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의 채용비리와 관련된 전직 직원의 제보 문건.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신한은행의 채용비리와 관련된 전직 직원의 제보 문건.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신한은행 채용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지난 8월 31일 신한은행의 전직 인사부장 2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2013년 이후 신한은행 직원 채용 과정에서 벌어진 비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신한은행과 신한카드, 신한캐피탈, 신한생명 등을 검사한 결과 22건의 특혜채용 정황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지난 6월 11일 신한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대면조사를 진행하는 등 수사를 이어왔다.

최근 구속된 신한은행 전직 인사부장 김모씨와 이모씨는 2013년 이후 신한은행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신한금융그룹 내 계열사 임직원 자녀나 지방 언론사 주주 자녀, 전직 고위관료 조카 등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신한은행 일부 채용에서 임의로 성별에 따른 연령 제한을 두는 등 차별적인 심사가 이뤄지는 데 개입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전·현직 신한은행 임원들의 자녀 다수가 부당한 혜택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마치 ‘현대판 음서제’를 떠올리게 했다. 검찰은 채용비리 당시 행장이었던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소환 시점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신한은행 채용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는 은행의 전·현직 임직원 자녀들의 ‘대물림 채용’이 부각됐지만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채용비리가 있다. 바로 은행이 직원 채용을 미끼 삼아 각종 영업에 나서는 경우다. 특히 지자체 금고를 따내기 위한 수단으로 지자체장 자녀 채용을 활용하는 방식은 ‘영업의 정석’처럼 이뤄져왔다는 것이 은행계 내부의 정설이다.

전국의 시·군·구 등 지자체에서는 연간 운용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이를 운영할 금고를 선정하고 있다. 규모에 따라 한 해 수백억원에서 수십조원에 이르는 지자체 금고를 유치하기 위한 시중은행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기관고객부를 따로 두고 집중적으로 영업에 나서는 은행도 많다.

은행의 기관고객부는 어떤 식으로 영업 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돈이 흐르는 곳에는 비리도 상존하기 마련이다. 기자는 전직 신한은행 직원의 제보로 2016년 국민권익위원회 부정·부패신고센터에 신고된 신한은행 기관영업 비리 내역이 담긴 ‘신고사실’ 문건을 입수했다. 해당 문건은 신한은행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기관영업을 하면서 저지른 비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신고 내용 가운데 일부는 경찰에 넘겨져 이미 수사와 처벌이 진행됐다.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기관영업은 치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목표물이 되는 지자체 수장의 측근, 가족 등을 파악한 뒤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촉하는 식이다. 입수한 문건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지자체장의 학맥, 측근, 가족관계, 자산규모, 정치색까지 조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건에는 ‘모 시장은 주유소 3개 등을 운영하고 100억원대 자산을 가진 재력가, 정치적으로 대통령 정책실장인 모씨와 동향이며 대학 동문 등의 인연이 있다’는 식의 문구도 있었다. 문건에 담긴 내용과 제보자의 구두진술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구청장 자녀 입사시켜 구청 접촉 전담

2010년 신한은행 기관영업부는 ‘서울시 A구청 금고를 유치하라’는 지침을 받는다. 기관영업부에서는 A구청 금고 유치를 위한 연결고리를 찾던 중 A구청장의 자녀 B씨가 2009년 신한은행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사실을 알게 된다. 신한은행 측은 B씨가 A구 금고 유치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후 B씨는 2011년 1월 신한은행에 입사하게 된다. 바로 다음 달인 2011년 2월 신한은행은 A구청의 통합기금을 관리하는 제2금고(40여억원 규모의 세금 납부와 입출금 관리)로 선정된다. A구청 통합기금 관리는 원래 다른 은행에서 맡던 업무였다.

본격적인 작업은 이후에 벌어진다. 신한은행은 B씨를 A구 금고 유치를 위한 거점 점포 역할을 하던 C지점으로 발령낸다. B씨는 C지점장과 함께 A구청에 수시로 드나들며 제1금고 쟁탈을 위해 금고 유치 영업활동을 하게 된다. 권익위 ‘신고사실’ 문건에는 “C지점장과 B씨가 A구청 접촉을 전담했다”고 적시돼 있다. 그리고 2014년 12월 신한은행은 드디어 A구 제1금고(약 1000억원대 기금관리)로 선정된다.

