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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호]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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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통신] 5성급 위 국빈관서 홍색귀족 체험하려면…

백춘미  통신원 

▲ 저장성 항저우의 국빈관 ‘서자빈관’ 9호루. photo 백춘미
최근 한 중견그룹 회장이 상하이를 찾았다. 투숙한 곳은 해외출장이 많은 이 기업과 장기계약을 체결한 글로벌 브랜드의 5성급 호텔. 현지 법인장이 상하이를 찾은 회장을 위해 저녁식사 자리를 섭외한 곳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서교빈관(西郊賓館)이란 호텔이었다. 서교빈관은 상하이의 국빈관 중 하나다. 건물들로 빽빽한 상하이에서 드넓은 정원과 독립식 별장을 갖춘 보기 드문 호텔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1986년)과 아키히토 일왕(1992년) 등이 상하이를 찾았을 때 머문 곳이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 때는 후진타오 당시 주석이 이명박 대통령 등 외빈들을 맞이했다. 서교빈관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이 중견기업 회장은 “상하이에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다음에는 여기에 숙소를 잡자”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브랜드 호텔들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중국 호텔시장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국빈관이다. 중국 호텔시장에서는 “5성급 위에 국빈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외교무대로 잘 알려진 베이징의 조어대국빈관처럼 상하이에도 서교빈관, 동교빈관, 홍교영빈관, 서금빈관 등 국빈관이 여럿 있다. 과거 당정군 간부들과 외빈들의 전용 숙소로, 위병들이 지키는 솟을대문과 전기철조망이 드리운 높은 담장 안쪽으로 푸르른 잔디와 정원 위에 드문드문 독립식 별장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하이의 대표적 국빈관인 서교빈관은 이 모든 것을 갖춘 곳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실감하는 것은 과거 당정군 간부들의 전유물이었던 국빈관을 일반 관광객에게도 개방하는 것이다. 서교빈관만 해도 원래 중국공산당 상하이시위원회의 ‘414초대소’였다. 바로 옆 ‘415초대소(현 홍교영빈관)’와 함께 당 간부 전용 숙소였다. 마오쩌둥은 이곳을 14차례 찾아서 머물렀다.
   
   하지만 덩샤오핑 집권 후 개혁개방을 단행한 이후 국빈관도 문턱을 낮췄다. 1979년 황산(黃山)을 오른 뒤 상하이 서교빈관에 투숙한 덩샤오핑이 “이렇게 큰 집과 정원을 관리하는 데 돈이 얼마가 드느냐”며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며칠이나 이용하느냐”고 질책하며 일반에 개방을 지시한 후 국빈관 개방의 신호탄이 울렸다. 암호 같은 이름도 일제히 바꿔 달렸다. 후난성 창사의 ‘201기지’는 용원빈관이 됐고, 지린성 창춘의 ‘1호 초대소’는 송원빈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후부터 풍광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대부분의 국빈관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일반 관광객에게도 개방해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일부 국빈관은 ‘중국국빈관협회’라는 협회를 결성해 협회지까지 펴내는 등 공동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비록 베이징의 조어대국빈관과 상하이의 서교빈관 같은 특A급 국빈관은 빠져 있지만, 중국 현대 정치외교사의 무대가 된 약 40개 국빈관들이 가입해 있어 중국 여행 시 유용한 가이드가 되고 있다. 상하이의 국빈관 중에는 장제스와 쑹메이링의 약혼식 장소이자 초대 상하이시장인 천이의 관저였던 서금빈관과 옛 중공 상하이시위원회의 ‘415초대소’였던 홍교영빈관이 중국국빈관협회 소속이다.
   
