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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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71)에겐 세 가지가 없다. 스캔들, 지역 연고, 정치색이다. 정치 인생 25년간 추문이 없었다. 흔한 말실수도 별반 없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정치에 입문했다. 고향은 경기도 시흥. YS키즈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지만 전국구의 느낌인 건 그 때문일까. 경기도 광명, 분당에서 배지를 달았고 서울 종로와 수원에서도 출마했었다. 정치에 중도가 유행하기 전부터 중간 위치에 있었다.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친 직후,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에 참여하는 모습에도 심리적 저항이 덜했던 이유다. 화제가 된 ‘손학규 징크스’나 연거푸 이어진 대선 경선 탈락 때문인지 정치적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라는 동정론도 나왔다. 돌아보면 대통령과 총리 빼곤 다 거쳤다.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4선 국회의원. 그런 그가 바른미래당 당대표로 돌아왔다. 지난 9월 11일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손학규 대표를 만났다.

그의 당대표 득표율은 27.02%. 하태경(22.86%)과 이준석(19.34%)이 뒤를 이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손 대표가 바른미래당의 회생관리인이 될지, 아니면 파산관재인으로 기록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화학적 결합’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손 대표는 “탈당 얘기는 일단 멈춘 상태”라고 했다.

“선거 기간 안심(安心) 논란이 있었지만, 안철수 진영 사람들의 지지만으로 당선된 것은 아니다. 바른정당 출신들도 많이 지지했다. 함께 모임도 가졌다. 원래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 사이에선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있었다. 지금은 ‘손학규가 나왔으니 일단 지켜보고 결합하도록 노력해보자’는 상황이다.”

이번 판문점선언 비준을 둘러싼 논란에서 엿보이듯, 같은 당이라도 생각이 많이 다른 게 아닐까. 손 대표의 생각은 이렇다. “정당은 이념을 공유하지만 그 안에서 스펙트럼이 좌우로 다양할 수 있는 거다. 대통령 권위 때문에 지금은 아무 말 못해서 그렇지, 더불어민주당도 그 안에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지 않나.”

6월 지방선거 이후 정당 지지율엔 변화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50% 중후반대에서 40%대로 15%포인트가량 내려갔다. 이 지지율은 어디로 갔을까. 정의당이 7%대에서 10%대로 3%포인트가량 상승하고 바른미래당은 5%대에서 7%대로 약 2%포인트 올랐다. 나머지의 행방이 묘연하다. 여당과 정권에서 떨어져나간 지지층이 야당으로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손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촛불혁명의 대상자 아닌가. 완전히 새롭게 하지 않으면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바른미래당은 통합과정에서부터 마이너스 통합이었다. 영호남의 통합이라 해도 껍데기 통합이었다. 그게 이번 지방선거로 완전히 거덜났다. 국회의원이 30명인 정당이 지방선거에서 26명밖에 당선시키지 못했다는 건 정당으로서는 완전히 거덜났단 얘기다. 공중분해된 위기에서 살려달라고 손학규를 부른 거다. 이번에 함께 당선된 최고위원을 보면 30대(이준석)부터 50대(하태경)까지 젊다. 당대표에 70대인 나를 뽑은 건 당을 위기에서 구해달란 뜻이 아닌가 싶다.”

“‘청와대 정부’가 문제, 규모 확 줄여야”

손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을 내세웠다. 둘 다 정치권의 묵은 과제다. 선거구제 개편엔 ‘비례성 강화’가 관건이다. 각 정당의 실제 득표율이 최대한 실제 국회 의석수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미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선 지역에서 1등을 한 당선자만 의회에 들어간다. 자연히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예를 들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전체 득표율은 25.54%였다. 국회 의석 비중은 40.7%(121석)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개헌은 좀 더 복잡하다. 권력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느냐가 걸려 있어서다. 야당 일각에서 현재처럼 청와대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타개할 근본적 방법으로 개헌을 꼽는 이유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현 구도를 바꾸려면 개헌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는 길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손 대표에게 개헌 논의를 언제쯤 본격적으로 시작할지 물었다. “당장은 힘들겠지. 봐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절반 이상이 내각제 개헌론자였다. 지금 누가 내각제 얘길 꺼내나. 대통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하자 제시했다. 이 정권은 촛불정신으로 출범했다. 촛불정신은 패권주의를 청산하고 국민에게 주권을 돌려주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패권은 대통령제에서 나오는 거다.”

그의 말대로 민주당 내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모임도 있었다. 2016년 말에 결성한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다. 목소리를 낸 건 지난해 8월이 마지막이었다.

