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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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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형제 나라’ 쿠바와 북한의 엇갈린 선택

쿠바, 개헌 통해 시장경제로 김정은 ‘국산화’ ‘자력갱생’만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1986년 북한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와 김일성. photo 노동신문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016년 11월 25일 사망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주재 쿠바 대사관을 직접 방문해 조문했다. 김 위원장은 조의록에 ‘탁월한 지도자는 비록 서거하였지만 그의 이름과 업적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영생할 것’이라며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이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이 외국의 전직 국가원수임에도 불구하고 평양 주재 외국 대사관까지 찾아가 조문한 것은 당시가 사상 처음이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애도하는 사진과 조의록 사진을 1면에 게재했고, 6면에는 피델의 일대기를 다뤘다. 북한 정부는 사흘간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고 조기를 게양했다. 북한 정부는 또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조문 대표단을 쿠바로 파견했다.
   
   김 위원장이 일면식도 없는 피델의 사망을 정중하게 예우한 이유는 조부 김일성과 피델이 형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북한과 쿠바는 1960년 수교 이래 김일성과 피델의 유대를 토대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쿠바 공산혁명을 주도한 피델은 반미투쟁을 기치로 내세워 쿠바를 49년간 통치해왔다. 김일성은 피델의 반미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피델은 1986년 김일성의 초청으로 평양을 공식 방문해 북한과 쿠바 간 친선협력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당시 피델은 김일성으로부터 소총 10만정과 탄약을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피델은 2013년 자신의 87번째 생일을 기념해 출간된 회고록에서 이런 사실을 밝히면서 김일성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피델은 애초 AK 소총 1만정과 설탕의 교환을 제안했지만 김일성은 미국 본토 남쪽에 위치한 쿠바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미국에 대항하는 우군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쿠바에 선뜻 무기를 무료 제공했다. 이후 피델도 북한에 설탕을 무료로 보내는 등 성의를 보여왔다.
   
   이처럼 돈독한 우정을 과시해온 김일성과 피델은 옛 소련이 붕괴된 이후부터 생존하기 위해 엇갈린 선택을 해야만 했다. 소련의 원조가 끊기자 피델은 극심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실용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김일성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핵 개발을 추진했고 경제적으론 계획경제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또 두 사람은 ‘권력세습’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이 주도한 공산혁명을 이어가려는 의도를 보였지만 김일성은 부자세습을, 피델은 형제세습을 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6남2녀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델이 2008년 동생이자 혁명 동지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넘긴 것은 쿠바를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반면 김일성은 북한을 자신이 세운 ‘왕조’라고 생각해 자신의 동생인 김영주 대신 아들인 김정일에게 일종의 ‘왕위’를 계승시킨 것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장이었던 김영주는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자강도에 은거했다. 김정일은 삼촌인 김영주에게 대의원이라는 형식적인 권한만 주었다.
   
   
   ‘형제’에서 ‘동지’로
   
   김정일과 라울은 선대의 유대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강조해왔지만 더 이상 ‘형제’가 아닌 ‘동지’ 관계만을 유지해왔다. 실제로 라울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2010년부터 식당, 미용실 등 180여개 업종의 소규모 자영업을 허가하는 개혁 조치를 실시했다. 라울은 2011년 자동차와 주택 매매를 허용했고 2013년 해외여행도 자유화했다. 특히 라울은 201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앞세우며 독재를 강화하고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도 시험 발사했다.
   
   북한과 쿠바는 올해를 기점으로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특히 라울은 지난 4월 19일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퇴임하고 공산당 총서기직만을 유지한 채 2선으로 후퇴했다. 국가수반 교체는 1959년 쿠바 공산혁명 이래 이어진 피델-라울 카스트로 형제의 집권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국가수반으로 선출된 미겔 디아스카넬(58) 국가평의회 의장은 사상 처음으로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최고지도자의 장기집권을 금지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쿠바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쿠바 의회 격인 전국인민권력회는 지난 7월 21일 사유재산 인정 및 시장경제 도입, 국가평의회 의장 임기 제한(10년), 총리직 신설, 동성결혼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헌안은 오는 11월 국민투표를 거쳐 정식 발효될 예정이다. 개헌안의 내용을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헌안의 가장 큰 특징은 공산사회 건설이라는 목표가 기존 헌법에서 삭제됐다. 또 사유재산과 외국인 투자 및 자유시장경제를 인정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현행 헌법은 국유 재산과 협동조합 재산, 농민의 재산권 등만 인정하고 있다.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한다는 것은 1976년 피델 전 의장이 만든 공산주의 헌법에 명시했던 국가가 모든 사유재산을 소유한다는 근본적 개념을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개혁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개인들이 재산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고, 투자에 필요한 범위에서 외국인에게도 부동산 소유를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국가는 개인의 재산 양도와 매각에 개입해 규모를 제한하거나 가격을 조정하는 권한은 계속 갖도록 했다.
   