   
   마오가 27번 투숙한 항저우 서자빈관
   
   사실 ‘국빈관’이라고 해서 별도의 카테고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베이징의 조어대국빈관이나 항저우의 서호국빈관, 난징의 동교국빈관처럼 ‘국빈관’이라고 간판을 내건 곳은 소수에 그친다. 상하이의 홍교영빈관, 광저우의 광동영빈관, 양저우의 양저우영빈관처럼 ‘영빈관’이라고 내거는 경우도 있다. 서교빈관, 동교빈관처럼 일반 호텔을 뜻하는 ‘빈관(賓館)’이라는 이름만 내건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하이의 금강반점처럼 누구보다 많은 국빈을 맞이했지만, 지금은 중국 최대의 체인호텔로 환골탈태한 곳도 있다. 상하이의 서금빈관은 2013년 아예 글로벌 호텔체인인 인터컨티넨탈호텔그룹(IHG)에 편입돼 ‘서금인터컨티넨탈주점’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하지만 이들 국빈관의 공통점이라면 민간 호텔이라면 범접하기 힘든 핵심 요지에 드넓은 땅을 차지하고, 유명 정객들과 관련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최근 항저우를 찾아 서자빈관(西子賓館)이란 국빈관에 투숙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국빈관협회에 속한 이 호텔은 항저우의 상징인 서호(西湖) 호반 바로 옆, 레이펑탑 바로 아래에 자리한 국빈관이다. 과거 차를 팔아 부를 쌓은 왕씨 성을 가진 거상의 별장으로 ‘왕장(汪庄)’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마오쩌둥은 항저우를 찾았을 때 27차례 이곳에 투숙했다. 덕분에 인근에 있는 서호국빈관과 함께 항저우에서 가장 유명한 국빈관이 됐다.
   
   2016년 항저우에서 G20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시진핑 주석이 환영만찬을 베풀고 서호를 비추는 달빛 아래 레이펑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곳도 바로 이곳이다. 마오쩌둥이 이곳을 찾을 때 주로 머물렀다는 ‘9호루’에는 시진핑 주석이 각 나라 정상들과 찍은 개별사진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는데, 당시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은 쏙 빠져 있었다. 당시 항저우 G20정상회의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THAAD) 배치 결정 직후 가진 첫 한·중 정상회담이었는데, 냉랭해진 한·중관계를 반영하는 듯했다.
   
   중국의 대부분 국빈관은 이처럼 마오쩌둥과 얽힌 스토리를 하나쯤은 갖고 있다. 서자빈관 인근의 서호국빈관은 과거 ‘류장(劉庄)’이라 불리던 별장으로 마오가 머물면서 중국 헌법을 기초한 곳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이 머물면서 미·중관계를 정상화한 ‘상하이코뮈니케’의 초안도 이곳에서 작성됐다. 우한의 동호빈관은 마오가 48차례나 찾은 곳으로, 마오가 투숙한 별장과 산책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代)가 방중 때 모두 찾아 유명해진 다롄의 방추이다오빈관은 해변가에 마오가 친필로 휘갈긴 ‘원망(遠望)’이란 시를 새긴 석비를 남기고 있다. 마오의 고향인 샤오산에 있는 샤오산빈관은 마오를 위해 특별 제작한 침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심지어 쑤저우에 있는 남원빈관은 마오를 상대로 정변을 계획한 린뱌오(林彪)의 유물까지 보존하고 있다. 원래 장제스의 쑤저우 별장이었던 이곳은 한때 마오의 후계자로 지명된 린뱌오가 애용했던 곳이었다. 린뱌오는 이곳을 지휘부 삼아 마오쩌둥을 제거하기 위한 ‘571공정’이란 정변을 계획했다. 571은 중국어로 발음하면 ‘우치이(五七一)’로 무장봉기를 뜻하는 ‘우치(武起)’와 발음이 비슷하다. 남원빈관에는 린뱌오가 타던 홍치 자동차까지 전시해놓고 있다. 린뱌오의 역모사건은 중국공산당이 가장 터부시하는 역사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국빈관들은 모두 중국국빈관협회 소속으로 일반 관광객도 투숙이 가능하다.
   
   중국 최대 여행 시즌인 국경절 연휴(10월 1~7일)가 시작됐다. 중국 각지의 국빈관은 방값이 치솟아 글로벌 브랜드의 유명 5성급 호텔들의 숙박비를 추월했다. 개혁개방과 함께 이제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여유만 있으면 ‘홍색(紅色)귀족’의 생활을 맛볼 수 있게 됐다. 국경절 중국 여행을 계획하는 한국 관광객들도 국빈관에 머물면서 홍색귀족이 된 기분을 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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