손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졌는지. 이 정부 들어 경제가 급전직하했다. 고용 통계를 봐라. 20만명은 늘어나야 하는데 안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해서 한 첫 번째 지시가 일자리위원회 설치 아닌가. 대통령이 위원장도 맡았다. 일자리 추경을 2번이나 했다. 본예산 중에서도 54조원이 일자리 예산이다. 지금까지 43조원 썼단다. 그런데 취업자 수가 전달 대비 3000명밖에 늘지 않았다는 최악의 통계가 나왔다. 집권 2년 차 들어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처분가능소득 5분위배율이 5.23이다.” 소득 5분위배율이 5.23이란 건, 가장 소득이 높은 20%가 하위 20%보다 5배 더 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은 뭘까.

“가장 큰 원인이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이다.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해고를 당하고 있다. 일자리가 형편없이 줄 수밖에 없다. 이 정부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지 않나. 경제는 시장에서 움직인다는 걸 잊어버린 것 같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정부는 이걸 돕는 거다. 그런데 반기업 정서가 횡행하고 있다. 저소득층과 자영업자들을 지원한다면서 보조금 주는 식으로 지원하면 경쟁력이 약화된다. 결국 이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다. 경제는 경제부총리가 맡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청와대가 다 결정한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몰려 있으니 청와대 참모들이 권력을 휘두른다. 정책실장, 경제수석, 일자리수석에 더해 자영업 비서관? 청와대 규모를 확 줄여야 한다.”

손학규 대표는 경기도지사를 마친 후 2007년 전국을 돌며 민심대장정을 했다. 전남 화순의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를 방문해서는 지하 500m 갱에서 작업에 동참했다. ⓒphoto 국회사진기자단
손학규 대표는 경기도지사를 마친 후 2007년 전국을 돌며 민심대장정을 했다. 전남 화순의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를 방문해서는 지하 500m 갱에서 작업에 동참했다. ⓒphoto 국회사진기자단

“보여주기식 정치 그만해야”

집권 2년 차에도 이어지고 있는 ‘적폐청산’에 대한 그의 생각도 궁금했다.

“제도를 청산해야 하는데 인적 청산을 하고 있다. 대통령 2명과 그들의 참모들이 감옥에 있다. 경제인들도 줄줄이 구속됐다. 과거의 정치권력을 뿌리 뽑겠다고 하면서 사회에 심리적 불안을 가져왔다. 기업이 정부가 무서워 투자를 꺼린다. 적폐청산은 패권주의 청산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무소불위 권력을 청산해야 한단 얘기다. 그런 구조는 놔두고 대통령만 바뀌었다. 그러니 청와대 권력만 더 세졌다. 자기 사람들만 기용하지 않나.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 넘게 공석이다. 모든 인사를 청와대에서 다 하니 문제다. 예전엔 안 그랬다. 장관 책임하에 기관장을 임명하고, 그 기관의 하위 사람들은 기관장이 임명하는 식이었다. 지금은 공단 감사, 실장까지 청와대가 다 인사한다. ‘청와대 정부’가 문제다.”

지난 9월 10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문희상 국회의장과 5당 대표들을 남북 정상회담에 초청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만 수락했다. 방북 권유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페이스북에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썼다. 손 대표에게 거절 배경을 물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보여주기식 정치로 생각하면 안 된다. 북한 비핵화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게 현재 미국과 국제사회의 입장 아닌가. 이 정부는 종전선언을 체결하려고 하지만 미국은 꿈쩍도 안 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비핵화 리스트와 구체적인 비핵화 계획을 내놓을 수 있도록 모든 기싸움과 수싸움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당대표와 국회의장이 가서 뭘 하겠나. 가서 결국 관광만 하는 건데 왜 데려가려고 하나. 이런 데 신경 쓰지 말고 김정은과 머리를 맞대고 깊이 있는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수행시키는 건 3권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다. 당 대표들이 들러리 서는 건 민주주의도 아니다. 권위주의적 사고의 잔재다.”

임 실장 발표 전에 청와대에서 사전에 협의가 있었는지 물었다.

“일요일(9월 9일) 오후 문희상 의장으로부터 ‘청와대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며 전화가 왔다. 그래서 ‘논의 후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다음날 최고위 사전회의에서 토의한 후 안 간다고 했다. 그러자 문 의장도 ‘국회의장이 거길 가는 게 좀 그렇다’며 본인도 안 간다고 하더라.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날 오후 임종석 실장이 생방송으로 초청을 하는 거다. 기가 막히더라. 안 간다는 걸 이미 다 알면서 여론으로 압박하려 한 거다. 문 대통령은 ‘당리당략’이란 표현을 썼다. 대통령이 그런 표현 쓰면 안 된다. 국회와 야당을 우습게 보는 거다. ‘데려가서 호강시켜 준다는데 왜 안 가냐’, 이 소리 아니냐. 이런 보여주기식 정치가 어디서 누구한테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탁현민의 발상이라고 하더만.”