   또 권력 분산을 통해 기존 국가평의회 의장이 독점하던 권력도 이원화시켰다. 내각에 대한 권한을 국가평의회 의장과 총리가 분점하도록 했다. 현재 국가평의회 의장은 명목상 국가원수인 동시에 사실상의 입법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평의회와 행정부에 해당하는 각료평의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 개헌안은 이 중 각료평의회를 신설되는 총리의 관할하에 두도록 했다. 총리는 각 부처를 총괄하는 내각 수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 국가평의회 의장의 임기를 5년으로 규정하고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도록 제한했고, 60세 이하만 맡을 수 있도록 해, 제도적으로 세대교체를 보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력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법 분야에선 무죄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는 등 피의자의 방어권 개념이 강화됐다. 피의자가 유능하고 독립적이며 공정하고 합법적인 재판부에 의해 기소되고 판결을 받을 권리도 추가됐다. 현행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 신분·인종에 따른 차별 금지 등의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고, 여기에 성별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이 추가됐다. 이런 내용들은 인권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상당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규정한 기존 헌법 조항을 두 개인 간 결합으로 대체한다고 해 사회적으로 금기시됐던 동성 간 결혼 허용도 개헌안에 포함시켰다.
   
   
▲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전국인민권력회에서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photo Granma

   쿠바가 개헌카드를 꺼내든 배경
   
   그렇다면 쿠바가 개헌을 추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구 1124만명의 섬나라 쿠바는 1962년 도입된 배급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75%는 정부 부문에서 일하고 자영업을 하는 노동자는 25%에 머물고 있다. 정부 부문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월 30달러(3만2000원)밖에 안 된다. 쿠바는 그동안 자영업 등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해왔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은 현행 헌법이 개혁·개방의 발목을 잡아왔다. 게다가 사회주의 우방인 베네수엘라가 정치·경제적 혼란으로 쿠바에 더 이상 원유를 값싸게 공급해줄 수 없게 됐다. 쿠바의 경제성장률은 2016년 -0.9%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1.6%에 그쳤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달리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쿠바 공산당 지도부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사유재산을 허용해 발전동력을 마련하고 외국 자본 투자를 유치해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쿠바 공산당 지도부는 개헌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처럼 쿠바에서도 1990년대를 ‘특별시기(Periodo Especial)’로 부른다. 당시 북한에서 수백만 명이 아사했지만, 쿠바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은 없었다. 당시 피델은 국민들에게 공한지, 텃밭, 집 마당을 경작해 식량을 생산,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친환경 유기농업을 장려하고 협동조합을 허용했으며 관광산업을 육성했다. 반면 김정일은 핵 개발을 계속하면서 굶어 죽어가는 주민들을 외면했다.
   
   김정일은 자신의 아들인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북한에서 사상 유례없는 3대 세습체제가 구축됐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전략국가로 급부상한 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종료를 선포하고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발표했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정상국가’의 지도자임을 과시한 김정은은 최근 들어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지방 곳곳을 돌며 공장과 기업 등 경제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김정은의 이런 행보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로 북한이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이 비핵화를 이행한다면 국제사회의 제재조치가 해제되면서 북한 경제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김정은의 권력만 강화될 뿐 북한 주민들이 잘살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쿠바의 행보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해선 무엇보다 사유재산 인정 등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의 북한 헌법을 보면 철저하게 공산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제2장인 경제 부문을 보면 우선 제19조는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립적 민족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제20조에서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1조에선 국가소유권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제34조에선 인민경제는 계획경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은 과거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고 계획경제를 추진했지만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계획경제(planned economy)는 경제를 시장 기능에 맡기는 대신 국가가 세세한 부분까지 계획을 세워 자원을 배분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가가 생산·분배·유통 등 모든 경제 부문을 통제하고 지시하며 경제를 운영하는 계획경제 체제에서 개인의 창의성이나 자발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생산성과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경제는 갈수록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계획경제 체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 김정은이 황해남도 삼천메기공장을 시찰하고 있는 모습. photo KCIVA

   시장경제에 눈감은 김정은
   
   김정은이 3번이나 중국을 방문했지만 시장경제 체제를 배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쿠바가 지난 59년간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다가 개헌을 통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키로 한 것도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는 경제의 자원배분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의 가격조정 메커니즘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시장경제 체제의 제도적 원칙은 사유재산권과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은 물론 사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아마 시장경제 체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지난 7월 신의주 방직공장을 방문해 “우리 식의 국산화·현대화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때에 이 공장은 난관 앞에 주저앉아 일어설 생각도 하지 못하고 동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산화’와 ‘자력갱생’을 이처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생활에서 무엇을 공부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라울 전 의장의 부분적인 시장경제 체제 도입으로 쿠바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이 그나마 먹고살 정도가 됐다. 2016년 유엔 통계 기준으로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174억달러로 113위인 데 비해 쿠바는 896억달러로 65위다. 쿠바가 GDP에서 북한보다 5배나 많다. 북한은 쿠바보다 인구가 2배나 많다 보니 1인당 GDP에선 격차가 더욱 심하다. 북한의 1인당 GDP는 665달러로 세계 최하위권인 176위인 데 비해 쿠바는 7815달러로 77위다. 쿠바가 북한보다 11.8배나 많다. 쿠바는 개헌을 통해 사유재산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예정이다. 21세기 지구상에서 드물게 남아 있는 일당독재 국가인 북한과 쿠바가 이처럼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김씨 3대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김정은이 아무리 경제현장을 시찰하고 당 일꾼들을 몰아세워도 북한 경제가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에게 사유재산을 보장하거나 자율권을 허용할 의도와 가능성은 없다”면서 “김정은이 국제사회가 바라는 시장경제 체제를 수용할 가능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김정은은 정권 출범 직후인 2012년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이 약속을 지켜야 하는 김정은은 ‘형제’인 쿠바가 선택한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이냐를 놓고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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