금고 유치를 위한 마무리 작업 또한 치밀했다. 금고 유치 작업이 마무리되어갈 무렵인 2014년 7월 신한은행은 B씨를 다른 지점으로 보냈다. 기자와 만난 제보자는 “은행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전조치를 취한다. A구의 제1금고로 선정되면 B씨가 해오던 역할이 드러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금고를 유치하기 직전인 7월에 B씨를 다른 지점으로 발령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남대문 본점 사옥 전경. ⓒphoto 신한은행
신한은행 남대문 본점 사옥 전경. ⓒphoto 신한은행

특정인 채용 요청 담은 문건도 입수

지자체 금고를 유치하기 위해 채용비리까지 벌인다는 게 과연 사실일까. 기자는 이 같은 채용비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는 점을 더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문건도 함께 입수했다. 또 다른 전직 신한은행 직원을 통해 입수한 ‘채용 관련 인사의견서’라는 제목의 문건은 신한은행의 기관그룹장 명의로 작성된 것이다. 대다수 금융사에서는 기관영업을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로 두고 있는데 기관그룹은 주로 전국 대학교, 병원, 중앙기관, 지자체 등 공공기관과 법원, 검찰, 시도별 금고 운영 및 관리를 맡고 있다. 2009년에 8월 말 작성된 해당 문건은 충청도 지역의 D시 금고 유치를 위한 신입행원 채용 요청서였다. 추천 대상자인 김모씨의 신상 내역과 함께 김씨를 채용해야 하는 이유를 담은 추천 의견이 함께 적시돼 있다. 다음은 문건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상기 추천인은 현 D시 시장 김모씨의 아들로서 미국에서 대학교 석사학위를 취득한 재원으로 우리 신한은행의 신입사원으로 주요 업무를 담당할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을 것을 확신하며, 동 추천인을 당행의 신입행원으로 채용함으로써 D시 금고의 재계약은 물론 D시 지역 내 우호적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D시 시장을 평생고객으로 확보함으로써 지역 영업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됨. 또한 D시 시장의 재산 상태를 미루어 당행 최고의 우수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부수적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바 추천인의 채용에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인사의견서 자료에는 신한은행의 D시 금고 유치실적은 물론 다른 은행들이 어떤 식으로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 D시 시장에 대한 인물 분석 등이 고루 담겨 있다. 이 문건에는 구체적인 작성자의 이름은 없다. 누가 은행의 전략은 물론이고 은행에 아직 채용되지도 않은 예비 직원의 신상정보까지 파악했던 것일까. 취재 결과 문건에 이름이 오른 D시 시장의 자녀 김모씨는 신한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다.

“블라인드 채용 거쳤다” 해명

그동안 신한은행은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서류전형을 통과한 공채 지원자를 대상으로 이력서에 기록된 신상정보를 배제한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최우수고객 확보’를 위해 선뜻 일자리까지 내줬다. 은행권 채용시즌을 앞두고 있는 취업준비생에게는 ‘뒷배경’ 없는 서러움과 박탈감을 안길 수 있는 잘못된 관행이다. 금융정의연대는 최근 신한은행 채용비리와 관련된 논평을 통해 “청년들은 이제 은행 취업을 준비할 때 자신의 성별과 출신, 돈, 인맥 등을 따져야 하는 우스꽝스럽고 서러운 처지에 놓였다. 아무리 기업에서 제시하는 인재상이 있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수년간 기관영업을 해왔던 한 시중은행 직원은 “은행에서는 당연히 입사 채용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보다 향후 은행 영업에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을 선호한다. 워낙 관행같이 자리 잡은 측면이 있다”며 “채용시스템을 바꾼다고 해서 이런 관행이 일시에 뿌리 뽑힐지 의문이다. 게다가 수조원 단위를 주무르는 시금고를 유치하는 데 채용비리만 문제되는 것도 아니다. 신한은행은 이미 2016년 인천시금고 재유치를 위해 은행지점장이 지자체장의 후원회장에게 수억원의 금품로비를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한은행 측은 이 같은 채용비리 의혹 제기를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A구청장의 자녀 B씨가 은행에 채용된 것은 맞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채용 시 지원자의 배경에 대해 평가자가 전혀 알 수 없다. 권익위에 신고가 들어간 지도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 (조사당국이) 수사에 나섰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또 자신의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 발령을 내는 것이 은행 방침이기 때문에 B씨가 A구 내 C지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라며 “신입직원들은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기 위해 영업 현장에 자주 내보낸다. 그 과정에서 금고 영업을 했을 수 있지만 신입직원이 금고 영업을 전담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해명했다.

‘채용 관련 인사의견서’ 자료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신한은행 측은 “누가 작성했는지 경위를 알 수 없지만 신한은행 인사부에서는 사전에 인사와 관련해 어떤 의견서도 받지 않는 게 내부 방침이다. 게다가 기관장 명의로 의견서를 보낸다는 것은 더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기관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데 굳이 문서로 남기며 문제소지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본다. 기관장의 사인이나 도안도 없는 이 문건은 양식 면에서도 신한은행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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