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나도 국방부가 135㎞를 80㎞라고 착각해 설명했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된다.”

최근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발표한 서해 완충수역(적대행위 중단 수역) 설정이 NLL(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으로 이어지자 정부 고위 관계자도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지난 9월 19일 정상회담 군사 분야 합의 발표 때 서해 완충수역의 길이가 남북 각각 40㎞, 총 80㎞라고 했다. 완충수역은 우리 덕적도와 북한 초도를 잇는 직사각형 구역이다. 이 수역에선 해상 기동훈련, 사격훈련 등이 중지된다.

하지만 이날 오후 조선닷컴은 완충수역의 길이가 정부의 설명과 달리 남측 85㎞, 북측 50㎞로 총 135㎞이며 남측이 35㎞나 더 길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디지털뉴스부의 양승식·변지희 기자가 구글맵 분석 등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이에 대한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질의가 이어지자 국방부 대변인실은 이날 밤 10시쯤 장문의 해명 문자를 발송했다.

‘완충수역 내 북측 해안포 108여문, 우리 측 해안포 30여문. 해상에서도 황해도 인근 북측 경비함정이 우리 측보다 수배 이상 운용하고 있음을 고려 시 이를 특정 선을 기준으로 상호 등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 이러한 완충수역에서 제한되는 군사활동은 해상에서는 함포사격과 함정 기동훈련, 도서 및 육상의 해안지역에서는 포병, 해안포 사격 중단 등이 해당되는 바 단순히 해역의 크기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음.’

완충수역 길이가 80㎞인지, 135㎞인지 등 가장 기본적인 팩트의 오류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오히려 북측이 더 양보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국방부는 이튿날인 9월 20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야 전날 발표가 잘못됐다며 최현수 대변인 발언을 통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국방부 고위 당국자 등은 “특정선(NLL)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서해 완충수역과 NLL은 별개의 문제라는 식의 설명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국방부 등 정부는 추가 설명을 내놨다. “NLL 최남단에서 우리 덕적도를 잇는 직선거리가 32㎞, NLL 최북단에서 북쪽 초도를 잇는 거리가 50㎞”라며 “둘을 합하면 80㎞가 된다는 의미였으며, 덕적도에서 초도까지 거리가 135㎞라는 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국방부는 또 “서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내 북한 해안포는 우리보다 6배, 포병은 8배나 많다”며 “합의를 준수하면 그 지역에서 (북한군은) 사격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북측이 훨씬 많이 양보한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의 설명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예비역 장성들은 수도권 옆구리인 덕적도 지역까지 완충수역에 포함돼 해상 기동훈련, 사격훈련이 중단되는 데 대해 수도권 서쪽 방어선이 뚫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중장)은 “서북도서와 NLL에서 우리에게 주된 위협이 되는 것은 북한군 구형 해안포가 아니라 방사포(다연장로켓)와 지대함 미사일 등인데 이번 합의에선 지대함 미사일은 아예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완충수역에 대해 NLL 같은 선이 아니라 구역의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점도 의구심을 사고 있다. 북한의 NLL 무력화를 사실상 용인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나아가 완충수역이 남측 85㎞, 북측 50㎞로 불균형인 것도 NLL 남쪽에 있는 북측 ‘경비계선’을 기준으로 완충수역을 설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경비계선을 기준으로 할 경우 북측 60㎞, 남측 75㎞ 정도로 남북 간 격차가 줄어든다.

남북이 이번에 합의한 평화수역과 시범 공동어로수역이 본격 가동되면 NLL 무력화는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NLL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어선 등이 NLL을 수시로 넘나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평화수역과 공동어로수역은 노무현 정부 때도 추진, 논란이 됐던 사안”이라며 “공동어로수역을 만들면 남·북한 선박 간 분쟁이 자주 일어나 NLL 일대가 사실상 상시 분쟁지역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미 간 협의 문제도 이번 남북 군사합의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유엔군사령관은 정전협정 규정에 따라 우리 측을 대표해 정전협정을 준수하고 집행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때문에 이번 합의에서 DMZ 내 문제와 관련된 사안은 유엔군사령관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번 군사합의 중 DMZ 내 GP(감시소초) 11곳 시범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한강하구 공동 이용, DMZ 공동 유해발굴 등 4개 사항이 유엔사의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DMZ 인근 20~40㎞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유엔군사령관이 아닌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과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유엔군사령관은 원칙적으로 DMZ 내 사안만 관할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의 미 의회 청문회 발언이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DMZ 내 모든 활동이 유엔사 소관”이라며 “남북은 대화를 계속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은 유엔군 사령부에 의해 중개(brokered), 심사(adjudicated), 사찰(observed), 이행(enforced)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국방부의 설명이나 미측 반응을 볼 때 이번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미측이 아직까지 동의하지 않은 것 같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국방부 당국자는 지난 9월 19일 이번 합의에 대해 미측 동의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3개 채널로 52차례에 걸쳐 유엔사 등 미측과 협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아직까지 “미측의 동의를 받았다”는 표현 대신 “미측과 협의 중”이라는 공식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측과 52차례나 협의했다는 것은 그만큼 미측이 예민하게 반대할 사안이 많았다는 방증이며, 아직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미측의 동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DMZ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10~40㎞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공중정찰활동을 중단키로 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이 제기된다. 비행금지구역에서는 항공기의 공대지미사일 사격 등 실탄 사격을 동반한 전술 훈련, 공중정찰활동이 금지된다. 현재 비행금지구역은 유엔사에 의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9㎞로 설정돼 있다.

DMZ 일대를 감시하는 전술 정찰기와 중·대형 무인기 전력에선 한·미 양국이 북한군에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쪽 정찰 감시 능력만 크게 약화될 수 있는 것이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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