신망을 구성하는 컴퓨터 시스템에 목적상 예정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거다. 부정하게 삭제하거나 프로그램 전체를 변경하는 거다. 이 사건에서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공감클릭은 네이버 시스템 내에선 통상적인 정보자료이므로 부정명령이 아니다. 허위 정보도 아니다.”
   
   IT에 대한 지식이 좀 필요한 대목이다. 간단히 말하면, 네이버 시스템 자체에 해를 끼치거나 시스템 구동 원리를 거스르는 식으로 조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부정한 명령이 아니란 설명이다. 드루킹은 이어서 네이버 약관을 들고나온다.
   
   “네이버는 약관에서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에 대해 자동화 프로그램을 금지하는 일체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을 이용한 공감클릭 행위를 허위 신호로 보지 않고 이용자들이 실제로 클릭한 객관적 정보로 본 거다. 규약은 매우 중요하다. 일반 공산품을 구입할 때도 취급 시 주의점을 적어놓는다. 그렇게 해서 제조, 판매자는 사용자의 행위에서 면책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한 기사 댓글 공감클릭 행위를 네이버가 객관적 정보로 상정하고 있었다고 적극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다시 주목받는 드루킹 최후진술
   
   실제 네이버는 올해 4월 4일에야 ‘자동화된 프로그램 금지 조항’을 이용약관에 넣었다. 당시 네이버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서비스 오남용(어뷰징) 행위나 시도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 등 자동화된 수단의 활용 등을 통한 비정상적인 서비스 이용 유형을 자세히 규정하고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조작이나, 로봇을 이용한 댓글 공감클릭은 몇 년 전부터 문제로 제기됐다. 돈을 받고 대신 조작해주는 업체가 있다는 보도도 여러 번 나왔다. 이용자들은 문제점이라 계속 지적했는데, 정작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네이버는 그동안 자체 규정으로도 금지하지 않았단 얘기다. 드루킹의 진술은 이어진다.
   
   “저와 피고인들이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부분도 들여다봐야 한다. 네이버는 자신들이 규제한 것처럼 주장하나, 자동화 프로그램 댓글 등에 대해선 방치하고 묵인해왔다. 트래픽을 근거로 광고 단가를 높여 수익을 얻었다. 8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이 광고 매출 대부분이 트래픽을 기반으로 한 거다. 즉 네이버에 트래픽 증가는 곧 돈이다. 그들이 왜 기사 댓글에 자동화 프로그램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는지 이유가 명확한 거다.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말이 있다. 피고인들은 공감을 클릭해 올린 트래픽으로 아무런 금전적 수익을 얻은 게 없다.”
   
   검찰의 여론조작 혐의에도 거침없이 반박한다. “네이버는 기사를 대문에 올릴 때 다음처럼 알고리즘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편집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피고인들이 아무리 공감버튼을 눌러도 대문에 올라가게 할 수 없다. 여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편집권을 가진 네이버지, 우리가 아니다. 법리에 밝은 검사 측이 여론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정량적 판단 없이 여론조작을 주장하며 양형에 영향을 주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네이버에서 기사를 읽을 때 맨 아래에 보면 이런 버튼이 있다. ‘이 기사를 모바일 메인으로 추천’. 이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메인으로 보낼 수 없다. 네이버도 인정한 사실이다. 네이버 측은 “메인 추천을 눌러 메인에 올릴 수 있다면 공감·비공감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베타 표시를 하고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 적용하지도 않는 기능을 만들어 1년 가까이 시험만 하는 게 혹시 트래픽을 더 늘리려는 의도가 아닐까 오해할 수 있는 이유다.
   
   드루킹 공판의 선고 기일은 미뤄졌다. 특검은 도 변호사를 소환해 조사를 재개한다. 30여일, 반 바퀴를 돈 특검이 중점적으로 밝힐 것들이 쌓여 있다. ‘김경수 지사가 관여했는가, 관여했다면 어떤 대가가 오갔는가, 드루킹이 만든 경제민주화 관련 보고서는 민주당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가, 비누 팔아 정치자금과 운영비를 어떻게 마련했는가, 김 지사의 배후엔 누가 없는가.’ 특검이 숨이 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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