야당의 반발은 생각보다 꽤 거세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의 말이다.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임 실장은 왕을 모시는 영의정이고 우리는 그 아래 신하인가.”

김병준 위원장에게는 그나마 사전에도 거절 이후에도 청와대에서 아무 언질이 없었다고 한다. 한병도 정무수석의 연락 외에는 말이다.

손 대표는 판문점선언 비준을 두고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 문제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판문점선언은 역사적 선언이다. 북한이 여러 번 비핵화를 약속하고 평화정착의 길을 제시했으니 국회에서 협조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비준을 하려면 구체성과 상호성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고 재정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북한은 거기에 상응하는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비핵화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이 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남한이 전제하는 ‘북한 비핵화’가 다른 얘기란 분석이 있다. 후자는 어디까지나 북한 지역 내 핵 관련 활동 정지만을 뜻하지만 전자는 북한 핵무기를 보유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까지 포괄한다는 뜻이다. 손 대표는 “그러니 조급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는 30년 역사를 지닌 사안이다. 30년 동안 개발해온 핵무기를 하루아침에 포기하겠나. 아직도 한참 갈 길이 멀다. 내일 당장 결말이 안 난다.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는 걸 보고 비준하겠다? 그렇다면 합의서나 결의문 다 필요 없는 거다. 그 과정으로 가기 위해 결의문을 발표하자는 얘기다. 나는 대북평화정책은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하고, 북·미 회담 중재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건 잘하는 거다. 다만 구체적이고 가시적 성과를 내고 싶어 종전선언 요청하고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청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급해하면 안 된다.”

‘포스트 3김’ 시대다. 정치 영역은 발전하고 있는 걸까, 그의 의견이 궁금했다.

“정치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 김 시대는 다른 의미로는 지역주의의 고착화였다. 3김이 영남, 호남, 충청 아니었나. 이게 우리 정치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나. 김종필이 정치를 잘했다고 하지만 그는 2인자 정치하면서 자민련으로 지역정치를 한 거다. 돌아가신 분 폄하하는 걸로 비칠까 조심스럽지만 그분이 다 잘한 건 아니다. 지금은 그래도 지역정치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있지 않나. 공부도 열심히 한다. 정치인들의 노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핵심 권력이 다 청와대에 있기 때문이다. 의원이 조그마한 일 해봤자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어떻게 여당 의원 모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 찬성하겠나. 그래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 않나.”

“진보가 기득권 세력 되면 독선적”

임종석 실장, 조국 수석, 김현미 장관 등 현 정부의 주축이 386세대인데 그들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이랬다. “386세대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한 세대인데, 그땐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생운동을 했다. 386세대가 정치 중심세력이 되니, 일단 인사를 다 그 사람들이 주도한다. 그들이 당대표까지도 바라봤는데 아직 거기엔 못 미친 거다. 그들은 저항세력으로 시작해 기득권세력이 됐다. 한편으론 여전히 개혁을 외친다. 이들이 우리 다음 정치를 책임져야 하는데 걱정이다. 진보가 기득권이 되면 권력은 세지면서 다른 이들을 배타하는 세력이 된다. 독선적이 된다는 얘기다. 이미 기득권이면서 개혁세력인 척하려는 게 문제다.”

“다당제는 피할 수 없다”

요즘 정계에서 나도는 ‘손학규발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손 대표의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다. ‘바른미래당이 자유한국당과 합치는 거 아니냐.’ 나는 ‘어떻게 합칩니까’라고 답한다. 우리 정치가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니 정의당 지지율이 10%대까지 올라간 것 아닌가. 더불어민주당은 집권여당으로 굳건하다. 당원수가 3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하더라. 그에 비해 오른쪽은 사람은 많은데 텅 비어 있다. 그걸 다시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 자유한국당 중심으로 하면 보수우파 양당 체제로 다시 가는 거다. 다음 총선에는 민주당과 중도개혁 정당인 바른미래당이 커다란 양당이 되는 구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왼쪽에 정의당 등 다른 당이 있고. 다당제는 이제 피할 수 없다.”

정치인 손학규의 꿈은 뭘까.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꽃을 못 피웠다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의 힘이 지금처럼 셌던 때가 없었다. 대통령의 힘이 너무 세졌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워서 사회통합에 이바지하고 싶다.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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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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